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작곡한 나운영 장로
홍난파도 놀란 천재작곡가 교회음악 새역사 열어
나운영(羅運榮, 1922-1993) 장로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국악인 양금 교습을 받았고 중앙중학교(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한한 후 음악교사의 권유로 양악을 지도받았다.
이때부터 세계적인 음악가 베토벤 등을 보며 서양음악에 심취했는데 그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당시 김수경 작시의 ‘아, 가을인가’를 작곡해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17세 때는 동아일보사 주최
신춘 현상공모에서 김안서의 작시인 ‘가려나’를 작곡해 유명인사로 등장하게 된다.
이때 심사위원으로 채점을 했던 홍난파도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 놀라 1940년
그를 일본 동경에 있는 일본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東京帝國高等音樂學校)에
추천하였고 그는 일본인들의 틈 바구니 속에서 당당하게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는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조선 반도,
중국 대만, 여기에 중국 만주국 등에서 모인 천재들만 입학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 학교에서 작곡 공부를 했던 나운영은 졸업하자 교수의 추천으로 대학원 연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당시 그를 지도했던 모로이 자부로(諸井三朗) 교수는 서양음악에 관한 연구보다는
자국의 음악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였기에 나운영 역시 민족적 음악쪽으로 연구하도록 지도를 받았다.
일본에서 음악을 연구하고 돌아왔던 나운영은 자신의 모교인 중앙중학교 교사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모든 실력을 쏟아 부었다.
이 무렵 성악가 유경손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그의 음악 실력은 더욱 발전해 나갔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이하자 그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중앙여자전문학교 음악교수로 취임하였고 1946년에는 민족문화 연구회를 창립하여 회장직을 맡으면서 해방된 대한의 아들로서 긍지를 갖고 이 일에 매진하였다.
해방 후에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성남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교회는 당시 조선신학교 교수였던 송창근 목사가 설립한 교회서 이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교회 음악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성남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그의 실력을 인정했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52년 전임강사로 초청하였고 대학에서 최선을 다해 음악을 가르쳤다.
또 그는 덕성여자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최초의 국악과 설립에
기여하였다.
1962년부터 1973년까지는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해 냈다.
그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지향하면서 서울에 운경교회(현 호산나교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 실력과 신앙심에 놀란 호산나교회에서 1980년 장로로 장립을 받았고
이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는 성가대의 실력을 키우고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모든 곡을 교인들로 하여금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창작과 편곡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그의 활동은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제주도의 민요 수집을 위해 음반과 음악서를
수집하여 ‘한국민속음악관’을 제주도에 창설 하였다.
그의 음악 실력은 한국 교회만 인정을 한 것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인정받아 세종대학교 교수 겸 음악과장으로, 전남대학교 강사 및 교수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대전 목원대학교 음악 부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을 하였다.
특별히 그의 교회 음악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한국교회가 지금도 그가 작곡했던 곡을 부르고 있다.
이 곡을 부를 때 마다 수많은 청중과 청취자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소리가 전국을
휩쓸었다고 하니 그의 음악 실력이 어떠했는가를 한마디로 잘 입증해 주고 있다.
그가 작곡한 곡으로는 ‘아, 가을인가’, ‘가려나’, ‘접동새’, ‘달밤’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화성학’(和聲學), ‘대위법’(對位法), ‘작곡법’(作曲法), ‘관현악법’(管絃樂法), ‘연주법’(演奏法), ‘현대화성론’(現代和聲論)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의 음악 재능은 천재적이었지만 그가 원불교 찬불가를 작곡한 일로
한때 교계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기도 하였는데 그가 남기고 간 업적을 그냥 지나칠수
없어서 그가 30년간 봉사했던 성남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에서 그의 탄생 80주년을 맞이해서 2002년 10월에 서울 성남교회 교육사회관 입구에 ‘시편 23편 노래비’를
세웠다.
노래비 내용은 그가 작곡했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의 가사내용을 새겨 놓았다.
그의 기념비 앞에서 그 가사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은혜를 받는 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한번 성남교회 내에 세워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리라고 생각된다.
특별히 그가 작곡했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즐겨 애창했던
목원대학교 교수로 제직했던 이동범 장로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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