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의 철골과 유리들이 빚어내는 무수한 공간상의 선들과 파장은 미술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밤의 별처럼 미술가들이 모여드는 뉴욕은 현대미술의 수도이다. (김병종, ‘밤의 뉴욕’, 40×55㎝, 종이에 먹과 채색, 2019)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942∼1943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회고전에 전시됐던 ‘샘’.
뉴욕미술, 담벼락에서 몬드리안까지
햇빛 쏟아지는 날은
몬드리안의 각도로
유리창쪽 탁자에 앉아서 그의 그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속으로 들어가봐
햇빛에 굴절되어
피카소의 그림처럼 마주보며 울고 웃는
사람들을 바라보아
여기는 뉴욕
마르셀뒤샹은 유리예찬자가 되었고
몬드리안은 그 유리들에 색깔로 액자를 끼웠지
그 위에 무화(無化)된 서사와 풍경을 그려내었어.
텅빈 백(白)을 그린거지
사연이 너무많아 차마 아무것도 그릴 수 없었는지 몰라
뒤샹이나 몬드안의 화술(畵術)로는
유리나 철이 도시라는 캔버스 위의 물감일수도 있었을게야.
뉴욕은 다정함과 따뜻함, 낙관과 희망에 늘 인색해. 그 대신
긴장과 반복, 억압과 냉담이 지배하려들지.
그래서 그 도시엔 유리가 제격이야
관계와 관계사이에 쿨한 줄긋기를 하잖아
외로워서 모이는 것이 이 거대 도시이지만
사람들이 한사코 유리창 쪽으로 탁자를 가까이
가져가려는 것도 그 외로움 때문이지만
그러나 타인지옥은 싫어.
유리는 차라리 홀로 있고 싶은 분열된 이고의 투사야
자신은 한쪽만을 비추이면서
타자의 형상은 모두 들여다 보고 싶지
벗기우는 자와 한사코 숨으려는 자의 이중주가 이루어지는 곳 유리.
그리고 그 유리에 의해 무한 확산되는 이 도시의 공간과 각도들
그래서 뒤샹이나 몬드리안은 유리와 색으로
책을 써내려간 철학자야.
거기에 비하면 워홀은
차라리 패션 일러스트에 가깝지.
그의 스승은
길거리 담벼락의 가난한 그래비티 화가가 아니었을까.
그는 유명인의 초상화를 칼라 프린트처럼 마구 찍어내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그가 이루어낸 것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미국미술을 만들어 내는 거였어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뉴욕스타일이라고 사람들은 열광했지
한밤중 천공(天空)에서 보면
환하게 불켜진 혹성 같은 도시
별빛마저 지워내며
뜨거운 발광체로 타오르지만
그 욕망의 도시는 사실 얼음처럼 차가운 유리의 성이야
그런데 미술가들은 이 도시에 무수한 색채를 입히고
사각(斜角)의 선들과 빛의
파장을 만들어
열배나 확장시켜놓았어
그 끝없이 변하는 구도 속에서
아침에 사랑하고 저녁에 헤어져도 여한이 없지
포옹하고 악수하고
그리워하다가
그러다 유리처럼 깨어진다 해도
미련없이 돌아서는 것
그것이 바로 뉴욕식 사랑이야
② ‘현대미술의 성지’ 뉴욕
마천루가 빚어낸 사선과 각도
미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 돼
세계 각지서 미술학도들 몰려
비상 꿈꾸지만 추락 맛보기도
연중무휴로 열리는 온갖 전시
예술가의 창작 본능에 불지펴
1913년 2월 어느 날 춥고 을씨년스러운 뉴욕의 한 부대 병기고(兵器庫)에서 유럽의 현대미술이 대대적으로 소개된다. 인상주의와 큐비즘, 포비즘을 망라한 이 전시는 스캔들과 화제로 만발했다. 우선 전통적 미술관이 아닌 병기 창고에서 열리게 된 것부터가 파격적인 이 전시회 ‘아모리쇼’가 불러온 파장은 커서, 이후 뉴욕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성지가 된다.
유럽풍의 문학성 짙은 아카데미즘과 결별하고 소위 아메리카이즘이라고 부를 만한 팝적 요소로 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시대에는 자코메티가 사르트르를 만나면서 실존의 고독을 더 깊이 응시할 수 있게 되고 모딜리아니는 장 콕토를 만나면서 세잔은 졸라를, 모네는 바슐라르를 만나면서 그 미의식의 세계가 한결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면 뉴욕풍 미술은 마크 제이콥스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히 미술과 패션이 역동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패션디자이너들은 몬드리안이나 잭슨 폴록, 워홀과 라우션버그 등의 뉴욕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화가는 또한 각종 섬유 등의 재료를 많이 쓰면서 패션 쪽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엄청난 자본시장이 그런 활발한 교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후 뉴욕 미술은 장소를 옮겨 다니며 꽃을 피우게 되는데, 화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뉴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설치미술 같아 보인다.
하늘을 찌르는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사선과 각도들은 아방가르드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술의 앙시앵 레짐을 허물고 싶은 욕망을 가져오기에, 현장 미술의 흐름과 그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미술학도가 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길거리의 아우성 같은 벽 그림 그라피티(Graffiti)에서부터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그림까지 미술품은 그 가격 층이 두껍고 그 가치를 가차 없이 금융의 셈법으로 산출해 낸다. 금융가치와 예술가치가 일치할 수 있는가 따위는 안중에 없다.
하지만 마천루 빌딩처럼 한없이 상승하고 싶은 욕망에 등 떠밀려 이 도시로 찾아오는 예술가 중에는 상승보다는 추락의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스키아나 워홀을 꿈꾸고 오는 것이지만 이 도시는 그들에게 호락호락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 대신 무수한 희망과 좌절의 화랑을 돌게 한다. 많은 수의 화랑이 밀집돼 있는 첼시에는 끊임없이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엄청난 금액의 미술품이 거래되고 있다. 고전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연중무휴로 온갖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도 뉴욕의 매력이다. 몇 년 전 내 개인전이 열렸던 첼시의 한 빌딩은 전체가 화랑이었다. 그 옆 빌딩도 그러했고 그 옆도 마찬가지. 그 빌딩가의 화랑들을 수많은 사람이 순례자처럼 떼로 오르내려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패션가로 바뀌었지만 옛날의 소호에도 화랑가가 밀집해 있었고 그 중 메리분이라는 유명한 갤러리가 있었는데, 1990년대 초의 여름에 들렀을 때 거기에서는 안젤름 키퍼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마치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는 것 같은 화면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도 보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작품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 같은 폭발성이 많은 신진작가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혼란과 소음과 무질서의 도시 뉴욕이, 사실은 창작의 본능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 바스키아·앤디 워홀부터 뒤샹·구사마 야요이까지… 스타 화가들의 주무대
뉴욕에는 실로 다양한 인종과 장르의 미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션버그, 장 미셸 바스키아,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본래 미국인도 많지만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현대미술의 스타 중에는 피에트 몬드리안이나 마르셀 뒤샹처럼 미국으로 건너온 외국인이 많다.
이사무 노구치(野口勇)나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처럼 일본계거나 일본인이며 혹은 중국인 조각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인이 뉴욕에서 작업하고 있다.
1940년 뉴욕으로 이주한 ‘추상회화의 선구자’ 몬드리안은 선에 우선하는 복잡한 색채 평면을 통해 형식 실험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뉴욕에서 그는 검은 선들을 삼원색 띠 형태로 대체시킨 ‘뉴욕시티’ 연작을 선보였다.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검은 수직선과 수평선 대신 노란색 띠에 작은 색면들을 스타카토 식으로 더해 생생하고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화폭에 살려냈다. 네온사인 불빛으로 빛나는 뉴욕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여기까지가 미술’이라는 한계 없음이 많은 미술가에게 뉴욕을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어 주고 있다. 거기에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 그리고 ‘자본의 꽃’이라는 철저한 시장 논리까지 더해져, 뉴욕에서 알려지는 순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