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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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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사회교육원 문창반 모임 스크랩 광화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안단테 추천 0 조회 24 12.02.29 08: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궁성

궁성은 궁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장을 이른다.

경복궁의 궁성은 1398년(태조7)에 동쪽, 남쪽, 서쪽이 조성되었으며

이때 궁성문인 건춘, 광화, 영추문도 세워졌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광화문은 조선의 법궁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으로서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이 세 개의 홍례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례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례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에는 종을 걸어 두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충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 되었다.

그 후 1968년에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 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근정전은 왕이 문무백관에게 조회를 받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며 즉위, 책봉, 혼례 같은

나라의 주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이며, 왕과 나라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중층의 전각은 높고 넓은 2층의 월대 위에 당당히 올라서 있으며

근정전 주변을 둘러싼 행각의 기둥들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 듯 줄지어 있다.

 

 

마당 한 가운데에는 왕이 다니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신하들이 걷는 신도가 따로 있으며

신하들이 지위에 맞추어 자리하도록 품계석을 세웠다.

왕을 중심으로 신분적 질서가 엄격했던 조선시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정전은 왕이 평소 머무르며 나랏일을 돌보았던 곳으로

'깊이 생각하여 나랏일에 임한다' 는 뜻을 품고 있다.

조선 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세종이 밤늦도록 학문을 연구하고

집현전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곳도 사정전이다.

집현전은 세종이 궁궐 안에 설치한 인재 양성과 학문 연구의 기관이다.

 

 

집현전 이외에도 왕의 집무 공간 가까운 곳에는

업무의 신속한 처리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설치한 관청들이 있다.

궐 안에 들어왔다 하여 '궐내각사' 라 불린 여러 관청 가운데 현재는 수정전이 남아 있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가 생활한 건물이다. 왕은 강녕전에서 독서나 휴식을 취하였고

신하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국모인 왕비에게는 왕위를 이을 세자를 낳고

왕실 가족의 화목과 질서를 유지할 임무와 권한이 주어졌다.

 

 

교태전 후원 아미산은 궁궐에 한들어오면 궐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왕비를 위해

꾸민 정원이다. 야트막한 동산을 계단식으로 꾸미고 곳곳에 나무와 꽃을 가꾸었다.

 

 

그외에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가 생활한 '자경전'

세자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기에 '떠오르는 해' 로 비유한 '동궁전'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 '자선당' 과 세자가 공부하며 정무를 익히던 '비현각'이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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