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부활절(Easter 1916)
예이츠(W. B.
Yeats, 1865-1939)/후고(後考) 번역
내가 18세기 풍의 우중충한 고전 양식의 건물 사무실에서
활기찬 얼굴로 나오는
그들과 마주친 건 해질 무렵이었다.
(‘그들’은 아일랜드의
혁명가들을 말함)
난 고개 끄덕이며 목례(目禮)를 하거나
건성으로 하는 인사지만 예의 갖춰 하거나
또는 한 순간 머뭇거리다 의미 없는 인사말을 한두 마디 주고받곤 했다.
(예이츠가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음을 의미함.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함)
그리고 전에는 술집의 난롯가에 빙 둘러앉아 있는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거나 조롱을 하면서
그들도 나처럼 어릿광대 노릇을 하고 살고 있을 따름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엄청나게 변하였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 태어났다.
(이 미인은 콘 마키에비크즈(Con Markiewicz, 1868-1927)로 결혼 전의 이름이 고어 부스(Gore-Booth)였으며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을 하다가 영국 정부에 의해 사형되었음. 젊은 시절의 고고한 자태와 아름다움은 예이츠의 시
<정치범에 대하여(On a
Political Prisoner)>와
<에바 고어 부스와 콘 마키비크즈를 기억하며(In Memory of Eva Gore-Booth and Con Markiewicz)>에서 묘사되고 있음.)
젊은 한 때 모든 걸 선의로만 받아들이며
무지의 나날들을 보냈던 그 여인은
밤이면 논쟁에 뛰어들어 목소리 날카로워지곤 했다.
토끼몰이 사냥개를 몰던 젊고 예뻤을 때에는
그녀들의 목소리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었다.
이 남자는 비호같이 잘 달리는 말 타고 다니며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패트릭 피어스(Patrick Pearse 1879-1916)를 가리킴. 더블린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면서
아일랜드의 모국어인 겔릭어를 부활시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도 매우 적극적으로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했음.
더블린 봉기에서는 무장봉기단체의 대장 역할을 수행하여,
그가 더블린 시내의 우체국 건물에서 투항함으로써 더블린 봉기가 막을 내렸다고 할 정도로
핵심 인물이었음.)
그와 뜻 같이하여 함께 다닌 지지자 겸 친구 한
사람은
타고난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대담하면서도 훌륭한 생각을 잘 해
잠자코 있어도 끝에 가선 저절로 명성을 얻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친구’는 토마스 맥도나(Thomas MacDona, 1876-1916)를
말함.
더블린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희곡 작품을 써서 에비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음)
그러나 내 꿈에 나타난 다른 한 친구는
주정뱅이에다 허영심 가득 찬 시정잡배 모습이었다.
그는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쁜 짓만 골라 했으므로
내 노래에서 빠뜨릴 수가 없다.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 소령을 가리킴. 예이츠가 평생 사랑했던 모드 곤의 남편으로서
술에 취하면 모드 곤을 때리기도 했음. 모드
곤과는 결국 결혼 2년 만인 1905년에 이혼함)
그러나 그도 희비(喜悲)가
교차되고 변덕이 심한 인생이라는 희극(喜劇)에서
자신이 하던 역할을 팽개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놀랍도록 훌륭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가 처형됨으로써 혁명에 불을 붙이게 되었음을 뜻함. 죽어야 부활할 수 있음을
암시함)
단 하나의 목적만을 지닌 가슴은
여름 겨울 내내 생동하는 흐름을 거스르는 돌이 된 것처럼 느낀다.
(독립만을 바랐던 사람들의 심정을 표현함.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여 가슴에 응어리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함)
길을 오가는 말, 말을 타고 가는 사람,
이 구름에서 저 구름으로 날아다니는 새들
그들 또한 모두 시시각각 바뀐다.
시냇물 위에 비친 그림자도 시시각각 변한다.
말발굽이 시냇물로 미끄러져 텀벙대는 소리를 내고 있다.
다리 긴 암 뇌조(雷鳥)가 자맥질을 하고 암놈은
수놈을 부르고 있다.
그들은 매 순간 살아 있지만
그들 모두의 한가운데 돌멩이가 자리 잡고 있다.
(예이츠가 여전히 모든 곤을 사모하고 있음을 말함. 사랑이 충만한 사람으로 새로이 태어나야 함을 말하기도 함)
너무 오랜 희생을 치러 가슴 속에 돌멩이가 생긴 것이리라.
아, 얼마나 희생을 더 치러야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는지…
(예이츠가 모드 곤과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음. 에고를 버리지 않으면 결코 부활할 수 없음을 뜻함)
그건 어디까지나 하늘의 일이므로,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어야 한다.
마치 거칠게 뛰어 놀던 개구쟁이들에게 마침내 잠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이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어야 한다.
잠이 찾아온 것은 땅거미 때문일까?
아니, 아니다. 밤이 아니라 죽음이 찾아 온
것이다.
(존 맥브라이드(John
MacBride) 소령의 죽음을 말함. 밤은 영혼의 어둠을 뜻하며 죽음은 부활의 전조를
뜻함.
부활하지 않으면 헛된 죽음을 맞게 됨을 뜻함)
결국엔 아무 쓸모 없는 죽음이 되고 말까?
왜냐하면 영국이 한
모든 행동과 말들에 대하여 신의를 지킬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1913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아일랜드 자치법(Home Rule Bill)을 상기시키는 말.
실제 영국은 의회 통과까지 거쳤지만 1914년
이 법을 유보하기로 결정하여
결국 더블린 봉기와 같은 비극을 부르게 되었음. 애타게
하느님을 찾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을 뜻함)
우리는 그들의 꿈을 안다.
그들이 꿈을 꾸었지만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지나치게 꿈을 사랑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당황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가리킴.
꿈은 에고를 버리지 못하고 환상에 빠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뜻하기도 함)
나는 그것을 시로 썼다.
맥도너(Macdonagh)와 맥브라이드(MacBride),
코놀리(Connolly)와 피어스(Pearse),
그들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초록이 시드는 곳 어디에서든
변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놀랍도록 아름다움이 태어날 것이다.
(코널리(James
Connolly, 1870-1916)는 부활절 봉기를 일으킬 당시 노조의 지도자로서
부활절 봉기의 사령관 역할을 했음. 언젠가는 아일랜드가 독립하여 광복을 찾을 것으로 생각함.
새로운 사람이 되면 빛 속에서 살게 됨을 노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