예전에 어떤 회원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락뮤지션중에 뱀을 키우는 사람이 몇몇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건즈앤로지스의 슬래쉬와 앨리스 쿠퍼가 뱀을 키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또다른 뱀 키우는 사람 아시는 분 계신지요??"
그 회원의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꼬리말을 달지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저같은 경우는 꼬리말을 달려고 했는데 슬래쉬와 앨리스 쿠퍼 외에 뱀 키우는 락커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달지 않고 미제로 넘어갔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게 10년전 이야기였는데 오늘에야 그 분의 질문에 응답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슬레이어를 차분히 조사하다보니 창단멤버이자 기타리스트인 케리 킹이 뱀을 키우는 사람이더군요.
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0년전으로 간다면 그 분에게 케리 킹이라고 꼬리말을 달아주고
싶습니다. 진실로~~ 만약 제가 그때 케리킹이 뱀을 키운다고 꼬리말을 달아주었다면 그분께서 계속
지금까지 주혹새에서 활동하고 있을것도 같은데 ㅜ.ㅜ
1981년, 어린 시절부터 부유하게 성장한 케리킹(그의 부친은 항공기 검사관, 모친은 전화국 직원이었
다고 합니다)은 어떤 밴드에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는데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와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면서 졸라 친해집니다. 잼이 끝난후 케리킹은 그에게 '우리만의 밴드를 해보는게 어때??'라고 제의했고, 그 말을
들은 기타리스트는 흔쾌히 승낙하며 슬레이어의 전설은 시작됩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그 기타리스트는 제프 헤네먼이죠.
제2차 세계대전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아이언 메이든의 음악에서 종종 언급되었던)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형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전쟁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라든가 온 가족이 보는 TV시청 시간에 그의 어린 시절을
사로잡아버린 것은 탱크나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병기에 관한 분석, 전쟁사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유년시절은 이후 그의 음악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칠레 출신의 탐 아라야는 다섯살이 되자 캘리포니아로 이사왔습니다.
탐이 베이스를 처음 잡게 된것은 여덟살때로 기타를 연주하는 친형의 권유아닌 권유때문이었는데요
당시 아라야 형제가 주로 카피하던 곡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같은 음악이었다고 전해지는군요.
80년대 초반 탐은 누이의 권유로 호흡 치료사라는 일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호흡 치료사로 일하면서 틈틈히 밴드를 구하던 아라야가 캐리 킹을 만나게 된것은 1981년
입니다.
"야 너 우리 밴드 들어올래??"
"그래~~"
이런 식으로 아라야는 캐리 킹의 제의를 가볍게 받아들이며 슬레이어의 멤버로 합류하지만 슬레이어가
데뷔앨범을 발매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직전인 1984년까지는 계속 병원에서 호흡 치료사로 일
했다고 합니다. 그가 병원을 그만 둔 것은 슬레이어의 첫 유럽 투어가 있던 때로 그는 병원에 휴가를 신
청했지만 냉정하게 기각당하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네가 필요해. 어느 누구도 너를 대체할수 없단 말이다."
이러한 기로의 선상에서 아라야가 택한 것은 병원이 아니라 슬레이어였고, 결국 그 댓가로 그는 병원
에서 짤리고 맙니다.
2살때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쿠바 태생의 데이브 롬바르도가 드럼에 매혹된 것은 산타나의 레코드에서
들었던 봉고 소리였다고 합니다. 이후 타악기의 소리에 매력을 느낀 롬바르도는 스쿨 밴드에 들어가
북치는걸 배우게 되는데요(머틀리 크루의 타미 리가 학창 시절 연주했던 행진북이라고나 할까??)얼마
후 이러한 행진북보다 셋트 드럼에 더욱 매료되기 시작합니다.
롬바르도는 10세때 아버지로부터 셋트 드럼을 선물받고 키스와 레드 제플린을 들으면서 성장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본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계속해서 롬바르도는 드럼 레슨을 받고 뮤지션이 되어갑니다.
친구의 권유로 디스코 텍에도 드나들고(롬바르도는 이 시절이 자신에게 리듬감을 불어넣었던 시기라고
회상하고 있더군요) 몇몇의 뮤지션들을 만나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을 카피하다가 본격적인 밴드생활을
하게 된것은 1979년 Escape라는 밴드로 이 시기에는 주로 레드 제플린, AC/DC, 블랙 사바스의 곡을
카피했다고 합니다. 이후 SABOTAGE라는 밴드에서도 활동하는데요 이때 부모님들로터 암바가 걸려
왔습니다.
"음악도 좋지만 직업을 구해야 하지 않겄냐??"
이런 걸 보면 국적을 초월하여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밴드 생활 하는 것을 많이 걱정하시는 것 같심다.
결국 고민 끝에 롬바르도는 사보타지를 탈퇴하는데 이 과정에서 밴드 보컬리스트의 여친으로부터 졸라
위협을 당합니다. 보컬의 여친은 학교 신문에 롬바르도를 비방하며 누가 더 잘 되나 보자는 독설을
여과없이 퍼부어댔다고 하는군요. 뭐 결국 롬바르도가 더 잘 되긴 했지만 ㅎㅎㅎ
1981년 롬바르도는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피자 가게에 취직하여 배달을 하던 도중 자신의 집으로부터
5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부잣집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접근합니다.
"너 돈 졸라 많데며?? 나랑 밴드할래??"
"너 드럼 좀 치냐??"
캐리킹과 데이브 롬바르도는 그 자리에서 잼을 합니다.
"어때?? 내 실력 마음에 드냐??"
"웅~~ 너 우리랑 같이 하자"
이렇게 해서 슬레이어는 라인업을 모두 구축합니다.
초창기의 슬레이어는 지금과는 달리 진한 화장과 스파이크를 했고, 팬타그램과 역십자가 등 악마적인
표식은 그때부터 퍼포먼스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주로 클럽에서 아이언 메이든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던 슬레이어가 물주인 브라이언
슬라겔을 만난 것은 LA의 우드스탁 클럽으로 당시 슬레이어는 메이든의 명곡 Phantom of the opera
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슬레이어의 연주에 고무받은 브라이언은 밴드를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그들에게 자신의 레이블인 Metal blade를 소개하고 컴필 앨범 Metal Massacre III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슬레이어는 이 앨범에 Aggressive Perfector라는 곡으로 참여합니다.
ㅋㅋ 노래 제목을 보니까 초장에 언급했던 그 회원이 또다시 떠오르는군요.
예전에 그 회원과 함께 저를 묵사발 만들었던 어떤 회원을 독려하며 그가 했던 말이 불현듯 뇌수를
떠돕니다.
"정말 어그레시브하면서도 퍼펙트하게 글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ㅎㅎㅎ"
그때 그의 이 꼬리말을 보면서 어디선가 한번 경험한 적이 있는 뉘앙스를 받았는데 그게 바로 슬레이어
를 암시하는 것인줄은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ㅋㅋㅋ
어쨌거나 이것은 슬레이어 최초의 레코딩이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슬레이어는 맹렬하게 창작에 임하
였지만 머틀리 크루와 래트가 패권을 잡고 있던 나성에서 그들은 좀처럼 기를 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들의 손을 흔쾌히 잡아준 사람은 역시 브라이언이었죠.
"내가 도와줄까??"
"ㅜ.ㅜ 감사합니다~~"
브라이언은 레코딩 이외의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케리 킹은 아버지로부터 거액을 빌려 녹음합니다.
슬레이어가 레코딩을 위해 녹음실에 들어간 것은 83년 11월이고 녹음이 완료된 것은 그로부터 3주후
인 12월로 프로듀서는 슬레이어 멤버들 스스로가 했고 타이틀은 Show no mercy~~ 입니다.
바로 이 앨범이었죠.
첫댓글 전설이 시작된 이야기 너무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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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히어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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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분... 히어로 축하드립니다 l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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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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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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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만세!!!
메탈만세!!!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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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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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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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RRR~!!! ^^ 정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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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부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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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 하네만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