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제가 오늘
우리 신앙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대해서 다루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사도신경 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하다보니 방언에 대해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초적으로 기본적으로 알아야 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만 제가 좀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저는 이 성서의 말씀을 여러분께 드릴 때에 성서의 원어, 즉 히브리어나 헬라어 등의
원어를 연구하고 또 해독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연구 되어진 것으로 해독 되어진
것으로 하여 말씀을 전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원어를 살피고 뜻을
받기도 했지만은 그러나 성영님께서 가르쳐 보이시고 깨닫게 하심을 통해서 이제
저의 경험된 말씀이 되었고, 그러므로 또 전하는 말씀이 되었어요.
그래서
여러분께서 들려지시고 동의가 되시면 듣고 받으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성영님이 계신 사람이요, 그러므로 저와 영이 같으면 받는 것이고, 함께 경험이 되는
말씀이 되어서 믿음의 능력을 갖추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영이 같지 않으면
말씀이 부딪힐 것 밖에는 없으니, 듣는 것 불편할 것 밖에 없으니 빈정대고 비웃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듣는 것 반드시 금하시라고 분명히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사도신경에 대해서나 또 방언에 대해서나 솔직히 말해서 다루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 성도들에게 방언을 해야하느냐? 하지않아야 하는냐? 하는 질문들을 한참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방언에 대해서 한번 다루어드릴 것으로 말씀을 드렸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제가 방언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려고 할 때마다
성영님께서 저에게 어떤 불편함을 계속 주시면서 강하게 거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했었었는데요, 성영님께서 왜 거부하셨나를 말씀을 좀 드리려고 제가 이 말씀을
들어가게 된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방언을 해야하느냐? 하지않아야 하느냐? 하는 그 이면(裏面)에는
자기 자신이 하는 방언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방언을 하면서도
그것이 성영님이 주신 것인지, 또 항간에서는 '마귀가 방언을 준 것이다! 성영님이
준 것 아니다!'하고 자꾸 나오니까 정말 성영님이 주신 것인지, 마귀가 준 것인지,
자기 스스로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영께서는 그런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성영으로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성영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자기의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알듯이 성영으로 난 자도 이와 같다!"하셨던 것처럼, 바람을 피부가
느끼고 알듯이 성영님이 자기에게 오셨으면 성영님이 오신 것을 자기 마음에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방언이 어디로서인지 안다는 거예요.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영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이 하는 방언을 자기가 모른다면, 그것은 성영님이 주신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잘 못 오해해서 말이죠, "방언 받는 것은 성영을 받은
것이고 방언 못하면 성영 받지 못했다!"라는 것을 말하고, 또한 방언을 구원받은
증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저도 그렇게 많이 들었어요. 대체로 순복음
계통에서 그렇게 말을 해주는 것을 저도 그렇게 들었었기 때문에, 제가 이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방언을 받은 것은 구원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된 착각입니다. 방언하는 것은 구원 받은 증표가 아닙니다.
구원과는 관계 없어요. 이 방언에는 성영님이 주시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분명히 가져다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거예요. 이 부분은 뒤에
다시 설명을 드릴겁니다.
그리고 이제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이라는 것은 구원을 받고도 방언을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구원을 받지 않고도 방언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지금 사도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했어요. 내가(자신이) 만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하면 뭐가 기도한다고요?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했어요. 여기서
사도 바울이 '나의 영이 기도한다'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기도할 줄 모릅니다!(잘 이해를 하셔야 되요) 기도라는 것을
영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이 구원 받기 전에는 영이 기도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영님이 우리 영에 들어오시니 영이 구원을 받게 되고 구원
받은 영에 성영님이 계시니 성영님에 의해서 영으로 기도한다"하는 것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런데 구원받지 않았음에도 방언을 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왜입니까?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고자 하심인 것입니다. 성영님이 와 계시다는 것을 표적으로 주시는
은사예요. 성영님이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려고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구원과 상관없이 성영님이 혀를 잡아서 하게 하시는 말이요, 기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몇주 전에 성영님이 오시면 맨 먼저 뭐 부터 잡으신다고 했어요?
혀부터 잡으신다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성영님이 오시면 먼저 우리 혀부터 잡으신다"
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그러니까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누구를 위해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니" 그랬어요. 그러니까 방언은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주는거라구요? 바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해서 주는 표적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믿지 아니하는 자가 구원 받은 것일까요? 구원받지 않은
자임을 말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않는 자, 즉 구원받지 않은
자에게 성영님이 주시는 표적이라! 성영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왜 주시느냐?
믿는 자가 되게하시기 위해서,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성영님이 지금 그에게 오셨다는 것을 알게하시려고 주신
것임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래서 방언의 말이나 기도는, (이 때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당시에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을 받으니까 그냥 말하는 것처럼 해버렸나봐요, 우리는
지금 엎드려서 눈감고 기도 자세를 취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말로 했나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방언을 말한다고 말, 말이라고 그렇게 기록을 했고 또 '방언으로
기도하면'하고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그러니까 기도예요. 성영이 기도하라고 주시는
방언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방언의 말이나 기도는 누구를 위해서에요? 자기를
위해서 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의 믿음을 위해서 개인의 믿음을 위해서 주시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덕을 세우고" 했습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자기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했습니다.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것은 알아듣는
말(방언)이 아니라는 말이예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했어요. 그러니까 방언으로 말하는 것,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알아듣는 자가 없다,
그러면 누구에게 한다는 겁니까? 하나님께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바울이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것, 내 마음이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데,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여러분! 아직 구원 받지 않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비밀을 말한다는 말일까요?
아직 구원 받지 않은 영이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라도 다 통달하시고 그 모든 비밀을 다 아시는 분이
누구예요? 성영님이시죠, 그래서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하는 것은? 내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이것은 구원 받기 전에 이야기예요) 성영님이 혀를 잡아서
하나님께 말하게 한다, 기도하게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이해 되세요?)
우리 지성과 이성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성영님의 언어로 우리 혀를 잡아 말하게 하신다, 기도하게 하신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성영님이 무엇을 기도하게 하십니까?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제 말씀으로 말미암아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하도록, 그를 위해서 성영님이 혀를 잡아
기도하게 하시는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 방언의 기도를 진짜 성영님으로 부터 받은 것이라면? 성영님께서
이 사람의 영혼을 바른 믿음 안으로 이끄시는 너무나 귀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 그렇게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내적 표적이 아니라 외적
표적이기 때문에 이 은사를 경험하고도 잘 못 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어요. 방언을
주시는 것, 바로 개인의 믿음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의 표적이요, 하나님이 계신 것과
성영님이 오신 것을 체험으로 알게하시는 표적, 성영님이 임하셨다! 곁에 와 계신다는
표적, 그래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시고, 성영께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심을 따라
성영님을 자기 안으로 모셔들여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방언의 기도는 여러분이 잘 아십시요! 성영님이 각 사람에게 자기의 뜻대로 주시는
것이지, 무조건 무차별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 달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한다고
해서, 방언 받겠다고 며칠씩 밥을 굶고 기도한다고 해서, 또 부흥회라든가 어떤
집회들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흥분하고 도취되고 열광하고 감정에 몰입하고 하는
이런 경로들을 통해서 방언을 주신다거나 받는다거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을 해보겠다고 무슨 연습을 한다든가, 또 방언을 받겠다고 혀가 돌아가게
연습을 한다든가 하는 이런 것들은 다 가증이요, 장난하는 귀신의 영들에게 자기를
온전히 내주는 무지한 일들인 것입니다.
만일에 이 같은 경로들을 통해서 방언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성영님으로 부터
받은 것 절대로 아닙니다. 성영님은 인격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세요! 사람들이
자기 욕심에 끌려 방언이나 어떤 능력들이나 받겠다고 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환경이나
방법들에 역사하시는 분 아니라는 말입니다. 방언을 구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정신이
똑바르면 성영님이 분명히 주시게 되어있어요. 물론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영님이 자기의 뜻대로 방언하게 하실 자를 알고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기도할 때에 주시는 것이지만은, 그러나 자기 신앙을 위해서 대체로 혼자
기도할 때 성영님이 많이 역사하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을 가진
인격적인 겸손한 자에게, 죄인 됨을 회개하며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에게, 성영님께서 와 계신다는 증표로 그의 혀를 잡아 방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장소도 시간도 구애 받지 않는 것이요, 또한 장소도 시간도 구애됨 없이 마음에
성영님이 주신 소원을 따라 기도하라고 혀를 잡아서 방언의 기도를 하게하시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의 기도는 영적인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유익된, 성영님이 하게 하시는 기도입니다. 성영님이 마땅한 자에게
자기의 뜻대로 주시는 신비한 하늘의 언어입니다.
(고전)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7절에 "각 사람에게 성영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성영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뜻대로 나누어주신다" 해서 성영의
나타남, 바로 은사등의 표적은 성영의 뜻대로 주시는데, 이 말은 성영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비밀을 성영님이 받을 자를 아시고 주신다는 뜻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영님이 오시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물론 말했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다시 재해석해서
전해주는 그러한 내용들이예요. 그와 같이 예수님이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내가 너희에게 있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 아니라 내가 가고 성영님이
오셔야만이 너희에게 유익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게 하시는 기도 또한 오직 성영님에
의해서요, 그럼으로 성영님이 우리의 믿음을 도와 하늘의 것을 소유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시는 분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영님께서 저에게 '세상 교회들을 향해 경고하라'하실 때에 믿는다 하는
사람들의 영적상태를 보게하셨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사람들이 자기가 믿는다고 말하는
그 예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정말 알아야 할 것은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알려고
하는 신앙 인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은사들에 마음을 쓰고
집착하고 있는 모습들이었었습니다.
자기 기분,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를 세우려고 분별없이 은사들을 좇아서 "어떤
목사가 능력 받게 해준다더라! 어떤 목사에게 안수 받으면, 기도 받으면 성영의 불이
임하여 불 받게 된다더라, 방언을 받게 해준다더라, 자기의 답답한 문제들을 예언해
준다더라"하는 곳에 구세주 만난 기분으로 찾아다니고 좇아다니고 방언이나 예언 등
귀신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 심지어는 기도만 하면 성영충만이 이루어지는줄 알고,
성영충만하게 해 달라고 자기의 좋은대로 기도하는 모습들을 영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방언 받는 것은 성영 받는 것이다"하니까 성영 받겠다고, 방언 받겠다고 이런 속임이
난무한 곳으로 좇아다니다가 거짓 영들에 다 붙잡혀서 그 영들에게 혀를 잡혔다는
말입니다. 혀를 잡혀서 방언을 흉내내는 것에 다 걸려들어버린 것입니다. 모방에
걸려들었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쳐 놓은 그물 들에 다 걸려들어 방언을 열심히
흉내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슨 방언이라고 "랄랄라 따따따 하죠?" 이런
발음으로 방언한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영께로 부터 온 것 아닙니다.
그리고 성영님의 방언은?
듣기에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기는 해도 그러나 성영님이 주신 방언은 듣기에
신비감이 들게합니다.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짓 방언은? 듣기에
거북스럽고 혐오감이 든다거나 거부감이 듭니다. 심한 경우는 사람의 마음에 화가
일어나게 하고 또 안정을 잃게 합니다. 그리고 무아지경에 빠진듯 하는 것, 깊은 기도
들어간다고 하는 것, 도취하는 것, 다 성영님에게서 온 것 아닙니다. 성영님에게서
오는 것 아니예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아니! 무슨 깊은 기도 도대체 어디로
들어간다는 겁니까? 깊은 기도 들어간다는 표현 쓰는 것을 제가 간혹 듣는데" 그런데
깊은 기도 어디로 들어가는 겁니까?
성영이 내게 오셨으면? "성영님에 의해서 내 생각을 지배하시고 내 입술을 지배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구할 수 있도록 저의 모든 생각을 지배하셔서 구하게 하여주세요"
맡겨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되는 것인데, 무슨
기도를 어디 깊숙한 기도 들어간데요? 자기 영을 마귀에게 다 노출시켜서 자기 영에
마귀가 지배 해달라는 그런 것들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여러분이 만일에 방언을 받은 경로가 위에 말씀드린 경우들에 해당되면,
그런 경로들을 통해서 방언을 받은 것이면? 다 거짓 방언하는 것임을 아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방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자기의 방언이
어디로서 왔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거짓 방언하는 것은 바로 자기 방언이 지금
어디로서 왔는지 모르는 거예요. 즉 성영님이 주신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성영님이 자기 안에 주신 확신이 없으면, 지금 그것이 거짓
방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해야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갈등하는 것, 이 같은 범주에 속한 것은 다 지금 거짓 방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성영으로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언은 마귀가 준 것이다"하면
'그런가? 했다가, "방언은 성영이 주시는 은사다"하면 또 '그런가?'하고, 방언을
해야 하느냐? 안해야 하느냐? 전전긍긍 하는 것, 다 거짓 방언 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 거짓 믿음, 거짓 방언입니다. 아니 도대체 자기도 모르는
방언을 왜 하는 것입니까? 자기가 성영께로 부터 왔는지? 이게 마귀에게 붙잡혀
방언하는 것인지? 자기도 모르는 방언을 왜 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자기가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가 말입니다.
성영님이 주신 방언의 기도는요, 자기가 아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기도하라고 주신
방언이라는 것을 성영께서 주시면서, 그 즉시 성영님이 그에게 확신을 주시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자기가 아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주시면 성영께서 주시면 그 마음에
확신까지 주십니다. 성영이 말씀해 주신다는 말이예요. 성영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온 경험이요, 성영님이 자기 안에 분명한 확신을 갖도록 하시기 때문에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성영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성영께서 또한 분명한 확신을
주시는 것 까지 하십니다. 이 증거 이 보증이 없으면 거짓이예요. 분명히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언을 흉내내어 하게하는 거짓의 영들이 주는 거짓 방언도 있어요. 그러면
저에게 "방언은 성영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방언을 하지 않아야 할까요? 해야 할까요?"하고 질문했던 여러분들에게, 제가 방언
안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하시겠습니까? 또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니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무지한 처사입니까? "아니!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란다고
안한다면"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하란다고 해서
하는 것이면 그것이 또한 흉내내는 것일 뿐이지 무슨 믿음이냐는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면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주신
것이면 제 마음에 확신까지 주십시오!" 기도해 보시되 그러나 자기가 모르는 것이면
하지말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어요. 성영님이 주신 확증이 자기 안에 없으면
하지말라는 말씀을 드릴 것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도대체
왜 합니까? 방언의 출처도 모르면서 왜 하는 건데요?
그래서 성영께서
제가 이 방언을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는냐? 하는 질문들에 대해서 답해야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저의 마음을 아주 불편케하시면서 말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를
하셨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신앙고백(사도신경)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방언을 말씀드리다 보니 이제 긴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오늘
사도신경 까지 이어갈 수 없게 되었어요.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고 사도신경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고로 여러분께 한가지 더 말씀을 드리겠는데요.
성영께서
주시는 방언의 언어는요,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만일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를
하는 것인데, A라는 사람이 하는 것 하고, B라는 사람이 하는 것 하고 같은 언어가
아니라 성영께서 주시는 방언의 같은 언어가 아니라 다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열명이라도 다를 수 있고 백명이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고전) 12: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그래서 사도바울이 10절에 "각종 방언 말함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말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데 똑 같은 뜻을 가지고도 미국 말 다르고,
일본 말 다르고 중국 말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으로 다 알아들으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성영님의 언어가 바로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색을 말할 때는 한가지 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색깔이
있듯이, 그러나 그 모든 색깔을 묶어서 말할 때는 '색'이라고 말하듯 성영님이 주시는
방언, 즉 언어도 각 종류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로 알아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성영님이
방언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하게 하실 때, A는 방언으로 "가나스칸다쎄"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B는 "오마이칸데쎄"했어요! 그리고 C는 "올레켄데마딧쎄"하는 거예요.
이런식으로 서로 언어가 달라도 성영님이 세운 방언 통역은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통역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똑같이 '감사합니다'로 들으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어의 무한한 신비함의 능력이예요. 제가 말이 짧아서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사실 안타깝기만 해요. 단지 여러분께 성영님께서 알아들을 지혜를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여러분이 때를 보는 지혜와 눈이 있기를 바래서 말씀을 드립니다.
몇 년 전 부터 여자들이 말씀을 전하겠다고 주의 종이라고 해서 지금 많이 나오는
추세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저에게 성영님께서 보이신 것은 "앞으로 여자들이
대거(大擧) 등장하여 나올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전부 미혹의
영에 잡혀서 사람들의 영혼을 낚으려고 나오는 것들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무엇을 보게 되었느냐면? 큰 동굴이 있는데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그 안이 보이지가
않았고, 그 안은 굉장히 어두워 깜깜해서 분간을 못하는데, 그러나 동굴 입구는
환해요! 빛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동굴 입구에서 무한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다 여자들이였어요! 주의 종이 되겠다고 나오는 여자들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면서
제가 어떤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보았는데,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영 상태를 알아요)
그 눈이 얼마나 깊은 블랙홀(black hole)인지 도무지 그 끝을 모르겠더라는 거예요.
목사라고 나온 여자의 눈 속에서 제가 그것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정말 알아야 할 것에 관심 없고 정말
예수님과의 관계에 분명한 그 믿음을 가지기를 원해서 오직 예수 아는 일에 자기
믿음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은사들에 마음을 두고 좇아가는 것,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완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습니까? 이 은사들이나 이 신비한 하늘의 놀라운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호기심들이 있느냐는 말이예요) 그 호기심을 가로채고 다 붙잡아 버립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눈 속에 정말 깊이를 알 수 있는 블랙홀(black hole)을 제가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미혹의 때가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대거 등장해서 나오면서, 여러분
잘 아십시오! 사람들의 영혼을 미혹해서 낚시질해서 지옥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그러한
자들로 나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
목회하는 것 제가 보기싫다고 그랬잖아요? 저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목회하려고 나오는
것이 정말 보기싫다고 말씀드리잖아요?
(저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지만 그러나 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
섰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요, 그러므로 영의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 자신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주셔서 하나님이 그 피로 그 산고(産苦)의 고통을
통해서 낳아 주신 (하나님의)아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분별하시는 그러한 영적 지각이 있으시기를
바래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