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포은대로 125(상현동 산 55-1)
인물 : 조광조(趙光祖, 1482, 8, 23~1520, 1, 10)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학자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유승조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사림파의 정계 진출을 확립하였다.
중종의 훈구파 견제 정책에 의해 후원을 받아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언관 활동을 하였고, 성리학 이론서 보급과 소격서 철폐 등을 단행하였다. 성리학적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 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한다. 1519 반정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궁인들에 의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역모로 몰려 전라남도 화순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다. 후에 기묘명현 중 한 사람이다. 개혁 정책을 펼치다가 희생된 개혁가라는 시각과 급진적이고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양립하고 있다. 관직은 가선대부 사헌부대사헌겸 동지경연성균관사에 이르렀고, 사후 인종 때 복관되고 명종 때에 몇 번의 논란이 일다가 선조 초에 기대승 등의 상소로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다.(위키백과 발췌)
▼ 서울.경기지역방 답산, 선답차 말로만 듣던 정암 조광조선생님 묘역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서울 경기도 인접 지역은 도심이 발달을 하면서 내룡과 사세(四勢)가 파괴가 돼서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곳이 많습니다.
아래의 위성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암 조광조선생님의 묘역 주변도 개발이 이루어져 주변의 사격을 짐작할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 묘지 뒤편에서 기복(起伏)없이 위이(逶迤)만 하면서 힘차게 앞으로 진출하던 용맥이 정암선생님 묘지 뒤편에서 개장천심(開帳穿心)한 후 짧게 뻗은 중출맥에 정암선생님의 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고, 개장한 양각(兩脚)은 중출맥이 뻗어 내리는 곳 쪽으로 좌우선(左右旋)하면서 뻗어 내리고 있습니다.
▼ 이런 곳에서 정암선생님 묘지가 있는 부분으로 뻗어 내리는 중출맥에 혈이 맺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우선 아래의 사진에 녹색점선으로 표시한 바와 같이 양각(兩脚)과 중출맥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범위를 추정해봤을 때 정암선생님의 묘지가 있는 부분이 생기가 뭉쳐서 혈이 맺혀 이루어진 혈장(穴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면이 넓게 펼쳐져 있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이때 혼돈하지 말아야 할것이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육안으로 봤을 때 붙어 있기 때문에 한 덩어리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장 후에 좌우로 뻗은 양각(兩脚)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범위와 중출맥(中出脈)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미치는 범위의 사이가 됨으로 이곳은 물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개장한 후에 좌측으로 뻗어 내리는 사(砂)와 개장한 후에 가운데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가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에 빨간색 점선으로 표시한 B부분이 마치 한 덩어리 같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잘 살펴서 중출맥이 독자적으로 혈장을 형성을 했는지 여부를 판단을 해야 합니다.
▼ 묘지 정면......
▼ 정암선생님 묘지 뒤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정암선생님 묘지 주변이 한창 개발이 이루어져 사격이 손상을 입어 그 원형을 정확히 살필 수 없다고는 하지만, 현재 묘지 주변 형세를 살펴보면 가까운 곳 좌우측에 용호사가 발달하여 정암선생님의 묘지가 있는 곳을 감싸는 사격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보국을 이뤄서 장풍(藏風)이 이루어진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암선생님 묘지 뒤편에서 개장(開帳)한 양각(兩脚)이 천심(穿心)한 중출맥(中出脈)을 포근하게 감싸는 형상이 되어야 하는데, 아래의 사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좌측으로 뻗어 내려간 사(砂)는 묘지가 있는 곳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좌청룡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 정암선생님의 묘지 뒤편에서 개장한 후에 묘지 오른쪽으로도 뻗어 내려간 사(砂)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묘지가 있는 곳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우백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와 같이 살펴봤을 때 정암선생님의 묘지는 뒤편에서 개장한 양각(兩脚)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개장한 후 뻗어 내린 양각(兩脚)의 윗쪽에 들려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좌우로 뻗은 양각(兩脚)이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또한 주변의 사격(砂格)이 멀기 때문에 장풍(藏風)이 전혀 안 되는 곳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정암선생님의 묘지가 있는 곳은 생기가 머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함으로서 혈을 맺기에는 무리가 있는 자리로 보입니다.
첫댓글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잘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좋은자료 오늘도 감사드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
_()_ 고맙습니다.
자세한설명 고맙습니다.
잘 봅니다. 답산 때 눈여겨 살펴보아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답산기로 소개를 하는 곳은 이번 답산지에서 빠진 곳입니다.
명당만 엄선을 해서 보여드릴려고 준비를 해 둿습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감사히 잘 봅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개장한 후의 사와 중출맥 사이가 가까워 물길이 용맥의 면으로 보일 수 있음을 여러 자리를 들어 알려주셔 잘 배우고 있습니다.
선생님 잘배웟씁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네에 도심은 어디나 개발의 피해가 있군요
잘보고 감니다
공부 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