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때 재능 발견… "내가 못 이룬 꿈 실현"
배운지 2년만에 각종대회 석권
위기몰리면 "질수도 있다" 격려… 그때마다 기적 같은 역전 성공
1988년 12월 4일. 김인순(42)씨는 서울 안암동에 있었던 대우증권 탁구실업팀 숙소에서 짐을 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부터 4년을 머무른 곳이었다. 84년도 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식 2위를 차지하고, 86년 탁구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던 그녀였지만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느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해왔던 탁구를, 그녀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때 이후로 라켓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1년 뒤인 2009년. 김씨의 딸은 '탁구 신동'이라 불리며 승승장구, 2009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15세의 나이에 탁구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뿐 아니라 국제탁구연맹 카데트 챌린지 단식 우승, 코리아오픈 U-21 단식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쓴 것. 딸의 이름은 양하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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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4일 탁구선수 양하은 양이 부천 중원고등학교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어머니 김인순씨와 함께 자세를 교정하며 연습을 하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양양이 경기에 나설 때마다 코치석에서 늘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어머니 김씨다. 딸의 재능이 어머니가 미련 없이 버렸던 라켓을 다시 잡도록 만들었다.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다. 어머니의 꿈은 그렇게 이어졌다.
◆나무 장판 깔고 연습
양양이 탁구를 시작한 것은 1999년, 여섯 살 때다. 당시 김씨는 경기도 군포시 궁내동사무소에서 탁구교실을 열고 있었다. 그녀의 과거 '명성'을 알았던 한 동네주민의 권유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김씨는 양양과 언니 양하나(18) 양을 데리고 탁구대 앞에 세웠다. 양양은 탁구대보다 키가 작았다. 아래에 나무 장판을 깔고 연습을 시작했다.
김씨는 두 딸을 하루 한 시간씩 가르쳤다. 언니는 연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1년 만에 그만뒀다. 양양은 달랐다. 양양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2000년, 김씨는 양양의 연습량을 네 시간으로 늘렸다. 김씨의 직감이 스스로에게 "이 아이는 키우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내내 1등
양양의 첫 대회기록은 2000년 꿈나무탁구대회에서다. 1학년부 1등을 했다. 그때부터 학년 대회는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4학년 때 4~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아시아 호프스 선발전에서 3등을, 5학년 때 종별 선수권 대회 3등을 한 걸 제외하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대회에서 1등했다. 자연히, 주변사람들의 시샘을 불러일으켰다. 양양이 시합에 나서면 관중석에서 "양하은 져라, 져라"란 말이 흘러나왔다.
양양이 3학년이 되던 2002년, 김씨는 양양을 데리고 천안 성안초등학교 남자탁구팀을 찾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수비탁구를 가르치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양양이 잘하는 만큼 시기와 질투가 커 여자 탁구팀은 갈 데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처음에 5점을 미리 받고 시작했던 양양은 1년 뒤 동일한 조건에서 남자 탁구선수들과 대결했다. 그러고도 막상막하였다. 성안초 남자탁구팀 선수들이 혀를 내둘렀다. 중 1때, 양양은 대한항공 실업팀 선수들과 함께 연습하기 시작했다.
◆'역전의 명수'가 된 이유
양양에겐 '탁구천재' 이외에도 별명이 하나 있다. '역전의 명수'다. 지난 7월 열린 제15회 아시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 카뎃부 4강. 태국 선수와 맞붙은 양양은 세트스코어 3:1로 지고 있었다. 태국 선수가 이기면 마지막이 될 세트에서도 4:1로 뒤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양양은 연이어 세 세트를 이기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코리아오픈 U-21 대회에서 양양은 8강에서 맞붙은 선배 박영숙(한국마사회) 선수에게 10대7로 지다가 역전승했다.
양양이 '역전의 명수'가 된 데엔 어머니 김씨의 덕이 컸다.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양양의 코치 역할을 한 김씨는 눈빛만 봐도 양양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양양이 불안해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김씨는 '타임'을 외쳤다. 그리고 양양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신이야? 질 수도 있으니까 마음을 비워." 이때마다 양양은 여지없이 그 경기를 이겼다.
양양의 승승장구에는 아버지 양인선씨의 도움도 크다. 양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양양의 '매니저'를 자청했다. 양양이 상대할 선수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캠코더로 찍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러나 정작 양양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본 적은 없다. 어머니 김씨가 말했다. "떨려서 볼 수가 없대요. 결과가 나온 뒤에야 집에서 비디오로 돌려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