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019년, 50년 넘게 염불하고 101살에 극락 간 보국 스님
맑은나라 보정(普淨) 기록
1) 100살 염불 스님의 큰 발원 – 오직 극락 가는 것
2018년 6월 2일 나이 100살에도 염불 놓지 않는 보국 스님을 만났다.
<보정> 올해 딱 100살 되셨죠? 그러면 몇 년부터 염불하셨어요?
<보국 스님> 아직 100살 안 되었어, 90 몇 살이지. (본인은 아직 100살이 아니라 고 주장)
<보정> 염불한 지 50년은 되셨죠?
<보국 스님> 그 정도 되었지. 아픈 데도 없고 공양도 쉬는 일이 없고 부처님 원력이 그만큼 크죠. 아픈 데도 없고 잠도 잘 오고 음식도 먹으면 문제가 없고 아무 탈이 없어요. 누구 오면 반갑지만, 밖에 나가는 일도 없습니다. 나가면 너나 내나 쓸데없는 말이나 하니 앉아서 염불하는 것이 낫지. 두 시간 하다가 졸리면 자고, 또 깨면 염불하고 … 염불을 배웠으니까 그렇지, 안 그랬다면 큰일 날 뻔했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하고 …, 천하의 보배라고 합니다. 아무 신경 쓸 일도 없고, 잘하거나 못 하거나 다 맡겨 놓고 ….
<보정> 그렇게 50년을 하셨으니 이제 극락에 가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보국 스님> 원도 없고 한도 없고, 염불해서 극락세계 가는 것만 소원이라 믿고 있습니다. 신경도 안 쓰고 이래저래 해라고만 하고 ….
<보정> 이제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도 없고 염불만 하시면 되죠!
<보국 스님> 예 그래하면 됩니다.
<보정> 어쨌든 간에 50년간 염불하셨으니까 이제 갈 데가 한군데밖에 없어요. 만일에 그렇게까지 50년을 염불했는데 극락에 못 가신다면 그것은 스님 책임이 아니라 아미타불 책임입니다.
<보국 스님> 공양하시죠.
출가 전부터 가진 믿음(信)을 바탕으로 50년 염불한 100살 스님의 극락에 가겠다는 바람(願)은 확고하다. 그리고 믿음과 바람은 스님이 100살이 되도록 염불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2) 60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출가하여 평생 외길 – 염불하여 극락 가는 길
보국 스님은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 해에 태어나 경산 압량면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를 일주일 다녔는데 백부님이 “여자가 무슨 학교냐‘라고 호통을 쳐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도 총명하여 담 넘어 훈장이 천자문 가르치는 것을 듣고 천자문을 다 외웠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전쟁이 터지면서 한국은 폐허가 되고 사람들 살기는 어려워졌다. 결혼한 뒤 남편이 병환으로 세상을 뜬 뒤에도 가정을 위해 온갖 어려운 일을 다 하고 부지런히 살았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50년을 지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평소 존경하던 수산 스님의 권유로 불가에 입문하여 극락왕생의 원을 세웠다. 그 출가 길에는 수산 스님의 인도가 절대적인 나침반이 되었다. 보국 스님은 스승인 수산 스님을 남지장사와 백련암에서 11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그때의 기억을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지장사에 가서 수산 큰 스님을 처음에 뵈었을 때는 얼굴이 까맣고 너무 초췌하셨다. 그래서 늘 대구 서문시장에 가서 마, 추자, 두부를 사 가지고 와서 산에서 주운 작은 알밤을 까서 시루에 쪄 함께 밥을 해 드렸더니 6개월 만에 얼굴이 하얗고 좋아지셨다.“
80년대 들어서부터 가까운 가창면 옥분이 나지막한 산밑 시골집을 사서 인법당因法堂을 설치하고 조용히 염불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불사하여 미타선원을 창건하고, 1989년에는 현재의 극락전을 완성하였다. 미타선원에서는 수산 스님을 법 스승으로 높이 섬기셨기 때문에 늘 수산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법회 때 아미따경을 읽고, 아미따불 정근을 한 뒤, 법장비구의 48가지 바람(願)을 한 가지 한 가지 욀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하여 모두 48번 절을 한다. 법회를 모두 정토 의식에 따라 한다. 그리고 늦게 시작했지만 100살이 넘을 때까지 40년을 이 터전에 자신의 극락 갈 씨앗(往生因)을 닦고 많은 사람에게 염불 법문을 전했다.
1996년 가을 스승인 수산 큰스님께서 입적하시게 된다. 정토계에서 가장 큰 별이신 수산 큰 스님이 입적하셨는데 1997년 ’극락을 다녀오신 중국 스님이 한국에 오셨다‘고 하여 3월 4일 함께 영주 약수암(경북 영주시 부석면 보계리)에 가서 직접 친견하였다. 보국 스님은 평생 염불 수행을 하였기 때문에 극락을 다녀오신 이야기와 정토선 수행법을 들으시고 크게 환희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다시 80이 다 되어 극락 다녀온 스님과의 인연을 맺어 확실하게 왕생인往生因을 심는 계기가 되었다.
3) 가실 날 미리 알리고, 손에 염주 놓지 않고 염불하며 극락 가신 보국 스님
2019년 2월 4일 입춘날 보국 스님은 입적할 날을 미리 밝힌다.
”이제 설 쇠고 가련다. 반듯이 살고 염불 열심히 하여라.“
그리고 늘 하듯 염주를 돌리며 왕생가 한 구절을 읊었다.
아미타불 한 소리에 팔십억겁
생사중죄 봄눈같이 녹아지고 하품왕생 한다하니 …
일생을 외워 온 왕생가이지만 죽음을 5일 앞두고 읊는 왕생가 한 구절은 이 세상 어떤 임종게보다 쉽게 마음에 와닿았으며, 확신에 찬 바람이었다.
스님의 임종게와 입적 예고에 상좌를 비롯한 신도들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다음날이 바로 설날, 음력 정월 5일 정초 기도 다 보시고, 찾아온 신도들 다 만나 보시고, “음료수 들어라!” “떡 가져가라!” 하나하나 모두 챙기셨다. 그리고 저녁에 마지막 자리를 지키던 상좌와 신도들이 병원에 가시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단호하게 거절하시고 30분 뒤 편안히 마치 잠을 자듯이 극락으로 가셨다. 평소처럼 스님 손에 쥔 염주가 멈추었지만 ’나모아미따불‘ 여운은 지금도 도량에서 이어지고 있다.
원아임욕명종시 진제일체제장애 면견피불아미타 즉득왕생안락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여래불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