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히어로는 이 양반 되겠습니다 ㅋㅋㅋ
1946년 3월 6일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David Gilmour가 태어났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가르치는 조교였던 부친과 역시 선생님 출신으로 BBC 편집장으로 근무했던 모친 사이에서 양육된 데이빗은
음악적으로 관대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최초의 록큰롤이라 평가받는 빌 헤일리의 Rock around the clock,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 에벌리 브러더즈의
Bye Bye Love같은 곡들을 들으면서 서서히 기타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웃으로부터 기타를 빌려 독학으로 내공을 쌓기 시작
했는데~~ 그 이웃은 영원히 기타를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날 핑크 플로이드의 위대한 음악이 탄생하기까지는 그 이름
모를 이웃의 도움이 결정적이었군 ㅋㅋㅋㅋㅋㅋ
불과 11세의 나이에 데이빗은 영국의 최상위권 사립학교인 The Perse School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미래의 핑크 플로이드 멤버
가 되는 시드 바렛과 로저 워터스를 만나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학구열에 불타는 데이빗은 여타 학생들처럼 학교 생활을 즐기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빡세게 했다.
16세의 나이에 그는 최상위 레벨의 모던 랭귀지 강의를 듣게 되었고, 강의를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프랑스어를 섭렵하는 천재성
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무렵 데이빗은 같은 학교 학생이었던 시드 바렛과 함께 캠퍼스에서 점심시간에 기타를 연습하기도 했다.
데이빗이 최초로 레코딩을 했던 프로밴드는 바로 이 무렵 62년말에 이루어졌다.
먼 훗날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에도 참여하게되는 섹소폰 주자 Dick Parry도 동참한 이 밴드의 이름은 Jokers Wild로 50장 한정
판매 EP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데이빗 길 무어의 역사적인 프로 데뷔 앨범이었다.
65년에 데이빗은 시드 바렛을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과 프랑스를 유랑하며 길거리에서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곤했다.
그 무렵에 그들은 매우 배고프고 암울한 삶을 살고 있었고 급기야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었다.
이후 데이빗은 바렛과 함께 프랑스 외곽에 텐트를 치고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67년에 데이빗은 Jokers Wild 동료였던 릭 윌리스, 윌리 윌슨과 함께 트리오을 결성하여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주로 연주했던 것들은 당시 유행하던 차트 음악을 그들만의 느낌으로 편곡한 것이었는데 별 느낌 없었다고 한다.
클럽 사장들은 마지 못해서 월급을 주었고 궁핍한 삶은 계속 이어지고 설사가상으로 도둑놈이 그들의 악기를 훔쳐가는 불상사도
발생하였다. 이뤤~~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이게 당최 뭔 일이야?? ㅜ.ㅜ
결국 런던으로 돌아온 데이빗은 우연히 레코드 가게 밖에 진열되어있던 핑크 플로이드의 싱글 See Emily Play를 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였던 시드 바렛의 성공적인 데뷔에 고무받은 데이빗은 자신의 밴드 Bullit(Flowers의 후신)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밴드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낙담하고있던 데이빗에게 행운의 여신이 손짓한 것은 1967년 12월의 어느 겨울밤~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이 데이빗에게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들어올 의향이 없냐구 물어보았다.
결국 이렇게 하여 데이빗 길 모어는 핑크 플로이드의 다섯번째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고 위대한 전설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축하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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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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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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