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조 흥 제
근래에 의학계에서 장기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환자를 존엄사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존엄사는 안락사(安樂死)의 높임말이다. 다시 말하면 가족의 동의를 얻어 의사가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이 많았다. 찬성하는 쪽은 식물인간을 언제까지 두느냐는 것이고, 반대하는 쪽은 산 목숨을 어떻게 임의로 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에 안락사를 시행하는 나라는 몇 안 된다. 우리나라도 반대해 오다가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어 ‘존엄사(尊嚴死)’라는 이름을 붙여 시행하기로 했다.
김지연 소설가협회장이 쓴 ‘명줄’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된 아버지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아들 3형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의사가 뇌사 판정을 내렸으니 깨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을 언제까지 두느냐면서 산소 호흡기를 떼자고 둘째와 셋째 아들이 주장하고, 큰 아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들의 말을 듣고 ‘나 안 죽었어.’하고 소리쳤지만 겉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결국 산소 호흡기를 떼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의사의 손이 가까이 오자 아버지는 소리소리 지르고 몸부림 쳤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13일 만에 죽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작가가 그런 작품을 상상만으로 쓰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영국에서 중환자실에서 20여년을 근무했던 간호사가 ‘임사체험(臨死體驗)’이라는 책을 냈다. 심장의 박동이 멈춰서 의사의 사망판정을 받은 환자가 깨어난 사람이 많다. 그들이 하는 말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 공중에서 의료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면으로 볼 때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것 같아도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애 엄마가 뇌혈관 경색으로 걸어서 병원에 들어 가 며칠 안 되어 수족이 뒤틀리고 말도 못해 중환자실로 옮겼다. 의사는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안 믿던 예수교를 믿으면서 다방면으로 회복되기를 바랐다. 병이 더 악화되지는 않아 일반실로 옮기고 간병사로 하여금 돌보게 했다. 환자가 말을 못하고 움직이지 않으니 의식이 없는 것 같았지만 목사님이 기도하고 아멘 하면 따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회복되지 않아 6개 월 만에 퇴원하여 집에서 침을 맞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간병사를 바꾸려고 내 보냈더니 그 이튿날 운명했다.
나도 집 사람이 앓았던 뇌경색에 걸렸다. 10여 년 전 사회생활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9시에 가서 6시에 퇴근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내 몸은 학생 때가 아니었다. 며칠 안 되어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이 아파 동네 병원에서 MRI를 찍었더니 뇌혈관 경색이라고 했다. 깜짝 놀라 그 사진을 가지고 보라매 병원에 갔더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가 아플 때가 많고 가끔 손에 마비가 온다. 몇 년 전 한국문인 세미나가 문경에서 개최될 때 갔었는데 손에 마비가 심해서 중도에서 상경하여 응급실로 간 때도 있었다.
오복 중에 하나는 죽을 복이다. 이상적인 죽음을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했다. 하늘이 주신 명대로 살고 집에서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일주일만 앓고 죽었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척추암으로 10년 동안 땅을 못 밟아 보고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병 수발을 하셔서 괜찮았지만 집 사람이 없는 내가 오래 병석에 누워 있으면 직장 생활하는 아이들이 좋아하겠는가. 또 걱정되는 것은 치매다. 밖에 나갔다가 집을 못 찾아오면 어쩌나. 그런 사람은 가족들이 주소를 적은 목걸이를 걸어 주는데 불편하다고 떼어 버린단다. 하루 이틀 아니고 가족들이 그 꼴을 어떻게 보나. 그렇게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니 내게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실 때도 오래 고생시키지 않으시기를 기도드린다. 혹자는 자다가 죽는 게 복이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서운하다.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여 자식들의 병구완도 받아 보고 아쉬워 할 때 떠나야 대우 받는 죽음이다.
또 한 가지는 후회될 일을 털고 가야 한다.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지었던 모든 죄를 갚을 수 있는 것은 갚고, 못 갚을 것은 용서를 비는 것이다. 모르고 지은 죄도 생각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리고 싶다.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중학생 때 사촌형과 같이 시장에 갔다가 형이 리어카 장수와 이야기하는 동안 주인이 나를 안 볼 때 평소에 갖고 싶던 손바닥 만 한 수첩을 잽싸게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불룩했다. 주인이 돌아서서 뺨따귀를 후려칠 것 같았다. 형에게 빨리 가자고 해도 말을 안 들어 그 몇 분 동안이 엄청 길었다. 또 한 번은 논산훈련소 훈련병 때 수건을 잃어버려 다른 막사 밖에 널어놓은 것을 들고 왔다. 그 외에 남의 물건을 훔친 기억은 없다. 그걸 가지고 도적질이라고 하기엔 억울하지만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깨끗한 영혼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가족들을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재난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가게 해 주시고, 하는 일 잘되게 해 주시고, 그들이 살아 갈 대한민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사 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신세 진 사람을 위해서, 동기간을 위해서, 일가친척을 위해서, 친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싶다. 내가 80평생을 무사히 살아 온 것은 그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니 얼마나 고마운가. 어머니께 가장 잘못했지만 이미 하나님 곁으로 가셨으니 어머님 영혼을 잘 보살펴 주시어 평안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몹쓸 병에 걸려 의식불명 상태로 보름 이상 계속되면 존엄사 시키라는 유언을 남겨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