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5:7-11 길이 참으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그 무리 속에 가룟 유다도 있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며 “랍비여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반응에 “친구야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말씀하셨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고, 그때 예수님이 말고의 귀를 고쳐 주신 후에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셨지만 베드로는 인내하지 못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님의 길에 걸림돌이 되었다. (인내의 신앙이 중요함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하셨다. 여기서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말씀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이 들어 낙심될 때,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거역한 일을 끝까지 참아내신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우리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낙심을 주는 사람과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하면 모든 상황을 참음으로 이길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신앙생활에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길이 참으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중요하기에...) 나오는데 원문에 보면 ‘마크로 뒤메오’로 되어 있다. ‘마크로 뒤메오’는 ‘오래 참다’, ‘오래 견디다’는 뜻으로 낙심을 주는 여러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참고 견뎌내라는 의미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참고 견뎌내는 자를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11절 상반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인내의 신앙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 ‘여호와 이레’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주신다. 7-8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길이 참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의 강림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강림하셔서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주신 직분과 사명을 수고하고 희생하며 헌신했던 것에 대해 귀한 상으로 다 갚아 주실 것이다. 마25:21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말씀하셨다.
계2:10에도 보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 어떻게 인내해야 할까?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길이 참아야 한다. 이스라엘에 내리는 이른 비는 보리를 파종하는 11월 사이에 내리는 비고, 늦은 비는 3-4월 봄에 내리는 비다. 이른 비가 내려야, 종자를 뿌릴 수 있고, 늦은 비가 내려야 귀한 열매로 잘 자라 추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농부가 비를 기다린다 했듯이 이스라엘에는 건기가 늘 문제다. 건기에는 씨앗을 파종할 수가 없고 곡식과 채소가 자라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신앙생활에도 건기가 있다. 마음에 은혜가 없고, 기쁨도 없으며, 평안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체험도 많았는데 이제는 체험이 없다.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예배, 기도, 헌신하는 일에 행복하지 않음 – 형식, 억지로 드리고 있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신앙생활에 건기를 만난 것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신앙생활의 건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 내려 온전히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가뭄이 와야 식물이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크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을 보면 모두 극심한 건기를 잘 이겼기에 쓰임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약1:1-4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이른 비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제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서 늦은 비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늦은 비의 은혜는 바로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늦은 비의 은혜 즉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진정한 알곡 성도로 성장하게 되고, 영육 간에 귀한 열매를 거두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는 것이다.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하셨다, 하나님은 원망을 아주 싫어하신다. (원망은 불신앙의 열매, 악령의 열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를 지나면서 원망하고 불평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해서 죽게 만든다고 원망하였고, 목이 마르다고,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못 먹는다고 원망하였다. 결국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광야 생활에 인내하지 못하고 원망한 백성들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 늦은 비를 구하며 길이 참았다면 심판을 면했을 것인데...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임)
그렇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난 여러 상황을 길이 참지 못하고 원망한다면 모든 관계가 깨지고 무너지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반응을 다 보고 듣고 계신다. 하나님을 절대로 속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광야를 만났을 지라도 늦은 비의 은혜를 받아 길이 참아내길 바란다. 10-11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특별한 직무를 맡았던 선지자들의 고난을 말씀하시면서 선지자처럼 인내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선지자들은 늘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말하자면 ‘주를 대신하여 주의 권위’로 말씀을 전하였는데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가감 없이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그렇게 전하다 보니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에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고, 곤고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지만 선지자들은 만난 고난을 오래 참아내면서 사명을 완수하였다. (원망 불평, 좌절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음) 하나님은 우리들이 선지자들처럼 고난을 오래 참음으로 이겨 내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매일 늦은 비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면서 욥의 인내와 욥의 결말을 바라볼 것을 말씀하셨다.
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길이 참았다. 그가 길이 참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늦은 비의 은혜를 간구하며, 예배신앙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난을 만나면 길이 참지 못해 예배, 교회, 사명과 멀어지는 성도들이 많음) 욥1:20-22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그렇게 깊은 고난 속에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반응하며 길이 참았을 때, 하나님이 복된 결말을 욥에게 주셨다. 잃어버렸던 삶의 모든 영역 즉 자녀, 건강, 물질 다 회복시켜 주셨고,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영적 은혜를 주셨다. 지금 우리 모두는 피곤하고 낙심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늘 선지자처럼, 욥처럼 범사에 길이 참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