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아래 병곡마을에 가서
이형권
그니야
덕유산 몰랭이를 지나온 바람이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밤이 들자 물소리는
베갯머리를 적시고
길들은 순한 짐승처럼 고요해졌다.
돌아누우면
삼단처럼 흐드러진 능수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봄의 뜨락에는 연모의 언어들이 가득하다.
향기로운 봄의 커튼을 열고
농산교에서 여물목을 지나 가래실마을까지
홀로 걷는 봄날의 유희는
도원경(桃源境)처럼 슬펐다.
파교(灞橋)에서 정인을 보내며
늘어진 실버들을 꺾어주던 마음은
봄빛처럼 푸르러 올
사랑의 언약이었으련만
떠나간 사람은 다시 올 수 없고
흘러간 세월은 회한만이 가득하다.
어제는 앞산에 설유화가 흐드러졌고
오늘은 묵정밭에 냉이꽃이 자욱하다.
그니야
돌아보면 한세상
수틀 위에 그려진 밑그림처럼 서툴고 보잘것없거늘
우리는 헐떡이는 노새처럼 살아왔구나
아홉 개의 강을 건너 이른다는 너의 세상에도
청성곡 같은 봄꽃이 피어나고 있느냐
상여덤 너머 찔레 숲에는
번식기에 접어든 직박구리들이 요란하고
옛 생각이 춤을 추듯 밀려오는
치렁치렁한 능수 벚꽃의 노래가
이 산골에는 가득하다.
咐
초동 친구 오근이가 세상을 버렸다.
지난겨울 주작산 휴양림에서 목포 홍어를 먹으며
꽃피는 춘삼월에 다시 보자 하였건만
매화꽃이 만개한 날에 부고장이 날아왔다.
사인마저 알 수 없이 운전석에 앉아서
홀연히 숨을 거둔 모습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벼락불 같은 소식이었다
신축생, 임인생으로 베이붐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계집아이 남자아이 헤아리면 한 두름의 굴비처럼 많았고
고샅길에 뛰쳐나온 강아지 떼 같았다.
필통 속의 몽당연필 같이 딸랑거리며
함께 무지랫봉을 넘어 학교에 다녔다.
산으로 들로 뻘밭으로 오소리 새끼들처럼 몰려다녔다.
영동댁, 가재댁, 연촌댁, 이동댁, 오가시댁, 미내댁,
초동댁, 금정댁, 삼산댁, 비실댁, 해당리댁...
목청마저 쟁쟁하게 떠오르는 어무니들
유산이라곤 그 어무니들의 서러움. 가난, 억척스러움뿐이었다.
보송보송하던 사타구니에 거웃이 생길 무렵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밑바닥에서 각자도생의 길이었지만
박토에 떨어진 민들레 씨앗처럼 굴하지 않고
모두 번듯하게 일가를 이루었고 다시 만났다.
집안의 어려운 일에는 다들 중심이 되었고
부모님 노후도 잘 보살피는 면면이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오근이는
재치와 유머가 좋은 살가운 친구였다.
크고 작은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더니
수완을 발휘해 병원 개업 관련 일까지 한다고 했다.
구멍가게도 경기를 탄다고 코로나 이후
벌려놓은 일들이 신통치 않다고 푸념이더니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집안 대소사에
가족들 치닥거리로 궂은일만 하던 한 가장이
선 채로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얼마나 황망하게 떠났는지 영단에는
눈을 감고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향을 사르고 술 한잔을 올리고 곡을 하여 보지만
여기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절벽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마을에 수양매화가 저렿게 아름답군요. 여름에 제 마을 물가에 갔던 적이 있는데 내년 봄에 한번 가봐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