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맞이 9일 기도 강의
- 기후 위기와 생태적 회개 -
오늘부터 부활 맞이 9일 기도를 시작합니다. 올해 9일 기도의 주제는 ‘지구 생태 환경 지키기’입니다. 왜냐하면 사순 시기 동안 일관적인 사목 주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순절 동안 2가지 실천사항을 지키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구 생태 환경 지키기’입니다. 매주 한가지씩 새롭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주어졌고, 십자가의 길 기도도 생태 환경에 대해서 반성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9일 기도도 같은 주제로 이어갈까 합니다. 오늘은 그 첫날로, ‘기후 위기와 생태적 회개’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재의 수요일로 사순 시기를 시작했습니다.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통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참회와 보속의 삶으로 부활하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순 시기에 인간의 가식과 탐욕으로 인해 생기를 잃은 고목과도 같은 우리의 지구를 돌아보게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변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잘못된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확인하는 요즘,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말해 왔지만, 이젠 봄 가을이 없고 긴 여름과 겨울만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동안 유지되었던 계절과 기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자연의 순환에 기대어 살아가는 농어민들에게는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코린1 7,31)는 바오로 사도의 경고가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싶어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작년 2023년,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7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한해 전인 2022년 대비 70%가 증가한 수치로, 폭염과 홍수가 그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사망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들도 약 1억 명에 달하며, 경제적 손실 역시 약 2,000억 달러(한화 270조 원)였다고 합니다. ‘경제적 부’만이 최고의 가치라 여기며 환경을 희생시켜 왔지만, 결국 둘 다 잃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인간의 삶과 활동을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이 왜곡되어 현실을 파괴하는 지경”(찬미받으소서 101항)에 이르렀다고 언급하시며, 우리들의 빗나간 삶의 태도를 성찰해 볼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성찰 없는 현대 문명의 이기’가 지닌 파괴적인 힘이 공동의 집인 우리 지구에 돌이키기 힘든 재앙을 몰고 왔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지적을 가슴에 새기며,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보시니 참 좋았던(창세 1,31) 본래의 모습을, 하느님을 닮아 생겨난 존재로서의 품위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가? 지배하라(창세 1,28)는 명령에 따라 지배자로 있는가? 아니면, 일구고 돌보는(창세 2,15) 존재로 있는가?”(찬미받으소서 67항).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들은 우리 자신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 불편함은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품위를 내던진 채 인간만의 안위를 탐했던 우리의 죄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젠 이 불편함을 벗어 던져버려야만 할 것입니다. 절망적인 현실에 낙담하고 말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희망을 살려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정의’의 관점에서 지금의 생태 위기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상황은 빈곤한 이들과 소외된 계층의 삶을 더욱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
고, 서로 책임의 관계에 있는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를 돌보며 지켜 주는 누이며 어머니인 이 지구가 우리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2항).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깊숙이 결속되어 있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생태적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당위의 문제입니다(찬미받으소서 217-218항). 존망의 기로에 선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곧 나 자신과 우리의 후손을 위해,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공동선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에 하나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렇게 회개를 통해 우리는 정의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을 통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석연료의 사용은 증가하였고, 당연히 온실가스도 증가하였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도는 3℃ 상승할 상황을 향해”가고 있다며 "2023년이 기록상 가장 더운 해였지만, 이대로 가면 미래에는 가장 시원했던 해 중 하나로 기억될 지경"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28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결국 화석연료의 영구적인 퇴출을 결의하지 못했습니다. 상당수 국가의 반대로 화석연료의 단계적 사용 중단에 미치지 못한 탈화석연료 전환이라는 소극적인 합의만 이루어졌습니다. 총회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Laudate Deum)」를 통해 실효적인 방안과 실제적인 검증, 그리고 국제사회의 구속력 있는 조치가 합의되어야 함을 촉구하셨습니다. 기후 위기의 중대한 위협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각국의 국내 정치, 경제, 사회의 벽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재의 세계적인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호소였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300만 년 전 이래, 현대인은 가장 많은 수치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지닌 생태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절제되지 않는 소비 생활과 이를 뒷받침해 온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이 그 원인입니다. 그 결과 기후는 급격히 변했고,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조상 때부터 살아온 터전을 떠나 떠도는 난민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10억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2060-2070년이 되면 지구상에 식용작물이 멸종될 것이라는 예측은 인류와 생태계의 멸망이 현실화 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후 위기는 이미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지구 반대편의 가난한 이웃들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북반구의 산업화된 국가들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피해를 가장 먼저 입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어민들과 취약 계층의 피해가 이미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는 공정과 정의의 문제라고 우리 가톨릭교회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전 지구적인 시민들과 신앙인들의 인식 전환과 삶의 방식의 대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생태적 회개를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보다 돈과 노동력을 우선시 했던 이집트에서의 고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호소하자, 그분께서 하신 응답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우선하는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최우선시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것이었지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생태적 회개가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만드신 올바른 질서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책임 있는 응답과 행동이 요청됩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올바른 정책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계의 실질적인 변화도 필요합니다. 이런 전환을 이끌기 위해서 건전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신앙인들 그리고 종교계가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어야 함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일깨워 주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쉽지는 않지만, 개개인이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는 변화의 움직임이 생명 중심의 새로운 문화를 성장시키고,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신앙인과 선한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인류의 구원을 위해 40일 동안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순 시기입니다. 이때에 우리 신앙인들이 선택해야 할 길은 생태적 회개를 통한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이루는 것임을 잊지 않고 꼭 명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