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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3: 9. 당신의 옷자락
룻 3: 9. 당신의 옷자락 -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룻은 온유하고 순종적인 인품을 가진 자이었다.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이 ‘보아스의 여종’이라고 겸손히 말하며 자신이 찾아온 목적, 즉 그가 그들의 기업 무를 자가 되기를 요청하는 말을 했다.
1] 이르되, 네가 누구냐?
보아스는 발치의 여인을 확인하기 위하여 신원을 물었다.
* 마 25: 12 -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2]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 당신의 시녀
룻은 먼저 자신이 보아스의 시녀(종)라는 사실을 먼저 고백한다. 그리고 당신을 찾아온 모압 여인 룻이라는 신분까지 밝혀준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먼저 대답할 말이 이것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당신의 핏값으로 구속받은 아무개라고 대답하여야 한다.
이것은 묻는 자와 동등의 관계가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비천한 자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3]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표현을 룻이 보아스의 보호를 받기 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Matthew Henry, Hervey, Atkinson).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심 같이(2: 12 주석 참조), 룻은 보아스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으로 룻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길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후일에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
* 겔 16: 8 -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견지에서 여기 룻은 구혼(求婚)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말했다.
4]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 기업을 무를 자
이것을 히브리 원문대로 직역하면 '당신은 기업 무를 자이므로'가 된다. 즉 룻은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을 무를 자'(a kinsman-redeemer, NIV)이기 때문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도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에서도 이 법은 강제성을 띠지는 않았다.
* 신 25: 5-10 –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특히 '기업을 무르는 자'(고엘)는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수혼(嫂婚) 제도'(계대 결혼 제도, 1: 11 주석 참조)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보아스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고엘의 의무 외에 그녀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로 칭찬했다. (10절).
5] 용기있게 실천해야 한다. (6-9)
나오미는 오늘 밤 타작을 마치고 보아스가 잠을 잘 때 그의 눕는 곳을 알았다가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우라고 권면하였다. 이것은 여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겸손하게 맡긴다는 표시다.
이런 일은 여인으로서 행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요? 불안한 일이다. 자칫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확신을 가지고 권면했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라” 그는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주님께 당신을 맡기시기를 권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품 안에 당신의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생활에 풍파가 많은 분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품에」 자신을 맡기지 못한다.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에게 나의 몸과 마음을 다 맡긴다는 증표다.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라는 표시다. 신부가 신랑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맡길 때, 신랑은 강력한 보호의 의지가 샘솟는다.
어떤 부부들은 각기 주머니가 다르다. 남편 통장 따로, 아내 통장 따로 참 불행한 일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믿을 수 없는 사이는 이미 부부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시오. 시간도, 젊음도, 힘도, 재산도, 모든 것을 맡기면 예수님은 더욱 더 당신을 지켜 주실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 시간을 다 보내다가 세상에서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직장 생활에서 낙오되면, 장사가 잘 안되면 어떠하나, 염려하지 마시오.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면 어쩌나···, 룻은 어머니의 권고대로 자신을 맡겨버렸다. (6 절)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대로 다 하니라.’
(1) 거기 누웠더라(7)
보아스의 품에 당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맡기는 행위다. 룻은 이미 보아스를 사랑하므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는 의도였다. 여기에 참 쉼과 안정과 평화를 얻게 된다. 그리스도는 강하시다. 당신의 모든 삶의 문제의 해답을 다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에 누워 편안히 잠든 것 같이,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사이는 이렇게 사랑의 위탁 관계다.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어떤 일로 마음이 불안하다면, 기도를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에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회개하십시오. 당신은 주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일은 주님의 품에 눕는 시간이다. 특히 주일 예배는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시간이다. 부랴부랴, 허겁지겁, 이미 예배 시작 후, 준비되지 않고 맡기지 않은 마음은 찬송 소리는 장송곡으로 들릴 것이요. 설교는 공염불 소리로 들릴 것이다. 전혀 주님의 품에 안기지 않은 자세다. 이는 진정한 쉼의 예배가 아니다.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고,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다. 쉼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즐거워하고, 노동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예배를 지겨워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맡기고 ‘거기에’ 누워 있어야 한다. 「평화와 안식」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이 이 새해는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바란다.
(2) 당신의 옷자락으로 덮으소서 (9)
결혼을 원한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룻의 과감한 청혼은 참으로 놀랍다. 나오미가 룻을 위하여 구한 「안식할 곳」이란 남편과 함께 사는 가정, 즉 보아스와 결혼함으로 오는 안전함을 의미한다. 룻이 과감하게 청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① 보아스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할 때 결혼을 원한다. 그 결혼을 통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어한다. 아내의 헌신에 남편은 목숨을 걸고 보호해 준다. 그래서 여자는 행복하다. 룻은 보아스를 사랑하였고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었고 보호를 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결혼을 요청하였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자여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몸과 마음도 영혼까지도 심지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소유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드릴 수 있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뿐이다. 새해에는 우리 예수님을 끔찍이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② 기업을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
룻이 보아스에게 결혼을 요청한 것은 잃었던 기업을 되찾기 위해서다(9).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두 아들과 함께 모압에서 죽어 버렸으므로 그들은 기업을 잃어버렸다. 그 기업 즉 토지를 되찾으려면(무르려면), 반드시 엘리멜렉의 혈통을 가진 아들을 얻어야 했다. 그러므로 엘리멜렉 가문 중에 가장 가까운 보아스를 나오미는 택하였다.
보아스가 룻과 결혼을 해준다면 룻을 통하여 낳은 아이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상속받게 된다. 형제 중에 결혼을 해주어서 아이를 낳게 해주는 사람을 「기업 무를 자」라고 한다. (레 25: 24).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형제라 해도 기업을 무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내를 또 얻고 자식을 얻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토지를 죽은 자의 후사를 위하여 나누어주어야 하므로 「기업 무를 자」란 자신의 토지를 나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기업을 무를 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소식이다. 이제 기업이 있으면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지 않아도 농사를 짓고 안정된 안식의 생활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기」의 풍습은 신약의 진리로 재 해석이 되어야 한다.
(3)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기의 본질은 「잃었던 땅」을 되찾는 일이다.
인간의 진정한 땅은 하나님 나라의 땅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에덴동산의 땅을 죄와 사망으로 잃어버렸다. 영원한 기업을 잃었다. 그러므로 안식을 잃고 지옥으로 가야 했다.
안식의 땅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가 「기업 무르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나셨다. 그분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잃었던 기업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어 주셨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 영적인 결혼 관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합한 자는 새로 태어난 아들이 되어 천국의 땅, 기업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 요 1: 12-13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예수님과 결혼한 신부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거듭난 자(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 승천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요 14: 1-3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있으면 영원한 기업을 찾게 된다. 처소, 있을 곳을 얻는다. 천국에 내가 있을 땅, 영원한 기업이 있어야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 엡 1: 11 -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빚인 죗값을 탕감해 주어 마귀의 노예 된 상태에서 풀어 주시고 천국 기업을 회복시켜 되돌려 주는 일로서 토지 문서를 값없이 소유하게 하신 은혜,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함은 천국의 토지 문서를 획득했다는 말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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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