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4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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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기원 작가
(지난호에 이어) 공항에 도착해 여자 동창생이 국내선비행기에 탑승한 걸 확인한 모 주방은 원양어선 회사로 갔다.
승선할 사람들이 이미 다 모여 있었고, 남자직원이 선장을 비롯한 간부들을 일반 선원에게 소개했다. 그리곤 몇몇 주의사항을 상기시켰다.
출항시간에 맞춰 사무실 밖, 승합차에 오른 일행들은 부산항 부두에 정박해 있는 8천 톤 급 원양어선으로 갔다.
선원들 승선절차는 이미 다 끝났고, 인원수만 체크한 뒤 승선을 허락했다. 원양어선도 출항신고를 마치고, 선박의 각 책임자들이 자기분야, 이상 유무를 확인한 이후에 예인선에 이끌려 외항으로 나갔다.
이제 대한민국은 안녕이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고, 돌아올 마음도 없다. 또 정말 재수 없으면, 조난을 당해 영영 이 이승을 떠날 수도 있다.
모 주방은 난간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웠다. 웬 지 마음이 놓였다.
당분간이겠지만, 우선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빈털터리로 카지노나 하우스 방 언저리에서 떠도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망망대해를 휘젓는 원양어선에 갇혀 지낸다는 게, 걱정이기는 해도 말이다. 폐쇄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차라리 출렁대는 파도는 여유를 주지 않을 것이기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한 달 하고도 보름 만에 원양어선 73호는 남태평양 한복판 조업지역에 도착했다.
경유지 뉴질랜드를 보고 나서는 육지 구경은 못하고, 줄곧 바다만 보면서 항해해 온 것이다.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면서 출렁대는 대양은 8천 톤 급 어선을 마치 거룻배처럼 들볶았다. 사람이 타고 있어, 배가 커 보이지만, 거대한 대양에 견주면 너무 하찮은 조각배였던 것이다.
스페인에서 보낸 고등학교 3년 동안 방학 때면 어선을 1주일이나 열흘씩 타고, 북대서양까지 갔던 경험이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다.
모 주방은 배 멀미도 잘 하지 않는 내공이 있어, 큰 고통은 면했지만, 다른 초보자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선원 12명은 대부분 부산과 광주, 목포, 군산 등 해안지대 도시출신들이다.
그 중에는 조폭 일원으로 패싸움을 하다 지명수배를 받고, 임시 도피처로 원양어선을 탄 친구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돈벌이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막노동판을 떠돌던 젊은이도 끼어 있었다.
삽화:이기원 작가
조업지역엔 교대하기 위한 다른 원양어선이 있었는데, 그들 말로는 벌써 1년 가까이 바다 위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보급선은 칠레에서 오는데, 거리가 1천8백Km나 되는 터라, 꼬박 닷새나 소요된다는 거다. 교대하는 원양어선 71호는 부산으로 귀항해 정비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름이나 기타 부품들은 칠레에서 구하면 되지만, 엔진 자체를 손보는 것은 불가능해, 부산의 조선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였다.
또 선원들 중 계약이 끝난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와 갑판장, 그리고 기관장 등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란다.
원양어선 72호는 교대한지 6개월째고, 74호는 보급물자를 수급하기 위해 칠레에 정박 중이라 들었다.
아무튼 참치조업은 배 두 척이 보조를 맞춰 초대형 그물을 펼치고, 조여서 참치 떼를 한꺼번에 잡는 쌍끌이 방식이다.
물론, 참치 떼를 어군탐지기로 찾아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2-3일을 드넓은 대양을 헤매면서 어군을 쫒고, 또 쫒는 작업이 먼저다. 선장과 항해사가 어군탐지기를 동원해 레이다에 쿼터를 찍고, 구획된 스크린 박스 하나씩을 훑어가는 것이다. 구획 박스 하나가 거의 100Km 입방미터나 된다.
그럼에도 참치 떼를 발견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남태평양이 너무 넓어 어군이 어디로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장들은 그래도 조업경험이 많아, 참치 떼 이동경로를 대충 꿰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짐작할 수조차 없지만, 바다 밑을 훤히 들여다보는 어군탐지기 통해 곧잘 찾아낸다.
원양어선 73호는 조업지역에 도착해 1주일 째 마수를 못해 선원들은 침실에 틀어박혀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다.
TV는 있으나 마나다. 위성수신을 제대로 받지 못해, 그저 장식품일 따름이다. 그래서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실어왔지만, 조업지역으로 오는 동안, 이미 다 본 것을 다시 보고는 게, 유일한 낙이다.
다른 사람들은 백 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말다툼을 벌이고 급기야은 주먹질까지 해댔는데, 주방장한테 엄청 혼났다. 배 위에서 싸우고, 명령에 불복종하면, 선장권한으로 당장 추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상에서는 선장의 한 마디가 곧 법이라며 말이다.
첫 조업은 새벽녘에 시작됐다.
왱왱대는 사이렌소리에 놀라 모두 튀어나자, 갑판장이 그물 투하를 명령했다.
후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물은 팔뚝만한 쇠고리로 연결돼 있고, 그물 밑에는 농구공만한 추가 수백 개나 달려있었다. 그물 무게만 수천 톤이나 되고, 후미 개폐문에 달린 작은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바다에 투하하는 것이다.
갑판장은 아주 큰 고함으로 모두 발과 팔, 옷깃을 쇠사슬 앵커에 절대 끼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자칫 걸리면, 목숨이 날아간다는 거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물을 단 거대한 앵커는 엄청난 굉음과 속도로 바다에 투하되고 있었다.
원양어선 71호에 반대쪽이 걸려있어 5Km를 쫙 펼쳐 참치 떼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물 투하작업은 신속하게 해야 한다. 자칫 꾸물댔다가는 어군이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물과 추가 엉켜 투하작업이 늦어지는 걸 막는 것이다. 자칫 한 눈 팔다 투망작업을 소홀이 하면, 농구공만한 추가 그물에 꼬여서 찢어지는 사태가 발행하고, 그 구멍을 통해 참치가 다 빠져나간다. 그럼, 애써 포착한 참치어군을 고스란히 놓친다.
초대형 그물 투하는 무려 1시간 이상 걸렸는데, 원양어선 71호는 전속력으로 타원을 그리며 항해했고, 원양어선 73호도 반대편으로 전속력으로 내닫았다. 출렁거리는 바다와 앞쪽에서 밀려드는 파도를 뚫고, 최대 출력으로 달렸다. 까닥하면 배가 뒤집힐 만큼 허공에 떴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전진했다.
갑판장은 선원들에게 겁을 주듯 그물 작업하다 저 세상 간 친구도 몇 되고, 파도가 배 옆구리를 쳐서 전복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조심하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두 시간이상 그물 투하작업을 한 뒤, 원양어선 71호와 73호는 마치, 두 배가 충돌 시험하듯 원을 그리며 마주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크레인으로 그물 밑에 매단 쇠줄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펼쳤던 그물을 밑에서부터 들어 올리는 것인데, 선장들은 어군탐지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그물망을 좁혔다. 어군이 그물 망 안에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며, 타이밍을 맞춰 낚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실패였다. 참치 떼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바다 밑으로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선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허탕 친 걸, 몹시 아쉬워했다. 상당히 큰 무리였는데, 정말 아깝다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일본과 한국만이 참치 잡이에 성공한다고 것이다. 서구사람들이 참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런 탓도 있지만 수중의 참치는 상어만큼이나 선회 율이 상당히 빨라 잡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과 한국도 가끔 놓친다는 거다.
오늘은 꽤들 낙심했는지, 선장까지 식당에 내려와 소주를 마셨다. 항해사에게 키를 맡기고 말이다.
73호 원양어선도 분위가 침통했다. 근접거리에서 보조를 맞춰 항해하며, 갑판장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았다. 언제 또 대형 어군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맞는 이야기다. 참치 떼가 우리들 여기 있다고, 알려주면서 지나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망망대해를 헤매다가 겨우 참치 떼를 포착했다. 원양어선 71호와 73호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군 이동경로를 추적하며, 그물 투하장소를 계산하고 있었다.
선원들 모두 이번에는 꼭 성공하기를 빌었다.
71호와 73호 선장들은 뒤를 낚아챌지, 앞에서 막아 올릴지 저울질하기 바빴다.
양쪽 배 선원들은 후미에 나와 갑판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험악한 날씨라 더욱 위험했다. 파도도 꽤나 높게 들이치고 있어 갑판에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참치 떼 추적은 쉽지 않았으나, 계속 진행 중이어서 선원들은 비바람을 맞으며, 대기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비바람이 거세지고, 파도도 갑판 위를 덮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참치 한 마리 구경조차 못했으니, 선장들이 애가 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겉에서 보는 대해는 성이나 있었지만, 바다 속은 여유롭다 못해 고요했다. 어군탐지기에 나타난 참치 떼가 유유자적 헤엄치는 걸 보면 말이다.
대형 그물 투망은 밤이 되어서 결정됐다. 몇 시간을 쫒은 뒤 끝이지만, 선원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특히, 73호 선원들은 첫 포획이 이루어지도록 학수고대했다.
선장이 스피커로 지시를 내리자, 그와 함께 갑판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물 투하!”
하는 고함이 귓전을 때린 후, 그 즉시 기다란 쇠갈고리를 들고 앵커를 펼쳤으며, 추를 가지런히 세웠다.
지척에 접근해, 앵커 한쪽 끝을 쇠줄로 연결하자마자, 원양어선 71호는 전속력으로 간격을 벌리고 있었다.
배 뒤쪽 개폐문이 크레인에 들어 올려지고, 수천 톤 하는 그물이 우당탕! 쿵쾅! 하는 굉음을 냈다. 그물 위를 연결한 쇠고리 앵커와 밑에 매달린 쇠뭉치 추가 출렁이는 바다 밑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선박후미의 두꺼운 철강 판과 쇠뭉치 추가 부딪치며 불꽃이 다 튀었다.
갑판장 말대로 단 순간이라도 딴 짓 했다가는 곧장 황천으로 갈 것 같았다.
그러나 선원들이 해야 할 일은 쇠뭉치 추를 어른 팔뚝만한 앵커 줄과 엉키지 않게 하는 게 주된 일이라, 고속으로 쓸려 내려가는 그물을 넘나들며, 쇠갈고리로 일렬을 맞춰야 했다.
원양어선은 앞으로 내닫고, 그물은 뒤로 떨어져 바다 속에서 쫙 펼쳐져야 참치 떼를 그 안에 가두게 되는 원리다.
어쨌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71호와 73호 선장들은 어군탐지기 스크린 상 안에 참치 떼가 걸려든 것으로 판단했다. 하루 종일 추격한 보람이 있었는지, 그물을 양쪽에서 끌어 모으자, 이번엔 정말 참치 떼가 바다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와-아!”
하는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크레인을 작동시켜 수천 톤이나 되는 그물을 끌어올리자, 엄청난 양의 참치들이 갇혀있었다. 얼추 계산해 봐도 수백 톤은 족히 넘는 것 같았다.
크레인을 작동시켜 수천 톤이나 되는 그물을 끌어올리자, 엄청난 양의 참치들이 갇혀있었다.
참치의 크기도 초등학생 덩치와 맞먹는 크기였고, 혼자서는 들 수 없을 만치 무거웠다.
다른 크레인으로 퍼 담아 갑판에 쏟아놓는데, 얼마나 힘차고, 강하게 펄떡이는지, 한 대 맞으면 멍이 들 정도였다. 후미 갑판 아래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냉동 창고에 닥치는 대로 밀어 넣었다. 잠시 허리를 펼 시간조차 없을 만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냉동 창고에도 선원이 배치돼 있어 무조건 차곡차곡 쌓고 보았다. 73호와 71호 냉동 창고에서 참치를 정리하는 일만 날이 새도록 해야 했다.
50-60Kg 나가는 참치 한 마리 당 가격이 1백만 원을 호가한다는데, 냉동 창고에 가득 찬 숫자는 헤아리기도 벅찼다. 단 한 번의 그물질에 원양어선 두 척을 다 채우고도 남았다.
이제 손질은 칠레에 들어가서 하고, 얼음을 채워서 비행기로 부산공장에 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자칫 시간을 끌면 상하고, 상품가치가 떨어져 제값을 못 받는다.
칠레에 도착해서는 모 주방이 통역을 해가며, 일을 처리했다. 스페인어를 원어민보다 잘하는 줄은 선장들도 미처 몰랐다.
그 이전엔 모든 작업을 본사에서 파견 나와 상주하는 남자직원이 도맡아 했는데, 말이 잘 안 통해, 내내 애를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아, 단 한 번에 만선을 이뤘다고 했다.
73호 선원들이 복덩이라며, 보급품 싣는 동안 술 한 잔해도 무망하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하지만, 모 주방은 술을 못한다면서, 부산본사에 참치를 탁송하는 일을 거들겠다며 남았다. 원양어선 칠레 현지법인장도 그를 무척 반겼다.
삽화:이기원 작가
다른 공정을 치켜보지 않으면, 현지인들이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골탕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어서 일일이 손짓발짓을 다 동원해가며, 참견을 해야 한다는 거다. 또 남미인들 특유의 게으름 때문에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속이 터져 돌아가신단다.
모 주방은 그들의 고충을 잘 알기에 솔선수범해서 작업을 스페인어로 단호하게 지시했다. 그 동안은 대충, 대충 해치우기 일쑤였는데, 갑자기 깐깐한 동양 놈이 나타나 잔소리하는 통에 투덜대기 십상이었다. 어영부영 시간 채워, 급료만 받아 챙기면, 그만이라고 좋아들 했는데, 다 틀린 모양이라며 속닥였다.
부산본사 탁송이 끝나자, 원양어선 두 척은 다시 조업지역으로 출발했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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