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근대축구의 종가 라는 잉글랜드가 2연패로 1라운드 탈락을 확정 지었습니다.
솔직히 잉글랜드 사람들은 늘 자신들이 근대축구의 종가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정작 세계제일의 축구축제인 월드컵에선 1966년 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에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4강에 간게 나은 성적일뿐 자존심에 걸맞는 별다른 성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잉글랜드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자존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19세기 잉글랜드 축구의 전적을 보면 정말 그들의 콧대가 하늘 높은줄 모를만 했습니다.
옥스포드팀은 오스트리아 빈 클럽과의 두차례 경기에서 15:0, 13:0 으로 승리했고
독일 대표팀도 13:2, 10:0 등의 큰 점수차로 격파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덴마크가 2:0으로 진게 체면치례를 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압도적인 실력차가 있었으니 1904년 FIFA가 창설 됬을 때 영국이 콧방귀도 안 뀌며 무시한게 당연 했는지도 모릅니다.
영국축구는 1908년 런던 올림픽에 첫선을 보입니다.
1908년 런던 올림픽과 1912년 스톡홀롬 올림픽엔 영국(United Kingdom)으로 출전해 역시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이며
두 올림픽 대회에서 연달아 축구우승을 차지했던 겁니다.
때문에 FIFA 가입도 처음 생겼을 땐 마음껏 뻐기다가 2년 후인 1906년에 가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1920년 회비미납을 이유로 탈퇴하고 다시 독자노선을 걷죠.
그 때 FIFA는 '진정한 세계축구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하여' 라는 구호로 월드컵을 개최 합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세계축구의 최강자인 영국이 빠진 월드컵이 진정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것이냐? 하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웸블리 구장에서의 홈무패 행진은 1953년 당시 세계축구의 최강으로 떠오른 헝가리가
6:3으로 이기면서 깨지기 까지 무려 104년 동안이나 이어졌으니 19세기 ~ 20세기로 이어지는 1세기에 달하는 기간 동안
영국축구가 얼마나 강자 였는지 알만한 것이었죠.
1950년 월드컵은 세계대전의 여파로 참가한 나라가 13개팀 밖에 안되었습니다.
FIFA는 전쟁의 여파로 참가팀이 많이 줄어들자 더더욱 대회의 권위와 흥행을 위해 영국의 참가를 설득하죠.
이에 영국은 월드컵 참가에 대한 몇가지 조건을 내세웁니다.
1. 영국의 역사와 축구환경을 인정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FA를 제각각 인정해 줄 것.
2. 월드컵 본선 진출한는 16개 쿼터중 2개를 영국의 4개 FA에 배당할 것.
3. 영국의 4개 FA는 유럽지역의 지역예선을 치루지 않고 독자적인 대회(홈 인터네셔널)를 통해
이 2개의 본선 진출팀을 가릴 수 있게 할 것.
이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한 조건제시 였지만 FIFA는 고민하기 보다는 대회의 흥행을 위해
영국이 제시한 이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스콧틀랜드는 1위를 하지 안으면 월드컵에 나가지 안겠다고 선언했고, 결과적으로 2위를 하였습니다.
애당초 영국이 FIFA에 제시한 조건이 2개팀의 출전 이었기 때문에 2위인 스콧틀랜드도 나갈 수 있었지만
스콧틀랜드는 자신들의 선언을 지켜 결국 출전을 안해 잉글랜드 1개팀만 월드컵 본선에 출전 합니다.
그렇게 하여 잉글랜드의 첫 월드컵 본선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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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 전에 잉글랜드와 미국은 뉴욕에서 연습경기를 가졌는데
이 때는 미국의 수비가 붕괴되며 잉글랜드가 큰점수차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잉글랜드는 자국 리그에서 뛰는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서 만든 영국축구가 구성 할 수 있는 최강의 팀이었고
미국은 이탈리아, 스콧틀랜드 그리고 아이티등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을 선발하여 만든 팀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뿐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론 다 다른 아마추어 수준의 팀 이었습니다.
당연히 잉글랜드의 상대가 아닌 수준의 팀이었죠.
전후 첫 월드컵인 1950년 월드컵의 개막전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하루전인 6월24일에
홈팀 브라질과 멕시코의 경기로 열립니다.
잉글랜드가 속한 B조의 첫경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25일 잉글랜드 VS 칠레의 경기로 열리죠.
미국 월드컵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임하기전 예정에 없던 방문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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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월리엄 하긴스 장군과 그 휘하의 장병들이 월드컵대표팀을 만나러 브라질 까지 날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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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렸다시피 다인종으로 구성된 미국 월드컵대표팀은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했지만
태평양의 조그만한 아시아 국가인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 했으며 그곳에서 피흘리며 싸우고 있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싸워달라는 장군의 말에 모두들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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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이 그들에게 건넨 선물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월드컵 본선을 위한 새 유니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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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29일 드디어 잉글랜드와 미국 두나라가 만납니다.
한국전쟁의 두 주요 참전국 월드컵대표팀이 만난 것이죠.
잉글랜드는 6월25일 있은 칠레와의 첫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반면
미국은 역시 6월25일 있은 스페인과의 첫경기에서 1:3으로 져 1패를 안고있는 상황 이었습니다.
경기전 양팀 승리확률에 대해 잉글랜드는 1/3, 미국은 1/500 이라 할정도로
모두들 잉글랜드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치고 있는 결과가 너무나도 뻔해 보이는 경기였습니다.
근데 막상 경기의 뚜겅을 열어보니 이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경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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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미국팀은 뉴욕에서 있은 평가전 때와 달리 수비가 끈질기게 잘 버티며 실점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전반에 아이티 이민자인 가헨스가 넣은 헤딩슛에 의한 골을 끝가지 잘 지켜서 결국 1:0으로 승리 합니다.
경기종료후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몰려 내려가 미국선수들을 둘러싸며 환호하고
특히 잉글랜드팀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낸 골키퍼 프랭크 보기는 행가레 까지 칩니다.
상대가 안될걸로 보였던 약자가 강자를 이긴데 대한 짜릿함의 환호였던 거죠.
잉글랜드는 7월2일 리우데자내이로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있은 스페인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도
1:0으로 패하여 조2위가 되는 바람에 조1위 에게만 주어지는 4강 진출이 좌절 됩니다.
잉글랜드를 꺾은 돌풍의 팀 미국도 7월2일 헤시피의 라무다 경기장에서 있은
칠레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2:5로 패해 조 최하위로 탈락 합니다.
B조에서 조1위로 4강 결선토너먼트에 진출한 팀은 3전 전승을 거둔 스페인 이었습니다.
그렇게 월드컵 본선에서 에상외의 저조한 성적을 거둔 영국은 다음번 월드컵 부터는 그들에게만 주어졌던
특권이 다 없어지고 다른나라들과 같이 유럽지역 예선을 통해 월드컵 본선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후 언론들은 예상치 못한 잉글랜드의 패배에 쇼크를 받아 잉글랜드가 10:0 으로 이겼다고 보도를 할 정도로
이 잉글랜드와 미국의 경기결과가 세계에 준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이상은 64년 만에 브라질에서 다시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 2연패로 탈락한 잉글랜드의
지금보다 훨씬 오만했던 64년전 첫 월드컵 출전기과 미국과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