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주생활(가옥의 형태) ]
※ 본문설명
삼국지』에는 “집이 무덤과 같고 문이 위에 있다”고 하는 3세기 가야 지역의 주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발굴된 가야의 주거지 유적에는 땅을 파고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안쪽으로 세워서 지붕을 만든 수혈가옥들이 많이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무덤모양처럼 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의 주거지유적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주거지 평면형태가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도 다수 있어 수혈가옥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구조를 가진 것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혈가옥의 깊이는 시기가 내려갈수록 얕아지고 있고 기둥과 지붕 등 지상에 설치되는 구조물들이 발전합니다. 소가야 권역인 경남 사천 봉계리 지역에는 발달한 형태의 수혈가옥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사면의 일부를 파고 벽을 따라 기둥을 설치하고 있는데, 기둥을 각재로 다듬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판재의 목판을 대고 벽체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수혈이 얕아지고 벽체 시설이 나타나는 것은 가야의 수혈가옥이 점차 반지상식이나 지상식의 가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수혈가옥에는 둘레에 벽면을 따라 배수를 위해 도랑시설을 만들기도 했으며, 바닥은 점토로 다지고 불을 피워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는 보온과 취사의 기능을 겸한 다목적용 화덕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이 화덕시설은 좀더 발전하면 벽면을 따라 판석으로 조립하거나 터널식 굴로 된 온돌시설로 만들어집니다.
수혈가옥 주변에는 작은 움집형태의 저장시설도 만들어져 있었는데, 구근식품이나 채소, 곡물까지 저장이 가능했습니다. 남강 유역의 내촌리 마을 유적에는 별다른 내부 시설이 없는 직경 4m정도의 구덩이에 큰독(大甕)을 비롯한 각종 토기들이 채워진 것도 있는데 곡식저장 창고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곡식저장 창고가 많아지는 것은 생산물의 축적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땅을 파고 만든 수혈식가옥이 있었는가 하면 땅위에 기둥을 세우고 벽체와 지붕시설을 한 지상식 주거지도 있었습니다. 지상가옥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오늘날의 가옥과 같은 지상가옥, 다른 하나는 시골원두막을 연상시키는 고상가옥입니다. 이 중 고상가옥은 나무 위에 집을 지은 수상가옥에서 발전한 것으로 습기와 뱀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전형적인 남방식주택입니다.
고상가옥의 모습을 보면, 지붕은 모두가 맞배의 초가지붕이 대부분입니다. 고상가옥에도 내부에는 화덕시설과 굴뚝이 설치되고 있었는데, 고상식가옥 안의 화덕은 가옥의 구조상 부뚜막형 토기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단독 아궁이였습니다. 내부 취사로 인한 연기나 김을 배출하기 위해 환기구멍이나 창문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등잔을 얹거나 생활도구 등의 물건을 얹는 선반 같은 시설도 있었으며, 커튼으로 내부칸막이나 장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 내부시설이 수혈가옥에 비해서 상당히 다양하고 화려했으며 습기,통풍,채광,난방까지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고상가옥이나 지상가옥은 지배층의 가옥이거나 왕궁, 관공서, 회의장 등 일반민들이 사용한 수혈가옥보다는 상위 가옥이었습니다. 고상식 가옥형태의 창고도 존재했는데, 굴뚝이 없고 단순한 구조를 한 것입니다. 고상가옥 가운데 당의 높이가 점차 낮아지고 벽체가 지상에서 바로 설치되고 계단이나 사다리 시설을 한 형태도 있는데 이러한 고상가옥은 오늘날과 같은 지상가옥과 비슷하게 발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상가옥의 지상식으로의 변화와 함께 수혈가옥도 지상으로 상승하게 되어 6세기무렵에는 일반민들도 대부분 지상가옥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 본문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권주현)]※ 이미지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자료 야후블러그 문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