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방정환문학상> 아동문학평론 2019 여름호
도전정신으로 동시문학의 영역을 넓히다
먼저 오늘의 수상자인 000 시인께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000 시인은 올해로써 등단한 지 40년이 된다. 문학적 경력은 물론 문학적 수준으로 봐서 문학상 수상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수상자를 선정할 때면 항상 두 가지 입장이 제기된다. 하나는 문학적 경력이 높은 분을 우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적 수준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가지 의견이 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 해에 출간한 작품집이 얼마나 많은 문학적 성취를 거두고 있는가. 이것에 따라 수상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끝까지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수상작인 000 시인의 열여덟 번째 동시집 제목은 ‘도깨비가 없다고?’ 이다.
도깨비가 없다고?
그러니까 이 말에는 전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화자가 도깨비가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깨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깨비가 없다고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자 화자가 반문한 것이다.
이제 화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도깨비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하지 못하면 상대에게 ‘혹시 도깨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라도 들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도깨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화자는 자신이 경험한 것 중에서 도깨비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는 사건이나 현상을 들려주기로 한다. 자, 내 말을 들어봐라. 어때? 이러니까 도깨비가 있는 것이 틀림없지 않니? 화자는 이렇게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50개의 이야기를 시로 들려준다.
사실 도깨비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도깨비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깨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도깨비라는 것이 머리를 산발하고 짐승 털옷을 걸치고 방망이를 든, 키가 껑충 큰 사람 형상을 한 존재만을 도깨비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깨비 같다’던가 ‘도깨비 같은 날씨’라던가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는 말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것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사건에 부딪쳤을 때 그러하다. 이때 우리는 ‘도깨비가 한 짓’ 이외에 달리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다.
문어체 시 문장은 이 도깨비 동시집에는 적합하지 않다. 문자 안팎으로 담아내야 하는 도깨비에 관한 정보를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이때 상대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한 가지씩 설득해 들어가는 대화법이 빛을 발한다. 아마 이런 대화법이 아니었다면 이 동시집의 시들을 완성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답식 대화를 바탕으로 한 구어체 시 문장은 동시집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한다. 평소 그의 달변이 동시집 도깨비가 없다고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동시집이 도깨비의 존재를 증명, 또는 설득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도깨비의 눈을 통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열심이다. 그래서 도깨비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와 삶을 같이 해온 아주 가까운 존재임을 알려주고자 한다. 그 결과 도깨비는 우리와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친근한 존재로 재해석된다.
이제까지 도깨비에 관한 시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집은 없었다. 이것은 동시 문학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또 시적 역량이 풍부한 시인이 시도해 볼 수 있는 과제라는 생각도 든다. 낯익은 소재와 익숙한 표현을 반복하는 기존 동시의 행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기만의 시 세계를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도전정신도 높이 살만한 것이었다.
심사위원 신현득, 전병호(글), 최명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