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회
하늘은 높고 푸르다.
먹구름 하나없는 흰 뭉게구름이 가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은 고교모임인 청우회 모임날!
친구들이 하나둘 뭉게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덕산 가온길 황토펜션 외딴집에서 1박2일 일정 부부동반 모임이다.
아뿔사!
삼겹살 파티!!에 마늘과 고추를 준비 안했다니 세상에 참~
멍군이가 텃밭에 심은 고추를 안 가져왔으면 어쩔뻔 했는가?
글구,내가 준비한 고구마,오이가 없었으면 어떨뻔 했을까?
페치카 불판에서 무르익은 삼겹살 이제 막 한첨 두첨 맛있게 먹는 참에 그만 고기가 떨어졌다한다.
으이구 한심한 회장님아!!
먹을땐 먹고 아낄땐 아껴야지..먹다 마냐?
친구들의 쏟아지는 한탄속에 쏜살같이 덕산 장터로 달려가 고기를 더 사왔다.
황토 찜질방 불속에서 군고구마가 입맛을 사로 잡고,뽀삭뽀삭한 고추가 삼겹살 맛을 더해주었다.
종세는 막걸리,나는 소주!!
그리고 한잔 한잔 소주와 막걸리파티는 가을밤을 수놓았다.
익어가는 불판삼겹살도 지글지글 그 맛과 불빛을 더해갔다.
오늘의 주방장 쉐프는 항구요,보조 쉐프는 봉표로 만장일치 선정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늙어감이 아니라 익어 감이야!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세상이 이리 힘들어?
너 자신을 알라며 툭 한마디 던져놓고
떠난 테스형!!
난 모르겠소.내가 아는게 뭐고 모르는게 뭔지도 모르고 여태까지 살아왔소.
아니 살아온게 아니라 그냥 그냥 지내 왔소.
가을 하늘이 왜 저리 맑고 높고 푸른지?
하늘위에 뭉게구름은 왜 저리 변화무쌍하게 어디로 흘러가는지 잊은채 지내왔소.
우리 나이에 존귀한 이름을 부르기도,별명을 부르기도 어째 좀 그러하니 내가 호 하나씩을 지어볼까?
명직이는 음악가이니,청락(靑樂)
광진이는 해군 출신이니 청해(靑海)
봉표는 백곡출신이니 청곡(靑谷)
성순이는 구름위를 걷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니,청운(靑雲)
택수는 택자를 살려 택도 없이 청택(靑澤)
종세는 육군 출신이니 청육(靑陸)
회장님은 바람잡이 이니 청풍(靑風)
항구는 남자,여자는 배이니,청남(靑男)
익세는 보은 출신이니 청보(靑報)
제주사는 태현이는 체육샘이니,청강(靑强)
돈영이는 교장샘이니 청교(靑敎)
화영이는 법원출신이니 청법(靑法)
나는 원래 청암이니 청암(靑巖)
또 누구 없나?
참 !성기는 산을 좋아하니 청산(靑山)
청우회!
청자로 시작하는 호 하나씩을 지어 앞으로는 짱께니,한심이니,멍군이니하는 어릴적 별명을 부르지 않고,조상님이 지어주신 존귀한 이름 함부로 부르지 않고,호를 부르기로 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들끼리라도 나이 들어감에 예를 지키며 서로서로 존중하며 아끼며 지내자는 말이지요.
이 쯤해서 시조 하나 읊어볼까?
靑山如古人 저기 저 푸른 산은 옛 친구와 같고
江水似美酒 저 흐르는 강물은 아름다운 술과 같도다.
今日重相逢 오늘 우리 또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니,
把酒待良友 어찌 좋은 친구라 아니 할수 있겠는가?
가을밤 향연이 빠질수 있을손가?
노래방이 있는 커다란 방으로 옮겨 상다리 장단에 맞춰 한곡씩 부르고 이내 마이크를 잡았다.
광진이는 열곡씩이나 부르는데,나는 한곡이나 불렀을까?우리들의 명가수 성순이와 봉표,명직이도 한두곡씩 찬조출연 열창을 한다.
나는 못하는 노래대신 소주 한잔이 좋아.춤이라도 신나게 추어야지.
깊어가는 가을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식사 된장국 카레맛이 꿀맛이다.
삭사후,산책 나간 친구,조깅하는 친구,담소하는 친구,아침 잠자는 친구 각양각색!
족구는 안하는가 하니 누군가 사람 사서 하라 한다.연식이 오래되어 행여 다치면 잘 낫지 않는다고 한다.
열한시쯤 삼삼오오 그늘막에 모여 오이 안주에 막걸리 한잔씩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이 없다.
야들아!우리 혁신도시에 회사 하나 차릴까?네가 대표하고 네가 사무장하고 네가 사무실 얻고..그러자 한 친구는 그러다가 니덜 쫄딱 망한다고 적극 만류한다.
뜻이 있는 곳 길이 있다고 다음에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다.
점심때가 다되어 허가네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어제 미리 가져간 흑염소 반마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허가네 칼국수가 일품이다.흑염소와 칼국수의 기막힌 절묘한 맛의 조합이다.
그래 바로 이게 바로 가을 맛이야.높고 푸른 하늘에 가을이 둥실 떠 간다.
뭉게구름속에 정다운 친구들 얼굴이 흘러간다.
익어가는 가을 !!
코스모스길에 그대 모습 보이는구나.
202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