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 음료에는 더운 차보다는 차가운 음료가 훨씬 많다. 우선 과일즙이나 꿀물, 오미자 물에 건지를 띄운 화채가 있고, 둘째로 쌀밥을 엿기름물에 당화시킨 식혜, 셋째로 쌀이나 곡물을 쪄서 말려 볶은 가루를 꿀물에 타서 마시는 미숫가루, 넷째는 생강이나 계피 또는 한약재를 달여서 단맛을 낸 수정과류, 다섯째로 꿀물에 떡을 띄운 수단이나 원소병 등이 있다.
화채는 국물 맛에 따라 크게 오미자화채, 꿀물화채, 한방 약재로 만든 화채, 과실만으로 만든 화채로 나눌 수 있다. 차게 해서 마시지만 계절에 관계 없이 늘 즐기는 음료이다.
우리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할 때 으레 후식으로 수정과나 식혜를 낸다. 정월이나 추석에는 식혜와 수정과를 많이 만들지만 꽃과 과일이 흔한 봄철과 여름철에는 이것으로 화채를 만들어 계절의 풍류를 즐긴다. 화채에 꽃을 띄울 때는 마른 녹말을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얼른 헹군다. 화채에 건지를 띄우면 계절감도 살리고 영양도 보충해 준다. 물을 너무 급하게 마시면 체할 수 있어 그것을 막는 구실도 한다. 시골길을 가던 선비가 우물가에서 물 한 바가지를 청하면 버드나무 잎을 띄워 주던 마음과 같은 것이다.
한여름 화채로는 과일 화채인 수박화채가 더위를 쫓는 데 으뜸이다. 수박을 우물에 담가 놓았다가 반으로 갈라서 숟가락으로 동글동글하게 떠 내어 얼음을 넣고 차게 만든다. 그 밖의 과일 화채로 딸기화채, 복숭아화채, 유자화채가 있다. 과일 화채는 과일을 갈아 즙을 낸 것에 제 과일을 건지로 띄워야 한다. 설탕물만으로는 과일의 맛이 제대로 안 난다.
우리나라의 청량음료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처음 나온다. 김유신 장군이 출정하면서 집 앞을 지나갈 때 장수(漿水)를 떠오라고 했다. 이를 마시더니 “우리 집 물맛이 전과 다르지 않으니 집안이 평안한 게로구나.” 하고 출정하였다고 한다. 장수란 곡물을 젖산 발효시켜서 맑은 물에 넣어 만든 음료로 삼국 시대에 민가에서 만들어 마셨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듯하다. 『삼국유사』에는 “수로왕이 왕후를 맞이할 때 함께 온 신하와 노비에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로 만든 술을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난초로 만든 마실 것은 난 향이 나는 음료일 것이고, 혜초는 난초에 속하는 풀로 향이 좋다. 중국 문헌에는 “신라에서는 박하 잎을 말려 차로 마신다”, “고려에서 나는 오미자가 살도 많고 시고 달아 품질이 매우 좋다”고 씌어 있다.
고려 시대는 차 문화의 전성기로 상류층은 물론 서민 사이에서도 음차 풍습이 널리 퍼졌다. 『동의보감』에는 향약이성(鄕藥餌性) 재료를 이용한 생맥산, 사물탕, 쌍화탕, 제호탕 등의 보양 음료가 나온다. 1800년대의 『임원십육지』에는 곡물을 젖산 발효시킨 것, 향약이성 재료에 꿀이나 설탕 등의 감미료를 넣고 끓인 것, 한약재나 과일즙을 농축시킨 것, 두즙(豆汁)이나 누룩을 넣고 꿀과 함께 달여 마시는 장(漿), 갈수(渴水), 숙수(熟水) 등으로 나뉘어 나온다.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에 장미, 앵두, 산딸기, 복숭아 등 많은 종류의 화채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조 후기에 일반 서민도 화채를 널리 마셨음을 알 수 있다. 궁중의 잔치 기록인 『진찬의궤』와 『진작의궤』에는 세면, 수면, 청면, 화면, 수단, 수정과, 가련수정과, 화채, 이숙, 밀수, 상설고 등의 열한 가지 화채가 나오고, 그 밖의 옛 음식책에 소개된 음료는 제호탕, 원소병, 찹쌀미수, 송화밀수, 식혜, 복숭아화채, 외화채, 향설고, 유자청, 오미자고, 감주, 보리수단 등 그 종류가 매우 많다.
다섯 가지 맛의 오미자화채
화채의 국물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오미자국이다. 새콤달콤한 오미자에 봄에는 두견화, 여름에는 보리·앵두·장미꽃을, 가을에는 배를 띄우고, 꽃이나 과일이 흔치 않은 겨울에는 녹말 국수를 가늘게 하여 띄우는데 이를 화면(花麵) 또는 창면(暢麵)이라 하였다.
오미자(五味子)는 낙엽 활엽수로 덩쿨성의 여러해살이풀이며 산기슭의 비탈진 곳에서 많이 자란다. 6~7월에 향기가 좋은 홍백색의 꽃이 피며 진분홍색의 동그란 열매가 이삭 모양으로 아래로 늘어져 달린다. 오미자의 열매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五味(오미))을 지녔다. 과육에는 사과산, 주석산 등의 유기산이 들어 있어 신맛이 강하다. 오미자는 갈증 해소와 피로 회복에 효과가 있어 기력 보강제, 자양 강장제로 쓰인다.
오미자를 물에 담가 붉게 우려낸 오미자국은 화채나 녹말편을 만드는데 쓰인다. 오미자의 4~5배 정도의 찬물에 불려서 고운 행주에 거른 다음 물을 더 보태어 색과 맛을 맞추는데 단맛은 설탕이나 꿀로 맞춘다. 오미자는 더운물에 불리거나 끓이면 떫은 맛과 신맛이 강해지므로 찬물에 하루 정도 서서히 우리는 것이 좋다. 한약재상에서 구입하되 묵은 것을 사지 말고 만져 보아 끈끈하고 밝은 붉은색으로 고른다.
오미자국에 배를 골패쪽 또는 꽃 모양으로 썰어서 건지로 띄운 것이 배화채이다. 『시의전서』에서는 “좋은 배를 껍질을 벗겨서 골패 모양으로 얇게 착착 썰어 오미자국에 화청(和淸)하여 잣을 띄운다”고 하였다.
봄철에는 꽃술을 뺀 진달래에 녹말을 묻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띄우면 보기 좋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두견화채(花麪(화면), 杜鵑花菜)’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따서 꽃술은 빼내고 잠깐 씻어 물을 뺀 후에 꿀에 재운다. 녹말을 씌워 잠깐 데쳐 내어 오미자국에 화청하여 넣으면 맛도 신선하고 빛깔도 아름답다. 철쭉꽃은 독하여 먹지 못하고 진달래가 무독하다”고 하였다.
여름철에는 식용 노란 장미를 띄운다. 『시의전서』에서는 “장미 꽃송이를 깨끗이 씻어 녹말가루를 묻힌다. 물이 팔팔 끓을 때 넣고 살짝 삶아 건져서 냉수에 씻어 내어 오미자국에 화청하여 넣고 잣을 띄운다”고 하였다. 건지가 마땅치 않을 때는 녹두 녹말을 풀어서 쟁반에 얇게 부어 끓는 물에 띄운다. 말갛게 익으면 건져 가늘게 채썰어 띄운다. 이를 『음식디미방』에서는 ‘싀면’, 『주방문』에서는 ‘착면, 일명 토장’, 『임원십육지』에서는 ‘창면(暢麵)’, 『동국세시기』에서는 ‘화면(花麵)’이라 하였다.
새콤달콤한 유자화채
늦가을에는 유자화채가 제맛이 난다. 향도 아주 좋고 시원한 배가 잘 어울리며 보석처럼 예쁜 석류알을 띄우면 색도 곱고 아주 달콤하다. 유자화채를 만들려면 유자 껍질을 사등분하여 속을 다치지 않게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는 한 조각씩 떼어 흰 줄기를 떼어 내고 씨를 빼서 그릇에 한데 모은다. 유자 껍질을 한 조각씩 도마에 놓고 안쪽 흰 부분은 얇게 저며 내고 노란 부분은 가늘게 채친다. 배는 껍질을 벗겨서 얇게 저며 곱게 채친다. 물과 설탕을 한데 끓여서 차게 식혀 놓고 유자 속을 깨끗한 행주에 싸서 즙을 짜 내어 설탕물에 섞는다. 또는 먼저 씨를 뺀 알맹이를 설탕에 버무려 큰 화채 그릇에 담는다. 그릇에 채썬 유자와 배를 번갈아 나누어 담고 설탕물을 가만히 부어서 뚜껑을 덮어 두어 유자향이 설탕물에 우러나도록 한다. 석류알과 잣을 띄워서 국자로 저어 작은 그릇에 담아 먹는다.
그 밖의 화채
이외에 옛날 음식책에 나오는 화채에 순채(蓴菜), 왜감자(倭柑子), 복분자(覆盆子), 산사(山査), 가련(假蓮), 두충(杜冲) 등이 쓰였다. 『시의전서』에는 “순채는 꼭지를 따고 씻어 녹말을 묻혀서 장미화채처럼 만든다. 순채는 여주 구영능못과 제천 의림지못과 창간 읍내에 있다”고 나오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소량만 병조림하여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왜감자는 운향과의 나무 열매로 귤보다 작고 껍질이 아주 얇으며, 속의 살은 엷은 황색으로 신맛은 적으나 담백하다. 복분자는 장미과로 5~6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7~8월에 검붉게 익으며, 고무딸기 또는 멍석딸기라고 한다. 산사는 능금나뭇과의 작은 낙엽 활엽 교목으로 흰 꽃이 피고 작고 둥글며 빨간 빛깔의 열매를 맺는데 맛이 시다. 가련은 3~4월에 새싹이 나오는 연꽃의 속잎을 말하는데 얇은 껍질을 벗겨 만든다.
한편 『시의전서』의 ‘수정과부’에서는 지금 흔히 해 먹는 곶감수정과만이 아니라 배숙, 장미화채, 순채화채, 배화채, 앵두화채, 복분자화채, 복숭아화채, 밀수, 수단, 보리수단, 식혜 등 각종 화채와 음청류를 모두 수정과라고 분류하였다.
조리법
꽃과 과일이 흔한 봄과 여름에 손님을 대접할 때 후식으로 내는 음식이다.
유자화채
유자화채
재료(4인분)
유자 1개, 배 1개, 석류알 2큰술, 잣 1큰술
(가) 설탕 1½컵, 더운물 5컵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유자는 껍질을 4등분하여 속을 다치지 않게 껍질을 벗기고, 속은 알맹이를 한 조각씩 떼어 흰 줄기를 떼어 내고 씨를 빼서 그릇에 한데 모은다.
2. 유자 껍질을 한 조각씩 도마에 놓고 안쪽의 흰 부분은 얇게 저미고 노란 부분은 가늘게 채썬다.
3. 배는 껍질을 벗겨서 가늘게 채썬다.
4. (가)의 더운물에 설탕을 잘 녹인 다음 차게 식힌다.
5. 유자의 속은 깨끗한 행주에 싸서 즙을 짜 설탕물에 섞는다.
6. 큰 화채 그릇에 채썬 유자와 배를 세 군데로 갈라 담고, 설탕물을 부어서 30분 정도 랩지로 덮어 두어 유자 향이 설탕물에 우러나게 해 석류알과 잣을 띄운다.
진달래화채
진달래화채
재료(4인분)
오미자 ½컵, 물 2컵, 진달래 꽃 20송이, 녹두녹말가루 2큰술, 잣 1작은술
(가) 설탕 1컵, 물 3컵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오미자는 물에 씻어서 찬물 2컵을 부어서 하룻밤을 우려내어 고운 체에 거른다.
2. (가)의 설탕과 물에 끓여서 차게 식혀서 오미자를 우려낸 물과 합한다.
오미자는 더운물에 끓이면 한약 냄새가 많이 나고 신맛이 강해지므로 찬물에 우려내도록 한다.
3. 진달래꽃의 꽃받침을 떼고 꽃술을 뽑아 내고 물에 깨끗이 씻어서 마른 행주에 놓아 물기를 없앤다.
4. 냄비에 물을 올려서 팔팔 끓으면 진달래꽃에 녹두녹말가루를 묻혀서 살짝 데쳐내어 바로 찬물에 헹군다.
5. 준비한 오미자국에 데친 진달래꽃을 띄우고 잣알을 고루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