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화도(江華島), 한반도(韓半島)의 심장(心臟)은 다시 뛴다.
강화도는 한반도의 中心(강화 마리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을 잇는 정확한 중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고, 형상도 그렇고 풍수지리상으도 한반도의 心臟(한반도를 태극 형상으로 보면 태극을 움직이는 핵에 해당)이다.
그 북쪽 앞바다로 한강, 임진강, 예성강 강물이 모여 흐른다. 그 한강은 양평 양수리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여 팔당 댐을 거쳐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다가 김포와 파주 사를 지나 강화도 북쪽에 이른다. 그중에 남한은 강원도 태백 검릉소에서 발원하여 동강을 이루어 충청북도 단양, 충주댐을 거쳐 경기도 여주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양평 양수리에 이르고,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화천 양구 인제로 하여 소양강 댐과 청평 댐을 거쳐 가평을 지나 양수리에 이른다.
또한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원산을 거쳐 흐르다가 경기도 연천군에서 강원도 평강군 백자산에서 발원한 한탄강과 합류하여 파주 문산을 거쳐 강화도 앞바다에 이르고, 예성강은 황해북도 언진산맥의 주봉인 언진산(해발 1,120m)에서 발원하여 연백평야를 가로지르며 개성을 지나 이도 역시 강화 앞 바다에 이른다.
이처럼 강화도의 북쪽 바다는 하나님께서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지역에 내려주신 빗물이 강물이 되어 모여드는 곳이어서 한반도의 2/3 지역의 음 기운(陰氣運)이 강화도 섬에 뻗쳐 있다. 이로 인하여 강화 마리산과 전등사 사이에 땅의 정기(精氣)가 모여 혈구(穴口) 굴이 생겼고, 그 북쪽에 있는 고려산 정상 근처에는 오연지(烏淵池)라는 못이 생겼으며, 고려산 곳곳(사찰 터가 있는 자리)에는 샘이 마르지 않고 솟아오른다.
이에 단군 왕검은 강화도에서 제일 높은 머리산(후대 사람들이 頭嶽山 또는 摩利山이라 부름) 정상에 제단(산의 頂上을 파서 城을 두르고 祭壇을 쌓아 "참성단(塹城壇)”라 부름)을 쌓고, 고려산에서 솟는 샘물(井華水)을 떠다가 제단의 번제물(燔祭物)에 부으면서 한울님(하느님 또는 하나님)께 감사제(感謝祭)와 희생제(犧牲祭)를 매년 가을과 봄에 드렸다.
그는 그 감사제로 드린 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한반도 전역에 퍼져 비가 되고 그 내린 물이 다시 물줄기를 따라 강화도 앞 바다에 모이게 됨을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로 드린 샘물, 곧 정화수(井華水)가 한반도를 살리는 생명수(生命水)가 되어 한반도 곳곳에 생명을 왕성하게 하고, 그 생명수가 다시 강화도라는 심장으로 모여드는 선순환(善巡還)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국운(國運)은 왕성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그의 후손들도 이를 믿은 것 같다.
이와 같은 그의 신앙이 한민족에 전파되어 집집마다 때가 되면 집안의 높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느님께 기원을 드리는 풍습이 대대로 내려왔고, 외침을 당하거나 국난(國難)이 일어나 고려산에서 솟는 샘물이 흐려지면 국가의 책임자(責任者)가 마리산에 올라 천제(天祭)를 드리며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단군 왕검은 노아의 서자(庶子)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대 홍수가 끝날 때 즈음에 별도로 만들어 놓은 배를 타고 이 땅에 가득했던 물이 빠질 때(정확한 연대는 BC 2,345년 또는 BC 2,090년 등 說이 분분한 것을 보니 그 사이 이였을 것이다)에 그 물살을 타고 동쪽으로 향하였다. 지상에 가득했던 물이 빠지면서 그가 탄 배는 물살에 떠밀려 표류를 거듭하다 마침내 육지에 닿은 곳이 동쪽 끝에 위치한 한반도의 심장, 강화도이었다.
그때 강화도에는 토인들이 대홍수로 말미암아 대부분 희생을 당하고 오직 토굴 속에서 물을 막아냈던 몇몇 여인들만이 살아남아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다.
노아의 서자, 왕검은 강화 섬에 상륙하여 지금의 마리산과 전등사 사이의 혈구(穴口)굴에 있던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다. 한 여자는 호랑이처럼 용감하고 생활력이 강한 수렵하는 여자이고, 한 여자는 곰처럼 내성적이고 묵묵히 농사일을 잘하는 여자이었다. 왕검은 곰 같은 여자를 호랑이 같은 여자보다 더 사랑하여 곰 같은 여자(웅녀)에게서 아들 셋을 얻었다. 그러자 호랑이 같은 아내는 시기심이 가득하여 참을 수가 없게 되자 가출을 해 왕검을 떠나 버렸다. 마침내 그는 곰 같은 아내(웅녀) 덕분에 많은 수확을 얻어 부자가 되었다.
그는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얻자마자 강화도에서 제일 높은 산, 마니산의 정상에 올라 전에 배를 타고 떠나왔던 서쪽 아라랏 산을 향하여 참성단(塹城壇)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그는 아들들이 장성하자 그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명을 내렸다.
“너희들은 수확물을 쌓아 둘 곡간을 크게 짓고 짐승이나 다른 사람들이 농작물을 해치지 않게 주변을 성곽으로 쌓아 보호하도록 하여라!”
세 아들은 힘이 좋은 어머니와 명석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삼 년에 걸쳐 외곽 성벽을 완성하였다. 그 성의 이름을 후대 사람들이 삼랑성(三郞城)이라 하였으니 오늘까지 보존되어 전등사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러자 왕검은 아들들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곡식을 구하러 오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그의 온 가족을 거두어 드려 우리의 성안에서 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도록 하여라!”
이로 말미암아 많은 섬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이로 인하여 그의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이 더욱 퍼지고 무르익어갔다.
왕검이 나이가 많고 식솔들이 많아 더 이상 강화 섬에 머무를 수가 없게 되자, 세 아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은 하명을 내렸다.
“첫째는 이곳 강화를 지키되 북쪽 대동강 유역에 살아남은 토인들을 다스리도록하고, 둘째는 남쪽 낙동강 유역으로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토인들이 잘 살도록 다스리고, 셋째는 남쪽의 금강 유역으로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토인들이 잘 살아가도록 다스려라!”
“그리고 너희는 일 년에 한 번 추수 때에 날을 정하여(지금의 10월 3일이 되었다)이곳 마니산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서로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거라!”
그리하여 장자(長子)는 북쪽으로 가서 대동강 유역에 성읍을 쌓고 평양성(平壤城)이라 부르고 나라 이름을 朝鮮(조선)이라 하였고, 그는 부친 단군 왕검과 함께 성산(聖山),강화 머리산(지금의 마리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천제(天祭)를 드리고 건국을 만천하에 공포하였다. 이 때가 고조선이 건국된 B.C. 2283년 10월 3일이다.
그 후 그의 후손들은 약 이천 년에 걸쳐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흑룡강 및 요하(遼河)지방에 까지 영토를 넓힌 후, 내치(內治)에 힘써 부족 국가에서 봉건 제국으로 나라를 견고히 발전시켰다.
고조선 나라는 중국 요, 순나라가 황하 유역에서 부족 국가로 자리를 잡을 때쯤에 건국하였으며 하, 은, 주 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져 올 때까지 번성하다가 강력한 통일 제국, 한(漢)나라의 거친 공격을 받아 요하에서 대동강 지역까지의 일부 지역이 한나라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약 2 백년 간을 지내다가 한나라의 국운이 쇠할 때 즈음, B.C.37년에 고주몽이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압록강 유역에서 나라를 일으키어 고구려를 세우고 한나라를 몰아내었다. 그의 후손들이 점차 요하 및 흑룡강 지역과 대동강 지역(평양성) 그리고 강화도를 점차 수복(收復)하였던 것..
그 후 중국은 수나라가 천하 통일을 하기 전까지는 나라가 사분오열되었었는데, 5호16국 시대에 이르러 그들 중의 하나인 전진(前秦)의 제3대 부견(符堅) 왕이 고구려와 선린 관계를 강화하고자 고구려 17대 소수림왕 2년에 사신(使臣)과 승려들(順道와 阿道)을 강화도를 거쳐 불상과 경전을 보내왔다.
이에 소수림왕은 9년 후 불교가 국가의 정신적 기틀을 공고히 할 것이라 믿고 아도 화상(阿道 和尙)으로 하여금 강화도에 진종사(眞宗寺, 이를 고려 충렬왕 때 전등사(傳燈寺)로 개명함)를 창건토록 하였다.
이로 인하여 나라가 더욱 부강하여 18대 광개토대왕 때에 강화 교동도의 관미성을 백제로부터 탈환하여 고조선의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였고, 20대 장수왕 때에는 한반도 중원(中原)지방까지 세력을 뻗쳤다. 그후 26대 영양왕 때에 중국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의하여 수 양제의 30만 대군을 궤멸시키어 중국 수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강화도에는 많은 고구려의 재상들이 태어났고 그중에 걸출한 위인 재상, “명림답부” 와 연개소문(淵蓋蘇文) 등은 잘 알려져 있다.
연개소문은 강화도의 고려산에서 태어났는데 한반도의 음 기운이 한 곳에 몰리는 곳이어서 그 기운을 받고 태어난 그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성장하였다. 그는 고려산 정상의 오연지(烏淵池)에서 칼을 씻고 말에게 물을 먹이면서 천하 패업(覇業)의 뜻을 품고 무술과 기개를 크게 키웠다. 하지만 그에게 서쪽의 살기(殺氣)를 눌러 줄 수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사상에 대한 스승을 못 만난 것이 후에 그가 정치를 할 때 많은 관료들을 학살하고 주위의 인심을 잃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당 태종(이세민)의 침략을 물리치고 당나라의 심장, 북경까지 치고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에 놀란 한족(漢族)들이 그의 아들들의 패권(覇權) 정치로 고구려 내부가 혼란한 틈을 타서 신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내친김에 그들의 한 고승(高僧)을 강화도에 파송하여 고려산 烏淵池(오연지)를 五蓮池(오련지)로 이름을 바꾸게 하고 고려산에 샘물이 솟는 곳마다 사찰을 짓게 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백련사, 청련사,적련사, 황련사 등의 절이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은 그 후에도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욕심으로 한반도의 명당 터마다 사찰을 짓게 하고, 한술 더 떠 일본은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욕심으로 한반도의 왕성한 혈맥(穴脈)에 쇠말뚝을 박는 일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도는 한반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심장 역할을 이어 가는데 그 이전만큼 왕성한 힘을 발하지는 못하였다.
고구려로부터 강화도를 빼앗은 신라는 한반도에서의 삼국 통일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하여 두만강 유역에서 창건한 발해국은 결국 요나라(거란족)에 흡수합병되고 말았다.
강화도를 빼앗긴 고구려와 백제는 국운이 쇠하여 멸망하였으나, 강화도를 점령한 통일 신라는 강화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경주에서 나라를 운영하다 다시 후삼국 시대를 자초하였다.
그러나 강화도의 중요성을 알고 철원에서 개성으로 도읍을 천도한 “후고구려”는 나라를 “고려”라 칭하고 신라와 후백제를 함락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하였다.
고려는 여세를 몰아 남침하는 거란족을 물리치고 고구려 영토를 되찾으려 하였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압록강 유역과 함경도 남부까지의 영토를 회복하는데 그쳤다. 고려 6대 성종 때에는 옛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점령한 거란이 여세를 몰아 고려로 쳐들어왔으나 서희(文臣, 외교관)를 내세워 외교담판을 통해 물리쳤고, 8대 현종은 발해국을 멸하여 강대국이 된 거란국이 대군을 일으키어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이를 상대로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의 개가를 이루어 고려국을 더 이상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고려 23대 고종 왕 때 몽골군의 침공을 받자, 그는 강화도에서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려고 강화로 천도(遷都)를 하였고 8만 대장경을 만들게 하고 고려산에서 삼별초 군은 훈련받은 후 몽골과 끝까지 맞서 싸웠으나 워낙 강력한 그들의 힘에 눌려 결국 39년 만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풍수지리학자들은 강화도 고려산에서 솟구치는 샘물을 누르고 있는 사찰 때문이라고 하였고, 불교도들은 오히려 나라를 불심(佛心)으로 지켜내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이곳에서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에 맞서 저항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어찌 되었든지 몽골군은 강화도를 정벌한 후 아예 고려산의 五井(다섯개의 절에 있던 다섯 샘물)에 쇳물을 부어 그 물줄기를 막았고, 그 후로부터 단군의 후예들은 참성단에 부을 정화수를 구할 수가 없어 하느님께 진정한 제사를 못 드렸다고 하니 분통하기만 하다.
이로부터 고려는 몽골군이 세운 중국 원(元)나라의 속국(屬國)이 되었고, 이씨 조선(李氏 朝鮮)은 중국 명(明)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그의 허락하에 왕위(王位)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주종(主從) 관계로 나라를 유지하게 되지만 스스로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을 펴거나 군(軍) 세력을 키울 수도 없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반도는 끊임없는 외침(임진왜란,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을 받아 유린를 당하고 수십만 명의 한민족이 학살을 당하거나 북쪽으로 또는 남쪽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급기야 이씨 조선은 중국 청(淸)나라에 속국(屬國)이 되었고, 그 후에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려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하고 강화도에서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통해 프랑스, 미국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는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 합병을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후손, 백의(白衣) 민족이 악한 이웃 나라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며 부르짖는 것을 보시고 몹씨 불쌍히 여기시었다.
이에 이씨(李氏) 조선 말에 이곳(인천-강화)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수(生命水), 복음(福音)이 전해지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들고 들어 온 생명수 복음이 한반도 곳곳에 퍼지게 하셨고, 이 복음의 생명수 물을 마신 자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한반도가 악한 이웃들의 술책에 더 이상 농락 당하지 않고 그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셨던 것이다. 한반도의 국운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로 말미암아 다시 왕성한 기운을 얻도록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고려산의 샘물을 마니산 참성단에 부어 한반도의 심장이 뛰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민족이여~!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리하여 한반도 방방 곳곳에 생명수가 흘러 푸른 나무가 마르지 않게 하자! 할렐루야!!
2. 아이야~, 내일은 인간의 기쁨이다.
사랑의 축제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넓은 땅, 높은 하늘, 사랑이 가득하고
땅이 뛰놀며 빛이 쏟아지고
싸늘한 목동의 가슴속에
환희의 불꽃이 솟아오른다.
나셨다, 나셨다, 왕이 나셨다.
아이야~ 몸을 던져라.
우렁찬 창공의 화음 속으로
사랑의 음률을 타고 일어서
마음껏 그 영광 노래 부르자.
태어나서 벙어리도 노래 불러라.
나면서 장님도 하늘 영광 보아라.
그것은 영광의 빛, 사랑의 빛, 믿음의 빛~
아이야~ 촛불을 밝히고 꽃의 웃음을 보아라.
안경을 벗고 사랑을 끼워라.
가발을 벗고 의치를 뽑아라.
너를 살리고 세상을 놀라게 할
나셨다, 나셨다, 왕이 나셨다.
아이야~ 화장을 지워라.
아이샤도를 지우고 브레지어를 벗어라.
하늘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가시밭 떨기 불에 쫓기고 쫓긴
어린 양이 너의 품에 안긴다.
피 방울 솟구쳐도 울음을 참아내던
그 어린 양이 사랑의 품에 안기었다.
끝없이 뜨거운 자갈 밭을
맨 발로 달리던 고통스런 아이도
그 사랑을 보았다. 그 품에 안겼다.
아이야~, 달려가자!
넘어져도 일어나고 힘껏 달리자!
곱사등 아이도 문둥이 아이도
벙어리 아이도 한 발 없는 아이도
천사들이 뛰노는 사랑의 광장이다.
나셨다. 나셨다. 왕이 나셨다.
내일은 사랑의 축제이다. 인간의 기쁨이다.
3. 예수님의 초림(初臨)에서 가장 먼 예수님의 재림(再臨)은 나의 등 뒤에서 임(臨)한다.
예수님이 내 맘에 임하였으면 나는 뒤로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뒤로 돌아서면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른다. 예수님이 임하신 교회도 그분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지 세상의 길로 아예 돌아선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실 것이다.
해롤드 린드셀의 “세계 사건과 예수님의 재림”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 7년 전에 교회가 이 땅에서 없어지거나 주님께 잡힌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다시 말해 끝까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십자가의 길로 가면 재림 7년 전에 그 교회는 하늘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과 혼인을 할 것이고, 그렇치 않고 온 교회가 돌아서서 세상의 길로 나아간다면 교회들은 이 땅에서 알곡과 쭉정이로 가려내기 위한 심판의 대 환난의 시기를 맞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 7년을 우리가 알고 있는 대 환난의 시기라고 말하는데, 3년 반 동안은 이 땅 위에 사람의 분노가 가득찰 것이고, 그 후 3년 반은 하나님의 진노가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한다.
이를 입증하듯, 보라! 지금의 대부분의 교회가 어떠한가! 하나님께 사로잡혀 하늘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과 혼인할 만한 교회가 얼마나 있는가.
많은 기독 교인들과 성직자들이 자본주의 경제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며 사회주의의 향수에 빠져 들고 있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의 병폐에 취해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세속화는 사회주의 향수에 젖은 좌파 성직자들과 로마 교황청을 비롯한 대형 교회의 부패한 성직자들로 인하여 수많은 평신도들이 분노하고 있다. 일찍이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사회주의라는 이상적인 환상은 그것이 현실이 될 때 인간의 악몽으로 변하는 신비”를 지녔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 있다는 성직자들은 부패한 봉건적 성직자들에 대한 대안(對案)으로 사회주의를 택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이 있기 전에 시대적 환경은 어떠했는가?
“Pax-Romana”라는 범 세계적인 평화와 번영이 있었고 그리스어(라틴어)가 공용어로 어디를 가나 사용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을 아우르는 대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세상은 어떠할 것인가?
오늘날 “Pax-Americana”라는 범 세계적인 번영과 평화가 있고 영어(미국어)가 공용어로 어디를 가나 사용되고 있고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교통망과 통신망이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교회로 보나 세상으로 보나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까지 비치는 것 같이 인자가 오는 것도 그러할 것(마 24:27)”이라고, 또 예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는데,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마 24:31).”고 하셨다. 이와 같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통신 및 영상 기술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이 모든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로서 세상은 에수님의 재림이 언제든지 임할 수 있는 모든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세의 사람들은 온갖 정보의 대홍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스트레스를 주는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평안과 안락과 신비함을 얻고자 할 뿐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원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노예근성으로 완전히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탄의 리더쉽에 끌려 다닌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윤리를 그들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규범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급기야 기독교인인 칼 마르크스는 “한 인간이 스스로 세운 목적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선(善)이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무신론자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죽하면 싸르트르가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 세운 계획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으며 이 땅에서 스스로 얽멘 운명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라고 했을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방황의 길로 이끌어 간 세속의 지배자들의 지배권에 종지부를 찍으려 하신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한지 3년 반 동안 이 세상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로 들끓고 있다. 죽은 사람들로 장례식장이 넘쳐났고, 병원의 입원실마다 코로나 환자로 가득하여 그들은 병실이 없어 학교 체육관으로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 환자가 있다고 환자의 집 대문을 대 못으로 박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곧이어 하나님의 진노가 3년 반 동안 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천재지변의 난리가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고, 동쪽 진영과 서쪽 진영의 대립이 극심하여 세계 대전이 3년 반 동안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 아들, 딸들을 끝까지 지켜 내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끝.”
2023.04.11.
강화도에서
“참 자유”의 저자, 金侊星(광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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