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仙女)와의 만남
양한림이 장생을 보낸 다음에 몹시 무료하나 구경할 흥취기 아직도 다하지 아니하였기에, 물줄기를 따라 동구로 들어가니 물과 돌이 깨끗하여 한 점의 티끌로 없으니 마음이 저절로 상쾌한지라 홀로 거니는데, 붉은 계수나무의 잎새 하나가 물 위에 떠 내려 오더라, 잎새에 글씨 두어 줄이 쓰였거늘 집어보니 한 수의 글이라, 하였으되,
신선 삽살개가 구름 밖에서 짖으니
알쾌라, 이는 양랑이 오는 도다.
양랑이 괴이쩍게 여기며 말하였다.
“이 산위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 글이 어떠한 사람의 지음일꼬?”
이어서 점차 들어가니 거의 칠팔 리는 갔는데 길이 험하더라, 이윽고 날이 저물어 밝은 달이 동녘 하늘에 오르기에, 달삧을 따라 수풀을 뚫고 시내를 건느니, 다만 놀란 새가 울고 슬픈 원숭이가 울 따름이요, 별은 높은 봉우리에 흔들리고, 이슬은 솔 가지에 내리니 밤이 깊어감을 알겠더라. 몹씨 당황하고 있을 때에 십여 세 난 푸른 옷의 계집아이가 냇가에서 옷을 빨다가, 한림으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나 가면 한편 소리쳐 아로기를,
“아씨, 낭군이 오시나이다.”
하기에, 한림이 듣고 괴이쩍게 여기며 다시 수십 보를 나아가니 산이 사면에 둘러 있고, 길이 막혔는데, 작은 정자가 물가에 날아갈 듯이 다가 서 있어 진실로 신선 사는 곳이겠더라.
한 여인이 달빛을 헤치고 벽도 나무아래 홀로 섰다가, 한량을 향해 허리 굽혀 절하고서 말하였다.
“양랑이 오시기가 어찌 이다지도 늦사오니까?”
한림이 크게 놀라며 자세히 살피니, 여인은 몸에 붉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는 비취녀를 꽂고, 허리에 백옥패를 비꼈으며 손에는 봉미선을 들었는데, 산뜻하고 시원스런 몸가짐이 속세 사람은 아니더라. 양한림이 황급히 대답하기를,
“서생은 어지러운 세계의 속인으로 그대와 더불어 달 아래에서 기약한 바 없거늘, 늦게 온다함은 어찌된 연고이뇨?”
하니 여인이 정자에 올라가 주인과 손이 자리를 잡자, 계집아이를 불러,
“낭군이 멀리서 오셨으므로 부린 빛이 보이니 약간의 다과를 올리도록 하라.”
하니 이윽고 구슬상에 진찬을 베풀고 백옥잔에 자하주를 내오니, 맛이 산뜻하여 향기가 무르녹아, 어느덧 한 잔에 취하는지라, 한림이 말하기를,
“ 이 산이 비록 높으나 하늘 아래 있거늘 선랑은 어찌하여 옥경의 짝을 떠나 속되이 예서 기거하시나이까?”
미인이 탄식하며 마지 않기를,
“옛날 일을 말씀드리오면 슬픔이 앞서나이다. 첨은 서왕모(선녀이름)의 시녀요. 낭군은 자미궁 선관이었사온데, 옥제께서 왕모께 잔치를 베푸시는 자리에 여러 선관이 모였는데, 낭군께서 우연히 첩을 보시고 선과를 던져 희롱하다가 잘못되어 중벌을 받아 귀양살이로 여기 있사오니다. 낭군은 이미 인간세계의 연기와 티끌에 가리어 능히 전생의 일을 생각해 내지 못하시거니와, 첩은 귀양기한이 이미 찼기 때문에 장차 요지로 돌아갈 터인즉, 낭군을 한 번 보고 잠시 옛정을 펴보고자하여 선관께 간청을 드려 기한을 물리고, 또 낭군이 이에 나오실 줄 미리 알고서 고대하였더니 이제 욕되이 오시니 옛 인연을 무던히 있겠나이다.”
이 때 계수나무 그림자는 바햐흐로 비끼고 은하수는 이미 기울어졌기에, 한림이 미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드니 바로 옛날에 유신과 완조가 천태산에 이르러 선녀와 더불어 인연을 맺음과 흡사하니, 꿈 같되 꿈이 아니요, 참일 같되 참일이 아니더라. 겨우 은근한 정을 다 풀때에 산새가 꽃가지에 지저귀고 동녘이 밝았는지라, 선녀가 먼저 일어나 한림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첩이 하늘에 오를 기한이 되어, 선관이 상제의 칙교를 받들고 깃발을 갖추어 소첩을 맞을 것이온데, 만일 낭께서 여기 계시온 줄 아오면, 피차에 다 죄를 입을 것이오니 낭군은 빨리 산을 내려가 몸을 피하소서, 낭군께서 만일 옛정을 잊지 아니하오면 다시 만나 뵐 날이 있사오리다.”
하고는 비단 수건에다 이별 시를 써서 한림에게 주니, 읊었으되,
서로 만날 제 꽃이 하늘에 가득하더니
서로 이별하매 꽃이 땅에 있더라
봄빛이 꿈 속 같으니
약수 천 리가 아득하도다
한림이 그 글을 보매 이별하는 회포가 너무도 서럽기에 소매 마구리를 찢어 회답하는 글 한 수를 써서 선녀에게 주니, 읊었으되,
하늘바람이 옥패를 보니
흰 구름이 어찌 그리 흩이는고
무산 다른 밤비에
바라건데 야왕의 옷을 적시라
선녀는 받들어 글을 보고 말하기를,
“아름다운 나무에 달이 숨고 계전(달 속에 궁전)에 서리가 날리는데, 구만 리 밖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오직 이 글 뿐이옵니다.”
하고는 이를 향주머니에 감추고, 거듭거듭 재촉하기를,
“때가 이미 다 되었으니, 낭군은 급히 떠나소서.”
한림이 손을 들어 눈을 씻고 몸 조심하라고 당부한 후에 작별하고 겨우 수풀 밖에 나와 정자를 돌아보니, 푸른나무는 첩첩하고 희구름은 자욱하여 마치 요지의 한 꿈을 깬 듯하기에, 별당에 돌아와 후회하기를,
“선녀의 귀양이 푸리는 기한이 지금이라 하였으니, 잠깐 산중에 몸을 숨기고 여러 선관들이 맞아가는 것을 보고 돌아와도 늦지 아니한데 내 어찌 조급히 내려왔을꼬?”
하고,한탄함을 마지 않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동자를 거느리고 다시 전일에 선녀를 만났던 곳을 찾아가니, 복사꽃은 웃는 듯 냇물은 우는 듯한데 빈 정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향기로운 티끌은 이미 고요하니, 난간에 의지하여 푸른하늘을 바라보고 색구름을 가리키며 탄식하기를,
“선랑이 저 구름을 타고 상제께 조회하겠거늘 바라본들 어찌 닿을 수 있으랴?”
이에 정자에서 내려와 눈물을 뿌리면서 홀로 지껄이기를,
“이 꽃만은 당연히 내 끝 없는 한을 알아주리라.”
하면서, 양한림은 섭섭히 돌아가더라.
첫댓글 다음이 기다려 집니다
언능 키보드를 두두려야 하는데 시간이 나질 않네요.
조만간 올릴께요.
죄송합니다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항상 좋은일 가득하시고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십시오.
久久自芬芳 오래도록 향기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