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지
수신 : 하느님 나라에 계신 김귀옥 베로니카
발신 : 김형숙 헬레나
김귀옥 베로니카 언니, 하느님 나라에 잘 계시지요?
밖에서 시끄럽게 개구리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언니 생각에 눈이 뜨겁고 시끈합니다.
까칠한 언니가 갑자기 보고 싶네요.
하느님 나라에서 하나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시지요?
저도 잘 지내요.
항상 아픈 언니가 건강한 나를 더 걱정해준 자상한 마음을 잊지 못하고 보고 싶네요.
유독 오늘밤 개구리 소리가 슬피 들리니....
40킬로도 못되는 가녀린 몸매와, 끊어질 것 같은 젓가락 같은 손을 나의 부축을 받으며
언니와 멋진 곳을 다녔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왜 그렇게 나들이 하는 것을 좋아하셨는지요.
언니를 볼 때마다 역마살이 있는 것처럼, 돌아다니시는 것을 좋아하신 친정엄마가 많이 생각나서
더 많이 모시고 다녔지요.
그럴 때마다 자식보다 더 낫다며 항상 고맙다고 아들내미 흉보던 언니의 찡그린 얼굴이 생각납니다.
저희 엄마도 언니처럼 그리 하셨지요.
그래서 지금도 언니와 드라이브하며 다녔던 멋진 찻집, 미술관, 맛난 음식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음식을 할 때마다 따뜻하게 주고 싶어서 급하게 가져다주면,
그럴 때마다 언니가 너무 고마워했지요.
맛나게 먹어준 언니가 고맙고, 언니보다 형제님이 더 좋아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언니보다 형제님이 더 많이 드셨다네요. ㅎㅎㅎ
그래서 더 열심히 언니와 다녔던 것 같아요.
언니의 자식들과 형제님이 고마워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것 같아 더 행복했어요.
엄마처럼 나에게 형제님 흉도 보고, 나도 갚을 길 없는 빚에 허덕이며 술만 먹고 내 속만 섞이는 바오로를 욕하면,
그 속이 오죽 하겠나며 바오로를 위로해 주라고 나를 다독해 주며 달래 주었지요.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면, 같이 공감하여 주신 언니께 더 고마움을 느낍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픈 언니를 내가 돌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너덜너덜하고 상처투성이인 나를 더 돌보고
위로하여 주면서 살아갈 힘을 준 것 같아 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눈이 안 좋은 나에게 큰 성경을 사 주셨는데 , 그 성경을 보며 필사까지 한 것이 결국 언니의 사랑이며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기에 더욱 언니께 고맙고 감사합니다.
신장을 이식한 탓에 항상 건강이 위태로웠던 언니지만 너무나 의젓하게 약한 나를 붙잡아주고 도와주었던
그 모습은 바로 성모님의 모습이었어요.
약한 엄마의 모습이었지만, 내가 너무 흔들리고 세상의 셈도 어둡게 사는 것이 안타까워 보내주신,
수호 천사이셨다는 것을, 돌아가시고 나서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지금 나에게 여러 모습으로 나를 지켜주시는 천사들이 내 주위에 많습니다.
조금만 손짓해도 금방 속고
유혹의 손길도 뿌리치지 못하고
여전이 욕심만 부리는 철없는 어린 아이이기에
베로니카 언니처럼
엄마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어른스러운 동생으로
나를 돌보아 주시기에
차고 넘치는 사랑에 나는 몸 둘 바를 모릅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참 한심한 인간입니다. 저는....
이제라도 알기에 다행이죠 언니?
요즘 성당의 형제자매님들을 보면 언니 생각이 더 납니다.
특히나 미사시간에 다리가 아파서 일어서지 못하는 자매님과 형제님, 너무나 아파서 집에 누워있지 못하고
어찌할 수 없어, 며칠 누워 있다가, 하느님께 빨리 불러주시기를 청한다며, 그래도 이것이 저의 마지막 성체를
모시는 자리가 되게 하여 달라고, 모진 몸을 끌고 성당에 나와 눈물을 보이시는 형제님을 보면서,
나도 가슴이 찡하여 어찌할 수 없었어요, 쥐어짜며 움켜지는 마음으로 그분의 손을 잡고 울고 싶었어요.
언니, 그분을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어찌 할 수 없었어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기에 제 자신이 너무 무력했어요.
그래서 오늘도 십자가에 매달리신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의 병과 고통을 함께할 수 없지만, 성모님처럼 조용히 다가와 가깝게 손을 잡아주고 옆에 있어주시며,
함께 하여 주셨던 것처럼 하는 것이, 믿음의 신앙 안에 가장 큰 위로의 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배우고 깨닫고, 사랑을 함께 나누고 살고 싶어요.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를 느끼며,
많은 이에게 전구자이신 성모님을 통하여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주님, 저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소서.
성모님, 제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그분께서는 아프게 하시지만 상처를 싸매주시고, 때리시지만 손수 치유해 주신다네.”
(욥기 : 5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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