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 산을 오를 때가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절에 들러 삼배(三拜)를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예전 어느 이름 모를
절터에서 불공을 올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때
승려와 신도들로 북적였을 절터는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아있었지만
여전히 불력(佛力)만은 빛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라졌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인가.
얼마 전 한 대학생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아들이 친구들과 산에 갔다 왔는데
그날부터 아이가 이상합니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같이 갔던
5명 모두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학업조차 힘들어 휴학 중이었다.
나는 아들을 데려오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자세한 이유를 듣고 싶어서였다.
다음 상담일,
아들은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아버지에게는 말 못한 사연이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대학생들은 정상 등반을 목표로
산에 올랐지만 날이 어둑해져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변에서 캠핑을 하기로 하고
마땅한 장소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 친구가 널찍한 공터를 발견했는데
왠지 으슥한 기운이 들었다고.
---“무슨 절터 같았습니다.
산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거든요.
주춧돌도 있었고, 우물도 있었습니다.”---
더 찾을 것도 없이 그곳에 텐트를 쳤다.
그런데 자꾸 환청이 들렸다.
텐트 너머로 목탁 치는 소리도 들리고
누군가 밥을 짓는지 우물 쪽에서 쌀을 씻는 소리도 선명했다.
모두 잠을 못자고 눈만 말똥거리고 있었다.
---“야, 나가보자.”
호기심 많은
친구의 말에 하나 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히 텐트 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나무그림자에 가린 달빛만이 텐트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말을 꺼낸 친구가 용감히
우물 쪽으로 걸어 나가자 하나, 둘 그를 따라갔다.
쌀 씻는 소리는 우물 쪽에 드리워진
감나무 가지가 바람에 서로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짜릿한 공포를 체험하고 싶었던
그들은 싱거워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발밑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무슨 금덩어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다들 몰려가 발밑을 캐기 시작했다.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고 평범한 금불상이었다.
--“절터였나 봐.”
다섯은 서로 가만히 쳐다봤다.
그때 호기롭게 먼저 텐트 밖을 나섰던
친구가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며
마치 전리품이라도 획득한 듯금불상을 낚아챘다.
그날 이후,
이상한 일이 계속됐다.
서울로 돌아온 뒤 악몽에 시달렸고
그 중 몇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불상을 가져간 친구는
유독 우환이 심했다. 교통사고가 생기고,
꼭 통과해야 하는 전공시험에 낙제점을 받는 등
예전과는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전원 휴학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스님 없는 절터라고 해도
함부로 물건에 손대거나 가져와서는 안 된다.
이는 분명 불상에 화가 묻어온 경우이니
빨리 불상을 돌려드리도록 해라.”
내가 시킨 대로
5명은 함께 불상을 묻으러 갔다.
신기한 것은 그날 이후
모두 악몽에서 벗어났으며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건강을 위해 산을 찾는 등산객이 늘고 있다.
절터를 지날 때는 경건한 마음을 갖길 바라며,
절터에서 함부로 놀거나 자서는 안 된다.
기도터는
신성한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며,
어떤 기든지 기가 집중된 장소에서는
좋은 기운만 받으란 법은 없다.
이번에는 좋게 잘 끝났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누군가 크게 화를 당해 대형 영적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필자가 잘 아는 지인 L씨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행운아를 자처했다.
그렇게도 팔리지 않아 고민하던 건물이 팔린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오죽하면
내게 찾아와 제발 팔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을까.
오랜 숙원이던 건물을 판 뒤 L씨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연일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최근 L씨는 화병으로 눕고 말았다.
그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소식에
연락을 취했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그 건물 부근이 상업지구로 지정됐답니다.
이미 제가 팔기 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저만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역 개발 정책이 발표되면서
그의 건물 부근은 향후 5년 안에 대규모 관광지역으로
개발이 확정돼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러니 자리보존하고 누울 수밖에.
내가 그에게
---“당신이 건물을 갖고 있었다면
상업지역으로 지정받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라고 하자
---"아닙니다! 이미 그 전부터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가 손사래를 치며 반박하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말은 그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제각기 그릇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땅을 그때 팔지 않고
지금 좋은 값에 팔았다면
주어진 그릇에 복이 넘쳐 화로 변했을 겁니다.
본인이나 가족 신변에 문제가 생기느니
조금 손해 봤을지라도 그때 건물을 판 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얼마 전
나를 찾아온 한 도인의 얘기를 해줬다.
그 도인은 어렸을 때부터
공으로 돈이 생기면 항상 화를 당했다.
길에 떨어진 돈을 줍는 날엔 몸이 다치거나
병치레를 했고 뜻하지 않게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
---“벌써 20년도 더 됐을 겁니다.
평소 알고 지낸 지방 공무원이
갑자기 면직을 당하게 됐습니다.
하도 사정이 딱해서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일을 해결했는데 그 공무원이 고맙다며 사례금을 준 겁니다.”
도인은 한사코 사례금을 거부했다.
당시 몇 백 만 원의 돈이었는데
그는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라며 돈을 놓고 도망가다시피 했다.
할 수 없이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나오는데 집에서 난리가 났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것.
불행 중 다행으로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났지만
직감적으로
사례금 때문에 화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공무원을 찾아가 봉투를 돌려주었단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어느 정도 잊고 살다
최근 아는 사람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또 한 차례 사례금을 받았다.
백억 원대 부동산을 순식간에
사기당할 처지에 놓였다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무사히 부동산을 구하는 비방을 알려줬다.
다행히
도움 받은 사람은 도인의 말을 굳게 믿고
비방대로 움직여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매우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도인에게 사례금을 전했다. 도인은 이번에도 거절했다.
그러나 사례금을 전하러 먼 곳에서
온 사람의 정성을 단칼에 뿌리칠 수 없어
몇 번의 고사 끝에 받긴 받았지만 영 불안했다.
결국 그는 사례금이 부담스러워 투자할 곳을 찾았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이가 귀가 솔깃한 투자 정보를 흘려
도인은 받은 사례금에 자기 재산까지 털어 맡겼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정통한 사기꾼이었다.
빈털터리가 되어
맥없이 앉아 있던 도인이
도를 닦는 사람이 사례금을 받아 벌을 받은 모양이라며
---“저는 평생 남의 공돈을 받으면 안 됩니까?”라고 묻기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하늘이 주신 그릇대로 사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L씨는 도인의 얘기를 듣고는
자기보다 더 운 나쁜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며
앞으로는 제 그릇에 만족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욕심 부리지 않고 산다면
복은 자연히 찾아올 것이며,
내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