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
절두산 천주교 성지와 합정역 사이에 있는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은 합정동 143번지 일대로 미국인을 비롯해 13개국의 외국인 480여 명의 선교사가 안장되어 있다.
이들은 일제 암흑기 한민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했던 선교사들로 당시 세상에서 덜 알려졌던 나라(COREA)에 복음의 빛을 나누기 위해서 왔다. 이들은 선교활동 및 한국 사회사업의 유공자들로서 병원과 학교의 설립과 같은 사회제도뿐만 아니라, 신분제와 남존여비 관습의 철폐와 같은 무형의 정신세계에서도 한국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을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대표적인 선교사로는 배설, 헐버트,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이 있다.
선교사묘원에는 홍보관, 야외공연장, 묘역, 봉사관, 양화진홀, 선교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개방 시간 내에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3회 선교사묘원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토요일 4회차는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방문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
현재 한국기독교 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관리하고 있으며, 묘지기념관 교회에 2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주일마다 예배드리는 교회가 세워져 있다. 수도권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200m에 자리잡고 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Yanghwajin Foreign Missionary Cemetery , 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
요약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공동묘지.
소재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 (합정동 144) 지도
종류/분류 : 공동묘지
면적 1만 3224㎡이다. 조선 말기인 1890년(고종 27) 7월 28일 미국 장로교의 의료선교사(醫療宣敎師)로 한국에 와서 활동하다 전염성 이질로 사망한 존 W.헤론의 매장지를 구하면서 조성되었다. 당시 서울의 외국인들은 한강변에 가까운 양화진을 외국인의 공동묘지로 불하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받았다. 이후 이곳은 한국을 사랑하고 이 땅에 묻히기를 원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그 가족의 안식처가 되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 및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에 이 묘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에 황폐하였던 묘지는 주한(駐韓) 외국인들의 모금운동으로 새롭게 가꾸어졌지만,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면서 외면당하였으며, 6 ·25전쟁 때에는 이 부근이 격전지로 변하는 바람에 묘지석에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고, 일부 글자는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명칭도 양화진외인묘지(楊花津外人墓地), 경성구미인묘지(京城歐美人墓地)로 불리다가 1986년 10월 서울외국인묘지공원으로 변경되었고, 2006년 5월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85년 6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묘지 소유권자로 등기되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서 한국선교기념관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총 415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연세대학을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부부와 그의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한국명 원한경) 부부,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한국명 아편설라)와 그의 딸로 이화여전 초대교장을 지낸 앨리스 아펜젤러,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제중원과 기독교서회를 세운 존 W.헤론(한국명 혜론), 평양 선교의 개척자 윌리엄 홀(한국명 하락)과 그의 부인으로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운 로제타 홀(한국명 허을), 숭실대학 설립자 윌리엄 M. 베어드(1862~1931, 한국명 배위량), 한말에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외교활동을 펼친 호머 헐버트(한국명 흘법) 등의 묘가 있다. 1992년에는 윌리엄 홀의 아들이자 한국에 결핵요양원을 처음 세운 셔우드 홀이 안장되었다.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 안장 주요 인물 명단
가나다 순. 본인 대신 가족이 안장된 경우 ☆ 표시.
게일, J.S. - 한국학 연구활동 ☆
레이놀즈, W.D. - 성경 한글번역 활동 ☆
무어, S.F. - 백정 선교활동
벙커, D.A. - 배재학당 운영
베델, E.T. - 대한매일신보 창간
베어드, W.M. - 숭실학당 설립 ☆
브로크만, F.M. - YMCA 설립 ☆
소다 가이치 - 고아원 운영, 아내 우에노 다키와 더불어 단 둘뿐인 일본인 안장자
쇼, W.E. - 국내 군종 창설
스크랜턴, M.F. - 이화학당(한국 최초의 여학교)과 삼일소학당 설립
아펜젤러, H.G. - 배재학당 설립 ☆[8]
언더우드, H.G. - 경신학교, 연희전문학교 설립
에이비슨, O.R. -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설립 ☆
전옥자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희생자로 한국계 미국인.
프란츠 에케르트 - 대한제국 애국가 작곡, 기미가요 편곡
위더슨, M. - 고아원 운영
웰본, A.G. - 선교활동
최봉인 - 대한민국 초대장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토지의 원 소유자이자 기증자이자 묘지기. 양화진 묘원에 묻힌 유일한 한국 국적자.
캠벨, J.P. - 배화학당 설립
터너, A.B. - 2대 성공회 조선교구장 주교, YMCA 회장, 한국 스포츠의 아버지
차드웰, A.E. - 성공회 한국교구 보좌주교, 성공회 한국교구장 서리.
테일러, A.W. - 기업인, AP통신 소속 언론인. 3.1 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인물
하디, R.A. - 선교활동 ☆
헐버트, H.B. - 고종 시기 외교활동
헤론, J.W.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최초 안장자, 제중원 운영
로제타 셔우드 홀 - 의료활동.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保救女館)에서 활동한 여의사. 기록상으로 1891년에 조선에서 두번째로 결혼한 외국인 부부이다. 첫번째는 언더우드 부부. 외간 남자와 만날 수 없는 조선여성들을 치료하고 박에스더를 추천하여 유학 보냈으며, 맹인 교육을 위해 최초로 한글 점자를 고안했고 맹인학교를 설립했고 한국 장애인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 홀: 아내와 함께 의료 활동을 했다. 1894년 청일전쟁 와중에 평양 전투로 인해 청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치료하다가 티푸스에 걸려 사망
셔우드 홀 - 의료활동. 위의 홀 부부의 아들. 국내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 도입
에디스 홀- 위의 홀 부부의 딸로 윌리엄 홀의 유복자이다. 1895년에 태어나 3세에 사망했고, 부모 곁에 뭍혔다.
찰스 르장드르 - 프랑스 태생의 미국 군인, 일본 제국의 외교 고문이 되어 일본의 대만 병합을 도와 일본 훈장까지 받았으나 대한제국 외교 고문으로 온 후로는 180도 달라져 대한제국을 돕다가 1899년 서울에서 사망했다. 이선득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다.
양화진외국인 선교사묘원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