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
사도들의 노고
당시 사도들은 해 질 때까지 쉴틈 없이 일하며 수 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말씀을 불어 넣었습
니다. 세상 종말의 때에 교회의 교사들도 먼저 병든 이스라엘에게, 그 다음에는 다른 민족들의
세계에 복음을 선포 합니다. 그들은 집주인이 오후 세 시와 오후 다섯 시에 포도원으로 불러온
일꾼들(마태 20,5-6 창조)입니다.
•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3,1
3,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믿음이 없어 불구자인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강생하셨을 때 뿐아니라 옛날에 율법이 주어졌을 때부터 완고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천사와 싸
워서 축복을 받았지만 몸을 다친 일(창세 32,24-29참조)에서 잘 예표되었습니다.
이 백성도 수난 당하시는주님을 이겼을 때, [그들중] 일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축복받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불신앙으로 인해 불구가 되었습니다.
•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3,2A
아름다운 문
성전의 아름다운 문은 주님이십니다. 그분을 통해 들어가는 이는 누구나 구원 받을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쇠약한 이스라엘을 데려 왔습니다. 장차 듣게 될 믿음의 지혜가 있는 내부로 들어가는 이
들에게 그들이 도움을 청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는 이들은 말
하자면 문 앞에서 듣는 이들입니다. 베드로는 성전 안으로 인도하는 안내자 입니다.
그의 진실한 신앙 고백은
그에게 ‘반석’ 이라는 별명과 하늘 나라의 열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마태 16,16-19).
•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3,2B
예언자 들에게 들려 성전 문 곁에 온 불구자 이스라엘
남의 손에 들려 아름다운 문 곁에 온 쇠약한 인간.
문에 더 가까이 갈 힘도, 문턱을 만질 힘도 없는 불쌍한 인간.
그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의 죄 .
마음이 불구인 이스라엘을 짊어지고,
그 이름으로 예수님을 뜻하는 ‘아름다운 문’(시 편 45 ,3 참조)[이라 불리는 곳]으로
데려다 놓으려 애쓰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사야, 다니엘, 그리고 이들처럼 비밀스러운 [말]로
그리스도의 분명한 기적들을
예언자의 목소리로 선포 하는 이들이라네.
문이라 불리는 분께서 경고 하신다.
“나는 너희의 문이다.
양우리에 들어 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 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요한10,1 참조) .
• 아라토르 「사도행전」 l
3,3 그가 자선을 청하다
가난은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 하였다”
그 말을 듣고도 그 남자의 생각은 고양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이 가난입니다.
가난은 남의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게 만듭니다.
기도 중에
딴 데로 마음을 돌리는
우리는
이를 보고 부끄러워 해야 할 것입니다.
·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
3,4 베드로가 그를 유심히 바라보다
불구자의 믿음
그러자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그 남자를 본척만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유한 환자를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잘난 사람한테 이루어지는 기적이라야 위대한 일인 것이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남자에게 보수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치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전 안이 아니라 입구에 있지요.
베드로는 어떤 대가도, 사람들이 봐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안에 들어가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이 그 불구자로 하여금 청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그가 그다지도 쉽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오래 앓다 나은 사람은 대개 좀처럼 자기 눈을 믿지 못합니다.
이 불구자는 치유를 받고 나서,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며 사도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기뻐서이기도 하고, 유대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의 치유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껑충껑충 뒤었습니다.
진짜로 치유되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은 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예전에 배가 너무 고파 뭐라도 해야 했을 때도
걷지조차 못했던 (그가 거동을 할 수 있었다면 동냥 받은 것을 들것을 들어다 주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더 움직이기 힘들어야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가 왜 자기에게 동냥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감사해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몸이 이미 나은 뒤에도 그랬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감사하는 마음과 치유로 드러났습니다.
•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사도행전 강해」 8.
3,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 기대하며 쳐다보다
희망으로 놀라다
[자선을 기대하는] 욕심에 찬 기도를 수포로 돌아가게 한 희망
그러나 [희망]은 [무엇을] 방해 할 때면, 늘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둔다네 .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던 일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불길한 근원에서 비롯한 행운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되어 주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시작이 슬픔의 모습을 띠고 있어 그 속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음을 가렸던 것이라네.
이 가난한 사람은 빈손인 이에게서 큰 것을 받고 기뻐하리니, 자선을 바라던 그에게
자기 자신이 주어졌기 때문이로다.
• 아라토르 「사도행전」 1.
3,6 금도 은도없다
나는 금도 은도 없다
금과 은으로 장식되었던 옛 계약의 성막에는 “예배법규가 있었고 지상 성소가 있었습니다”
(히브9,1). 그러나 복음의 피는 율법의 금속들보다 고귀 합니다.
그 피가 솟아 나오는 것은 금으로 된 문설주 앞에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약해진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그리하여 이제] 하늘 나라의 성전으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금도 은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잊지 않는 복된 베드로는 사도들 발앞에 놓인 돈을 자기들이 가지지 않고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따로 챙겨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 존자 베다 「사도행전 해설」 3 ,6.
*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7 사도행전 101 – 102pg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