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제석봉과 발암산을 다녀와서
(농업기술센터~용봉사~제석봉~암수바위~발암산~한마음선원~돌탑~농업기술센터)
장마가 물러간 요즘, 낮에는 폭염 특보와 폭염주의보로 전국적으로 뜨겁게 달구고 있고, 밤에는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게 하는 날이 계속된다.
오늘은 비 예보가 많은 지방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산행지인 통영지역은 비는 없지만 습도가 80%로 후덥지근한 날씨가 예상되었다.
하늘에는 쌀 뜬 물 같은 하얀 구름이 깔린 가운데 농업기술센터 앞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산으로 향하는 아스팔트길 주위에는 농작물이 심어진 밭과 낡은 농촌 주택이 있고, 또 한편 다른 쪽에는 아파트를 짓는 건설 현장과 대비되어 도시 현대화를 위한 개발과 마을 보존의 어두운 면을 서로 비추고 있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들머리 입구에 속세로 통하는 산문이 없는 용봉사가 나온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듯한 이 사찰에는 취옥석으로 만든 와불이 대웅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부처님의 열반하는 모습을 묘사한 누워 있는 부처인 와불은 원래 화순 운주사가 유명하다.
본격적인 산으로 들어갔다. 선두는 산산산 대장님, 중미는 등네미 대장님, 후미는 회장님이 산행을 맡았다.
소나무, 참나무와 개옻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길은 바람 한 점 없이 습한 날씨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등 뒤로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낸다. 쉽게 생각했던 산길은 174봉의 첫 산등성이에 오르는데도 숨이 벌써 턱까지 찬다.
탁 트인 바위 앞에 나타난 바다의 풍경에 눈이 환해진다. 평화로운 아래의 갯마을과 통영의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가온다.
올망졸망한 그림 같은 작은 섬들이 바다를 수놓고, 굴 양식장의 하얀 스티로폼 부표들이 점점이 오와 열을 맞춘 모습은 누군가 바다 위에 설치한 예술 작품처럼 아름답다. 작은 섬들 뒤쪽으로는 사량도가 자리 잡고 있다.
갈색 솔잎을 깔아 놓은 양탄자 같은 길을 따라 두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다시 봉우리를 오르자 제석봉 200m의 이정표에서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벌써 몸은 땀으로 목욕하고 있다. 오를수록 더 높고 넓어진 바다 조망이 나타난다.
제석봉 삼거리에 오르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그림엽서 같은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을 젖게 만든다.
오늘 날씨가 맑은 날씨였다면 파란 잉크에 하얀 우유를 섞어 놓은 듯한 그 환상적인 바다 빛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원본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는다.
통영의 산에 오면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였다. 이쪽 풍경을 잘라서 붉은 인주에 낙관을 찍고, 또 저쪽 풍경을 잘라서 유화로 이니셜을 새기고 싶다.
시인 유치환,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예술가가 이 작은 도시 통영에서 탄생한 것도 문밖으로 나가면 언제나 감성을 낚시질 할 수 있는 저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박경리의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에서 통영을 ‘우리나라의 나폴리’라고 표현했었다. 그 이후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고 있지만, 예전에 내가 가본 이탈리아 나폴리는 통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제석봉을 먼저 본 후에 찬찬히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로 하고 약 100m거리에 있는 제석봉으로 향했다. 정자가 설치된 제석봉(啼釋峰, 279m).에서 한참 떠오르며 발전하는 통영시내와 시내를 감싸고 도는 굽은 해안도로가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제의 이름 있는 산과 케이블카가 설치된 미륵산도 조망된다. 제석봉 정상석은 없고 나무에 제석봉 이라는 리본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제석봉삼거리로 다시 와서 복가이버님 부부, 수영 에버그린님 그리고 버들아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내 주위로 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우리 님들이 둘러 않아 맛있는 점심 식사를 즐긴다.
같은 시간 속에서 함께 산속을 걷는 우리는 얼마나 큰 인연인가. 이어질 수도 끊어질 수도 있는 인연이지만 오늘, 우리는 특별한 관계다.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의 향기에 흠뻑 젖었던 시간을 끝내고 발암산으로 길을 잡았다.
한참을 아래로 내려간다, 파도소리 같은 바람소리는 세차다. 줄기가 가느다란 나무는 자기의 속치마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나뭇잎 뒷면이 나에게 비친다.
산행시작부터 계속 하얀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가 번갈아 가며 나의 앞에 서서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어른거린다. 길에서 풍기는 은은한 솔 향이 퇴적층 같이 쌓였던 일상에서의 근심을 잊게 한다.
안부로 내려오자 발암산까지는 2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바람이 없어 식혔던 땀은 다시 흐른다. 그러다가 골짜기를 조금 벗어나면 다시 바람이 와서 기웃거린다.
전망바위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또 다른 느낌의 바다를 감상한다. 그러다가 다시 오르다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경치가 참 은은하게 다가온다.
길가에 누군가 작은 돌로 몇 개 쌓아 놓은 무심한 돌탑 하나가 나를 감동시킨다. 바다 풍경과는 너무 잘 어울려서 한참을 쳐다보고, 지나는 님의 사진을 찍었다. 사람과 풍경이 참 잘 어우러져 마치 화보 사진 같았다.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 돌탑을 쌓은 사람에게 소원 성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봉우리만 오르면 발암산인 줄 알았는데 다시 산을 내려가고 다시 봉우리를 오르며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짙노란 나리꽃을 길가에서 만난다. 얼굴에 주근깨가 매력적인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마치 “나를 잊지 말아요” 애절한 표정을 짓는 꽃 앞에 잠시 머문다. 이어서 바위 채송화의 군락도 만난다.
발암산으로 마지막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 갈증이 밀려왔다. 앞서 가는 여자 산행객이 건네는 오이 조각이 입안에서 시원함과 청량감으로 가득 채운다.
정상 오르기 전에 큰 바위 위에서 마지막 숨 고르기를 한다. 몬테 홍보 모델 3인방이 나타나 앞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지나가는 새는 날개 짓을 천천히 하며 상공을 맴돈다.
정상 이정표에서 황소님을 만난다. 암수바위를 보았느냐는 질문에 아차 싶었다. 전혀 의식을 못하고 산행했기 때문이다. 제석봉에서 내려와 조금 오르면 암수바위라서 황소님이 내가 그곳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생각하여 나를 불렀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친 것이다. 절경의 포인트를 놓친 것이 아깝다. 나를 생각해주는 작은 배려가 고마웠다.
발암산(鉢巖山, 261m)은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와 같은 형상의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거류산과 벽방산을 거쳐 내려오는 낙남통영지맥 안정치에서 남진하여 천계산, 시루봉, 도덕산을 지나 통영지맥의 광도면에서 발암산과 제석봉을 일으켜 세웠다.
발암산과 제석봉은 산의 높이는 낮지만 주변 한려수도의 수많은 섬을 조망하며, 소나무 숲을 걸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좋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미륵산과 벽방산의 그늘에 가려 저평가 된 산이다.
아찔한 높이의 절벽 끝에 버들아씨님이 아슬아슬하게 사진 포즈를 취한다. 너무 위험해서 내가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벼랑 끝 아름다움을 담는다. 멀리 수향이 느껴지는 바다는 빛난다.
나는 등네미 대장님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아직도 몇 개의 산을 넘으며 하산해야 하는 산길이라 앞으로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에 길을 서두르게 된다. 거북바위와 코끼리바위를 거쳐 아래로 내려갔다.
여자 한 분이 오늘 따라 산행 컨디션이 온전치 못해 표정도 좋지 않고, 몸의 균형도 무너져 보였다. 왜 그런지 물어 보았더니 더 산행하기 힘들 것 같아 회장님을 따라 쉬운 길로 하산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 이 길로 왔단다. 중간에 하산하는 길이 있으면 그 길로 빠지겠다고 했다.
깊은 산은 아니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이 혼자서 산길을 간다는 것은 안심이 되지 않아, 만약 샛길이 나오면 내가 따라 갈 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편백나무 숲 근처의 평상에는 대장님과 앞서 간 일행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사정 이야기를 하자 버들아씨님이 휴대폰으로 검색한 산행 지도상에 400m만 가면 임도라고 했다. 몸이 불편한 분과 의리로 뭉쳐진 여자 산행객 네 분이 염소 농장으로 질러 샛길로 빠진다. 농장 쪽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렸다.
산등성이를 오른다. 산을 내려와서 마음이 풀어진 상태에서 다시 산을 올라야 하는 일은 참 힘들다. 다리에 힘을 주며, 올라서니 ‘삐리릭 삐릭’ 하는 청아한 새소리와 작은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 숲과 작은 관목들이 조망을 막고 있다.
먼저 간 일행 뒤를 따라 혼자서 천천히 걸었다. 호젓하고 쓸쓸한 길이지만, 마음에 닿는 그 아름다움은 더욱 짙어진다. 세 개의 산 고개를 넘자 한마음 선원이 나왔다.
우리 일행이 보였다. 임도가 아닌 산길로 따라 조금 오른 후 헬기장을 지나 아래로 내려서면 항아리 모양의 돌탑이 보인다. 이곳에서 언젠가 국제신문에 소개 되었던 요양보호사 김수돌씨(68)를 직접 만났다.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돌탑 쌓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무지개 탑”, “인연”, “사랑의 손길”이라는 제목이 붙은 세 개의 돌탑을 쌓은 장본인이다. 그에게서 돌탑을 쌓은 이유를 듣게 되고 돌탑 앞에서 같이 사진 포즈도 취해주었다.
아름다운 사람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길을 내려서면 폐광이 보이고, 이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35번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마주 보이는 하천 길을 따라 시내 도로로 가다보면 산행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 가을의 선선한 좋은 날씨였다면 제석봉과 발암산은 어쩌면 편안한 산행이 되었을 것이다. 땀을 많이 흘리는 무더운 여름의 악조건은 산이 낮다고 쉬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우리가 예상하는 방향과 반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산이었다. 산은 높으나 낮으나 쉬운 산은 없다.
첫댓글 치자꽃향기님의 발자국 따라 저도 제석봉과 발암산을 다녀와봤습니다 ^^ 더운데 수고 많으셨구요 감사히 멋진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산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한주 다시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한 산행길은 땀도 많이 흘리고 고생을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는게 행복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산에서 또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다시한번 제석봉과 발암산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중간에 암수바위를 그냥 지나치신것 같아 애타게 불렀는데 아쉬웠습니다. 그냥 지나치실 분이 아니신데
중간에 또 컨디션 좋지 않은 산우님들께 넓은 마음까지 내어 주시는 푸근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뵐때 마다 참 많이 배우는거 같습니다. 수고하셨고 산행일기 잘 보고 갑니다.
황소님의 애타는 부름을 왜 못 들었을까요 암수바위를 제가 감정을 해서 얼마나 멋있는지 알아야 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동행 산행을 하입시다. 항상 즐산 하세요.^^
향기님 예 인자 마 산에 오르면 화가가되고 싶다 의 경지를 넘어 이미 감성 찐한 작가 화가 경지를 넘은듯 그림 작품도
같이 가자고 꼬득여놓고 만석이기에 그래도 맘편하게 함께하지못함 이해 바랍니다 바뿐 가운데도 산행 기시는 모습 넘 보기가 좋아요 이어질수도 끊어질수도 있는 인연 함께해요 아울러 여름 건강도 잘 생유 꾸벅
짬 내시어 이렇게 몬테에서 알차고 보람된 건강
향기님과 몬테에서 이어질수 있는 좋은 인연으로 또 언젠가 몬테에서 자연속에서
초록님도 함께 했으면 참 좋았던 산이었습니다. 어렵게 부산 내려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좌석을 양보하셨더군요.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가 있는 몬테에서 다음에 시간이 되면 만나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아름다운 후기글을 읽을때 마다 뉜가 했었는데 함께 식사하며 대할줄 몰았읍니다 만나 반가웠읍니다 편한마음 새기고감니다 감사 합니다
진작 인사를 제가 드려야 했는데, 너무 늦게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번씩 숲향기님 산행사진을 본 기억도 납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산과 사진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세요.^^
저도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가봤는데요 회색도시라서우리통영이 훨씬 아름다운 항구라고 생각했었어요
언제나 열정적인 글 멋집니다
오랜만에 통영을 끼고 있는 산을 산행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초봄에 혼자서 미륵산을 오르고 통영 산은 올해 두 번째 가보게 되었습니다. 갈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네요. 항상 산에서 다지는 부부의 사랑은 참 보기 좋습니다. 또 언제 산에서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향기님의 산행기를보노라면.다시한번산행하는기분이드네요. 회사출장도 바꾸어가면서 몬테에오신걸 감사드림니다.ㅋㅋ 집행부는아니지만.그열정에 감동받았심더.ㅎ ㅎ 같이 산행하였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다음에꼭같이동행하도록 할께요.더운날씨에 수고하였습니다.
복더위에 건강하십시오
이번에는 야구님과 꼭 동행 산행 해야지 하면서도 님의 뛰어난 체력을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산의 열정과 충성스러운 산악회의 소속감은 다른 산악회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이곳의 장점 같습니다. 저도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 합니다. 집안 일 잘 보시고 시간되면 산에서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