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의 폐단의 극히 일부분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해운업계는 한국해양대학교와 목포해양대학교 졸업생들이 수십년간 해운업계를 독점하다싶이 진출하여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만들고 고착시켰습니다.
따라서 해운업계에서는 한두사람만 거쳐도 바로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만큼 좁기때문에 실명과 직위를 밝힐 수 없는점 양해부탁드립니다.
해운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셨다면 '승선근무예비역'이라는 제도는 반드시 들어보셨을 겁니다. 대다수의 해양대 재학생 및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해기사들은 이런 병역특례때문에 해양대에 입학합니다. 해양대에는 1년간의 승선실습과정이 있으며 한국해양대학교에는 3학년1학기와 3학년2학기, 목포해양대학교에는 3학년2학기와 4학년1학기에 승선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실습학기 두 학기중에서 한학기는 학교실습선에서 보내게 되고 나머지 한학기는 해운회사의 상선에 가서 실습을 하게 됩니다.
학교실습선에서는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해운회사의 상선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행 대학생 현장실습기준법에서는 학습목적 외의 근로는 금지라고 명시하고 있고 실질적인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해양대학교 실습생들은 선박이라는 폐쇄되있고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서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해양대 실습생들에게 해운회사가 주는 실습비는 평균30만원입니다. 육상에 있는 사람들은 실습생이 30만원정도 받으면 적당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배에서 실습생을 직원처럼 사용합니다.
쉬는날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갖은 폭언과 학습목적이외의 업무부과, 개인적인 심부름에 시달리다보면 수면시간마저 제한을 받습니다.(하루평균 수면시간 7시간 미만) 7시간 자는날도 없습니다.
매일 16시간이 넘는 근무를 시키면서도 한달에 고작 30만원.. 이게 하루이틀있었던 일들이 아닙니다.
20년 전에도 실습생의 실습비는 지금이랑 동일했습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실습생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고 지금까지도 몇몇 선박에서는 실습생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선박이 존재합니다.
작년에 D회사에서는 선내가혹행위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시달리던 실습기관자가 자살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하지만 해운업계는 이 일을 묻기 바뻤고 결국 사회에 공론화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실습생이 회사를 상대로 부당함을 제기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승선근무예비역제도'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해양대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해운회사에 취업해서 병역특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해운회사를 상대로 부당함을 제기할 수 없는 철저한 갑과 을의 관계입니다. 매학기 마다 선내 가혹행위를 당하여 자의하선을 하는 학생들이 존재하고 나아가 삼등항해사로 취업을 하여 승선하여도 상급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과도한 근로지시로 인해 자의하선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게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실습생 사고가 매년 계속해서 되풀이 되어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운업계의 은폐때문인지 사회에 공론화가 되고있지 않습니다.
다른나라 사람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국민인, 그것도 꽃다운 나이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승선실습이라는 명목아래 머나먼 이국땅에서 노동력착취와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와 양 해양대학교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것을 그대로 수 십년째 그대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매년 발생하는데도 재발방지는 커녕 관심 조차도 가지지 않고 사고가 발생하면 해운회사와 결탁해 쉬쉬하기에 급급합니다.
선박의 특성상 고립되어 있고 폐쇄된 집단이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언론계에 종사하시는 모든분은 이런 해운업계의 악습을 사회에 널리 퍼뜨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와 공무원들이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사회에 공론화가 되어서 부당함을 척결해 주십시오.나아가 모든 대학현장실습생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이번엔 꼭 공론화되어 부당함을 밝혀 개선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은 노예가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