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장성인지 고창인지는 불분명하다. 수량동 고개를 사이에 두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장성이며 고창이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내 디디면 또 고창이며 장성이다. 장성금곡영화마을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길 옆으로 대나무 숲이 나온다. 그 맞은편에는 길을 묻는 나그네에게 꽃잎 띄운 물 한 사발을 건넬 것 같은, 한 채의 집이 오롯이 등장한다. 이 집의 이름은 ‘세심원’,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일게다. 세심원에서 몇 발자국 더 오르면 오래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곳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막’이 있던 자리에 닿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주모가 그렇게 미인이었다고 한다. 불현 듯,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모와 막걸리를 털어 마시며 농을 치는 사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지금 대낮에 꿈을 꾸는 것일까. 한참을 주막이 있던 자리에 머물렀다. 이 고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스치고 한 잔의 술을 기울였을까. 뭔지 모를 애환이 서려있을 그 자리에 있으려니 길을 재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고개를 넘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는 이상하게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연기에서 나무 타는 냄새가 난다. 반사적으로 이끌려 들어간 곳. 여기가 바로 축령산 ‘휴림’이다. 혼자 오면 더 좋은 곳 “머피의 법칙이 99.9% 통용되는 것이 음식점이여. 가격만 높고 낮을 뿐이지 어딜 가도 똑같애. 마음으로 담은 음식이 없어. 나는 뭐든지 내가 해. 집 짓는 것, 장 담는 것, 술 담는 것, 차 만드는 것, 식초 등 남한테 시키질 안 해. 해야 할 것이 많아. 뭐든지 내가 하게 되면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에너지가 나와. 남 시키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훨씬 쉬워. 내가 총사령관이야.” 청담선생은 세심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에서의 10년이 ‘휴림’을 짓게 된 원동력이다. 세심원 안마당에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한 가득이다. 빛을 받아 윤기가 흐르는 장독대는 노루가 닦아주고 갔다고 한다. 사람손이 아닌 노루가 내려와서 닦아주었다니, 장맛에는 분명 노루의 노고도 들어있으리라. 세심원에서 한참을 머물다 다시 ‘휴림’으로 돌아왔다. ‘휴림’의 이곳저곳을 돌며 청담선생은 이야길 계속 했다. ‘휴림’은 축령산에 있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황토로만 지어졌다. ‘휴림’은 ‘나를 보는 곳’이란다. 그래서 혼자 오면 더 좋은 곳이다. “애초에 나를 보는 집으로 생각하고 지은거야. 사람은 세 번 변한다고 해. 특히 죽음의 문턱에서 변해. 나의 그림자를 볼 줄 알아야 해. 나를 봐야재. 그래서 혼자 오는 집으로 만들었어.” ‘휴림’은 지어진 지 7년째다. 청담선생의 말을 빌자면 이곳의 경치는 사계절 내내 죽여 분단다. ‘휴림’은 총 6채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이유는 그냥 자연스럽게 짓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한 채는 사랑채로 이곳에선 식사와 차, 음악, 그림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턴테이블과 휴대폰 말고는 문명의 기기가 눈에 띠지 않는다. 턴테이블이라니, 요즘 세대에겐 낯선 기기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아날로그 시절의 눈깔사탕 같은 달달한 물건이다 “기다림은 좋은 단어야” 청담 선생은 꽃만 봐도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른다면서 사랑채로 안내했다. “보시 중에 차 보시가 최고여. 기다림을 알아야 해. 이 차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생각혀 봐.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있나. 기다림은 좋은 단어야.” 휴림은 단체 손님은 받지 않는다. 많이 받아야 8명 정도다. 저녁 있는 삶, 삶에 여백이 있어야 된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휴림’은 여백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집이다. ‘휴림’은 구들방이다. 공사를 하고 남은 자재인 편백과 삼나무로 불을 때는데 ‘이 정도 장작이면 사람이 따뜻하게 자겠구나’를 생각하면서 불을 지핀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이란다. 청담 선생은 다른 탁자에 놓여있는 재떨이를 가리켰다. 백자의 재떨이엔 매화 한 줄기가 함초롬히 꽂혀 있었다. 담뱃재를 털면 재떨이고 꽃을 꽂으면 화병이 된다. 행복이 소소한 것에 있다면 아름다움은 소소한 것에서 발견된다. 새가 자기 집인양 쉬었다 갈 수 있는 집 청담 선생은 꼭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고 했다. 영어로 하면 ‘오버이트 에코 빌리지 overeat eco village’란다. 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우리나라엔 토할 장소가 없다고. 다들 병원에서 죽어버린다고. 나를 돌아보고 토해 낼 수 있는 ‘숲속의 오두막 빌리지’를 꼭 만들고 싶다는 염원이 이루어지길 나 역시 간절히 바랐다.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쯤이었는데, 어느새 밤하늘에 별이 한 가득이다. 청담 선생의 말을 빌자면 눈이 시끄러우면 좋은 집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너무 눈이 시끄러운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다. 해가 뜨면 숲이 보이고, 꽃이, 나비가, 새들이, 해가지면 별과 달빛이 전부인 여기에서 나는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시끄러움도 달래고 싶었다. 살다보면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 ‘휴림’이 그런 곳이었다. 서울에서 3시간 넘게 달려 도착 한 곳에서 ‘집’을 만났고, ‘사람’을 만났고, ‘자연이 준 밥상’을 만났다. 하루가 무척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