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돌아오다 / 김태희
- 태조어진 잠입취재
2010년 11월, 전주 경기전에서 망궐례가 재현되었다.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주년과 어진박물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전주MBC 라디오에서는 특집 다큐 <왕의 초상> 앵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지역문화 보전에 관심이 깊었던 취재자이자 제작자로서 태조 어진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다. 그랬다. 나는 서울로 떠나간 어진의 지역반환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참 취재에 열중하던 시기엔 틈만 나면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을 돌아다녔다. 지역문화계와 학계 지인들을 만나는 일에 시간을 쏟았다. 두터운 취재수첩은 빠르게 빼곡해졌다. 뭐랄까, 열정이랄까?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재미있었고, 사명감이 충만했다. 그 시절, 나는 자주 꿈속에서도 태조어진을 만나곤 했다.
2005년, 전북문화계에는 문화재 훼손에 빌미가 될 만한 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2000년 3월, 경기전에서 ‘분향례’라는 제사를 거행하던 중, 창호문을 넘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 일로 태조어진의 한 쪽 면이 훼손되었는데, 이 사실을 쉬쉬하며 숨기다가 5년이 지난 후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지역에서 600여년의 긴 세월을 지역민과 함께 한 태조어진은 서울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으로 떠나게 되었다. 지역문화계에서는 태조어진 관리 소홀에 대한 지적과 한숨소리가 날로 높아갔다. 어진 전주반환은 이제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깊어졌다.
나는 방송국 타이틀을 내걸고 당시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청장에게 ‘어진반환 무기한 연기’에 대해 인터뷰 요청을 줄기차게 했다. 그는 쉽게 만나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역문화계의 역사성, 그리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한다는 사명감이 솟아올랐다. 결국 우리 취재팀은 인터뷰를 계속 거부하는 유청장을 직접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다. 새해를 맞는 문화재청 공식행사인 ‘2006년 신년하례회’날을 D-day로 정했다. 새벽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올라갔다. 우리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당연히 행사장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우리가 택한 방법은 미리 들어가 숨어있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장에서 만나게 된 유청장은 우리 취재팀의 신분을 알자마자 남자화장실로 줄행랑을 쳤다. 취재팀이 따라 들어가고, 남자 화장실이라 나는 멈추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유청장이 도망쳤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당시 새로 지은 서울 고궁박물관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태조어진 진품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지역학계와 취재자였던 나는 그의 속마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안에서 “전주MBC 취재팀을 왜 들여보냈냐?”며 아랫사람을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팀을 밀치고, 소리치고 그런 아우성이 없었다. 10분 쯤 지났을까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는지 유청장이 보였다. 환희의 순간이었다.
“문화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더욱 그 가치가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나는 유청장에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후후 웃음이 나온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취재물은 3일 동안 전주MBC 뉴스데스크 기획시리즈물로 지역방송국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었다. 더 나아가 ‘어진 전주반환 서명운동’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연결되는 초석이 되기도 했다. 취재자로서의 진정 뿌듯한 순간이었다.
더불어 지역의 많은 취재진들의 땀방울과 시민운동이 모여 결국 태조어진 전주반환은 결정되었다. 그뿐인가, 태조어진은 국보로 승격되었고 전주한옥마을에 어진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어진박물관도 개관 했다. 무형문화유산 전주건립도 이때 성사되었다.
드디어 태조 어진은 2008년 가을, 전주로 돌아왔다. 그 안착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취재에 이어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라디오 다큐 <왕의 초상>은 지역에 탯자리를 둔 태조 이성계 어진의 떠남과 돌아옴의 과정을 엮은 3년여의(2006~2008) 기록이다. 태조어진 전주반환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2008년 12월 연말특집으로 방송된 바 있다. 게다가 2010년 전주봉안 600년을 맞이해 앵콜 방송까지 되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숨 막히고 초조했던 잠입취재였다. 그런데 다시 그 순간이 오면 내가 그렇게 소리칠 수 있을까? 현장을 떠난 지금도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날, 살면서 또 이런 치열함이 주는 기쁨을 느낄 날이 올까 싶다. 방송 일을 그만두고 퇴직을 한 지금 그 시절은 나에겐 늘 그리움이다.
얼마 전, 그리움을 달래가며 어진박물관을 둘러봤다. 증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찾아오는 이가 연간 80만여 명이 넘어 박물관을 넓혀야 한단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박물관은 내년 1월이면 새롭게 재개관한다고 한다.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자못 크다. 조선왕조의 본향이라는 자긍심을 불어넣어주는 태조어진이 앞으로도 전주시민의 품속에서 편안히 쉬길 고대한다.
* 망궐례- 궁궐이 멀리 있어서 직접 왕을 배알하지 못할 때,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행하는 유교의례.
[김태희]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 회, 리더스에세이 회원
김태희 님은 ‘전주MBC'에서 근무하셨고 지금은 퇴임한 분이죠. TV에서만 보다가, 문학행사에서 직접 뵈니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방송 제작도 하시고, 기사도 많이 쓰셨으니 수필 소재 또한 얼마나 풍성할까요? 선생님의 수고와 노력이 놀랍습니다. 그런 열정이 깃들어 ’태조어진‘이 국보로 승격되어 본향 전주로 제자리에 안착했습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아름다우신 선생님! 취재수첩에 빼곡할 숨은 얘기들 하나하나 수필로 탄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테마수필집> 출간도 참 좋겠습니다. 시간 내서 '어진박물관' 한번 다녀와야 겠네요. 여직 증축공사로 어수선할까요?
첫댓글 전주 이씨 후손으로서
수필가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박물관에 가서 어진이 여러 사본이 있는 걸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