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14호 작품
바람이고 싶다
김일호
겨울외투를 벗지 못한 채
남풍에 실려
간간히 들려오는 화신에
귀 기울인다
산천을 둘러보아도 갈 곳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 약속은 없어도
어디론가 바람으로 훨훨 날고 싶다
낮은 몸 어디에선가
가녀린 새싹으로 움트듯
꿈틀대는 설렘으로 더워질 때
꽃잎 한 장 끊어
새벽안개 자욱한 길 따라
어둠처럼 떠나고 싶다
오랜 방황이면 어떠랴
되돌아올 길 지워진다 한들 어떠랴
산들바람 재촉하는 봄 길 따라가는
나그네 걸음인 것을
문득, 투명한 바람이고 싶다
꽃샘바람
얼어 죽었을 미련 남아
떠나지 못한 찬바람이
투명한 갈기를 휘 날린다
어제는 하나 둘
앞서 떠난 사람들 길 따라
오늘은 누렇게 빛바랜 채 누워
버둥거리는 목숨들이
남은 숨 몰아쉬고 있다
겨울 길 돌고 돌아 찾아와
춘삼월 불러보는 이름들이
거침없이 불어대는
바람소리로 울부짖을 때
그 길에 홀로 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시린 가슴은
끝내 살아남아
꽃으로 피어날 꿈이 있기에
아직 떠날 때 아니라는 거다
작별을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울며불며
눈부신 햇살에 녹아드는
삼월상달에 부는 찬바람
갈치조림을 먹으며
어머니는 늘
베풀며 선하게 살라 하셨다
아내는 늘
분수를 지키며 살라 했다
어머니 사랑의 손맛도
아내의 정성도 담기지 않은
붉은 고추장 풀어
내가 끓인 갈치조림
가시를 발라내고
부서지지는 살점을
운 좋게 골라 먹는 것이
어쩌면 다름없는 인생인 것을
미처 말하지 못한 내 입에서
구린내 난다
앞서 행동하지 못한 내 몸에서
비린내 난다
*오봉산五峰山 모정
깊은 산속 호롱불 밝히고 다섯 남매 낳았더니 채 피어나지 못한 자식 둘 먼저저승길 앞세운 엄니의 울음은 오랜 날 산울림 되어 까만 밤을 지새웠다
저문 날 아궁이에 생솔가지 불 지펴 구들장이 따뜻해질 때쯤이면 허기져 남은 자식들 돌아 눕히고 초가지붕에 피어오른 하얀 연기처럼 흩어져 은하수가 되었을 천상의 소식을 듣고 싶은 어머니는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새벽이슬 눈물처럼 방울방울 맺힌 숲에서 새소리가 부르면 맨발로 삽짝 문 밖으로 달려가 내 자식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던 어머니였다
어머니 살아생전
크고 작은 다섯 봉우리를 닮았던
죽은 자식이나 살아남은 자식 모두
아픈 손가락 이었다
*오봉산 : 세종시 조치원읍 서북부에 위치한 262m높이의 산
*전월산轉月山메아리
둥근달 굴러 떨어져 금강깊이
자맥질하던 초저녁이면
내 아버지 물속에 따라 들어가
모래무지 맨손으로 잡아
입에 물고 나오셨지
유년시절 소풍 길
엉금엉금 기어오른 산꼭대기에
물이 마르지 않는
조그만 웅덩이 하나 있었지
그 물속에
검정고무신 빠트리면
산 이래 금강 물길로 나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물고기 잡아 허기를 채워주던
아버지 이름 불러도 대답 없고
장남 뜰 모내기하러 간
어머니 뒤 따라
밥술 얻어먹던 시절도 옛 이야기
지금은 전월산 아래 비단 강 변
대한민국 행정수도 건설 상전벽해로
그 시절 아련한 기억 뿐
내 어릴 적 어머니 아버지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이제는 메아리도 없네
*전월산: 세종시 세종동 금강변에 자리한 259.8m 높이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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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생*1991문학세계신인상*전)소금꽃시문학회장*전)연기문학회장*전)세종문학회장*전)세종시인협회창립회장*전)한국문협세종시지회창립회장*전)세종시문학진흥위원회부위원장*백수문학회장*제11회연기군민대상수상*국민훈장목련장수훈*시집<노을에 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