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000m, 호흡마저 가쁜 하늘과 땅의 경계를 뚫고
티벳의 수도 라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가는 1200km의 여정을 시작했다. 라사는 해발 3680m나 되고 티벳고원은 대부분 4000m를 넘어 고소적응이 최우선의 과제다. 라사에 도착한 대원들은 고소증을 앓기 시작해 며칠간의 고소적응 기간을 가졌다. 드디어 출발. 캠핑이 예상보다 힘들고 길도 만만치 않다. 대원들은 여전히 고소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가서는 일정이 빠듯하다
글·박현우(부천 강씨네MTB) 사진·이봉만(산악사진가)
나는 2000년 5월 정화(심정화, 필자의 친구)와 27일간 전국 해안선 캠핑 일주를 계기로 산악자전거 동호인 대열에 합류했다. 산악인으로 지내고 싶어 산악인의 아내가 되었지만 남편의 방해(?)로 마음처럼 산악활동을 하지 못해 매일 새벽시간을 이용해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간다. 자전거 타기는 남편의 반대 없이 시작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고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도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내 일상에 지쳐가고 있던 중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정화는 3개월의 자전거 전국일주여행을 제의했고 나는 한 달로 수정해서 합류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캠핑뿐 나머지는 자신이 없는 여행이었다. 남편 몰래 준비를 마쳤을 때 남편은 자전거를 사주었다. 100만원이 넘는 자전거 값은 부담이 되었지만 그의 돈으로 사는 것이라 마다하지 않았다.
슬픈 여행, 행복한 여행
여행기간 중 남편은 늦은 저녁까지 술과 일로 시간을 보내고 주말저녁이면 어김없이 등산학교와 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아이들만 놔두고 산으로 갔다. 눈물이 났다. 우리는 부모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결혼 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산행과 음주문화(?)를 행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미워하며 지지 않겠다고 아이들만 남겨질 집을 떠나 돈과 시간을 들여 고생하는 것이 슬펐다. 여행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온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비었던 자리를 수습한다. 그간의 내 여행은 슬펐기에 힘들지 않았다.
2001년부터는 준비한 여행이 시작된다. 2002년 여행계획이 취소되고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기에 여행준비는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자전거를 탄 후 남편은 반대자의 입장에서 협조자로 바뀌어 많은 것을 부탁하고 의지할 수 있었다. 선현(딸)이는 가지 않기 바라는 눈치지만 늦잠으로 바쁜 아침시간, 밥을 대신 해주겠다며 운동이나 다녀오라고 나를 내몬다. 작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운동했냐고 체크를 한다. 여행의 준비는 완벽했다. 이렇게 행복하다면 걸어서라도 우정공로를 완주할 수 있겠다.
아침 6시 자전거 타기는 2000년부터 계속해왔고 1년 전부터 1시간의 수영을 추가하고 6개월간 오후 10시에 2시간씩 헬스를 했다. 수영 시작 후 한 달간은 졸음이 쏟아져 힘이 들었다. 티벳 여행을 다녀온 오디캠프 사장님에게서 자전거지도를 선물 받고 계획서의 일정을 체크했다. 거리와 고도를 기준으로 잡았던 일정에 숙박 가능한 마을을 고려해서 수정했다.
지연이 마지막으로 합류하고 개인훈련과 팀워크 훈련일정을 잡았다. 지연은 합류를 결정하고 곧장 특별훈련에 들어갔다. 지연은 전화를 걸면 산에서 자전거를 타느라 통화가 안 되거나 롤러를 타다가 내려 거친 호흡으로 전화를 받곤 했다. 미경은 수영을 좋아해서 수영을 늘리고 퇴근 후 상암동 일대에서 늦은 시간까지 자전거를 타는데 운동능력이 향상되지 않고 정체되어 걱정을 했다. 운동을 잠시 쉬거나 운동량을 줄이고 종합영양제를 복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화는 아무것도 시작하고 있지 않다. 언제나 회사 일로 힘들어하고 모임이 있는 날이면 토의 중에 졸거나 먼저 잠들곤 한다. 자전거를 타는 날이면 꼴찌로 오르면서도 전혀 급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 일을 가장 많이 만든다. 자전거는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차에 싣고만 다녀 속이 상하다.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고 정화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 몸을 만들 수 있는 친구임을 알기에 마음이 놓인다. 휴일에 같이 자전거를 타니 지연의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 너무도 예쁜 자세로 오르막을 오른다. 미경은 자전거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한 상태여서 오르막의 발놀림이 무겁고 내리막 자세가 불안하지만, 뒤를 따르며 자세를 일러주면 팔과 다리 모양을 수정하려고 노력하며 힘든 언덕도 잘 참아낸다. 티벳의 오지여행은 자전거 타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산에서 먹고 자는 일상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지연이 만큼의 주행능력이 되지 않더라도 산에 다녔던 경험이 미경에게 큰 도움이 되어 잘 해낼 것이다.
써미트의 장재순 사장님 소개로 이티바이크 나종덕 사장님을 만나 자전거를 지원받게 되었다. 함께 계시던 석경환 사장님은 우리의 계획을 돕는 것이 기쁘다며 행복해 하신다. 장재순 사장님은 즐거워하며 자전거용 가방과 카고를 제작해 주겠다고 하신다. 지난 겨울 트랑고의 아이스페스티발에서 만난 마운틴 하드웨어의 이석호 사장님은 의류를 지원해 주시겠다고 했다. 네 명의 대원 중 한 두 명만 지원받을 수 없어 감사한 마음만 받기로 했다. 모든 장비를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지연이와 미경이는 고산에서 지낼 만큼의 의류와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아 경비부담이 커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던 중 노스페이스에서 텐트와 침낭을 제외한 등산 의류 일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지만 보답할 일을 생각하니 부담도 크다.
출발을 앞두고 대림정형외과 권순철 박사님이 보내준 약품과 조이 스포츠 김홍기 씨의 보충식품과 영양제박스로 거실이 가득 찼다. 같이 자전거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병원과 창고를 털어온 듯 넉넉한 지원이다. 병원을 차려도 될 만큼의 약품과 약물중독(!)을 의심받을 만큼의 보조식품과 영양제들이다. 강씨네 MTB 식구들은 자신의 일인 듯 기뻐하며 관련기사를 스크랩한다.
도와주신 분들을 기록에 남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팸플릿을 제작했다. 팸플릿을 만들며 <아웃도어 라이프>에도 신세를 지고,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작은 계획이 거대한 원정으로 바뀌어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것만을 생각하며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할 즈음 GPS가 지원되었다. 네베상사를 방문하며 듣고 또 들어도 겁만 난다. 컴퓨터도 가져 가라 하고, 시가 잭을 이용해 차에서 충전을 하거나 태양열을 이용해 컴퓨터를 사용하란다. 전기선도 이상한 것들이 많아 머리가 복잡하다.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은 내 잘못인데 힘이 들어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저녁이면 알 수 있게 설명해내라고 졸랐다. 뭐가 뭔지 모를 선들에 일일이 메모를 붙이고, 꼭 해야하는 일만을 노트에 적고 마무리한다. 많은 기능을 가진 기계지만 간단한 기능만을 숙지하고 가방에 넣어두었다.
원정을 며칠 앞두고 정화에게 충실한 준비를 부탁하니 원정대에서 빠지겠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조금 더 참을 것을 참지 못하고 정화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다.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되는 것 같아 몸에 기운이 없어 일손을 놓은 채 정화에게 전화도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기록사진 촬영을 위해 동행하시는 이봉만 선배님께 정화가 원정을 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지연과 미경에게 사실을 알리니 마음 아파한다.
출발 전날, 서운하고 화가 났을 텐데도 정화가 짐 싸는 것을 도우러왔다. 부식을 구매하고 일일이 포장해주니 더욱 미안하고 고맙다. 나보다 너그럽고 정이 많은 친구다.
>>1일(2004년 5월 10일, 인천공항-성도)
드디어 티벳 입구 성도 도착
막내 미경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집을 나와 트랑고로 향하는데 은행에 들러야 한단다. 티벳에서 써야할 돈이 아직도 은행에 있다니…. 은행에 들렀다 나오더니 돈을 찾을 수 없단다. 화가 나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급히 차를 빼며 뒤차를 건드렸다. 상대방에게 내던 화가 내게 돌아온다. 화를 내느라 마음이 급해 보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과 집안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생각보다 커진 일들이 버거워 허둥대는 것이다. 이제 와서 집에 돌아가 걸레질하고 간식을 만들어 놓을 수는 없다. 마음을 진정해야지. 아이들은 책상에 붙인 메모대로 건강하고 사이좋게 있을 것이다. 사고를 수습하느라 남편이 오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 있었다. 공항으로 가며 도와주신 분들과 선배님들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에게 지갑과 통장을 모두 주었으니 남은 일은 그의 몫이다.
이봉만 선배님과 지연을 만나 짐을 내리고 혜초여행사 원신희 씨와 입국수속을 했다. 개인 짐을 포장한 카고는 문제가 없으나 식량과 장비를 포장한 70리터 카고가 너무 무거워 무겁고 작은 것과 가볍고 큰 것을 교체했고, 건전지를 반만 가져가기로 했다. 개인당 수화물은 20kg인데 이미 130kg나 초과된 상태다. 지쳐있는 나대신 정화가 뛰어다니며 일을 마무리해준다. 여행사 도움으로 초과분을 처리하고 짐을 들여보내니 가벼운 짐만큼 마음도 가볍다.
남편과 인사를 하는데 옆에서 다정하지 않다고 비난한다. 나참!! “애들 잘 보고 밥 잘 먹어요”밖에 무슨 할말이 더 필요한가. 모두 게이트로 들어서는데 정화가 운다. 잘 다녀오겠다며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왜 훈련에 성실하게 임해줄 수 없었는지 궁금하다. 그녀만 남기고 가는 게 아쉽고 슬프다. 좌석에 앉으니 읽을 만한 책 한 권 사들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놓고 읽지 않은 것도 있는데…. 지도만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성도에 도착하니 반짝거리도록 머리를 빡빡 깎은 건장한 청년이 조그만 차로 마중 나와 있었다. 소림사 스님 같아 보인다. 성도에 내려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시설과 청소 상태였다. 우리네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 수준인 공항 화장실은 앞문이 없다. 남편에게 들어는 보았어도 충격적이다. 차가 좁아 좌석까지 짐을 깔고 끼어서 호텔로 갔다. 날이 더워 반바지로 갈아입고 동네 마실 나가기로 했다. 프론트에 비치된 도시 지도를 가지고 저녁 먹을 곳과 구경할 곳을 되지 않는 말로 물어 표시하고 택시를 잡아 지도의 표시된 구역으로 가기로 했다.
몇 대의 택시를 보낸 후 중국말로 우리 의사를 적은 쪽지를 호텔 로비에서 만들어 지도와 함께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호텔로 돌아 올 때는 호텔 명함을 주면 된다. 일방통행인지 드라이브를 했는지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멀었고, 도로는 자전거 행렬이 자동차보다 당당하게 달리고 있다. 도로의 1/3이 자전거 전용도로이고, 자동차는 긴급상황에 시속 20km 이하로 서행하며 잠시 이용 할 수 있다. 도로의 주인은 자전거이며 자동차는 조심조심 다니고 있는 듯하다. 우리와는 정반대다.
크고 근사한 식당 앞에 하차하여 뒷길을 걸으며 다른 식당을 찾는다.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여종업원의 손목을 잡고 음식 사진을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알려주고 계산대에서 주문하도록 했다.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되어 식당의 종업원 모두 웃고 떠든다. 어렵게 만두와 찐빵을 먹고 맥도날드와 유명상점이 즐비한 쇼핑몰을 돌았다. 장미꽃을 든 어린 남자아이가 이 선배님을 따라다닌다. 꽃을 사 달라고 졸졸 따라 다닌다. 우리 일행 중 선배님이 뽑힌 것이다.
비가 내린다. 기압계 바늘은 바닥에 있다. 비 오는 저녁 그냥 자기 서운해 자스민차와 맥주를 마셨다. 저녁으로 먹은 만두와 찐빵이 10위안(1위안은 약 150원)이고 후식이 66위안이니 어떤 곳에서 먹고 자는가에 따라 지출규모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2일(5월 11일, 성도-티벳 공가공항-라사)
라사 가는 길 그리고 고소증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는 비가 오는데도 판초를 입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5시에 일어나 서둘렀는데도 짐이 많아 지연은 이리 저리 뛰어다닌다. 짐 무게가 100kg 초과되어 2300위안(33만6000원)을 지불하고 간신히 7시40분 CA4401편에 탑승했다. 2시간의 비행 중 왼쪽 창으로 히말라야 만년설이 보이자 비행기 안이 들썩인다. 선배님도 카메라를 꺼내며 흥분하신다.
현지 가이드를 만나 차량으로 한 시간 이동해 100km 거리에 있는 라사에 도착했다. 고소와 뜨거운 날씨로 우리는 지쳐서 천천히 움직였다. 지구의 지붕 티벳에 왔다는 감격도 고소증으로 무뎌졌다.
티벳은 어떤 곳인가. 지금은 중국의 한 성(省)이지만 한때는 독립국가였다. 1959년 중국에 병합되었고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세우고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티벳의 면적은 250만㎢로 남한의 25배가 넘지만 인구는 고작 60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고도는 무려 3962m! 성의 수도인 라사(Lhasa)만 해도 이미 3680m여서 비행기와 자동차로 왔다면 대부분은 고소증(고산병)을 경험하게 된다.
가이드와 우리 사이를 오가며 통역을 하던 지연이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루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휴식하기로 했다. 호텔에 머물면서 머리도 감을 수 없다. 온몸이 끈적이지만 라사에 머무는 동안 샤워를 금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지연과 미경은 머리가 아프다며 누웠다. 선배님과 일출 촬영 포인트를 보러 포탈라궁으로 갔다.
“야, 여기 좋아!” 연못 앞에 자리를 잡고 선배님이 사진기를 만지며 즐거워하신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호텔에 오니 몸이 피곤하다. 기침이 심해지고 있다.
>>3일(5월 12일, 고소적응)
심해지는 고소증
오전 6시30분 포탈라궁 일출 촬영에 선배님을 따라나섰다. 선배님은 하늘과 건물을 찍고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선배님을 찍었다. 사진작가들이 모이는 이 언덕에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주식으로 보이는 가루와 낱알, 그것의 줄기를 파는 좌판이 언덕 아래 계단에 벌려 있고, 검은 얼굴의 가난한 사람들은 손에 든 자루에서 그것들을 꺼내 불씨 속에 던지며 기도를 한다. 오늘은 달라이 라마의 생일이란다. 큰 행사를 준비하지 못해도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마니차(불교의 기도문을 적은 통)를 돌리며 기도 행렬을 만들고 있다. 야채와 통돼지를 싣고 가는 리어커를 단 자전거가 많이 보인다. 가이드 니마가 삼겹살이라고 해서 같이 웃었다. 삼겹살과 김치는 니마도 잘 아는 것 같다.
이곳도 중국의 영향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 라사 시내는 차량통행이 많고 매우 복잡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숙소로 돌아오니 전날의 잔기침과 가래가 심해졌다. 미경의 침대에서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더 나쁘다. 감기약과 두통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계속 누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선배님의 충고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내관광을 나갔다. 현재 선배님만 멀쩡한 듯이 보인다. 라사 시내를 한눈에 보기 위해 인근의 둥그리산으로 하이킹을 갔다. 룽다(불교 경전을 적은 헝겊을 긴 줄에 달아 놓은 것)가 펄럭이는 언덕이 신비하다. 오늘이 특별한 날이어서 새로운 룽다를 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티벳의 모든 언덕에는 정상에 룽다가 있다. 나무도 풀도 없는 티벳의 갈색 산에는 색색의 룽다와 그들의 기도가 가득하다. 라사 시내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시장과 관광명소들이 형성되어 있다. 카펫 만드는 과정을 보고 카펫상점에 들렀다. 아름다운 빛과 무늬의 카펫이었으나 값이 비싸 자스민 차만 대접받고 나왔다. 시장에서 감자와 계란 야채를 사고 나니 든든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제과점도 대형 슈퍼마켓도 있다. 장 본 것으로 신선한 저녁을 준비했지만 지연은 먹지 못한다. 이미 얼굴도 많이 부었고 얼굴과 몸에 열이 올라 있다.
일몰 촬영에서 돌아오신 선배님이 지연의 상태를 보러 왔다. 잠시 살만해져 돌아다니던 미경이도 심한 두통으로 누워 있다. 지연은 얼굴이 붓고 열이 높으며 손발은 차고, 감기몸살처럼 추워한다. 미경은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움직이며 자려고 한다.
누워있는 시간이 길면 더욱 지친다며 선배님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처녀 언제 시집가는지 이야기하다 수맥을 체크해야겠다고 장비를 가지러 갔다. 우리의 도사님은 굽은 막대 두개를 들고 걸었다. 신기하게 미경의 침대에서 막대가 많이 움직인다. 간절한 기원을 담으며 수맥 차단용 부적을 즉석에서 만들어 처방했으나 막강한 수맥이 지난다는 침대는 그 날부터 저주받은 침대가 되어 누구도 눕지 않고, 짐도 올려놓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대원 모두가 그 침대에서 낮잠을 잔 후로 고소증세를 심하게 느꼈고 지연은 나아지는가 싶더니 미경과 침상을 교체한 후 증세가 심해져 전혀 먹지 못하게 되었다. 지연과 미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3680m에서 생활하니 몸이 힘든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나는 변함없이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잤고 미경은 잠자리를 찾아 방황했는데 침대는 비워져있다.
>>4일(5월 13일, 고소적응)
지연이 위험하다?
선배님이 새벽거리를 누벼서 산소 베개를 구해왔다. 지연의 고산병이 심해졌다. 아픈 지연을 편하게 재워야했는데 미경과 둘이서 좁게 자느라 불편했는가 보다. 산소 베개를 주니 안색이 조금 나아진다. 과일 통조림을 조금 먹이고 국립병원에 갔다. 청진기로 진료를 하더니 심각한 얼굴로 뇌에 물이 차서 입원을 해야 한단다. 뇌수종을 못 믿어하자 나이가 지긋하고 영어를 하는 다른 의사에게 우리를 안내한다. 호텔에 머물며 통원치료를 하겠다는 우리에게 반드시 입원하라고 부탁한다. 위험하다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행 한번 안 해보고 한데서 잠 한번 안 자본 얼굴 하얀 친구에게 이곳은 너무나 험난한 곳인가? 며칠째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이제 병이 걸렸다 한다. 지연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아프다니. 병원이 지저분해서 입원시키기가 망설여져 다른 병원을 알아보았다. 막내를 숙소에 돌려보내고 무거운 걸음으로 군인병원에 갔다. 그곳은 조금 더 깨끗했고 기계도 많이 보였다. 지연은 엑스레이 촬영과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인상 좋은 여 의사는 심한 고소증이라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먹고 쉬면 된단다. 혹시 하는 마음에 국립병원에서 나온 진단을 말하니 미소와 함께 걱정하지 말란다. 정말 다행이다. 자전거 운행은 힘들겠지만 자동차로 네팔까지 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가이드와 우리는 이제야 마음이 가벼워졌고 웃음도 나왔다. 여행사 직원이 산소통을 가져와 설치해주었다. 약을 먹고 산소를 마시며 누워있으니 입술이 붉어지고 손발도 따뜻해진다. 마음 편히 휴식하도록 출발을 이틀 연기하니 마음이 여유롭다.
지연을 위해 가이드를 데리고 고기를 사러나갔다. 나도 고기가 많이 먹고 싶다. 압력솥에 닭과 마늘을 넣고 삶아 먹여야겠다. 찹쌀을 넣고 닭죽도 해줘야겠다. 호텔 근처 시장을 돌며 닭을 찾다가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모두들 환호하며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기쁘다. 과일 좋아하는 지연에게 수박, 바나나, 사과와 함께 군고구마를 봉투 째 안겼다. 라사의 생활이 점점 먹고 살만해지고 있다.
>>5일(5월 14일, 고소적응)
고소와 라사 생활에도 적응
두통에 시달려 새벽에 산소 베개로 호흡하는 지연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 선배님의 권유로 병원을 다시 방문한다. 음식물을 입에 대지 못하는 지연이 링거라도 맞으면 기력이 회복될 것 같고 다른 대원도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기침이 심해져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있어 걱정하던 차였다. 지연은 고산병인데 어제보다 많이 나아졌고 나는 감기지만 고산병은 없단다. 기침약을 처방 받았는데 허브로 된 꿀약이었다. 어린이용 시럽 같다. 용식이(아들, 초등 4년)가 좋아하는 맛이다. 약을 먹으니 기침이 멎고 가래도 적어졌다.
이곳 약은 우리의 경우 효과가 좋고 먹기도 편하다. 고소약도 식물의 엑기스 같은 것이어서 보약 먹는 기분이다. 근처 약국에도 고산병에 먹는 약이 있다. 뜨거운 물에 타서 먹는데 인삼차 같다. 지연은 티타임에 언제나 고소차를 마셨다. 여행사에서 구해온 산소통으로 산소를 마시고 처방된 고소약을 먹으면서 지연의 혈색이 나아졌다. 입술이 붉어지고 손발에 온기가 돈다.
미경이와 니마를 시장에 보내 닭을 구해 마늘과 찹쌀을 넣고 압력솥에 넣어 백숙을 만들었다. 고소에 좋다며 양파를 채 썰어 물에서 매운맛을 제거하고 먹기를 권하니 양파 냄새로 고소증이 심해진다고 대원들이 난리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신나게 먹고 있으니 고소에 적응이 되가는 것 같다. 지연이도 먹었으니 오늘 저녁 식사는 성공적이다.
이틀째 운행 예정인 캄바 라(Khamba La) 구간이 도로공사로 통행이 불가하다며 여행사측에서 루트변경을 권한다. 차량만 우회하고 자전거는 진행하자고 하니 길이 험해 통행이 불가하고 낙석이 많아 위험하다고 극구 말린다. 조금 먼 대신에 고개가 낮다면 시간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고 현지 여행사도 권해서 우회하기로 결정한다. 고소적응을 위해 라사에서 추가한 이틀간의 휴식은 운행 중 예비일로 대체될 것이다. 샤워하는 것이 두렵지만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니 행복하지만 아직도 씻을 수 없어 부러워하는 지연에게 미안해서 좋은 내색을 하지 못한다.
>>6일(5월 15일, 고소적응)
출발 전 마지막 날
지연의 두통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입맛을 잃어 식사를 못하기 때문에 어지럽고 기운 없어한다. 잘 먹고 자는 나를 다행스러워하지만 나는 지연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누워 있는 지연을 설득해 오랜만에 함께 아침을 먹었다. 색색의 머리칼과 신기한 옷으로 장식하고 얼굴에 익살스런 그림을 그린 피에로들로 호텔 식당은 오늘도 화려하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동호인들로 이곳 거리에서 공연을 하며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다. 어제 아침 이들의 모습은 약 오를 만치 활기차 있었는데 오늘 아침은 고소로 인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기운 없는 피에로들이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은 식사 후 회원들을 모아놓고 고산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 아픈 머리만큼 심각하게 듣고 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선배님은 릭샤를 타고 포탈라궁 구경에 나섰다. 등산복 차림에 써미트 모자를 쓴 나에게 관광객이 써미터(summiter, 고산 등정자)냐고 묻는다. 언젠가 써미터가 될 것이기에 웃으며 “Yes”라고 대답해주었다.
궁 구경은 않고 거리를 돌며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라사에서는 무엇이든 찾아 먹고 숙소에 돌아올 만치 거리가 익숙해졌다. 제과점에서 빵 사먹고 슈퍼에서 장보고 거리에서 꼬치구이 사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그러나 3680m 고소에서는 즐거운 쇼핑도 큰일이어서 금방 피곤해져 숙소에 돌아오니 모두 누울 자리를 찾는다. 장비 정리를 마치고 지연이 머리 감아도 되는지 불안한 눈빛으로 묻는다. 나 역시 정답은 모르지만 호화로운 생활의 마지막 날임을 감안해 씻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7일(5월16일, Lhasa~Chusul)
캠프장 지저분해 호텔에 투숙
30분간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첫날의 일정을 시작한다. 목적지인 츄술까지의 도로는 전 구간 포장되어 있고 도로의 1/3이 자전거도로다. 몸 상태는 양호하고 날씨도 좋지만 시속 15km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도록 했다. 자동차가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고, 주행이 서툰 미경을 가운데 두고 운행한다. 한국의 도로 주행에 비하면 너무도 안전한 상태인데 선배님은 행여 교통사고가 날까 걱정이다.
즐거운 운행 2시간째 가이드 니마의 친척집에 도착해 버터 차를 마셨다. 조금 마시면 넘칠 듯이 계속 따른다. 조용한 마을의 정성스럽고 깨끗한 사람들이다. 그 집 화장실도 깨끗하고 냄새가 없는데 전통가옥으로 대문으로 들어가 왼쪽에 위치한 계단을 오르면 허리춤 정도의 담이 있고 마을이 보인다. 옷을 추스르고 일어나는데 걸어오는 아이가 있어 몸을 피했다. 아이는 벌써 나를 알아보고 “헬로!”한다.
니마는 이곳에서 머물고 싶어 하지만 내일이 우리의 첫 번째 난관으로 예상되어 조금이라도 더 가야하니 머물 수 없다. 사례를 하려했지만 아무것도 받지 않아 모여든 동네 아이들에게 과자만 나누어주었다. 가축의 배설물이 널려있어도 건조해서 숲의 향기만 느껴지는 상쾌한 가로수 숲에서 점심을 먹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깨끗하고 조용한 숲에서의 휴식으로 오랜만에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하루 운행의 종착지인 츄슐은 작은 마을에 인구밀도가 높아 복잡하고 하수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 도로가에 기름과 물이 썩어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도시다. 허가된 강가 캠프장은 사람들 배설물이 너무 많아 냄새가 심하고 지저분해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어 숙소가 문제였다. 하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구석구석 곤충이 말라죽은 채 쌓여 있을 정도로 청소상태가 나빠 정부에서 관리하는 빙관이라는 호텔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곳도 호텔이라지만 화장실에서 냄새가 새어나오고 물이 없어 객실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 샤워는 물론 세수도 불편하다. 하지만 전기가 들어오니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원한다면 전화도 가능하고 비바람이 분다 해도 걱정이 없다. 해가 지는 저녁은 참으로 아름답다. 밤하늘 가득 별이 반짝이고 있어 별구경을 하다 잠이 들었다.
오늘은 숙소가 없는 것으로 알고 캠핑을 계획했는데 호텔에서 잠을 잔다. 지도에 표시된 마을마다 계속 호텔이 있어 캠핑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캠핑하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고 힘이 들더라도 흙길을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맑고 따뜻한 날씨에 첫날이라 선물 받은 예쁜 치마바지를 입었는데 그리 뜨겁지 않은 햇살에 지연과 내 다리가 화상을 입어 빨갛다. 찬물로 화기를 빼고 건조시킨 후 연고를 발랐다. 긴 바지를 덧입은 미경이가 답답해 보였는데 그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8일(5월 17일, Chusul~Chilung)
가장 걱정되는 구간이 시작되는 날이다. 오전 6시30분 출발 준비를 마쳤지만 날이 어두워 7시에 출발한다. 기온은 16도로 새벽공기가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지만 맑고 상쾌하다. 한기를 느껴 몸에 열을 올리기 위해 속도를 올리니 뒤에서 천천히 가라고 한다. 선두를 교체하고 일행을 먼저 보낸 후 뒤따랐다. 모두 날개를 달았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갈림길이 있는 마을을 두개 지났는데도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공가 공항까지 가겠구나 싶어 망설이는데 가이드의 차량이 뒤따라와 부른다. 갈림길을 지나쳐 온 것이다. 갈림길에서 잘 보이도록 서 있어야 하는 것을 잊고 모두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쉬고 있는 순간 내가 지나갔단다. 일행을 만나니 모두 미안해한다. 내 뒷모습을 보며 따라 왔지만 선두를 찾으러 최고속도로 달리는 자전거를 잡는 것이 힘들어 자동차를 보냈단다. 하지만 이렇게 만났고 신나게 달렸으니 기분이 좋다.
이 마을(Jhenchin)에서 아침도 먹고 쉬어가야겠다. 어둡고 칙칙한 식당이지만 본격적인 운행을 앞두고 있어 웃으며 음식에 적응하고 있다. 티벳 국수를 먹는데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담배 한 갑을 들고 우리를 쳐다보며 떠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아버지가 그곳에 서 있으라고 했단다. 아이 아버지는 우리 일행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담배를 팔아주고 약간의 돈도 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지만 그러한 방법으로 아이가 돈벌이에 이용되는 것이 싫어서 우리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비포장의 시작점이다. 당분간 포장도로도 호텔도 없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작은 가로수가 있고 개울도 있다. 양떼들 사이로 길을 만들며 천천히 자전거를 탄다. 평지와도 같은 오르막인데 속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 힘들어하는 대원을 앞으로 보내도 자꾸 뒤로 처진다. 미경은 뒤처져 있지만 그래도 따라 온다. 날이 뜨거워지고 지연의 안색이 좋지 않고 호흡이 신음소리로 바뀌었다. 같이 가고 싶어 속도를 줄이고 지연의 후미에서 달리지만 괴로워하는 지연을 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 지연이가 포기하지 않도록 모퉁이 하나 돌 때마다 쉬기를 반복한다.
물가에 잘 정비된 밭에서는 사람들이 작은 소리를 내며 일을 하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가로수가 있다. 마을의 끝자락 가게에서 콜라를 마시며 쉬었다. 화장실은 2층에 있는데 앞뒤가 없어 민망하지만 냄새는 나지 않는다. 지붕도 없어 비 오는 날이면 곤란할 것 같다. 숙소가 깨끗하고 조용해서 편안한 마을이다. 운행 첫날 츄술에서 점심식사 후 일정을 마치는 것보다 거리상으로도 둘째 날 일정에 유리한 이 마을을 첫 숙박지로 정하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 힘을 빼면 라(La, 고개)를 넘지 못할 것 같아 쉬었다가 라를 타기로 하고 지연은 차에 올랐다. 서서히 본격적인 언덕이 시작된다. 한참을 가다가 미경이를 기다려 함께 물을 마시고 출발한다. 자동차도 힘들여 오르는 급경사의 산 아래 마을에 도착했다. 도중에 점심 먹을 그늘 한 점 없고 흙먼지 가득한 길이어서 마지막 나무그늘 아래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불을 피워 라면을 끓였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것을 먹으면 잘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헐떡이며 오르는 경운기는 기운 없이 멎고 우리를 추월해 먼지를 일으키는 트럭들만 천천히 거친 호흡을 토하며 오른다. 붉은 산을 넘으면 초록빛호수가 나오고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별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운행을 시작하자 지연은 다시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쩌면 첫 번째 병원의 진단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스럽다. 지연과 미경은 고소증세와 체력 부족으로 짐을 떼고 운행하기로 했다. 출발하자마자 코너를 돌지 못하고 멈췄다. 뒤따르던 미경을 응원하지만 미경이도 모퉁이를 오르지 못하고 멈추고 만다. 언덕 전체가 황토 가루로 덮여 있다. 코너에는 밀가루 마냥 고운 흙이 바람에 날려 와 쌓여있어 바퀴가 빠져 너무도 힘이 든다. 한바퀴도 굴러가지 않는다.
몇 시간이나 올랐을까, 정상부여서 밀가루 같은 흙이 바람에 날려 적어진 탓인지 요령이 생긴 것인지 이제 간혹 코너를 타고 오른다. 시간이 많이 흘러가고 미경과 나는 멈출 듯 움직이고 있다. 따르던 차량을 앞으로 보내고 물을 마시며 미경을 기다리다 오지 않아 먼저 차 있는 곳까지 가니 지연이 간식을 가지고 나온다. 단백질 보충식을 받아 마시는데 차안에 미경이 보인다. 말짱해진 얼굴로. 주위의 권유로 차에 탔단다. 이럴 수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예상운행 거리와 시간이 지났으나 정상에도 도달하지 못했다(정상 7km 전). 캠핑 예정시간이 되었고 날도 흐려졌다. 기압계가 바닥에 닿은 것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운행을 마치고 종료지점 표시 후 얌드록 트소(Yamdrok Tso) 호수 근처마을 칠룽(Chilung)으로 이동한다. 차에 타자 모두 잠이 든다. 아쉬움을 접은 것이 잘한 일인 듯싶다. 텐트를 치자 바람이 심하게 분다. 우리는 동네사람들의 구경거리다.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하루의 운행일정을 마치지 못했고 원하는 대로 자전거를 타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지도상의 라(고개)는 8개이고, 에베레스트 BC(베이스캠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5000m 언덕을 올라야한다. 그때마다 운행거리와 예상시간이 지도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예비일을 모두 운행에 쓴다 해도 빠듯한 일정이 될 것 같다.
4년 전 척추 디스크로 통증이 왼쪽무릎과 종아리, 발바닥까지 이르러 수술을 했지만 그 후부터 무릎이 아프면 영락없이 날씨가 나빠진다. 이날도 기압이 떨어지더니 바람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를 뿌린다. 플라이 안쪽으로 내놓은 식량 카고가 젖고 있다. 물길을 내지 않은 게 불찰이다. 짐을 모두 들여놓고 밖으로 나가 자전거를 덮고 단단히 묶었다. 번개를 맞을까 두렵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 잠을 자야한다. 바람소리가 커서 비가 그쳤는지 구별이 안 되는 어둠 속에 들개들이 모여 울부짖는다. 텐트를 찢고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무섭고 두려워 잠을 설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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