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하순
아침엔 여전히 살갗이 차가운 추위다.
오랫만에 으름나무 줄기 차를 마신다.
온 몸으로 스며드는
따스함과 은은한 향기.
죽마고우가 몇 년 전 백두대간
어디선가 채취해서 보내준 것을
여덟시간 정도 우려 낸 물을 차로
마시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다.
전립선비대증에 좋다고 하는데
둔감한 탓인지 그 효과를 뚜렷하게
느끼지는 못한다.
태고의 순결함에다 친구의 그윽한
정의 향기가 어려있어 마실 때마다
느껴지는 아련함이, 따스함이 좋다.
자작나무 껍질 차와 으름 덩굴 차를
마시며 새 봄을 맞이해야겠다.
청춘의 싱그러움이 피어나는 봄이다.
새 봄과 함께 입학 시즌이다.
아는 분이 조카 대학 입학 선물로
노트북을 사주려하는데 브랜드와
사양 및 모델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HP 제품을 선호하지만
삼성전자의 최상위 모델 사양을 권했다.
입학시즌 할인행사에도 거의 2백만원의
고가 제품이었다.
도서괸이나 카페에서 순전히 폼
잡으려고 6,7년전에 무리해서
산 hp 노트북은 가끔 우리집 실세가
사용 중이고 나는 언제 사용했는지,
심지어 노트북 존재까지 잊고 있었다.
실세도 딸아이가 사준 테블릿을 유튜브
보는데 이용하기에 노트북은 쓸 일이
거의 없어 책상 서랍에서 쳐박혀
찬 밥 신세다.
어쨌거나 노트북 상품 정보를 살펴보게
되면서 잠자고 있던 새 PC 장만에
대한 욕구가 불이 붙어 며칠 째
거의 잠을 설치면서 끙끙거리게 되었다.
원래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아 자주
실세에게 핀잔과 윽박지름을 당하고
살지만 도대체 이 나이가 되어서도
어떤 물건에 꽂히면 철없는
아이들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전용으로 사용하는 현재 PC는 9살로
사람으로 치면 구십이 넘어 버벅거린다.
PC를 주로 동영상 편집이나 비디오
클립 만드는데 사용하기에 버벅거리다
못해 힘에 부치면 아예 예고도 없이
퍼져버려 부아를 돋구곤 한다.
그럴 때 새 PC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양이나 가격을 알아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알아보니 내가 쓰기에
적당한 사양은 2백만원대 이상이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PC 당시 확장성
사양은 메모리 12GB, 주저장장치 1TB.
구매 당시 동영상 편집 취미를 위한
것이었기에 메모리 확장이 가장 좋은
모델을 선택했지만 사용하면서
아쉽고 답답할 때가 많았다.
2천년대 초반까지는 PC를 직접 부품을
사서 조립해서 사용해오다가 나이가
드니 그게 점점 어렵고 힘에 겨웠다.
무엇보다도 장치들간 드라이버의 충돌
문제 해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메이커 PC는 두번째인데 치밀한 검증
으로 제작된 안정성이 뛰어나 별나게
직접 조립해서 써온 게 참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자기 만족을 위한 으스댐
이었고 사치였다.
PC를 직접 조립해서 장만하려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부품별
최고 성능의 사양에 집착하느라
갈등에 시달렸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시작된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PC는
시스템 부팅을 SSD 500GB, 내장
하드드라이브 1TB, 외장 1TB SSD,
외장 3TB HDD로 확장하여 데이터
저장 공간은 별 문제가 없지만
메인보드 메인 메모리 확장 한계로
더 이상 메모리를 확장할 수 없어
때로 답답하고 짜증나게 한다.
그렇지만 9년 넘게 별 문제 없이
충직하게 헌신해온 PC이기에
애착이 가는데다가 별도의
비자금 한 푼 없는 처지에, 또
단순히 취미를 위해 새 PC 장만
하려고 실세와 승산이 불분명한
전쟁을 치뤄야 하나, 돈키호테식
으로 내지르다가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다른 치명상을 입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사용 중인 PC는 동영상 편집
작업에 메모리 부족으로 CPU가
버벅거리는 거 외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도 주춤거리게 한다.
그렇다고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언제까지나 우물쭈물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좌우간 이거냐
저거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든 선택은 댓가를 치뤄야 하고
또 어떻게 선택하든지 이로운 점이
있으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있다.
젊었을 때는 쉽게 결정할 것도
나이가 드니 점점 어렵다.
나이가 들면 어쨌거나 능력도
점점 줄어드는데다가(안 그런 분도
물론 있겠지만) 또 젊었을 때보다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한다는
내외의 압박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붙들고 늘어지게 하는
감정은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
니는 다시는 새 PC를 쓸 수 없게 되는
거야 하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부추기는 속삭임이다.
그러면 왠지 서글퍼진다.
노년에 맞이하는 마지막은, 끝은
대부분 결별이라는 느낌이 들어
언제나 쓸쓸하고 서글퍼지게
되는 것 같다.
첫댓글 고르비님 지금 새pc 장만하면 오래도록 편하게 사용할수있으니
응원 합니다 파이팅 울집경우는 큰 딸램이 알아서 해주니 쉽상 좋으네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한 때 해외 직구에 꽂혀서
산 옷 중에 소매나 품이
맞지 않아 낭패를 본 전과가
있어서 실세가 분기탱천한
적이 더러 있어서 망설여지지요.
CPU 부하가 많이 걸리는
동영상 및 그래픽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끔
중도에 스톱되는 경우가 있어
새 PC를 사고싶어지지요.
그 외에는 속썪이는 일없이
충직하게 헌신해와 정이 들었지요.
봄날 기쁨과 즐거움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사양을 쫓아 저울질하는 고르비님이 부러우면서도
PC의 기초적인 기능만으로 충분히 자족하는 청맹과니로서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구나 애써 자위해 봅니다. ㅎ
모든 최신 전자제품이 구입 순간
바로 구형이 되는 초고속 기술개발시대라
첨단 디지털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둔감한 게
오히려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길일 수도 있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자신이 많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일상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으니
그냥 생긴대로 있는대로 살렵니다. ㅎㅎ
이왕이면 최선의 선택으로 최상의 만족과 보람 느끼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사람마다 과한 부분이 있겠지요.
저는 한동안 해외 직구 문제와
그래픽 리터칭과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두세개로 실세와
자주 부딪치곤 했습니다.
해외직구 문제는 고처졌는데
매년 새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취미를 위한 프로그램은
새버전 출시 알림이 뜨면 자제력을 잃고 새버젼으로 업데이트하고
말지요. 모른 척하다가 카드 결제일에 영락없이 들통나
다 늙어 모양 빠지게 벌을 서게 됩니다.
실세와 2년에 한번씩 법데이트
하기로 약속하고서도 참지를
못하고 사고 마니 치매 걸렸냐며
작년부터는 그만큼 용돈을 깍아
버려 낭패를 당하곤 합니다.
기실 업데이트된 기능이 아주
좋거나 꼭 필요한 기능은 거의
없는 데도 매년 업데이트를 합니다.
일못하는 사람이 연장만 탐하는
꼴인 것 같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자제력이
떨어지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앎이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멀쩡한 PC를 새로
교체하는 욕심은 후환이 두려원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한 게 진정 아름답다는 것은
진리가 맞는 것 같습니다.
집 앞 언덕에서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상큼하게
들려옵니다.
기쁨과 보람 많은 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