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사순시기와 부활을 택하여 해외 성지 순례를 떠나곤 했다. 2012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스페인 카미노 프란세스길) 800km 순례길을 32일간 걸은데 이어 작년에는 역시 산티아고 다른 길(Santiago de Compostela, 포르트갈 길) 220 km를 10일간 걸은 바 있다. 2014년에는 유럽 일변도의 시야를 벗어나 중남미 가톨릭국가들을 돌아 보기로 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를 보고 주 하느님 지으신 아름다운 세계를 찬미하고 아르헨티나의 루칸(Lujan) 성모 성지 성당을 순례했다. 칠레에 가서는 성안나 성지와 Los andes 성 데레사 성지를 방문했다. 순례의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멕시코 과달루페(Guadalupe) 성모님 발현지 였다.
유럽과 달리 중남미는 대부분 후진국이다. 50년 전에는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들인데 국가 지도자를 잘 못 만나 우리나라의 1950년대~60년대 생활(볼리비아, 쿠바), 70년대 생활( 페루, 아르헨티나), 80년대(칠레), 90년대 생활(브라질)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인기 영합형 복지에 돈을 쏟아 붓다 보니 사회 간접 시설이 낙후되고 경제가 침체되어 아지도 1차 산업에 머무르고 있다. 브라질만이 2차 산업에 들어갔는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페루 지역 잉카(inca-마츄팍츄)와 멕시코 지역 마야(Maya-치친 이사) 문명의 찬란함은 전설이 되어 버렸고 석조 건축물만 남아 후손 들에게 막대한 관광 수입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그 석조건물(신전이나 왕족 거주지) 축조 기술이 찬란하다. 훗날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성당, 건물은 지진에 다 무너져내렸지만 잉카인들이 지은 신전은 오늘날 까지 끄떡없다. 자연석 그대로 가공하여 서로 악물게 조립하였기 때문이다.
중남미는 치안이 몹시 불안하다. 비교적 낫다는 아르헨티나에서 조차 매일 몇 건씩의 강도 사건이 터져나오고 동양인 관광객은 범죄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현금(달러)나 고급 휴대폰, 카메라 때문이다. 좀도둑 소매치기나 집시 행각은 양반이다. 택시강도라고 하면 승객이 운전사로 부터 현금을 강탈하는 것인데 중남미에서는 반대이다. 택시 운전사가 강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총을 내밀면 저항하지 말고 있는 것 다 주고 목숨만 건지라고 교민들은 충고한다. 경찰이 강도짓을 해도 이게 진짜 경찰인지 가짜 경찰인지 모르고 당한다. 이 밖에도 호텔이건 식당이건 틈만나면 외국인을 등쳐 먹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필자는 곳 곳에 수호천사가 있어서 보호를 받았다. 그래서 이번엔 도난이나 강도 등 피해 없이 40일간 8개국(15개 도시)를 순례했다. 수명이 다 된 비행기만 열 일곱번 탔다. 화물 유실물 사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몇 건의 피해 우려 사고가 있을 뻔했다. 아차사고라고 한다. 때론 50달러를 강취하려는 부패 출입국 관리와 당당히 맞서기도 하고 수시로 타야하는 택시 기사와 요금 협상을 하거나 달래서 타고 다녔다. 진짜 경찰관에게 도움을 청하여 안전을 보장받기도 했다. 목엔 호루라기들 걸고 다녔다. 유사시 불 요량이지만 범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였다. 해외 여행자(의료, 도난 등) 보험도 쿠바엔 적용 예외지역이다. 이렇게 중남미는...치안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있다.(외교부 홈피 참조)
이들 신앙 전파와 성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간 테마 여행이었다. 16세기 스페인 피사로(Pizzaro)같은 장군은 불과 수 백명의 병력으로 그 큰 대륙 남미를 정복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잉카 제국은 지금의 칠레 산티아고부터 북쪽 페루 까지 다스리던 대 제국이었고 군대도 수만 명 있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가 조직화 되어있지 않고 부족 단위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군은 각개 격파 전술을 써서 한 부족씩 정복해 나갔다. 백인과 말을 보고 두려워하고 지레 겁먹었다는 것은 사소한 이야기이고 믿기 어렵다. 훗날 치열한 독립운동이 벌어졌졌지만 체력, 무기, 전술에서 이길 수 없었다. 정복자는 선교 사제와 함께 군주를 만나 "성경을 믿어라,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식으로 마치 한 손에 칼을, 다른 손에 코란을 등 마호멧을 연상하는 전법을 썼다. 필자 이야기가 아니고 페루 잉카 박물관(꾸스코)에 있는 미술 작품이 있다. 신앙을 바꾼다는 것은 목숨과 바꿀 가치가 있다. 그래서 순교가 가능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중남미 특히 멕시코 지역의 신앙심에 불을 붙인 사건이 바로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1531년 12월 12일) 사건이다. 멕시코 씨티 동북방 약 60km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멕시코인들은 가톨릭 신앙으로 급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님 얼굴을 원주민 얼굴대로 흑갈색으로 칠하고 토착화를 지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번에 시성됨)도 오셨던 세계 3대 성모발현지(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이다.
중남미의 성음악은...아무리 보아도 보잘 것 없다. 그 예로 페루 꾸스코(제 2의 도시로 옛날 잉카 제국 수도) 주교좌 대성당의 성 목요일 미사도 대주교님이 집전하시지만 성가대는 유명 무실....남자 독창자 혼자 이끌어 나간다. 다른 성당도 마찬가지이다. 합창음악은 생소하고 파이프 오르간은 오래전에 골동품이 되어버렸고 싸구려 전자 오르간이 대체되어있다. 다 돈 때문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아르헨티나)와 산티아고 한인 성당(칠레)에서 실시한 전례와 전례음악 특강은 굉장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남미 이민사 50년에 처음 들어 본 전례의 깊은 곳...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가끔 유명 신부님이나 전 현직 교수님들도 왔었지만 이번 "전례와 전례틈악 특강"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찬사와 격려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큰 영광이었다.
가는 곳 마다...공항이건 호텔이건 시골 피씨 방이건 간이 한국 삼성전자 텔레비젼과 모니터가 휩쓸고 있다. 내륙 볼리비아 산골 마을 우유니 피씨방에도 뚱뚱한 옛 LG 컴퓨터가 손님을 받고 있다. 페루 꾸스코에서는 오래 전에 단종된 티코가 택시 주종이다. 요즘은 현대, 기아 차가 쌩쌩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도 기아차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훌륭한 기업들이다. 가게마다 철창이 쳐 있고 현금 만지는 은행이나 점포엔 집총 자세의 경비원이 꼭 있다. 동네 구멍가게도 철창 속에 주인이 앉아있고 손님이 물건을 달라고 돈을 들이면 돈 받고 맥주나 과자를 내 준다. 한국처럼 아무나 들어가 이것 저것 만져보거나 고를 자유가 없다. 인터넷이 안되는 지역(전화 로밍을 포함하여)이 아직도 허다하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모두 인식하면 좋겠다.
40일 만에 귀국해 보니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부활의 축제도 묻힌듯한 분위기...그 슬픔에 나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모 입장에서 비통하고 희생자를 위해 추모하고자 한다. 그러나 해군 출신의 필자로서는 선장과 항해사의 1차적 형사 과실과 선사의 2차적 무한 책임이 있는데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모두 잘못했다는 듯한 소수 논조에는 납득이 안간다. 수중 작업은 매우 위험하고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분야이다. 자칫 천안함 사건 수습때 처럼 안전수칙을 무시한 무리한 잠수 요구로 노련한 잠수사(해군 UDT 한준위 예)를 희생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사족: 중남미는 (북미 마찬가지)...컬럼부스나 꼬르테스가 발견한 땅이 아니다. 이미 4만년 전에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몽골) 종족이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는 박물관 자료가 있다. 유럽인들의 그릇된 역사관이 일본을 통해 우리가 잘 못 배웠다. 기분 나쁘다. 그들은 유럽인로서 첫 발을 디딘 사람들로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여러 회원님들의 성원과 기도로 잘 다녀오게됨에 감사드립니다. 순례 31일째 부터 고온과 건조한 날씨때뭉에 열사병을 앓아 탈수, 복통과 설사로 힘들었지만 용케 극복하고 어제 귀국했다. 마침 성모 성월이다.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청합시다.~
Ave Maria, Ora pro nobis !
주: 제 59 게시판에 각 나라별로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재 정리,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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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남미 40일간 성지순례 길을 떠나신 김건정(빠뜨리시오) 선생님께서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시고 귀국 하셨습니다.반가운 마음에 선생님 글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