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
우음(偶吟) |
不識騎牛好 (불식기우호) 今因無馬知 (금인무마지) 夕陽芳草路 (석양방초로) 春日共遲遲 (춘일공지지) | 소 타는 즐거움 몰랐는데 말이 없으니 이제 알겠네. 봄풀 향기로운 저녁 들길에 지는 해도 함께 느릿느릿... |
< 五言絶句 仄起式, 押韻: 支 = 知, 遲 >
산수화 (山水圖)
* 學圃堂 隱遁有感 * (학포당 은둔유감)
家住 淸江上 이니, 晴窓 日日開 하야, (가주 청강상, 청창 일일개)
護村 林影畵 이고, 聾世 瀨상催 하내, (호촌 림영화, 롱세 뢰상최)
客棹 隨潮泊 하여, 漁船 捲釣廻 할때, (객도 수조박, 어선 권조회)
遙知 臺上客 은, 應爲 看山來 이리라, (요지 대상객, 응위 간산래)
江闊 飛塵隔 하니, 灘喧 俗語聾 이고, (강활 비진격, 탄훤 속어롱)
漁舟 莫來往 할때, 恐與 世上通 하리라, (어주 막래왕, 공여 세상통)
맑은 강가에 집을 짓고, 갠 날 날마다 창을 열어 놓으니,
산촌을 둘러싼 숲 그림자, 흐르는 강물소리에 세상일 전혀 못듣내,
나그네 타고 온 배 닻을 내리고, 고기잡던 배 낚시거두어 돌아오니,
저 멀리 소요하는 나그네는, 응당 산천구경 나온 것이리라,
강은 넓어 분분한 티끌 멀리할 수 있고, 여울소리 요란하니 속된 사연 아니 들리내,
돛단 고깃배야 오고가지마라, 행여 세상과 통할까 두렵노라.
(上: 五言律詩, 押韻: 開,催,廻,來, 下: 五言絶句, 押韻: 聾,通, )
산수도는
낙향한 선비의 세간을 멀리하면서 피안의 이상향을 꿈꾸는 은둔자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그림.
앞 뒤 산봉우리들이 덩이를 이루면서 기암괴석으로 높이 솟아 있고 그 품 아래로 널찍하게 수면공간이 화면을 차지하면서 뭉게구름처럼 위가 커진 봉우리는 물빛이 반사된 듯 아래쪽이 밝으면서 굵은 윤곽선으로 첩첩이 겹친 뒷산과 명암대비가 뚜렷하고, 물안개 속에 멀리 쪽배와 계류가 아스라이 묘사되어 화면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구성이다.
조선전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안견파 화풍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북송 거비파와 남송의 마하파, 명나라초기의 절파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시대양식과 호연지기 정신을 살펴 볼 수 있는 산수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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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팽손(梁彭孫)은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 재위1506-1544)때 문장(文章)과 서화(書畵)로 명성을 얻은 문신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윤두서(尹斗緖, 1668-1715), 말기의 허련(許鍊, 1809-1892)과 함께 호남의 대표적인 남종화의 태두로 지칭된다.
본관은 제주(濟州)로 1488년 9월 19일 전남 능성현(현 능주) 월곡리에서 양이하(梁以河)의 아들로 출생하여 1545년 8월 18일 학포당에서 타계했다. 그의 사후 3백년 이상 지난 1863년(철종 14년) 혜강(惠康)이란 시호를 받았으니, '부지런하고 사(私)가 없으므로 혜(惠)라 하고 연원(淵源)이 유통(流通)하므로 강(康)이라 한다'는 뜻으로 한평생 일관된 삶의 태도와 성품을 잘 대변한다 하겠다.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19년 교리(校埋)로 재직 중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되었으나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된 뒤 복관(復官)됨. 글씨를 잘 썼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능주(綾州)의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됨. 문집에 《학포유집(學圃遺集)》이 있다.
[출처] 우음(偶吟)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
첫댓글 감사 합니다..
행복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