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H지역 신문에 만화와 만평을 연재하는 ‘나(허상구 40세)’는 만화를 그리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국장이 다급한 소리로 ‘어쩌자고 그런 그림을 그렸느냐?’며 야단을 친다. 이튿날 낯선 사내 둘이 와서 ‘나’를 찾아와 동행을 요구한다. 텅 빈 사각형의 흰 방에 끌려간 ‘나’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앞으로는 잘 생각해서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온다. 나올 때 ‘나’는 그 사람들 앞에서 그간 집 안에서 입 밖에도 내지 않았던 큰 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듣게 된다. 큰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지리산으로 야반도주를 해 버린 사람이었다. 풀려난 ‘나’는 그 이후 코를 찌르는 듯한 이상한 독가스 냄새에 시달린다. ‘나’는 강한 심리적 억압을 이기지 못해 결국 정신 분열 증세까지 보여 신문사를 그만둔다. 유일한 표현 도구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창이었던 만화 코너를 그만 둔 ‘나’는 ‘저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가스와 독극물로 인해 날마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단식 사흘째’라는 표지판을 들고 거리를 나선다. 그러자 정체 모를 그자들이 다시 와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 정신 감정을 의뢰한다.
[핵심 정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성격 : 회상적, 고백적, 비판적, 참여적
*특징 : ① 다양한 감각적 표현을 활용하여 작품 속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②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작품 상황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③ 서술자인 ‘나’가 이야기 상대방인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
④ 배경과 인물의 심리를 대비하여 인물이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⑤ 과거를 회상하듯 서술하여 사건 당시 서술자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주제 : 억압적인 감시 체계로 인해 몰락하는 한 소시민의 삶
[이해와 감상]이 작품은 지역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는 한 소시민의 이야기다. 정신 병원 병동에서 의사를 상대로 하여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보면 독백 형식에 가깝다. 그는 정보기관에 끌려갔다 온 뒤 독가스 냄새에 괴로워한다. 그는 결국 직장까지 그만두고 끊임없이 광주에서 죽은 시민들의 환영을 본다. 작품 전체가 리듬감 있는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영, 환청, 정신 분열은 권력에 용해되지 못하는 소시민의 내면을 드러낸다. 일개 지역 신문에 그린 만화가 정보기관에 의해 감시를 받는다는 소설 속의 상황은 언론을 감시하던 80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문제]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의 줄거리] 광주 H 지역 신문사에 만화를 연재하는 일에 만족하며 살던 ‘나’는 어느 날 국장에게 지금이 언제라고 겁도 없이 이런 걸 만화라고 그려 냈느냐고 야단을 맞는다. 이튿날 낯선 사람들(그자들)에 의해 ‘나’는 텅 빈 사각형의 흰 방에 끌려가 앞으로는 잘 생각해서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 후 코를 찌르는 듯한 이상한 독가스 냄새를 맡게 된다. 그리고 잡혀갔다가 나온 다음 날 새벽 비 오는 광장에서 ‘나’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죽은 시민들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 후부터 나는 만화 그리기가 두려워지고 결국 신문사를 그만 둔다. 나는 계속 독가스 냄새 때문에 강한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인다.
밖으로 이내 뛰쳐나가 무작정 거리를 쏘다니다가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지요. 휴일인데도 차안은 붐볐습니다. 프로 야구 결승전이 무등 경기장에서 있다나요.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 무수한 사람들의 손목이 하얀 고리형의 손잡이에 하나같이 나란히 꿰어져 있더군요. 그래요. 모두가 체포된 수인(囚人-죄수)들이었어요. 차안에 갇힌 우리 모두는 팔목에 하얀 수갑이 채워진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한마디의 항변도 몸부림도 없이 묵묵히 압송되어져 가고 있었다구요. 썩어 문드러진 뱃가죽을 허옇게 드러낸 채 시체처럼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 숱한 손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환영)또 독가스가(환후)목을 짓눌려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차가 도청 앞에 이르렀을 때 허둥지둥 뛰어내리고 말았습니다.
휴일 하오의 거리는 한가로운 걸음의 행인들로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흐린 편이었지만 비가 올 듯한 날씨는 아니었지요. 전일 빌딩 앞 횡단보도를 건너 수협 건물 쪽으로 갔습니다. 난(서술자, 주인공, 정보기관에 끌려갔다 온 뒤 환영, 환청, 정신 착란에 시달리고 있음)예의 그 계단에 서서 꽤 오랫동안 눈앞의 광장과 분수대를 우두커니 바라보았지요. 이날따라 광장 중앙의 분수대는 시원스레 물을 뿜어 물줄기의 낙하음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금 마악 임종하는 사람의 숨결처럼 나지막하면서도 집요하도록 끈질긴 소리였지요. 어찌 보면 지극히 평화스럽기만 한 그 광장의 풍경을 대하고 있으려니까 자꾸만 그 비 오는 날 밤, 바로 그 자리에서 보았던 소름 끼치는 광경(환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환영이었을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바람 속에서 얼결에 헛것을 보았던 것일까. 나는 북적이는 한길에 서서 여전히 어수선하고 흉흉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차량의 행렬이 분주히 스쳐 지나가고 시가지의 이 골목 저 골목으로부터 행인들이 개미떼처럼 구물구물 기어나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류장에선 수용소 막사의 번호판만 같은 숫자표를 달고 자신들을 실어갈 시내버스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리로 우루루 몰려가곤 했습니다. 마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미친 듯 호루라기를 불어대기라도 하듯 저마다 어깨를 밀고 부딪치며 쫓기듯이 허겁지겁 차에 오르고 있는 시민들을 붙잡고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해 오월(5·18사건), 바로 저 광장을 돌아 기다랗게 열을 지어 사라져 버린 숱한 사람들의 행방을 행여 알고 있느냐고. 선연하도록 붉고 고운 꽃이파리를 입에 물고 그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느냐고. 어째서 해남댁 늙은이의 외아들은 아직까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거냐고…….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해 보지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꼬박 이틀을 물만 마시며 누워 있었습니다. 입을 잔뜩 벌리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도 호흡이 막혀 오고 목구멍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지독한 냄새는 쓰러져 누운 내 가슴 위에 올라타서 끊임없이 목을 조르고 또 졸랐지요. 눈알이 벌겋게 충혈되면서 이윽고는 목구멍 안까지 퉁퉁 부어올라 침을 삼키기마저 어려워지더군요. 아아, 기어이 난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무지무지하게 분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요. 난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절대로 이렇게 허망하게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스케치북을 꺼냈지요. 실로 오랜만에 그려 보는 만화였습니다. 나는 거기에 그 비 오는 날 밤의 무서운 광경을, 꽃잎을 온몸에 붉게 붙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쓱쓱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판자와 못을 찾아내어 표지판을 하나 만들고 거기에 굵은 글씨로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가스와 독극물로 인해 날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단식 사흘째> …< 중략 >…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로 우체국 앞에 나갔지요.
<……저를 살려 주세요. -단식 나흘째>
그 다음날도 역시 그리로 나갔습니다. 닷새째가 되는 그날까지도 난 전혀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채로였지요. 그런데 바로 그 마지막 날 오후에 혼자 표지판을 치켜들고 서 있으려니까 바로 그자들이 나를 데리러 왔던 것이었습니다…….
자아. 이것뿐입니다. 선생님(정신병원에 갇힌 내가 의사 선생님에게 정신병원에 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형식, 액자 구성)이 내게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모두 이것밖에 없어요. 이젠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더는 계속하지 않을 거라구요. 으흐흐흣. 하지만 말예요, 선생님. 꼭 한 가지만 알고 싶은 게 있기는 합니다. 저, 말이죠. 나는 다시 만화를 그릴 수가 있을까요? 자를 대지 않고서도 그 빌어먹을 놈의 직선(자유 의지, 진실)을 예전처럼 쓱쓱 그려낼 수 있겠느냐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독가스, 지긋지긋하고 끔찍스러운 이 독가스 냄새는 대관절 어디서 어떻게 꽃가루같이 풀풀풀 날아오는 것일까요. 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째서 하필 나 혼자만 이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이지 난 모르겠다니까요, 선생님. -임철우,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① 다양한 감각적 표현을 활용하여 작품 속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②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작품 상황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③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성격을 부각하고 있다.
④ 배경과 인물의 심리를 대비하여 인물이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⑤ 과거를 회상하듯 서술하여 사건 당시 서술자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위 글을 <보기>와 같이 구조화할 때, 위 글에 대해 설명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이야기Ⅰ
이야기Ⅱ
나
선생님
나 ― 그자들
① 이야기Ⅰ의 ‘나’와 이야기Ⅱ의 ‘나’는 동일한 인물이다.
② 이야기Ⅱ에서 느낀 ‘나’의 갈등이 이야기Ⅰ에서 해소되고 있다.
③ 이야기Ⅰ과 이야기Ⅱ는 각각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④ 이야기Ⅱ의 ‘그자들’은 ‘나’에게 적대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⑤ 이야기Ⅱ는 이야기Ⅰ의 ‘나’가 ‘선생님’에게 이야기해 준 내용이다.
3. ㉠과 <보기>를 참고하여,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환각의 역할’에 대해 발표한 내용 중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작가는 소설에서 감각적인 인식의 차원을 넘어선 환각적인 요소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환각적인 요소에는 환영(幻影), 환청(幻聽), 환후(幻嗅) 등이 있다. 이런 환각적인 요소는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① 인물이 지향하는 세계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② 인물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③ 인물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④ 현실에 대해 인물이 저항 의지를 포기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⑤ 현실과 대결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보고 놀란 인물의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4. ㉡의 상징적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불온한 사상② 나태와 안일함 ③ 직업에 대한 타성
④ 시대적 제약과 억압 ⑤ 비양심적인 윤리 의식
<정답> 1③-서술자인 ‘나’가 이야기 상대방인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는 어투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이야기를 실제로 주고받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이 같은 서술 방식에서 나의 성격을 추리할 수는 있지만, ‘선생님’의 성격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오답풀이] ④ 휴일의 평화로운 광장의 풍경을 보면서 소름 끼치는 광경을 떠올리고 있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②-작품의 전체 내용을 구조화했을 때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이다.
이야기Ⅰ에서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 서술자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3②-서술자는 흰 방에 끌려갔다 온 후부터 죽은 시민들의 환영을 본다. 이 같은 환영은 계속 서술자를 괴롭히고, 결국 ㉠에서 ‘나’가 특정한 행동을 하게 만들고 있다. 즉 ‘나’가 계속 환영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4④-서술자는 자신이 그린 만화 때문에 잡혀 갔다가 온 후로 만화를 그리지 못하면서 독가스를 맡게 된다. 결국, 독가스는 ‘나’가 만화를 그리지 못하게 하는 ‘시대적 제약이나 억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