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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악-이륙야 합동 산행 : 덕유산
집결 시간 및 장소 : 15일(일) 오전 6시 30분/ 전철 연산역 5번 출구
코스 : 송계사 주차장(10:00) - 횡경재(12:00?) - 송계삼거리 직전 안부 능선에서 중식(14:00) - 송계삼거리(14:30) - 덕유평전 - 중봉(15:00) - 향적봉(15:40) - 설천봉(16:00) - 무주리조트(16:30) (9km)
참석자 : 27명
이륙악 / 김정곤 회장, 최수일* 총무, 설광룡 대장, 강수남, 김태규, 김택영*, 박성규, 배한수, 양지영, 이규생, 이근범, 이상원, 이영덕*, 이춘섭*, 추창구, 최명해, 홍청곤 <19명>
이륙야 / 조해래* 회장, 강태중* 총무, 박재창, 이영학 <8명> (*는 부인 동반/ 밑줄 대원은 악, 야 회원 겸함)
<실선은 금번 산행 코스인 송계사-중봉-향적봉-무주리조트 경로이고, 점선은 지난 1일 사전답사한 향적봉-중봉-동엽령-용추폭포 코스>
“이류~욱~, 악~야~, 아야~......”
주간 산행 전문팀과 야간 산행 전문팀이 야합 대신 주합하여 설국 산행을 떠났겄다.
마침 며칠 전 전국에 비가 내려 눈 많은 동네 덕유는 설국으로 변했으리라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고대했던 산행.
출발 전날 덕유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에 들어가도 눈 얘기는 한마디도 없고, 13일 오후 덕유산릉엔 비가 내리고 있다는 현지 시간의 짧은 코멘트만 짤막하게 게시.
이기... 이기... 이거 무신 말인교?
정확한 상황은 무주리조트 웹캠에 들어가 보라는 안내 글을 보고 찾아봤더니, 아하 불쌍......! 난감무지로소이다.
게시된 사진 속 풍경엔 스키장 흰 슬로프 뒤로 보이는 나무에 하얗게 내려앉아 있어야 할 순백의 설화는 흔적도 없고, 그냥 무미건조한 형상의 겨울나무 모습, 벌거벗은 나목만 빽빽하게 보이네.
그럼 며칠 전 비에 눈이 몽땅 녹아버렸다는 얘기인데, 이를 우야꼬...!
그럼 날씨가 추워진다니 예보엔 눈 이바구가 있을랑가 싶어 기상청을 방문해도 덕유산 일원엔 눈 내릴 기미는 전무하고, 다만 구름이 많고 남쪽의 장수 일원에 예상 강수량 1mm 이하......
아, 꿈이로구나! 날 샜다 날 샜어......!
아내조차 ‘눈 없는 덕유산 무슨 재미로 갑니껴?’ 라고라.
그저 ‘산행 중에 조금이라도 흰 떡가루를 뿌려주시면 다행이겠는데......’ 하고 빌어 볼 수밖에.
전날 밤 늦게까지 이것저것 챙기고 배낭에 집어넣는데 별로 흥도 나지 않고, 기본 소지품만 챙겨 내 놓은 아내 배낭까지 신경 쓰며 비상용 아이젠, 랜턴, 스패츠, 의자 등 두 세트씩 만약을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보니 벌써 새벽 2시.
많이 자야 3시간 남짓이니 수면 부족은 당연지사라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 눈을 좀 붙이면 되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휴대폰의 정확한 모닝콜에 눈을 뜨니 새벽 5시 5분.
아내는 치료 중인 목이 다시 아픈지 갑자기 산행을 사양하니 이거 혼자 바쁘네.
커피,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찬물 한 수통, 비상식 인절미, 점심 대용 야채 샌드위치, 하얀 물병의 검붉은 감기약, 게다가 양갱 30개.
급하게 나서다보니 빼내야 할 아내의 아이젠(비상용까지 하나 더), 의자, 스패츠 등 필요 없는 것까지......
이거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구먼(출발하고 나서야 아내 것까지 챙겨온 걸 알았으니, 원......).
6시에 집을 나서니 전차를 타도 충분하리라.
정시에 당도하여 연산동역 5번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나오니 휴대폰이 울어대 열어보니 건너편 출구 쪽에서 건너오랜다.
도로공사 관계로 차량이 다른 출구에 대기 중이라면서 도로를 횡단하라며 손짓하네.
우이... 아니... 그래도 암만 새벽녘이라 보는 눈이 없다지만 그럴 수가 있나 하며 다시 지하로 내려가 둘러 올라가니 차 안엔 부지런한 동포들이 벌써 열댓 명이 자리 잡고 않았다.
6시 50분경에 출발하여 만덕에서 강소장(수남)을 태우고 남해고속도로를 들어서더니 얼레, 공항로로 우찌 내려서는고.
김해 쪽으로 전환하자마자 곧 멈추니 앞에 승용차가 하나 서는데, 김회장의 배낭을 전달하러 온 아들인 모양이다.
아니, 김정곤 회장은 배낭도 없이 집결지에 왔단 말인겨? 이 무슨.....
계속 국도를 따라 김해 땅에 들어서 다시 동김해IC로 진입해 남해고속도로로 올라서니 아마도 이춘섭 부부를 태울 참인 모양.
이제 더 이상 도중에 승차할 대원이 없는 지라 아침 대용으로 준비해 온 김밥과 생수, 귤 등이 배급되고, 진영휴게소에서 아침식사와 배설 등 용무를 보라고 정확하게 20분 정차한단다.
휴일 아침이면 항상 붐비던 진영휴게소엔 단체산행 팀의 버스들이 줄지어 선 것 외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승용차도 적고 오히려 조용하다.
김회장의 친구가 운전하는 45인승 차량은 거침없이 달려 함양에서 88고속도로로 진입해 거창IC로 나와 국도를 따라 경남 거창군 북상면 송계리에 소재한 송계사 주차장에 닿는다.
오전 9시 45분경에 도착했으니 아주 빨리 닿은 셈이라, 몇 년 전의 산행 때보다 한결 여유 있는 산행이 될 것 같다.
문제는 짧은 수면시간인데, 차 안에서도 훌라패들의 행패(?)로 잠을 이룰 수 없었으니 체력이 뒷받침 될는지 적이 걱정이 되네.
다른 한 단체 팀이 당도하여 우리보다 앞서 출발하니, 화장이 필요한 대원은 볼 일 보러, 차 안에서 연기를 내지 못해 질식할 뻔 했던 대원은 담배를 연신 볶아대면서, 우리도 슬슬 출발 준비를 하고 10시 직전에 대장정 출발!
부산을 출발하면서 최총무가 미리 ‘유감스럽게도 눈은 기대하지 말라’는 안내 멘트를 했지만, 정말 주위를 둘러봐도 또 차로 이동하면서 내다 본 풍경에서도 눈이라곤 눈곱만큼도 볼 수 없었으니, 우와 이럴 수가......
선두에 이륙악 김회장, 중위엔 최총무, 후위엔 이륙야 조회장이 맡고 그 중간에 끼리끼리 어울려 주당과 야동들이 덕유 탐승을 시작했겄다.
주말엔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겠다고 했지만 계곡엔 얼음 구경도 할 수 없고, 약간 싸늘한 공기를 느끼지만 마치 이른 봄 같은 기분이라.
계곡을 따라 한두 차례 쉬어가면서 워밍업 하는 기분으로 오르니 몇 년 전의 눈에 덮여 있던 이 길을 걷던 때와 비교가 되는데, 우째 더 먼 것 같은 느낌은 웬 일인고.
계류를 가로지르는 곳에서 휴식하며 본격적인 산행 채비를 하니 한결 몸이 가벼운 느낌이고, 모두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거나 걸어 행보에 지장이 없도록 하며 배급된 감귤을 까서 등짐을 조절하니 또 다른 한 단체 팀이 지나간다.
이 조용한 코스가 오늘은 제법 붐비는 산길이 될는지, 좁은 등산로가 꽤 혼잡해질 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능선으로 치받아 오르는 길이라 횡경재에서 뻗어내린 지능선(능선 산행 출발점)까지 일이십 분 정도 코를 땅에 박고 용을 써야 할 때라.
아직 몸이 덜 풀린 탓인지 다리도 묵직하고 등에 가해지는 무게가 묵직하니 일단은 슬로우 스타트.
급사면에 갈 지(之) 자로 난 산길을 느릿느릿 오르니 또 다른 단체산행 팀이 가비얍게 우리를 스쳐 지나가네.
‘햐, 젊음이 부럽고나, 청춘아 니 어데로 갔노!’
어찌 저리도 숙녀들의 발걸음이 가벼운지, 작지 않은 배낭을 메고도 사뿐사뿐 잘도 걷는구나.
“대한민국의 국력은 바로 숙녀들에게서 나온다. 아니 아지매들로부터 나온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제.
헌법 제1조를 바꿔야 안 되겄소? 누가 민주공화국인 줄 몰러?
바로 위 문장을 헌법 제 1조에 당당히 넣어둬야 할 터.
겨우 본격 능선산행 시발점에 당도하니 선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중군의 대원들이 기진맥진 했는지 벌써 갈색 감기약을 투여하고 있다.
짜릿한 감기약이 입안에서 확 퍼지며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니 머리가 진동하며 전신에 열기가 불끈불끈 솟는구나.
자, 이제 약발이 있는지 능선 길을 힘차게 올라봐야지.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팀 숙녀들이 한 명도 보이질 않으니 어찌 된겨?
원래 산행 계획은 송계사 출발 팀과 삼공리를 거쳐 백련사에서 향적봉에 오르는 팀으로 이원화했는데, 오는 차 속에서 함께 산행을 하기로 바뀐 것이다.
일단 백련사 팀은 이륙야 위주로 구성되었고, 숙녀들을 포함한 대원들이 자칫 전체 행보에 지장을 초래하면 곤란하므로 이륙악과 달리 백련사를 경유한 코스를 잡아, 향적봉에 오르면 다행이고 불가한 경우 같이 철수해 무주리조트에서 합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숙녀들이 이륙악 남정네들보다 훨씬 앞서 오르고 있으니 기우도 한참 헷갈리는 기우였던 셈이다.
횡경재가 일단은 극복해야 할 고지이므로 전반전 초점은 오직 덕유능선에서 신풍령으로 통하는 중간 지점인 이곳에 맞춰져 있다.
이곳까지가 경사가 제법 센 능선길이고, 몇 년 전 산행 때 이 횡경재 바로 아래 능선 눈밭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아지매들의 엉덩이는 보이질 않고 되려 다른 팀들에게 꼬리를 잡히는 판이니 후군의 남정네들이 이륙악과 이륙야 신사들의 체면을 엄청나게 실추시키는 셈.
산릉길이라지만 길은 매우 좁아 좌우로 엄청난 급사면이니 간간히 현기증이 날 지경인데 호흡은 거칠어지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고, 바짝 뒤에서 따라오는 산꾼들에게 밀리는 신세이니 마음은 급하고, 다리는 주인을 잘못 만났다고 투정이고 쥔은 다리 탓이니 무언가 잘못된 인연인가.
몇 년 전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던, 영롱한 빛을 발하면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맑은 소리를 내며 달랑거리던 얼음은 어디를 가고 벌거벗은 나목들만 우리를 맞는고.
그것이나마 있었으면 이리도 고된 산길을 걷지 않을 터인데, 쩝......
그 중에도 앞에 가는 대원을 꼬셔 자주 쉬어가는 방법이 그런대로 먹혀 들어가니 우리 후군은 ‘세월아 가거라 우리는 쉬노니......’ 마치 산천 유람 나온 풍류객이로세.
한동안 좁은 산릉에 머리보다 더 큰 바위들이 자칫 흘러내려 위험을 초래 할 듯한 경사길을 조심스레 통과하고, 뒤에서 밀고 오르는 소대 병력 정도의 단체 산행 팀에게 길도 양보하며 어렵사리 오르니 머리 위에서 야호 소리가 들린다.
이제사 횡경재에 다다랐나 싶었는데 둘러보니 지난 번 산행 때 점심을 먹었던 장소란 걸 금방 알겠네.
능선 길 중에서도 제법 넓은 곳이라 예서 눈밭에 점심상을 벌렸던 기억이 생생하고, 그 때 앉았던 넓적한 바위까지 그대로 있구나.
산행 시작 후 처음으로 엉덩이를 낮은 바위 위에 붙여보는데, 최총무가 쥐어주는 옛날식 땅콩과자 한 알이 꿀맛이로세.
그려 몇 년 전에 김노인(윤철)이 예까지 왔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몇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던 길을 도로 내려갔었지.
그럼 횡경재는 바로 저 위에 있다는 걸 삼척동자라도 알겠져.
왜냐하면 예전에 이곳에서 점심 먹고 얼마 오르지 않아 널직한 횡경재에 닿았으니, 에고 일단 초반 고생은 끝나는 셈인가보다.
엉덩이를 떼고 마지막 고비를 힘차게 오르는데 이런, 얼굴에 차가운 무엇이 닿는데 이거 눈이 아닌가.
눈에 보일똥 말똥한 가는 눈이 살살 날리는데 그냥 숲 음지에 남은 잔설들이 바람에 날리는가 했는데 점점 세어지는 게 분명 하늘나라에서 뿌린 것이 맞제.
이윽고 횡경재에 다달으니 우리 팀 숙녀들과 앞선 대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들 부산하게 배낭 속에 넣어둔 자켓을 끄집어내 챙겨 입고 배낭 커버도 씌우고 제법 세게 내리는 눈에 대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게다가 이곳은 며칠 전 비에 녹지 않고 살아남은 잔설이 이미 순백은 잃었지만 꽁꽁 얼어붙어 엉거주춤 조심조심 걸음걸이를 떼게 만드니 조금 전까지완 전혀 다른 상황일세.
굵은 눈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보라치는 정도는 아니라도 금방 배낭 위에 하얗게 쌓이는 걸 보니 이미 이 지점의 온도는 짐작할 만하고, 후딱 겉옷을 다시 입고 단단히 채비를 한다.
센 바람과 눈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서둘러 출발을 하는데 아직 아이젠을 착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약간 미끄러운 길이지만 낙엽이 뭉쳐있는 부분을 밟고 가니 걸을 만하고 이젠 그리 급한 길이 없으니 얼음판만 만나지 않으면 힘든 구간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우리와 역으로 내려오는 꾼들은 더러 아이젠을 걸치고 있어 위쪽 상황이 다소 궁금하기도 하네.
스틱 하나를 아지매한테 건내 주고 조심조심 숲길을 걸으니 예전엔 이 길을 제법 발이 눈 속에 빠지며 오르던 기억이 나서 그런대로 낭만적인 산길이었던 같은데, 오늘은 등산객들이 다녔던 길 따라 다져진 잔설이, 그것도 발길에 더렵혀진 것이라 지친 다리만큼 맴도 우중충하다.
거의 두어 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이젠 다리도 산길에 적응한 것인지 좀 가벼워졌고, 선두와 여전히 연결이 되진 않지만 중군과 후군이 합쳐져 오르니 우리 대열이 제법 길어졌다.
눈발은 약해졌다가 좀 세어졌다가 하지만 양은 미미한데 산 아래는 온통 하얀 게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미 우리는 구름 속에 들어선 것인지 눈높이에서도 십여 미터 주위는 이미 희미하여 사위가 모두 흰색이다.
곧 이전에 저 아랫 동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곳이 나올 터인데, 손도 엄청 시리고 바람도 거세 아예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점점 잔설도 많아지고 다져진 산길은 미끄럼을 더하지만 아직은 아이젠 없이도 걸을 만한데, 하산 팀의 발에는 거의 아이젠이 달려 있어 힘차게 걸어내려 간다.
그럼 앞으로 아이젠 없이 걷기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이바구가 되겠네.
아니나 다를까 길옆의 나뭇가지를 잡고 걸어야 하는 길도 만나고 경사가 세어질수록 거의 얼음으로 다져진 길은 쉽게 걷기를 방해한다.
한차례 대규모 팀이 자나간 길은 아이젠으로 짓이겨져 얼었던 눈이 잘게 깨어지니 발길을 좀 수월하게 하지만 이내 미끄러운 얼음길이라 숙녀에겐 걷기가 힘들면 아이젠을 착용하도록 일러둔다.
그런대로 한 봉우리를 겨우 올라서니 빽빽한 철쭉 숲속으로 난 내리막길이 도리 없이 아이젠을 착용하라고 압력을 넣네.
엉거주춤 그냥 내려서면서 나무가지에 의지해 몇 발짝 내려서는데 영 아니올시다 그려.
할 수 없이 내림길 도중에 배낭을 내리고 아이젠을 꺼내 부착하는데 무지무지 손도 시리고 해서 아예 장갑도 스키용으로 바꾼다.
급하게 서둘다 보니 아이젠이 좌우가 바뀌었지만 귀찮아 그냥가기로 하니 한결 미끄럼 내림길이 수월타.
여섯 포인트 아이젠이 얼음장 같은 잔설을 팍팍 찍고 나가니 소리도 낭랑하니 듣기에 좋구나.
그러나 아이젠 박는 소리도 분대 단위 팀이 지나갈 땐 영락없는 독일군 행진 소리라, 숲속의 미물들이 꽤나 심란했을 거여.
그러나저러나 점심때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선두의 꽁무니는 당체 보이질 않으니 고함을 질러도 무반응이요 휴대폰은 터지질 않는 곳이라 어쩌자는 것인지......
아마도 오찬장을 확보하려고 탐색 중인데 적당한 자리가 없어 계속 전진 중일 수도 있을 것이겠거니 하고 우리도 계속 하염없이 걸을 수밖에.
드디어 최총무가 선두를 잡으려고 뛰어 나섰지만 이 양반도 종래 함흥차사여.
배고픔을 참다못한 김원장이 오찬장 헌팅을 나서는데 워낙에 바람이 심술궂고 제멋대로라 아늑하다 싶으면 이내 바람이 불어오고 조용하다 싶으면 좁다란 숲길이고......
할 수 없어 좀 너른 자리를 잡고 센 바람에도 일부는 접의자에 앉은 채로 일부는 선 채로 시린 손을 참아가며 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기 바쁘다.
덕유 주능선에 올라도 허허 벌판과도 같은 덕유평전이니 현재 이 자리가 이나마 조건은 좀 나을 것 같은데 샌드위치를 꺼내든 손은 따가울 정도로 시리다.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후딱 입속으로 밀어 넣고 찬 물 몇 모금 마시고 마무리 하니 이거 손에 감각이 없네.
그 중에도 김원장 부부는 최대한 얼굴을 감싸두른 체 용케도 시장기를 해결한 모양이라 생기발랄하고, 불과 십 분이 채 되기도 전에 대부분 중식 끝.
그래도 대체로 준비한 것이 이동 중에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김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인절미 등이 많아 빠른 시간에 마무리한 셈이다.
따끈한 커피를 나눠 마시며 배속을 위무하고 나니 거의 오후 2시하고도 삼십 분이 지나 시각.
이제 큰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면 덕유의 주능선에 도달하리니 이름하여 송계삼거리, 일명 백암산이란다.
그런대로 봉우리 오름길은 눈이 별로 없는 흙이나 암석으로 되어 있어 쉬 오르는데, 꼭대기는 칼날 같은 좁은 산릉길이고 센 바람으로 몸 가누기가 쉽지 않다.
저 아래 덕유산릉 종주길이 구름 속에 보였다 사라졌다 하니 이제 곧 백두대간 갈림길인 송계삼거리를 거쳐 대간 구간을 벗어나 덕유평전을 거쳐 중봉과 향적봉 구간에 접어들 것이라.
어찌하여 덕유의 맏형인 향적봉이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남덕유에서 향적봉에 이르는 능선과 오늘 들머리인 송계사 계곡을 비롯한 덕유산체가 20억여년 전에 모두 물밑에 있었으니, 덕유를 떠받치고 또 이고 있는 봉우리의 암석들만이 말없이 이를 알려주고 있구나.
이미 지하 심부에서 고온의 지열과 압력으로 원래의 성질과 구성 물질이 변해 버린 변성암이지만, 이전엔 물속에 퇴적물이 쌓여 굳은 퇴적암이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암석 속에 문자 없는 기록으로 남아 있어, 불과 200백만 년 전에 이 지구에 출현해 지구의 주인인양 거드름 피우는 인간에게 그 역사성을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누구 발바닥이 후끈거리는 걸 느낀 동포가 있기나 있수?
아마도 그 당시 이 자리에 있었으면 우리는 겨우 불과 몇 가지 원소로 분해되어 버렸을 것이라.
그러고 보면 인간이라고 크게 폼 내며 살아있다고 자랑할 일이 하나도 없지러.
드디어 송계삼거리에 닿으니 주 산릉길의 등산객들이 무리지어 이정표와 입간판 앞에 서 있다.
주위는 다시 하얀 구름으로 변해 있고 멀리 보여야 할 중봉은 아예 없는 것처럼 되니 끝없는 덕유평전인양 착각할 정도라.
하긴 지친 등산객의 기를 콱 죽이는 듯 멀리 높지막하게 솟아 있는 중봉이 눈에 아니 보이는 것이 훨씬 나은 편이리라.
덕유평전은 그새 내린 눈 탓인지 키가 나지막한 철쭉들이 온통 하이얀 설화로 몸치장을 했고, 몸이 마치 구름 속에 두둥실 떠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환상적이다.
들머리에서 짊어지고 온 실망이 여기선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환희로 급전했으니 우리의 행복지수도 급상승.
‘그냥 갈 수 없잖여’, 시린 손을 참으며 연신 셔트를 눌러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담기 바쁘다 바뻐.
완만한 평전을 따라 오르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을, 멋진 설화를 가득 담아가고 싶지만 세찬 바람에 안면이 얼얼한 판인데 감히 장갑 벗고 셔트를 누를 엄두가 안 나서 그냥 통과.
그냥 눈에 가득 담고 갈 뿐이로세.
드디어 중봉에 오르는 계단길에 접어들었건만 여전히 중봉은 그 모습을 아니 보여 주고, 2주 전엔 그렇게 질퍽거렸던 길도 완전히 얼어 단단한 흙길로 변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설화가 마치 억새가 무성한 한라산 기슭을 걷는 기분을 연상케 하니, 덕유에 올라 설화도 보고 한라산 억새도 느끼는 호사를 하는구나.
돌계단을 지나 중봉 바로 아래 목책 계단길을 올라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거쳐 온 저 아래 평전이 구름에 가렸다 벗어났다 연신 변신을 거듭하고 있어 감탄사가 이 입 저 입에서 터져 나온다.
또 그림 몇 장을 박아주고 나도 그림 속에 들어가 보고 하면서 변화무쌍한 덕유능선을 맘껏 감상하며 드디어 중봉에 올라선다.
갑자기 저 아래 남쪽으로 구름이 걷히면서 하얀 눈과 겨울산, 그리고 구름이 조화를 부리는데, 히야 모두들 환상적인 장면에 뿅 가는구먼.
10여 분을 중봉에서 보내면서 제법 많은 그림을 그려 담고 멀리 보이는 향적봉을 향해 또 다시 행군.
이제는 완전 눈길이라 그런대로 하얀 눈을 밟는, 눈 쌓인 겨울산을 걷는 기분이라 발걸음도 경쾌하네.
곧 주목과 구상나무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 곳을 지나는데, 이 역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냥 갈 수 없잖아’, 강청암(태중)이 밑둥치만 남은 주목 뒤로 가더니 동그란 구멍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한 장 잘 그려 달랜다.
마치 사진 찍기 위해 머리 부분만 남겨놓은 그림판처럼 재미있게 생긴 주목이라, 과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로세.
이곳을 지나 바삐 발걸음을 놀리는데 또 절묘한 주목이 족쇄를 채우는구나.
큰 바위 위에 용트림하듯이 뿌리와 줄기가 바위틈새에서 빠져나와, 마치 분재를 연상시키는 그런 모습이라 누가 이곳을 그냥 지나칠 것인가.
여기서도 몇몇이 이를 배경으로 그림 속 주인공이 되겠다니 환영하지 않을 수 없지.
호젓한 중봉-향적봉 사이를 걸으니 어느새 대피소 앞이라, 참았던 볼 일 보는 대원을 기다리느라 잠시 지체.
2주 전에 이곳을 지날 땐 완전 장터 같았던 풍경은 보이지 않고 시간이 그런 만큼 조용하기 그지없어, 덕유의 겨울 한 시즌이 지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그랴.
마지막 힘을 모아 향적봉에 이르는 계단길을 올라서니 눈 한 점 깔리지 않은 맨 돌을 깐 봉우리라.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바람이 세찬 곳이니 일부러 큰 암석들을 짊어지고 와서 최근에 깔아놓은 모양이다.
세찬 바람과 추위 때문에 옳게 출석부를 마련치 못했으니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출석 점호를 하는데, 그래도 곤돌라 표를 확보하러 먼저 내려간 회장과 일부 대원, 마지막 후위를 챙기며 아직 도달하지 않은 두 명이 빠진 출석부가 어렵게 맹글어졌다.
저 아래 보이는 설천봉 곤돌라 승강장과 휴게소 건물을 내려다보는 대원들에겐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
이젠 더 이상 오를 길도 봉우리도 없고 오직 내려가는 길만 남았으니 사실상 등산은 끝난 셈이네.
향적봉-설천봉 구간도 설화가 멋진 곳인데 일전의 비 때문에 그 자태가 곱지 못하니 아쉬운 마음이라, 산행이 끝났다는 느낌과 함께 발걸음도 반은 허탈한 모양이다.
그런데 중간쯤에 웬 사람들이 제상을, 그것도 돼지머리를 올려놓은 상을 채려놓고 재를 끝낸 건지 이제 시작하려는 건지 한쪽에 몰려서 있다.
막걸리 한 잔씩 하고 가라고 권하는데, 돌아가서 청하니 아직 대원들이 다 모이질 못해 시산재를 올리지 않은 상황이라네.
재를 올리기도 전에 재물을 먹을 수야...... 하고 사양을 하려니 따로 준비된 것이니 한 잔 하라며 반 말은 족히 될 듯한 큰 물통에 든 술을 한 잔 가득 따라준다.
캬, 그 술맛 한 번 기차네, 밥 알 한 톨 뜨지 않은 볼그스레하면서도 노르끼리한 동동주 맛이 일품인데, 안주까지 한 점 입에 넣어주네.
그냥 올 수 없잖혀, 멀리 군포에서 왔다는 산꾼들에게 ‘한 해 무탈하게 산행하시고 모두 건강하세여’ 덕담 한마디로 술값치레.
설천봉에 닿으니 추위 때문인지 스키를 즐기는 꾼들도 별로 없이 그런대로 조용하고, 먼저 도착한 김회장이 확보해 놓은 곤돌라 탑승권을 한 장씩 배부 받으니 때는 오후 4시라, 잠시 휴게소 안에서 몸도 녹이고 등산 장비도 정비한다.
무사히 낙오자 없이 전원 건강한 모습으로 설천봉에 닿으니 앞으로 어디로 원정을 가더라도 별 문제가 없겠다.
몇 팀으로 분승해 곤돌라에 오르니 25주 된 아기를 안은 앳된 엄마, 젊은 보드 커플 그리고 최명해와 나.
최명해 왈, ‘좋다, 좋은 시절이다.’며 젊은 보드 커플을 보고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곤돌라 승강장을 빠져나와 휴게실에서 배낭을 정비하면서, 비장해 둔 하얀 물약 속의 붉디 붉은 감기약을 꺼내 세찬 바람 속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숙녀들에겐 새벽에 끓여 온 화개차 보온병을 내밀어 함께 산행한 데 대한 보답을 하니, 마지막 남은 인절미가 대미를 장식하는도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곧장 휴게소를 나와 버스에 오르니 ‘이야, 찜질방에 든 것 같다’느니, ‘별천지에 든 것 같다’며 후끈한 버스 온기에 온몸을 맡긴다.
곧장 출발하니 이때가 오후 4시하고도 이미 반이나 넘어선 시각이고, 거창으로 가 저녁회식을 하는 줄 알았더니 바로 리조트 아래 동네에 차를 세우네.
큰 간판에 ‘우리 마을’이란 상호를 붙인 식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준비된 상들이 지친 산꾼들을 맞는다.
추원장이 챙겨온 꼬냑이 한 순배씩 돌고, 삽겹살과 소맥이 몇 차례 오간 뒤 본부회장으로 돌변한 이규생 회장이 김정곤 악장에게 예의 금일봉 전달과 환영 박수.
박재창 이륙야 주무의 주문에 따라 “이륙~‘, ”악~야~“가 세 번 울려 퍼지니 이 집 천정이 들썩들썩......
악, 야 회장들의 인사, 부부 팀 소개와 함께 식사를 마무리 하고, 저녁 7시가 될 즈음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니 길고 긴 덕유 산행을 마무리.
귀가길 버스 안 풍경은 여느 단체산행 팀들의 그것과 비슷했으니, 쇠주와 오뎅이 연신 죽어날 뿐이더라.
부산에 닿기 전에 이륙야 강총무가 금번 산행 초대에 대한 답례로 이번 봄에 이륙악을 초대하겠다니 잔뜩 기대해도 좋겠지요?
서면 롯데호텔 앞에 닿은 시각이 밤 열 시, 오늘 실망을 기쁨으로 바꿔치기 하며 설산 구경 한 번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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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화, 수요일 이틀 동안 출장이라 밤을 새워 겨우 마무리 했네여. 사진은 위에 다시 게시해 놓겠슴다. 필요한 분들은 카피해 가세염.
항상 좋은 후기에 감사 드리며...산행기 서두에 회수(回數) 넣음이 어떨지 건의합니다.
생생한 후기가 재미있네요.그런데 밤새워 학문을 연구했으면 아마 더 大家가 되었을 텐데.ㅎㅎ
눈이라도 펑펑 좀 오질 안코...
아차, 다음부턴 백산 말대로 합지요. 덕인, 밤 새워 대가 된다면 눈 아래 위에 집게라도 꽂아 놓제. ㅎㅎ
함께한 산행에 카메라까지 갖고와 순간을 포착하여 선별한 뒤 장문의 산행후기까지 올려준 석우 이상원교수님께 무한감사를 올립니다.
회장님...서울 산케들은 산행 후 산행기에 댓글을 달지 않으면 야단 맞습니더. 아차하면 산행기를 본인이 직접 쓰야하는 벌칙이 가해질 수도...
담배는 몇대나 빨았는지, 고것이 무척 궁금하다...회장님!
고약한 날씨에 석우가 진짜 돌허사비 될 뻔 하얐소.^^
눈은 만족치 않았으나..백두대간길을 거쳐 설천본으로..좋은 추억으로 남으시길..내년에도 덕유는 그자리에 잇을터..
그렇겠제. 언제 같이 하여 대간길을 인도해 주소.
마치 옆에 있는 듯한 생생한 산행기를 쓴 돌허세비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읽어주시니 감사!
산행하랴, 박으랴, 그리고 밤새 글쓰랴... 대단하요!! 고생 많았소^^
사진을 박을려면 선두에 서야 되는데 그러질 못해 빠진 얼굴이 많소이다. 먼저 달아난 숙녀 세 분을 끝내 그림 속에 모시질 못했으니 미안코...
편안한 단편소설 같은 담담한 산행기 즐감하였소...산케들은 전날(2/14:토) 눈꽃예정인 원주 매봉을 적설이 없어 취소하고, 남한산성의 객산을 다녀왔습니다.
안타까워라.. ㅉ
악~야 의 우렁찬 함성들이 들려오는듯 하오. 많은 동기들이 함께 하였구려. 눈이 째끔해서 아쉬웠겠소.
그나마 못 본 것보다 백 배 다행이지요.
정말로 애를 많이 써셨소이다.사진찍으랴 ,등산하랴,명문을 남기시랴......고맙소이다.
홍사장은 그림 속에 붙박이가 되얐소. ㅎ
한결같은 잔잔한 산행기에서 덕유산 산행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산악회 가족들의 더 없는 즐거움을 흐뭇한 마음으로 잘 감상하였습니다.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더욱더 건강하고 힘찬 발전을 기원합니다.
옙, 여산처럼 힘차게 걷겠습니다.
ㅋ 잼있는 후기...멋쟁이 부산 처녀 총각님들 부럽소^^
처녀는 몰라도 이 총각들은 자격 미달.^^
장중하게 펼쳐지는 덕유산 서사시에 감동합니다. 동행하지 못해 아쉽고 다음에는 꼭 참석하여 산행기 읽는 대신에 내가 쓰야지. 산은 타는 맛이고 산행기는 쓰는 맛인고로...
그~럼, 내년엔 두 분 늘어나겠소.
몇해전 이륙경부합동산행때 설천봉 올라 주목 얘기하던 기억이 생생하네. 남자들은 매주 산에 댕겨야겠다. 즐거운 산행에 생생한 산행기 축하드리오.
산케들처럼 매주 산에 올라야 아줌씨들 따라 잡을 낀데..
하나만 정정 요망!! 김택영군은 26악 회원이기도 합니다^^
맞네. 즉시 정정하겠슴다.
이륙악야 합동산행을 눈을 뿌려 축하해 주셨구나.서울에선 눈구경 못했는데 부럽구랴.석우의 명품 후기 아주 재밌게 읽었수.
고맙수^^
정말 이교수는 부지런도 하시오... 진작에 보기는 했었는데 요즈음 너무 바쁜 일들이 많아서 이제야 한 글 올리오..자미난 글과 곳곳에 있는 사진 고맙게 자알 읽고 또 보고 간직하리다... 자주 부탁해도 될까나 ㅋㅋㅋㅋㅋㅋ
ㅎㅎ 가끔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해야쥐^^
큰 바위 얼굴이 게신데 제가 뭘.....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