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안드레아, 1821년 8월 21일 ~ 1846년 9월 16일)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순교자로,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된 성인입니다. 어린 시절 이름은 ‘재복’으로 족보에는 ‘지식’이라고 등재되어 있으며,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은 숙부인 김한현의 세례명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사제로 서품되고 귀국하였으나, 1846년(헌종 12) 병오박해로 1년밖에 사목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체포되어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이후 1925년에 동료 순교자 78명과 함께 시복되었고, 1984년 한국의 동료 순교자 102명과 함께 성인 품에 올랐습니다. 성인의 출생지인 솔뫼성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전 세계적인 천주교 성지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사적 5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다음은 연도별로 정리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와 약력입니다.
●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출생.
● 1836년 7월 11일 ‘모방’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된 후 국내에서 성직자로 양성키 어렵다고 판단,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로 보내기로 결정, 12월 3일 서울 출발
● 같은 해 12월 28일 중국 변문에 도착. 요동과 만주를 거쳐 중국대륙을 횡단한 끝에 마카오 도착(1837년 6월 7일)
● 1836년~1839년 마카오 민란 등으로 두 번 필리핀 마닐라의 롤롬보이로 피신
● 1840년~1841년 마카오 대표부에서 철학과 신학 공부
● 1842년, 조선으로 입국하기 위해 ‘에리곤’호의 ‘세실’함장의 통역사 자격으로 승선하였으나 세실 함장의 마닐라행 결정으로 하선하여 9월 11일 상해 베지에 머물며 입국 시도
● 10월 2일, 상해에서 출발하여 10월 22일 태장하 부근 요동 땅에 도착, ‘백가점’에 머물며 입국 시도
● 12월 23일, 가난한 나무꾼으로 변장, 변문으로 향함. 단독으로 입국 시도하여 국경선을 넘어 의주를 통과할 수 있었으나 위험을 느끼고 돌아옴.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동사할 뻔했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하여 백가점으로 돌아옴(1843.1.6)
● 1843년 음력 3월과 9월 변문에서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동북 국경 쪽 입국 방법을 의논. 12월 31 양관에서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 성성식 참석
● 1844년 동북 국경을 통한 입국을 위해 2월 4일 출발. 경원에서 조선 교회의 밀사들과 만나 동북 국경을 통한 입국이 의주 길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하여 4월 백가점으로 돌아옴. 신학 과정을 마치고 삭발례로부터 부제품까지 받음(12.15일 이전)
● 1845년 1월 1일 네 번째로 변문에 감. 1월 15일 귀국에 성공하여 서울 도착.
● 4월 30일 11명의 신자와 함께 라파엘호에 탑승,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 ‘우송코우’를 거쳐 상해에 도착.
● 8월 17일 상해 ‘진쟈샹’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 받음
● 8월 24일 ‘헝탕’신학교 성당에서 첫 미사 봉헌, 8월 31일 라파엘호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태우고 상해 출발. 제주 용수리 포구에 표류
● 10월 12일 강경 부근 황산포에 상륙. 11월과 12월 서울 및 ‘은이’ 공소 순방
● 1846년 4월 8일 ‘은이’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 주교의 지시로 선교사 영입을 위한 새 통로의 개척을 위해 5월 14일 마포 출발,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에 이르러 청국어선과 접촉, 편지와 지도를 보내고 순위도로 돌아왔을 때 뜻밖에 관헌에게 체포됨(6월 5일)
● 6월 10일 해주 감영으로 이송됨. 6월 21일 서울로 압송되어 포도청에 갇힘.
● 7월 20일 ‘르그레즈와’와 ‘리브와’ 등 스승 신부들에게 하직 편지 씀.
● 8월 29일 ‘페레올’ 주교와 교우들에게 하직 편지 씀.
● 9월 16일 군문효수형으로 새남터에서 순교.
● 10월 26일 신부의 시신 미리내로 옮겨져 안장
● 1901년 5월 21일 용산 신학교로 유해 이장
● 1960년 다시 혜화동 대신학교 성당으로 유해 이장됨
●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에 의하여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순교자 79명과 함께 시복됨
● 1949년 11월 15일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 성인으로 결정됨
●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한국 순교자 102명과 함께 성인으로 시성
● 이후 2019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과거 대축일이었던 7월 5일에 성대하게 신심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
● 2019년 11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신곡’의 단테(이탈리아), ‘죄와 벌’의 도스토옙스키(러시아) 등과 함께 2021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 이는 2012년 정약용, 2013년 허준에 이어 우리나라의 3번째 유네스코 기념 인물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 다음은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낸 성인의 마지막 편지 내용입니다.
교우님들, 보십시오.
우리 벗님들!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 가운데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만드시어 세상에 내놓으신 창조주님과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주님을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 있더라도 쓸데없을 것입니다.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니, 이름은 또한 귀하지만 내용이 없으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태어나 입교한 보람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배반하고 은혜를 거스르니, 주님 은혜만 받고 주님께 죄를 짓는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밭을 심는 농부를 볼 때, 때에 맞춰 밭을 갈고, 거름을 주며, 더위의 큰 고생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 밭을 거둘 때가 되어 곡식이 잘 되고 여물면, 마음에서 땀 흘린 수고는 잊고, 오히려 즐기고 춤추며 기뻐할 것입니다. 곡식이 여물지 않고 밭을 수확할 때 빈대와 껍질만 있다면, 주인은 땀 흘린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을 내고 들인 노력이 생각나 그 밭을 푸대접할 것입니다. 이같이 주님께서는 땅을 밭으로 삼으시고, 우리 사람을 벼로 삼으시며, 은총을 거름으로 삼으시어, 강생 구속하신 피로 우리에게 물을 주시어 자라고 영글게 하셨습니다. 심판 날 거둘 때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좋은 결실을 보았으면 주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누릴 것입니다. 만일 좋은 결실을 못 본다면 주님의 자녀라 하더라도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친히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에서도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맹렬히 싸운다고 하더라도 감히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후 사도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곳곳에 수많은 간난(艱難) 가운데서도 발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50~60년 동안 여러 번 군란(窘難)으로 교우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군란이 불길같이 일어나 많은 교우들과 저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을 겪고 있으니, 우리가 한 몸으로서 어찌 애통한 마음이 없겠으며, 육정에서 어찌 이별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성교회에서 말씀하시기를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라고 하시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라고 하셨으니, 어찌 이런 군란이 주님께서 명하신 일이 아니면, 주님의 상과 주님의 벌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면서, 온 마음으로 천주 예수님 대장의 편에 서서 이미 항복 받은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이런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마음을 게을리하지 말고 오히려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싸움터에 나가는 것과 같이 싸워 이겨냅시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며 돕고, 아울러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환난을 거두시기까지 기다리십시오.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해서 주님의 영광을 밝히고, 조심을 몇 갑절 더하고 더해갑시다.
여기 있는 20인은 아직 주님의 은총으로 잘 지내니 설령 세상을 떠난 다음에라도 여러분은 그 사람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할 말은 많지만, 어찌 편지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만 그칩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싸움터에 나아갈 테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서 만납시다.
진심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님들!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기를 만나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빌어, 삼구(三仇)에 맞서 군란을 받아 참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여러분의 영혼 대사를 계속적으로 펴나가십시오.
이런 군란 때에는 주님의 시험을 받으니, 세속과 마귀를 물리쳐서 덕행과 공로를 크게 세울 때입니다. 부디 환난에 짓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事)에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난날 성인 성녀들의 발자취를 많이 본받아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자녀가 되었음을 증거하십시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으며 돌보고 불쌍히 여기면서, 주님께서 가련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할 말은 너무도 많지만, 있는 곳이 마땅하지 못해 더 적지 못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온갖 일은 주님의 뜻 아닌 것이 없고, 주님께서 내리신 상이나 벌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군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므로, 여러분도 이를 달게 받아 참으면서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서 빨리 평안함을 주시도록 기다리십시오.
제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여러분 육정과 영혼의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곧 여러분에게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상으로 보내주실 테니, 부디 서러워하지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후에 함께 영원히 하느님 앞에서 만나 길이 영복을 누리시기를 천번 만번 바랍니다.
잘 계십시오.
㈜ 한국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축일을 7월 5일에 개별적으로 기념해 왔는데, 이는 7월 5일이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포함한 한국 순교자 79위를 복자품에 올린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8년 전례력부터 동일 성인에 대한 대축일 중복을 피하고자 7월 5일 대축일을 폐지하고 대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변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김대건 성인의 경우 9월 20일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기념해 온 7월 5일에도 그 축일을 기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클릭하여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