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날씨: 비( 06:20'~08:15' ), 흐렸다가 맑게 갬. 바람은 제법 세게 불음. 3°C~13°C. 내복을 입고 바람잠바를 걸쳤는데도 추위에 떨음
●등반 코스: 북한산 백운대 <신동엽 길>
-총 길이: 320m. 10 피치
-최고 난이도: 5.11b
●등반대원
-선등 최병기 대장
-세컨드 안성조
-라스트 전성률
●일정
07:00'. 도선사 주차장 집결
08:15'. 어프로치 시작
09:46'. 스타트 지점 도착
10:00'. 등반 시작
13:30'~14:00'. 6피치 전망대에서 점심 요기
16:46'. 백운대 도착
18:00'. 하산해서 식당 도착
19:46'. 해산
1.열정 클라이머 전성률
10월 19일. 등반 대원이 3명으로 확정되었다. 10월 20일. 3인 카톡방에 최 대장이 등반코스 선택지 3군데- 인수봉 구조대길, 백운대 가는 신동엽길, 인수봉 의대길 -를 올렸다. 전성률이 단박에 신동엽길을 찍었다. 이유는 '한 번도 안 가봐서...'라고 했다. 등반 당일에 바람도 세게 불어 추울거라는 예보를 카톡방에 올렸더니, 최 대장은 보온장갑까지 가져오라고 한다.
새벽녘 도선사로 가는 차창에 빗방울이 맺힌다. 역시나 도선사 주차장은 꽉 찼다. 주차 자리를 빼줄 하산 등산객을 등산로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하염없다. 50여 분이나 지나서 주차할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차 안에 갇혀서 일기예보를 주시하는데, 9시 이후에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는 예보에 최 대장이 암벽등반은 못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용암봉 암문으로 올라가서 백운대 암문으로 돌아오는 워킹산행은 하기로 결정했다.
08:15'쯤 서쪽 하늘이 파랗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워킹산행만 할 것이니 배낭은 두고 가자고 했더니, 전성률이 훈련겸 해서 배낭을 메고 가자고 한다. 방금 내린 빗물에 젖은 단풍이, 초례청에 선 새색시마냥 너무나 아리땁다. 내 온몸의 세포가 좋아서 미쳐 날뛴다. 용암봉 암문에 이르자 비는 완전히 멎었다.
제일 뒤에서 따라가던 내가 백운대 암문 삼거리에서 암문쪽으로 올라가려는데, 전성률이가 '아리야'하고 부른다. 백운대 아랫쪽으로 가잔다. 최 대장이 어렵게 결정한 줄 알았다. 나중에 들었더니, 전성률이 해보자고 했다고 한다.
2. <신동엽 길>
신동엽(1930년~1969년)은 김수영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38세에 요절했는데, 나의 대학시절에도 그의 시는 널리 암송되었다. <신동엽 길>을 개척한 김기섭은 경원대학교 산악부 출신으로 시인이자 등반가다. 평소에 신동엽 시인을 존경하던 그가 신동엽 시인을 떠올리며 이름지었다고 한다. 설악산 노적봉으로 오르는 <한 편의 시를 위한 길>도 그가 개척하고 시인다운 이름을 지었다. 북한산 <노적봉 릿지>도 그가 개척했다고 한다.
<신동엽 길>은 총 길이 320m, 최고 난이도 5.11b에 10피치의 어려운 코스다. 1993년에 개척되었는데, 큰 추락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2021년에는 전체적인 볼트 추가, 확보지 조정, 추가 확보 체인 설치 및 변형 루트 개설 등의 보완작업을 했다고 한다.
백운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루트이고, 슬랩.크랙.침니.레이백.오버행 등 다양한 등반을 할 수 있는 코스다.
3. " 나이 들어서 그렇다. "
10시부터 등반이 시작됐다. 암면에 물기가 아직 남아있는 터라 선등으로 오르는 최 대장의 스텝이 조심스럽다. 내복마저 뚫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양달이고 바람이 거세서 암면은 금방 마를 것 같았다.
이곳 암면은 인수봉과 달리 까끌함이 살아있는 설악산 암면같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서면 미끄러지지 않는데, 도대체 감은 없고 낯서니 움직임이 더디다. 위에서 보던 최 대장이 대번에 쏜다.
" 매일 푸쉬업. 턱걸이 100개씩 한다면서 왜 그래요? "
올라가니 최 대장이 재차 쏜다.
" 매일 푸쉬업. 턱걸이 100개씩 하는 것 맞습니까? "
" 푸쉬업은 맞는데, 턱걸이는 아니다. 턱걸이를 어떻게 그렇게 하노? 60° 각도 풀업..."
" 풀업이라고 하면 턱걸이죠? "
" ...... "
" 그런데, 바위를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야 하는데, 왜 매번 낯설지? "
" 나이가 들어서 그렇죠. "
감각이 자꾸 무뎌져 가고 있으니 그렇구나...ㅎ...감각을 잃지않는 노력을 또 추가로 해야겠다.
4. 단풍 든 북한산
1. 2피치 슬랩, 최대 크럭스 구간인 4.5 피치 크랙. 침니.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 6피치 확보지점에 오르니 어느새 13:30'이다. 최 대장이 자리잡는 전망대는 3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편평한 바위면인데, 북한산 서.남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렬한 가을햇살이 조금 전까지 추위에 떨던 몸을 금새 따시게 데운다. 최 대장이 사가지고 온 핫도그와 빵 등으로 요기하면서 바라보는 북한산 단풍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답다.
전성률이 말한다.
" 오늘 완전히 설악산 분위기네... "
하늘은 짙은 코발트빛으로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단풍으로 물든 산은 설악산이고...바위에 매달려 떨면서 맞는 바람은 차가운 동해 바닷바람이다.
5. 선등자 최 병기 대장
7피치( 5.10c )부터는 좀 쉬워질 거라고 했는데, 초입 크랙구간이 4. 5피치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최 대장도 <신동엽 길>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금 'on sight 등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크랙이 손가락 한 마디 들어가는 정도로 좁고, 경사가 가파르고 아주 길다. 크랙에 찔러 넣은 손가락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빠질 것 같다. 캠 3 개를 좁은 간격으로 촘촘히 찌르며 올라간다. 그리고 그 너머로 아찔한 슬랩이 기다리고 있다. 암면이 까끌하다지만 엄습하는 공포감이 장난아니다.
나중에 알았다. 이 루트에서 큰 추락사고가 자주 발생해서 2021년에 3피치. 4피치. 7피치에 볼트를 추가로 설치했다고 한다.
이런 코스를 최 대장은 ' on sight '로 등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장과의 등반 간격이 너무나 넓다는 사실을 새삼 또 느낀다.
6. 시인이 되어 보다.
16:46'에 백운대 정상에 도착했다. 6시간 46분에 걸친 긴 등반이 끝났다. 2 번의 추락으로 오른쪽 눈두덩 위는 찰과상을 입고, 오른쪽 무릎과 손가락은 까졌지만 가슴은 벅찼다.
18:00'에 저녁 요기할 식당에 도착했다. 전성률이 자기가 쏜다며 오리고기 먹자고 한다. 종일 추위와 두려움에 떨었는데, 막걸리가 몸 속으로 들어가니 금새 취기가 오르고 웃음소리가 커진다.
물러서지 않고 오늘 등반을 결행하게 한 전성률,
5.11b급 루트를 ' on sight '로 등반한 최 대장,
두 사람 덕분에 나는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등반을 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평소에 안 하던 시 읖조리기도 해본다.
20대 때 읖조리던 신동엽 시인의 시를 적어봅니다.
7. <껍데기는 가라>
---시인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첫댓글 오! 멋진 등반했네
같이 못해 마냥 아쉽네
이번 주말에도 멋진 등반 같이 합시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