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앞서
우연하게 박상설옹의 영상을 티비에서 보았다. ?? 티비가 아니라 유튜브였을지도 모른다. 그 연세에 , 와우~~
박옹의 삶의 철학은 '내가 번 돈 다 쓰고 죽자' 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노자.장자 철학을 뛰어 넘은 체험철학이 오롯이 느껴졌다.
연후 유튜브 들어가서 그 분의 영상, 국립공원 측의 강사로 초빙되어 아웃도어 '오토캠핑'을 강의하는 모습 등을 찾아 보았다. 대머리(매일 면도로 민다고 한다)에 투명하게 맑은 눈빛, 녹톡치 않게 느껴지는 잔잔한 이야기톤, 독서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말씀...
시대의 멘토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만나뵙고 싶었으나, 웬걸..., 그분은 이미 살아 계시지 않았다. 자세한 건 모르나 아마도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셨을거라고 짐작한다. 워낙 자연에 깊이 사셨으므로 코로나에 감염되어 떨쳐버리지 못하셨구나 하는 추론을 해보았다. 그 분의 연고지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계양구. 계양도서관에서 그 분의 책을 빌려 겸허하게 옷깃을 여민다.
지은이 박상설
1928년 춘천 생.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 졸업. 1966년 건설기계 기술사 자격 취득. 강원도 홍천 오대산 북쪽에 '캠프나비(Camp Nabe) 운영. 47년동안 주말농장을 운영해 왔고 2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음. 끼니는 스스로 해결하고 몸으로 직접 뒹굴며 캐낸 지혜에 관심이 있다.
건설교통부를 거쳐 건설업체 중역으로 활동 중 1978년(61세)에 뇌졸증으로 쓰러짐. 3년 후 미국에 건너가서야 '뇌간동맥경색' 판정. 아스피린 한 알을 먹고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만이 유일한 처방이었다. 그때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세계의 오지를 떠돌아 다님. 죽기 위해 떠돌았지만 오히려 살아났다. 이 고통의 여정에서 그는 자연을 다시 만났고 체험했으며 신앙하게 되었다.
2001년 동아일보 투병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마지막 스승은 나를 산에 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몇년도인지 알 수 없다) 구순을 앞둔 노인이지만 여전히 걷고 등산하고 캠핑하면서 인간 DNA안에 각인된 자연 회귀 본능을 따를 때 우리가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백 년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추천의 글
이 상 기 아시아엔<THEAsiaN> 대표이사
성공한 삶이란
ㅡ랠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추천의 글
장중하고도 상쾌한 도전이 삶을 맨몸으로 보여주다
정현홍(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관리이사)
박상설 선생의 칼럼을 탐방지원처장 주관으로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검색 관찰한 결과 새 시대를 향해 자연 레저 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체계적으로 공감했다. 그래서 바로 박상설 선생을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산학교의 외래강사로 초빙했다. 직원 대상의 강좌지만 나는 매번 빠지지 않고 정책개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등산학교 간부들과 함께 청강한다. ...90세 가까운 나이의 파워 특강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가슴 치는 명강의였다. 행동이 생각을 앞서 바로 지금 해치울 뿐이라 했다.
처음 보는 흥지진진한 레저 장비를 배낭에 잔뜩 메고 와 손수 몸으로 야지에서와 같이 거칠고도 신나게 우리를 매료시켰다. PT 프로젝트를 위시해 첨단이 커리큘럼 교재 준비도 놀라웠다. 스크린에 비친 국내외 오지와 세계의 극지를 탐험한 진기한 자료로 우리 젊은이들을 무색하고도 아연케 했다.
<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라는 칼럼을 작심하고 탐독했다. 아, 그냥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으며 편하다. 그렇다, 박상설 선생의 글은 편안하다. 긴장과 응축보다는 너그러움과 넉넉한 상념으로 그냥 자연이다. 그러면서도 생을 단호하게 밀고 나간다.
우리 일행은 오대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박상설 선생의 주말농원에서 캠핑하며 한 줌의 씨도 뿌렸다. 박 선생의 심플 라이프의 소박한 삶의 진수를 같이 뒹굴며 배우기 위해서다. 워크숍도 하고 밭에서 바로 뽑아온 싱싱한 푸성귀로 입맛을 돋우었다.
글과 한 점의 어긋남이 없는 선생의 삶은 시 같다(갑자기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또한 장중하고도 상쾌한 도전의 삶을 보여준다. 눈부신 감성의 승리이며 손대는 것마다 첨단을 헤쳐나가는 진취적 생이다. 사유와 행동을 묶어 벤처인생을 경영하며 '행복',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엿보게 한다. 박상설의 신명나느 국민 행복 프로젝트의 캐치프레이즈는 '맑고 자유롭게 자연으로!' 그 자체다.
추천의 글
우리 모두 들어야 할 90세 청년 이야기
나공주(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지원처장)
뇌졸증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산업화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의 대가였다. 의학의 힘으로 생명은 잠시 연장했지만, 남은 삶은 미래가 없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지 않은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선 순간, 재활을 마다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동행은 배낭 하나뿐이었다. 그의 '자연으로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27년. 인천에서 차로 세 시간 거리인 홍천에 위치한 농원, 그는 늘 그랬듯 오늘도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주말농원으로 향한다. 가을에 뿌려놓은 들꽃이 싹을 틔우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농장이라지만 산더덕, 곤드레, 야생화와 채소가 산풀과 섞여 자라는 밭과 자그마한 비닐하우스가 전부다. 잔자락 농원에 햇볕이 쏟아지듯 내린다. 그는 배낭을 베개 삼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펼친다.
소위 자문을 위해서는 요청받은 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상례지만 그는 달랐다. 본인의 집을 방문해주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와의 첫만남은 호기심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뇌졸증으로 쓰러졌던 구순의 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꼿꼿함과 열정, 또 모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병마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게 했으며, 청년 정신으로 살게 했을까?
우선 자연으로의 여행과 걷기였다.
다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사람들은 숲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자연의 질서를 보고 삶에 순응하는 자세를 배운다. 숲은 나를 되돌아볼 기회와 긍정의 힘도 준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이 책은 그렇다면 2014년 발행되었구나!). 극적으로 살아난 어린 학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가족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외상도 걱정된다. ...청년정신으로 살고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삶을 존중하게 된다.
'90세 청년' 의 시크릿Secret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자연을 친구로 두었고, 긍정의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어떤 일에도 사변적 지식이 아닌 몸으로 부딪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책을 펴내며
모두가 바라는 행복,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내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전의 삶이다. 그 주적은 나다. (구속은 자유라고 믿고;이말의 뜻을 모르겠다) 고통 뒤에 즐거움이 온다는 이 행동원칙은 젊은 날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숙엄한 자연에서 나를 혹사하며 깨우쳤다. 인생의 허무나 좌절, 갈등, 번민 따위를 걷어치웠다. 순간을 살아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자연처럼(바람)!
삶은 피할 수 없고 살아낼 수밖에 없다. 생계를 위한 무기는 오직 부지런함뿐이다. 나는 스물네 살부터 부모와 여동생 일곱을 먹여 살리고, 곧이어 내 식구도 네 명이나 생겨 서른 살에는 열한 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되었다. 그것도 6.25 전화와 보릿고개의 처참한 시절의 이야기다. 초급장교 복무, 건설부 근무, 퇴근 후 대학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강사와 가정교사, 무업용 집 장사 등을 죽기 살기로 해냈다.
때때로 생지옥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피난처가 산이었다. 그 이후로 숲과 산이 고향이 되었다. 나는 세상의 허무와 무상을 보아버린 허망함을 산길에 묻으며 연민의 자국을 지워나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틈을 만들어 만사를 제치고 속세를 떠나 저 멀리 자연을 껴안고 삶의 고뇌를 삭혔다. 그것만이 만신창이로 살아온 나를 위로했다.
오직 자연을 사랑할 뿐, 사람을 사랑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허나 아름다움이 진실보다 우위에 있다. 나와 자연과 문예정신이 한 몸이 되면 바로 거기에 즐거움이 있다.
돈이 먼저냐 즐거움이 먼저냐, 이것이 고민 될 때도 있다. 일의 보람을 느끼며 돈을 벌어 절제된 소박한 삶으로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것, 이 판가름은 문화 수준과 안목 차이로 결정된다. 생활형편이 어렵더라도 정신세계를 가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결핍이 나를 다스리는 채찍이고 채근이다.
이렇게 하면 삶의 고통은 줄어들고 삶의 품격은 높아진다. 진리에 가깝고 독자적이고 유연하며 막강한 엔트로피적 세계관으로 살 일이다.
시간은 화살이다. 인생은 불가역이며, 돌이킬 수 없는 숙명에 갇혀 산다. 사변적 말꼬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살 일이다.
홀로 존재하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색깔은 없다. 자연의 색깔을 음미하며 나라는 일인칭을 버리고 내가 자연이다.
사람들에게는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이란 것이 재화다. 하지만 재화는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한다(작가도 부자는 아닌 듯하다). 잘 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명제다. 나는 삶의 틈새마다 '자연 풍의 놀이'를 슬쩍끼워 넣어 노는 듯 일하고 일하는 듯 논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지만 하고 싶은 것 여한 없이 다 하며 공고히 살아내고 있다. 내게는 자연이 직장이다. 죽는 날까지 자연으로 출근하고 걷다가 쓰러질 것이다. 늘 숲을 동경하며 그렇게 하나될 것이다.
시집 한 권 들고 숲에 들자. 주중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야영하고 농사일하고 산에 가고 여행하자.
근심걱정 따위는 자연에는 없다. 허나 나는 고뇌한다. 사유하는 고뇌의 고통은 얼마나 멋진 게임인가! 서재를 박차고 숲을 두리번거리며 뭔가에 젖어 독백한다. 밤에는 사력을 다해 글을 쓴다. 레저 놀이는 글로 완성된다. 나의 글은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잊은 채 몸을 펜대 삼아 흙에 흔적을 남기는 처절한 기록이다.
각종 레저 장비의 취급 사용에 통달한다. 그리하여 숲으로 산으로 바다로 쇼핑 간다. 주말에 땀 흘려 밭을 가꾸고 텃밭에 무릎 꿇고 절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아름다운 영혼과 향기로 가득하다. 내 생애는 오늘을 위한 모든 날이었다.
나는 47년 동안 주말레저농원을 이어오며 국내외 오지를 피와 땀으로 탐험해왔다. 그 전쟁터 이야기를 <나침반>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써서 캠프나비 동호인들과 나누어왔다. 이런 인연으로 글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강의 요청도 들어오고 <나침반>을 교재로 한 현장 체험 워크숍도 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장이자 <아시아엔(THEAsiaN)>의 발행인인 이상기 대표이사가 안면 없는 나를 칼럼니스트로 발탁했다. 이를 계기로 <박상설의 자연 속으로>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이 결국 이 책으로 이어진 것인가. 토네이도 출판사의 김지혜 기획실장이 책 출간을 제의해왔다.
자연에서 뒹굴다 돌아와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간 글이 어느덧 이렇게 책으로 묶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되다니!
2014년 9월
샘골 숲에서 박상설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당신의 삶을 설계하십시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죽음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안다면
한층 인생의 무게가 더해질 것입니다
제1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가능성은 늘 걷기에 있다. 작열하는 폭양을 피해 바닷가의 숲에 든다.
정확히 27년 전, 당시 61세 였던 나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1년을 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어떤 병원도 나의 병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3년 후 결국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북캘리포니아 의과대학 교수로부터 MRI 검진 결과 내 머리 뒤의 왼쪽 대경맥이 막혀 모세혈관이 그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중병이라 수술은 할 수 없고 환자 스스로 재활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루에 아스피린 한 알씩만 먹되 그 외의 약은 일체 먹지 말고 강도 높은 산행을 계속하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처방이었다.
가족에게 기대면 같이 망할 게 뻔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나를 산에 버리기로 했다.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한 번도 안 가본 죽음, 걷고 또 걸어 기진해 쓰러지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벼랑 끝에 나를 세워라
나를 사로잡은 것들
여행은 때로 거지가 되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떠돌이들과 한패가 되었다. 단돈 2달러로 총탄이 난무하는 뉴욕 할렘가를 떠돌거나 거지들의 나라 인도에서 노숙하면서 진짜 사람들을 만났다. 천덕꾸러기로 나뒹굴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똑같은 나날을 꼬박꼬박 사는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
어찌하다 여기까지 흘러왔는가? 또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 구속이 자유다(이 말의 뜻을 조금 알것도 같다. 나를 지금 구속하고 있는 어떤 명제, 그것이 나로하여금 집을 떠나게 한다?). 여행은 가슴 저리는 일이다. 나의 여행은 저절로 된 것들, 제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꼼짝없이 자연에 버려져 자생하는 것만을 좇아 마음을 풀어 노는 표류인생이다.
가능한 한 기능적 문명을 뒤로하고 자연의 향기와 듬뿍 놀 일이다. 숲과 사막에 누워 느끼고 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열 번 배우고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해보면 안다. 차로 그냥 지나치는 것과 잠시라도 머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사막에 깃들고 오로라에 취하다
사막의 무의미한 것들이 가진 힘은 무섭다. 사막의 외로운 황홀에 우주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운 나의 내면세계는 이유없이 사뿐해진다. 인생의 총체적 뜻은 하잘것없는 막막한 모래 들판에 있다.
타르사막 지평에서 맞는 석양은 허무와 두려움과 비통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미국 서부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 사막지대에서도 여러 날을 보냈다. 미국 대륙을 횡단한 것도 네 차례다. 사막은 낮 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하지만 해가 지면 한밤중에는 한기마저 들었다. 습기가 없어 밤은 쾌적하고 더 없이 상쾌하다. 밤이 깊을수록 별들이 찬란하게 마구 쏟아진다.
사막 등산. 산이라야 불과 100미터높이 이내의 돌덩어리뿐이었다. 걷다보니 지평에서 보이지 않던 거대한 계곡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그 깊이가 무려 1,000미터를 넘었다. 그런데 계곡 밑으로 산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어떤 형용인지 잘 가늠이 안된다) 그 지옥같은 역산행을 섭씨 50도의 땡볕을 뚫고 해내야 했다.
로키의 길은 거의 수직 길을 피하고 지그재그로 뻗어 있다. 어딜 가나 산이 험악해서겠지만 트레일 곳곳에 '길을 벗어나지 말라Stay at Trail.' 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흑탕물이 도도히 흐르는 유콘 강에는 천지를 뒤흔들며 거대한 나무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여름빛이 저물며 강의 힘찬 울음소리가 거세지자 북극의 한지에서만 사는 아주 작은 모기떼가 습격했다. 가히 살인적이었다. 미리 준비해 간 모기장을 해먹에 달고 유유히 북방 하늘 아래서 한여름 꿈을 즐겼다.
빙하를 이고 있는 산 위 하늘에 찬란한 오로라가 형형색색의 빛을 띠고 휘~ 우주의 울림소리를 내며 화살처럼 퍼져 백야를 덮쳐 사라졌다.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있는 곳조차 알 길이 없었다.
버려진 것들은 스스로 아름답다
나는 언제나 사막과 북극 그리고 떠도는 사람들과 같이하고 싶다. 허허롭고 광막한 곳에 나를 홀로 버리는(놔두는) 적막의 자유를 무엇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인위적인 것이나 화려한 대상에서 제외됐을 때 나는 살아 있다. 이는 소박한 것과 맞닥뜨려 은유적 상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다.
버려진 것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저절로 된 것들, 제 스스로 그러한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허전하고 쓸쓸했다. 자연에는 디자인이 없다.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심플함이 전부다.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
길 위에서 마주친 헐벗고 가난한 이들, 이 순간에도 길 위를 헤매고 있을 그 빈한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여,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마라! 방황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기쁨과 행복은 집안에 머물지 않는다
좋은 것들은 홀로 제 스스로 있다
여름은 신록으로 오지만 새소리로도 온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산새소리는 어떤 설교보다 평화롭다.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5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 북쪽에 이르면 북한강의 넓이가 불과 10~20미터 폭으로 좁아진다. 이쯤에서 다리를 건너 샛길로 한 구비 돌아들면 거짓말 같은 원시의 골짝이 숨어 있다. 바로 이곳이 캠프나비 주말레저농원이 자리한 샘골이다. 험준한 백두대간과 해발 1,500미터 오대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북한강 발원지 중 한 곳으로, 해발 600미터의 청정 고랭지다. 샘골은 비닐하우스 농막 외에는 집 한 채도 없이 겹겹이 산으로 감춰진 골짜기다(언젠가 한겨울의 계방산에 올라 오대산과 그 서쪽의 대협곡의 주름들을 감탄사로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저 원시의 골짜기에 사람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샘골은 아마도 내가 바라보던 아득한 그 주름골짜기의 어딘가 보다).
내 나이 여든 일곱, 여태 살아오는 동안 나 자신과 불화의 접점에서 싸움은 치열했다. 삶은 죽음의 덧없음을 잊기 위한 싸움인가?
숲은 인간마저 숲이 되게 한다
숲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운다. 삶과 죽음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도 같다. 인간들은 덧없는 것들의 영원함에 끝끝내 속고 사는가?
날이면 날마다 속수무책으로 바삐 돌아가는 우리는 뜻 모르고 헤매는 역사의 도구(부속품)에 불과하다. 사람은 풍화처럼 이미 사위어간다. 건강이 최우선이고 다음이 마음의 평안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간의 삶이다.
소멸을 앞둔 절정
산속에 또 산이 눕고 계곡 속에 계곡이 요동치며
모든 굽이 휘돌아 어느 길이 제 길인가
춤추는 연두 그늘 제각기 팔랑이며
텐트 어서 펴자고 한다
가을을 기다리는 야생화
폭양에 맞서 햇볕 냄새 풍긴다
나는 이미 가을이 찾아오면
들국화, 억새 물결 언덕에 뒹굴
벅찬 꿈을 나직이 품었다
여름은 신록으로 오지만
산새소리로도 오는가 보다
새벽공기 가르는 산새소리
어떤 설교보다 더 평화롭다
이런 아침이 있기에 캠핑을 고집한다
여름의 샘골은 가득하다
무성한 연둣잎 엊그제 같은데 이제 폭양을 넘긴다
곧 추석이다, 몇 번의 추석이 지나면 생은 끝장이다
삶은 애상(哀傷)......
노인은 다만 소멸을 앞둔 절정을 향한다
가족에게 자연을 선물하라
도시와 농촌 사이, 디지털과 아나로그 사이
6.25 전쟁 때 야전공병단의 중장비 중대장을 지냈다. 늘 이동해야 하는 중대장 지휘본부는 미군용 야전 CP용 텐트를 사용했다. 그 텐트를 접하면 나는 어김없이 내 지난날과 만난다. 유목민과 다름없었던 야전생활.
나는 가장이 자연을 버리면 가족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초원에 뒹구는 아이로 키우면 그 초원의 기억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
건설부에 근무하면서 가평에 주말레저농원을 마련했다. 47년 전 일이다. 그 후 강원도 인제 진동리를 거쳐 북한강 발원지인 홍천 오대산 뒤 샘골 고랭지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주말과 휴일에는 어김없이 도시를 탈출한다. 그렇다고 아예 귀농해 산촌 노인으로 살려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의 삶을 오가는 문화, IT를 넘어 엔트로피의 우주적 삶으로 달려가는 재미를 버릴 수 없는 까닭이다.
가족에게 자연이라는 행복을 선물하라
주말레저농원은 어디가 좋을까? 가능한 한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산촌에 캠프를 잡으라고 권하고 싶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위치하면 수도권보다 토지 값이 훨씬싸고, 먼 장래를 위해 여러 가지 이점을 겸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백평의 땅을 살 수 있는 돈이면 산촌의 땅 500~ 1000평 정도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먼 거리 농장을 권하는 까닭은 큰 데서 놀아야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도시 주변 3~5평의 손바닥만 한 주말농장에서 소꿉장난 같은 농사일을 하면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작은 것에 연연하여 넓게 볼 수 없고 보다 큰 꿈을 저버릴 개연성이 높다. 오지 산골 자연의 수려함을 어찌 돈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산촌이 깊고 한적한 곳이라야 치유는 물론이고 자연친화적인 레저를 즐길 수 있다.
둘째, 입지 조건을 평면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해발고도가 높은 곳을 선정하자. 사람이 살아가는 최적의 토후환경은 해발 500~ 800미터의 고랭지다. 고랭지는 서울에 비해 평균 5~8도 정도 낮아 여름에는 피서지가 되어주고 겨울에는 알프스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노르딕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여름 내내 온도가 낮아 모기와 파리가 없는 청결한 환경을 선사한다.
왕복에 소요되는 거리와 시간은 또 다른 여행이다. 농원을 갖게 되면 새벽길을 이용하기 위해 새벽 서너 시도 마다하지 않고 벌떡 일어날 것이다. 삶을 넓히는 방법은 집구석이 아니라 먼 거리를 마다않고 드나드는 부지런함과 오지 산골의 자연을 갈구하는 상위 구조 문화에 있다. 출근은 자연으로, 여행은 지구로!
(내 생각; 나의 1년여에 걸친 농사관련 경험을 吐한다. 2021년 12월 포천 사직리에 350평의 농지를 마련했고, 22년 6월 경 그 땅을 처분했다. 왤까? 인천에서 그곳까지 가는 시간이 안 막혔을 때에 1시간 40분여. 당시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었으므로, 그곳까지 달려가고 나면 그 다음엔 피곤이 뒤따랐다. 필자의 권유는 물론 토.일 휴일이 전제조건일 터이다. 나의 경우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먼 곳을 구입하였으므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저자의 말씀처럼 나도 촌로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도시에서 일 없을 때까지 일하면서 살고 싶다. 처분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세시간 거리를 제시한다. 토지를 구입하는 데에 드는 비용과 관련하여서는 필자의 말에 수긍하지만, 거리는 '글쎄' 다.)
주말레저농원으로 생활혁명을 시작하라
마련할 자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은 예비후보지 답사를 계속하며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경험자에게 현장 체험의 교훈을 배워 나가자.
기본설게를 구상하고 마스터플랜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아웃도어 레저가 녹아든다. 안 가던 생활용품 시장을 자주찾게 되며, 농산물을 살피며 마음에 드는 식재료를 골라 손수 보란 듯이 요리해 가족을 즐겁게 한다.
서점에 들러 <<농업성전>>을 펼쳐들고 유기농을 배우며, 주말 전원생활을 레저 문화로 연관지어 구상하게 된다. 이어 <<결혼과 가족>>, <<교육은 치료다>>, <<결혼 경제학>>, <<자녀 교육>>등의 책을 챙기며 가족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게 된다.
계획이 확정되면 농기구상회도 들리며, 고물상을 찾아가 필요한 자재를 골라보고 종자상회에 들러 쉽게 돌아설 수 없는 흥미진진한 한때를 보내는 자신에게 놀랄 것이다.
노천 좌판에 앉아 삼천원짜리 국수를 먹으며, 사람들로 뒤덮인 시장 바닥에 끼어 혼자서도 행복하다.
주말레저농원을 운영하면 생활혁명이 일어난다. 도시형 취미가 자연형 취미로 바뀌고 신변잡기가 의미 있는 문화로 변한다. 텔레비전을 멀리하며 혼자만 재미보던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술 문화가 바로잡히고 중요하지 않은 약속을 잡지 않으며 일신상의 쾌락을 기피한다. 국내.국외 여행을 오토캠핑으로 해내고 손에는 늘 지도와 나침반이 들리게 된다. 민박이나 펜션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림을 온 가족이 도우며 가족 구성원이 독립적 생산자로 자립해 나가며 남을 도와주는 등, 여간해선 바뀌지 않던 습관이 놀랍게 변해간다.
더 놀라운 변화는 책을 가까이 하게 되고 생각을 글로 남기며, 야생화를 사진에 담아가며 풀벌레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잔소리 없는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치유다.
틈나는 대로 농촌 일을 돕고 길 막히지 않는 밤 시간에 돌아온다. 농촌을 알면 훌쩍 자란다.
도인이 되자는 게 아니다. 인생의 하부 구조를 벗어나 의연하고 넓으며 합리적인 인성을 몸에 지녀 자연에서 마음껏 놀자는 뜻이다.
'캠프나비Capp Nabe'ek. 'Nabe'는 'Natural'과 'Being'의 합성어다. 즉 '자연에서의 존재'를 뜻한다.
나만의 시간
고립된 섬에 들다
캠프는 집이 아니라 '텐트'다. 詩같은 바닷가의 소꿉놀이터. 산속도 좋지만 외딴 섬에 들어 하룻밤 휘 돌아본다.
깊은 곳에 숨겨진 조각난 나, 다 만들지 못한 나를 뒤집어 본다.
얼룩진 생애가 내게 말한다. 혼자일 때 들리는 그 소리, 보다 진하게 스며든다. 미처 떨치지 못한 꿈을 마구 버리는 시간. 노을의 먼 그림자 따라 짙은 안개 뭉게뭉게 춤추며, 캠프를 가만가만 에워싸며 말한다. 묵고 가라, 묵고 가라고...... 분명한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갯벌 얹저리 해변에 버려졌다.
당신은 무엇이 문제인가? 이제 더는 묻지 마라. 나는 산과 바다와 바람이 시키는 대로 간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요한 밤, 하룻밤으로는 부족한 하얀 밤, 넋을 잃고 지새운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애환에 얽매이는 나.
흔들리는 버스에서 주름진 세월을 펴보다
길이 4킬로의 신도, 3킬로의 시도, 1.5킬로의 모도, 세 섬이 연륙교로 연결되어 옹기종기 서쪽에 떠 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그간의 막연한 불안들이 가시는 듯 묘연해진다. 한갓 인간의 우울쯤이야......
알맞게 흔들리는 버스 창가에서 주름진 세월을 펴본다. 버스에는 단 세 사람, 눈길 주는 이 없다. 한가로운 외딴 섬, 봄볕에 졸고 있다. 여행은 이런 맛으로 하는가보다.
짐을 포구에 맡기고, 바로 구봉산(178미터)에 올랐다. 빈 가슴 열어놓은 길,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혼자인 나를 본다. 나에게 왜 힘이 솟는지, 새싹들에게 귀 대고 묻고 싶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열불만 펼쳐 온 길, 이제는 삭으려나? 어림없는 소리인가?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싶다.
부풀린 세상이기에, 버려야 할 사연들이 더 많아, 생애를 소박한 삶으로 압축한다. 심오한 다큐의 정신으로, 늙은 승부사의 집념으로 생을 가벼운 놀이로 바꾼다.
국토 순례는 수계 탐험부터
한강의 시원을 찾아 오대산을 오르다
우주의 생명력이 솟는 원천은 깊은 산속 계곡이다. 봄 산은 모든 것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숲은 나날이 자라는 게 분명한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똑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계곡에 들면 고아가 된다. 혼자서만 느끼는 충족감은 고독의 절정이다.
강과 한몸 되어 흐른 낙조의 길
물의 발원은 산골이다. 산골 물은 가파른 바위 사이를 굽이치며 수렁(또랑)에 빠져 쏜살같이 곤두박질쳐 흘러간다. 사방에서 흘러드는 지류의 시원을 모두 거느리고 도망친다. 계곡은 바쁘다.
텐트를 조근조근 적시는 빗소리가 랩소디로 가슴을 치면 세상이 보일 듯 되살아나고 새잎이 불가능에 대한 희망을 준다. 세상을 (겉돌며) 떠도는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돌연 사라진다) 모호해진다. 그때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운다. 인간의 빈곤한 언어로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응답.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없는 갈대는 바람(이)에 스치면(서) 소리를 낸다. 소리는 결핍이라서 쓸쓸하다. 물길은 이런 희망 없는 대역(들)을 모르는 채 흘러만 간다.
길 위의 집
기러기는 4,000킬로나 떨어진 러시아에서 날아온다. 기러기는 고향과 타향, 두 곳에서 산다.
아침의 기러기는 힘차고 저녁 무렵 수평선 너머 어디론가 떠나는 기러기는 애잔한 비애를 남기며 아득히 멀어져간다.
사람들은 학습된 억지웃음으로 복이 오고 건강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자연에 부대끼며 자연과 소통할 때 마음이 편해지고 건강해진다고 여긴다. 기쁨의 여신이 허락한 이 밤, 평생을 살아낸 모든 밤이 이 하룻밤을 위한 축제다. 숲의 힘은 무섭다.
만물이 쇠락해가는 이 가을밤에 홀로 나앉아, 밤을 지새워 우는 풀벌레와 친구되어 새벽 먼동이 틀 때까지 밤이슬 맞아가며 골똘히 고뇌해보라(禪 수행하면 맞춤하리라) . 큰맘 먹고 한번쯤 외로운 밤하늘에 누워볼 일이다. 아마도 그대는 쓸쓸한 달빛 아래, 복받쳐 흐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연이라는 일터에서 벤처 인생을 가꾼다는 것
마지막 나뭇잎 하나가 텐트 위로 떨어질 때
외로운 산모퉁이를 지나 꾸불꾸불 심심하고 무료한 길을 걷는다. 누군가 '왜 이런 길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몹시 불편하다. '왜' 라는 물음 속에는 나의 속내를 알아차렸을 개연성이 높다. 노추의 몸을 채찍질해가며 더 천연한 곳을 찾는다.
가을 산속에 들어 나를 본다. 산에 비친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만사를 이미 학습된 지식, 언어, 가치, 신념 체계를 통해 해석한다. 심리학의 분석 틀을 빌린다. '사유의 멈춤' , 즉 '자아침묵'을 통한 시공의 실존 인식이다. 안으로 성근 '고요'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다시 적는다. 생각하면 '환상' 즉 '감성의 왜곡'이고, 그냥 바라보면 '자유'다. 즉 기능이 아니라 의미를 알게 된다. 무위자연을 근원으로 바라보게 된다.
<<캠핑폐인>>이라는 책도 있듯이 폐인이 되어야 안다. 나뭇잎 하나가 동그라니 텐트에 앉는다. 저 많은 나뭇잎 가운데 마지막까지 버틸 하나의 잎사귀가 궁금하다. 마지막 행喪길로 떠나는 '바삭' 소리를 마음에 담을 것이다.
늙어가는 데는 별난 기술이 필요하다
내 나이 아흔이 되어도 할 일이 있다. 아흔이 되도 세상 살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나에게 세상이란 길 위에 있고, 걷기에 있고, 씨 뿌리고 밭 가꾸며 야생화 보듬고 생명수업하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스스로 해낸다. 흐르는 강물처럼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연과 공생하는 존재방식을 개발하며 개선하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다. 상식을 깨부수고 다양한 자유를 엮어내는 모던한 문화구현을 꿈꾼다.
세상은 노인에게 덕담을 구하지만 늘 갇힌 말만 하는 진부한 덕담은 공해다. 후학들은 번뜩이는 지성과 파워풀한 행동으로 길이 되어 주는 멘토를 바란다. 그러니 깨져야 한다. 옛날만 답습하면 고인 물이 된다.
'벤처인생'을 경영해야 한다. '즐거운 우리집'은 즐기는 기분으로 마음의짐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외로운 들녘은 노숙을 허락한다
몇 밤의 노숙을 허락한 최북단 들녘
일제 강점기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경성역(서울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철원- 평강- 상방- 해금강-동해안을 끼고 양양으로 향했던 기차여행을 잊지 못한다. 45년 전 어느 가을날, 한탄강변 들녘에서 B형은 드높은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상설아! 저 풀벌레 소리, 일렁이는 억새 물결, 가을은 내게 형벌이로구나!" 라고 말했다.
그때 내 손에는 한 줌의 억새꽃이 쥐어져 있었다.
자연, 우주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데 인간은 옮음과 다름의 조각 맞추기 퍼즐 게임에 여념이 없다.
휴전선은 하얀 밤의 카네기홀이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꼭 텐트를 갖고 올것. 책 한 권과 침낭도 잊지 말라. 마음껏 뒹굴고, 꿈꾸고, 희망하라! 만물이 삭아가는 계절, 애잔한 풀벌레 소리는 밤과 함께 깊어간다. 어둠 속 어디선가 찌르르찌르르, 베짱베짱, 귀뚤귀뚤, 찌륵찌륵 하며 파고든다.
노천명의 시가 떠오른다.
귀뚜라미
몸 둔 곳 알려서는 드을 좋아―
이런 모양 보여서도 안 되는 까닭에
숨어서 기나긴 밤 울어 새웁니다
밤이면 나와 함께 우는 이도 있어
달이 밝으면 더 깊이 숨겨 둡니다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밤을 지켜야 합니다
나만의 설국을 찾아서
눈숲에 '나'라는 주어를 버리다
겨울은 소멸의 시간만은 아니다
이 산골은 영하 20도의 한천寒天이다. 여위어가는 움막 캠프. 난로에 장작을 지피고, 살아 있음을 고맙게 여기며, 뜨거운 방 아랫목에 누워 눈 속에 뒹구는 호사를 상상한다.
혹한의 모색 속에 홀연히 나와 마주한 석양...... 장려한 서쪽 연봉의 낙조를 휘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겨울은 이제 쓸쓸한 퇴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눈 덮인 산속의 모든 생명이 휴식과 절제의 시련을 통해 생성의 시간을 기다린다.
신비의 눈 속에 서서
1월 16일 새벽 2시
꿈속까지 실어가고 싶은 상고대 눈길을 걸었다.
신비의 눈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을 고향에 섰다.
내 목적지는 집이 아니다.
나의 발길은 추워 떠는 앙상한 숲으로 다시 향할 것이다.
고생에 몸 바쳐야 하는 삶을 내가 알기에 그렇게 간다.
길 없는 들판에 서면 모든 게 길이 되고
겨울바다? 겨울강!
홍천강이 끝나는 곳에서 바라보면 홍천은 강 건너 저편의 산마을과 오목조목 부지로 둘러싸인 땅이다. 국도를 버리고 한강과 홍천강이 합류하는 마곡이라는 강마을부터 강변의 모래와 자갈밭 그리고 얼어붙은 강 위를 종일 걷기로 한다.
겨울바람에 삭아버린 江域은 춥고 적막하다. 두 물줄기가 한 군데서 합치면 산은 꼴까닥 죽어 없어진다. 마곡은 물이 산을 먹어치운 한촌이다. 홍천강 끄트머리에서 강물이 찰랑찰랑 조용히 놀며 천파만파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얼어붙은 강 위로 약하게 눈발이 날린다. 강바람은 더 세차게 몰아친다.
강바닥을 헤매며 울던 바람은 빈 하늘로 흩어져 잎 다 떨구고 헐벗은 미루나무 가지를 흔들고 운다. 아무렇게나 나자빠진 허연 들풀과 강가의 비릿한 내음이 야생의 정취를 더한다.
휘돌아 마을에 닿는다. 인기척 없는 할 일 없는 마을은 숨결마저 끊겨 있었다. 그 凍寒의 한촌마을은 작은 가난으로 잠들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내 나이 열 살 때, 큰댁으로 설 쇠러 20리 길을 갈 때도 꼭 이랬다. 그때 손을 바지춤에 넣고 배꼽을 문지르며, 빨리 큰댁에 가서 따뜻한 아랫목의 화로를 끼고 시원한 식혜를 마셔가며 찰떡에 조청을 꾹 찍어 한 입 먹을 조바심에 총총걸음 쳤다.
해를 넘길수록 전보다 한참 느려진 걸음이 강 자갈의 탄력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정말 이상한 일이다. 방 안에 있을 때의 세계는 오리무중이지만 열살배기로 돌아온 노르딕은 마냥 신나는 하루다.
헝클린 강 길은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모이고 모아질 듯 멀어지는 오만 가지 잡풀과 자갈이 누워 자는 벌판이다. 길없는 들판에 서니 모든 게 길이 되고 멀리 아득하다. 몸으로 밀어붙인 생이 강에 허랑虛浪인다. 아스라한 들판이 일도 없이 허전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변화에 대하여
죽기 전에 죽음의 경지를 넘어라
"왜 일부러 고생하며 텐트에서 사십니까?"
"죽기 전에 죽음의 경지를 만들어 이겨내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이다. 나태해지기쉬운 집을 버리고, 몹시 불편하고 작은 공간에서 사유와 고독을 즐기며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는 것, 살아 있되 안락만을 찾는 노년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몇 가지 원칙
매주 등산, 캠핑, 여행을 한다.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직접 살림을 한다.
버스 전철을 타도 좀처럼 앉지 않는다.
나에겐 정년은 없다.
나는 주말 영농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열린 인성' 계몽에 힘쓴다.
한가지 일만이 아니라 몇 가지 일을 동시에 만들어 해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머리는 매일 면도날로 빡빡 밀어낸다.
교양, 매너를 위시하여 높은 단계의 문화생활을 실천하며 행동하는 열린 세계인을 지향한다.
감성을 중히 여기는 유연한 사고의 실천자이고자 한다.
아버지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
근간에 법적으로 양성평등은 점차 이루어지고 있으나 가정 내부를 들여다보면 가부장적 인습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남녀가 서로 존중하며 공평하게 공생하려면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을 포함한 일상의 삶에 실제적인 평등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나는 자연주의 레저 오토캠핑이 그 문화를 이끌 수 있다고 본다.
가사일 같이하기, 정의롭고 공평한 인간애, 문화와 정보의 공유, 가정 내 인권 확립.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자연의 리듬은 알 수 없다.
그 리듬을 조정할 수 없고 기호화할 수 없다.
사람은 그 시공에 개입하지 못한다.
자연의 모든 현상이나 일기 변화는 제 스스로의 일이다.
오토캠핑은 인생이다
금속학에 'quenching'란 용어가 있다. 쇠의 담금질을 말한다. 1,000~ 1,400도씨의 불에 철을 녹이면 분자간의 거리가 팽창되며 소용돌이친다. 이때 해머로 두둘겨 불순물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양질의 철 분자들이 질서를 이루며 거리를 좁혀간다. 그 순간 냉각수에 쇠를 담가 열을 식히면 분자 간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로 고정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얻어진 쇠가 가장 강하다. 이것을 바로 '담금질'이라 한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런 담금질이 필요하다. 자연으로 달려가 자연속에서 호습하는 캠핑은 우리를 강인하게 만든다. 손수 먹거리를 마련하고 야지에 자리를 마련하면서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오토캠핑을 능가하는 삶의 방식은 없다. 숙련되기까지는 많은 체험을 필요로한다.
오토캠핑은 교육이다
캠핑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어떤 요리라도 맛있다. 남자들이 설거지하고 뒷마무리하면서 품격을 높이는 게임이다. 안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 캠핑에서는 가능하다. 경험이 쌓이면 남자들이 변한다. 덩달아 집안 분위기도 변한다. 모닥불도 중요 이벤트다.
한겨울 눈보라에서도 캠핑을 해보라. 이렇게 하면 온 식구가 각자 자생력을 갖고 감동 어린 삶을 살게 된다.
자연에서 무엇을 하든 개개인의 열린 마음의 몫이다.
우선 장비를 갖춰야 하며 텐트, 타프, 침구, 취사도구, 기타 레저용 부속 용구들이 간편하고 기능적인 것이어야 한다.
환경을 파괴하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고 캠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캠퍼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러시아의 힘, 주말농장 다차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사랑한 주말농장 다차
러시아 인구는 1억 3700만 명이고 다차는 약 3200만 곳이 있다. 여하튼 다차는 러시아인들의 고향이자 향수이며,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 1860년부터 1917년 붉은 혁명까지의 제정 러시아는 한마디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물결로 가득한 찬란한 예술의 시기였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는 러시아인들에게 에술가와 문인들이 만들어주는 꿈을 안겨다주었다. 볼쇼이발레도 그때 조직됐다. 이런 배경으로 러시아의 귀족과 지식층은 품위 있는 향수를 이진 못해 풍광이 수려한 농촌 지역에 여러 형태의 별장을 짓고 소설을 쓰거나 시를 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한편 사냥과 낚시를 하며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런 풍토가 일반 러시아인들에게도 차차 번져가가면서 소규모 다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차에서 장작불로 지피는 사우나를 하면서 건강을 다지는 일을 모두들 부러워했다.
1958년 후르시초프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인민들에게 주말농장 다차 1동당 토지 150평과 주택 면적 9평 정도를 무상으로 나눠 주었다. 그리하여 신선한 채소와 농산물을 직접 생산해 자급자족하는 것과 근로정신을 길러 자립을 지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실제로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금요일 퇴근해 부지런히 다차로 향했다.
첫째, 월요일에는 범죄가 전혀 없다.
둘째, 생산 농산물을 친지나 이웃과 나눈다.
셋째, 러시아인들의 삶 자체가 평화롭고 친환경적이다.
넷째, 이웃 간 화합이 특별하다.
(22/12/2, 23:15 집자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다. 어제 서천에서 김장해가지고 오다. 세 자매의 굳건한 허리에 감탄한다. 구지뽕의 붉은 매력. 아픈 허벅지 뒷 근육. 통증이지만 매력 있고 즐겁다. 막내처남은 아이들 대학보내놓고 산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고 춘배가 말한다. 조금 있으면 포르투갈과 월드컵 예선전이 열린다. 이기고, 우루과이가 가나를 이겨주면 16강에 들어갈 수 있다. 실낱같은 희망에 목메는 국민. 일본은 스페인까지 꺽고 16강에 안착했다. 일본축구의 현주소를 씁쓸하지만 감동적으로 받아들인다. 내일은 의정부 초딩동창들 송년회. 이번이 마지막 (나)총무의 의무행사일 터. 어제의 고생과 종천말걸리에 오늘 혹여 입술 부르틀까봐 조마조마 하였으나 괜찮을 듯하다. 상기 책 오늘까지 반납인데, 집자하다가 이따가... 그러다가 밤 열시쯤에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과연 나는 걸어서 계양도서관에 반납하러 갈까? 아니면 그냥 자고 말 것인가. 그 어느것도 아무 상관이 없긴 하다.)
(22/12/09, 18:10 금욜
방금 위의 글에서, '실낱같은 희망'은 정말 기적처럼 그렇게 실행되어 우리는 16강에 올라갔다. 그러나 브라질의 파상공세를 당하지 못하고 1:4로 졌다.
책 반납은 다음날 아침에 했다ㅋㅋ 밤시간에 차를 가지고 나가면 그 자리를 다시 파킹할 수 없기에, 또한 다음날 궂이 책을 빌리지 않을 것이므로ㅎㅎ
오늘인더스파크역에 갔다 와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다시 빌렸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나머지 집자에 들어가고자 한다.)
훗카이도를 즐기는 몇 가지 방법
일본 속 유럽 홋카이도를 가다
반면에 홋카이도는 일본 본토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북쪽의 추운 섬이어서 오히려 외국에 용이하게 개방되어 일찌기 유렵, 미국 등의 상인들이 섬 남단의 하코다테 항구로 이주해왔다. 그런 연유로 유럽 중세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시가지 곳곳에 세워져 고즈녁하고 안정된 도시 분위기를 풍긴다.
홋카이도는 사계절에 걸쳐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지만 가을 단풍과 고산의 야생화 물결은 가히 한 편의 시다.
노천온천은 흔하지만 호숫가 모래밭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노천온천은 또 다른 풍미를 자랑한다.
숙박비와 음식 값이 비싸다는 게 흠이다. 그래서 나는 렌터카를 빌려 오토캠핑으로여행 경비를 절약하는 쪽을 권한다.
우리는 편리한 문명과 문화에 길들여져 마음의 내적 생활과 영혼은 잘 돌보지 않는다. 유목민같은 야생의 여행을 하고 나서 체중이 5킬로 정도는 빠져야 고난을 겪은 증표가 될 것이다. 이것이 길 위의 노숙자를 자청하고 극한 상황에서 마주치는 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서바이벌 캠핑여행이다.
제2장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식을 얻으려면 책을 읽고
지혜를 얻으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삶의 폭을 넓히려면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더 큰 자유를 얻으려면 자연을 찾아야 합니다
메마른 방에 찾아온 봄
그리운 쑥향
외딴 두메마을의 옥수숫대 김치 움집을 지나쳤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언제 적 움집이던가. 다 삭아 흔적만 남았다.
마음 가는 곳이 있어 집 뒤 언덕을 향했다. 산행 때 내게 달래를 한 줌 건네주던 헐빈한 할망구. 언젠가 라면을 건네줬더니 "건 뭐유? 집에 할머니는 있쑤?" 하고 묻는다. "왜요?" 하고 되물었더니 "글쎄 늘 혼자이길래" 한다. 그이는 지금도 궁금해할까?
산자락 저편으로 봄날이 떠 있다. 산속의 긴 겨울도 금이 가니, 틈새로 물이 졸졸 흐른다.
그니들의 목소리
이게 웬일인가. 커피를 내리는데 서재에서 왁자지껄 여자들 소리가 난다. 황급히 발을 옮기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바랐던 착각인가.
'너'라고 하기엔 거북한 '그대', 아니 '그니'들 소리다. 옛날 자주 듣던 귀에 익은 그들의 '산山 소리'. 아득한 회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은 또 회상을 한다. 하고많은 밤을 지새워 무언가 지껄이며 우의를 다지던 그니들, 이 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니들과 함께 깊은 산중에 마주앉아 쏟아지는 별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자정 능선 넘으며 비수 어린 초승달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길 없는 험악한 산을 헤매며 우리가 제일 멋지다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명절 때도 집을 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히피가 되어 깔딸댔다. 그때 그들은 20대였으니 지금은 오십 안팎 됐을게다. 한창 멋스러운 시절을 살고 있을 그들의 자화상이 궁금하다. 혹시 병원에 누워 있으려나? 남편과 서로 노려보고 있지나 않나? 부모 자식 걱정하느라 주름이 늘었겠지?
노인정에나 가시죠? 나는 산행 중이오!
초인종이 울린다. 젊은 여자다. 국가보훈처에서 나왔다고 한다. 집에 전화를 몇 번이나 해도 받지 않아 찾아왔다고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니 "건강하신가요? 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 하며 어색해한다. 아하! 저승사자 하수인이로구나. 이제 나도 이 지경에 왔구나. '운구차는 갖고 왔쑤?' 하고 농을 걸려다 실수를 했다.
"산에 갔다 오느라 전화를 못받았네요."
"어머나! 큰일 나시려고, 꽃샘추위에 감기 드시려고. 노인정에나 나가시지요." 한다.
그리고 '사인'을 하란다. 죽고 사는 게 '사인'에 달린 것임을 이제 알았다.
고택에 부는 여백의 바람
담 넘어 나무는 내 집의 그늘이 되고
돌담은 하늘과 산과 나무를 아우르는 비선형 정물이다.
흙돌담은 너와 나와의 벽이 아니라 이웃과 정을 나누며 영산홍 사이로 애환의 조각을 엮는 나지막한 예술품이다. 수십 년 묵은 매화나무가 동시에 꽃을 피우는 황홀한 모습은 고택 마을의 축제다. 자연의 사치.
겉핧기로 해온 내 세계여행의 시각이 부끄럽다. 노마드족의 보헤미안 생활을 미치도록 고집해온 연유로 우리 고유의 '
선의 집'과 '넉넉한 정원'에 눈길을 보내지 못했다. 산에 그토록 많이 다녔건만 조국 강산의 마음을 정겹고 유연한 눈길로 우리 마을 곁에 옮겨놓을 생각은 미처 못했다.
산을 오르면서도 힘겨운 도전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고색 찬란한 집 한 채, 뜰에 우뚝 선 고목나무, 초승달에 걸려 쉬어가는 구름을 못 보는 아쉬움은 나만의 한인가?
고택의 여백이 쓸쓸히 웃다
고택길을 걷는 동안 나는 치유된다. 고목나무와 막 피어오르는 꽃나무 숲. 이 아름다움을 놓고 육체는 먼 옛날에 소멸되고 영혼만이 집 어딘가에서 한 맺힌 넋으로 서성이는 것 같다.
양반의 세도가 불길처럼 드셌지만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일. 주인 떠난 고옥을 지키는 느티나무, 잠든 영혼을 깨우는 여린 갈바람, 이름 모를 들꽃만 흔들린다.
걷는 내내 너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며 고택이 알려주는 것 같다. 아픈 생을 임기응변으로 약삭빠르게 산 삶을 이제서 알 만하다. 심심하고 한가로움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공백의 풍경은 아무리 뛰어난 문필가라도 필설로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호흡하며 먼 하늘 쳐다본다. 청정한 솔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며 '버려라, 버려라' 속삭인다.
가을엔 들판으로 나가 별을 세자
가을비가 산속을 지나가며 옛일을 소곤거린다. 나를 지탱할 수 없게 괴롭혔던 어디엔가 있을 고뇌의 잔해들이 낙엽을 흩날리며 향연을 벌인다. 나는 가을에는 오지 산골의 혼자가 된다. 책과 들국화, 구절초, 지천에 널려 있는 야생화가 나를 홀로이게 한다.
요즘 산엔 나뭇잎이 끊임없이 진다. 잎이 지는 이때가 이유 없이 좋다(나도 왠지 요즘엔 낙엽질때가 좋다).
낙엽을 보며 욕망의 꿈을 접는다. 생각과 사고는 인간만의 것이고, 동식물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을 짧고 가을은 가고 무덤은 다가온다. 가을엔 '심플 라이프 聖典'을 끼고 들판으로 나가 밤을 지새워 별을 세자.
들국화는 긴긴 가을밤 풀벌레 소리 사연을 들으며 사그라진다.
들판의 황금물결이 인간의 촉촉한 시선으로 자기네들을 보아주길 흔들고 있다.
맑고 가난한 길 따라
한 달 십만원으로 살아가는 자연인
오늘 나는 그리운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지금쯤 독거 청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화하니 외지에 나가 막노동중이라 20여 일 후에나 돌아온댄다. 그는 농사일하다 돈 떨어지면 노동 품팔이로 연명하는 그의 삶이 나를 움직인다.
돈 모으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무심한 자연에 들어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사는 데 뜻을 둔 청년. 그리하여 최소한의 생활을 견뎌내며 가능한 한 자기를 위한 일에 시간을 쓴다. 일신의 쾌락이나 상업주의 거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소박한 삶에 가치를 두고, 때로 좋아하는 음악과 독서를 즐긴다. 라디오로 뉴스만 듣고 티비는 없다.
국유지의 다 쓰러져가는 지금의 농막을 100만 원에 사들여수년 동안 조금씩 수리해가며 산다. 북쪽 벽을 허물고 통유리를 통째로 끼운 쇼룸 같은 방이다. 그 방에서 청년과 찻잔을 마주하고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본 적이 있다.
맑고 소박한 가난을 가슴에 담다
겹겹이 산에 둘러싸인 늦봄의 잔광속에서 짙어가는 녹음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늘 겪는 일이지만 땀 흘려 노동하고 육신의 고통이 생겨야 상념이 없어진다.
몸이 편해지면 대체로 마음이 혼잡스럽고 고통스럽다.
인간이 어느 한 분야에서 스스로 땀 흘려 깊어지면 그의 인생도 점점 원숙해진다.
내면이 자연과 유랑하는 거주去住의 자유를 만난다.
서울대 때려치우라던 한 자유인의 외침
"학교는 다니느냐?"
"네."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입니다."
"야, 이놈아! 당장 집어치워, 그걸 학교라고 다니느냐! 그곳은 인간공장이야, 규격인간 만드는 공장! 사내놈이 호탕한 꿈을 가져야지!"
당시는 일본이 중국을 침공한 지나사변, 중일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백 선배는 일본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자마나 중국으로 갔다. 그는 술독에 빠져 있으면서도 세계문학전집을 늘 가까이 했다. 붓글씨의 대가로한시를 창작하는 한편 낚시를 즐기는 프로였다. 90세 가까이 테니스를 쳤고, 인사차 찾아가면 늘 역사책과 영어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어느봄날 초저녁, 해장국을 먹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당시 변두리 농촌이었던 화곡동 논둑을 찾았다. 개구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들려도 용하게 알아차리고 일제히 소리를 멈춘다. 그때 백 선배는 발을 쿵쿵 울리며 "상설아, 내가 진시황이다. 엎드려라!" 하며 깔깔댔다.
어느 가을날엔 영종도 억새밭에 텐트를 치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무 사이의 달빛을 보았다. 우리의 귀를 너무 믿지 말자, 풀벌레 소리에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로부터 50년이나 흘렀다.
피아니스트 자연에 살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장장 2500킬로를 오토캠핑으로횡단했을 때도 아만다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시드는 꽃의 운명을 알기에 소박한 삶을 모토로 길 위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빈곤하다 못해 처량한 처지를 감내하는 끼 많은 작당을 자처했다. 우동 한 그릇 제대로 안 사 먹은 우리들.
의사, 마라토너, 자유인에 대한 한 단상
일행은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가평의 가덕산을 올랐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이슬에 젖은 풋풋한 풀밭을 스릴 있게 헤쳐나갔다.
구순 앞둔 할아버지와 서른 살 손자의 필담
외할아버지께
하지만 인생에서 공부란 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생을 좀 더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삶의 지식을 늘려 나가는 것이 더 큰 공부라는 것을요.
손주에게
이번 글을 보니 마음을 진솔하게 풀어놓는 점이 돋보이니, 내친 김에 꾸준히 글을 보내라. 그러면 차차 논리적이며 확고한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면서 철학으로 내면화된다. 이게 바로 인간의 상부구조를 견고하게 하는 기초다. 그리고 책만 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천만이 답이다.
텔레비전 보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외식 즐기고, 사우나 가고, 잡담하는 등의 하부구조, 즉 살덩어리를 키우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에 빠져드는 인간들과는 확연한 구분 말이다.
외할아버니께
학교에서 배우며 살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게 전부인 것처럼 가르쳤고,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잉여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불과 1년 전입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 정말 한순간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말씀없이 행동으로보여주는 모든 것들을 깨달았지요. '아, 이거구나. 이래서 자신을 찾고 철학을 가지고 살라고 하신 거구나'. 글로 표현하기에도 벅찬 감동의 순간이자 대발견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으며, 30년 동안 모르던 것을 뒤늦게 깨달은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만 봐도 술에 연명하며 왜 사는지 모르고 삽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상주의자로고만 치부하죠. 무엇을 느꼈느냐고요? 글쎄요, 알긴 아는데 아직 그걸 글로표현할 만큼 성숙하진 않았나봅니다. 디자인에서 이런 걸 '콘셉트Concept라고 하죠. 디자인 아포리즘,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내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Story가 있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아이를 크게 키우려면 자연에서 놀게 하라
오직 학교 성적, 명문 학교, 영어. 수학 경쟁만이 전부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틈마저 빼앗는다. 가정교육 탓은 하지 않고 학교교육만 원망한다. 부모는 아니들을 식민지화 하여 완전 점령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모양인가? 그러면서 생계타령만 늘어놓고 세상을 원망한다.
아이는 스스로 치열하게 살아내려는 생명과 영혼을 갖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 그 자체다. 하나의 생명씨앗인 도토리와 같다. 아이들은 스스로 싹을 틔우고 자라는 힘을 내재하고 있다.
사람은 다섯살 이전의 교육이 평생을 간다. 다섯살 이전에 절제된 사랑의 교육이 한 평생의 삶을 만든다. 사람의 성격은 다섯살 이전에 만들어지고 형성된다. 여섯살 이후에는 자녀의 자생력을 자세히 관찰하며 자존심을 존중하며 여유롭게 먼 장래를 목표로 도와줘야 한다.
일등을 목표로 하지 말고 일품一品을 희망해야 한다.
아동발달 심리학 책을 펴들고 진지하게 고민하라.
프로이트, 융, 에릭슨, 스키너, 피아제, 로렌스의 아동발달과 성숙의 의미를 살펴보라.
인간이 사회와의 관계속에서 맺게 되는 대인관계의 질과 정신 기능, 그리고 사물과 자연을 대하는 감성의 자율성도 역시 다섯살 이전의 부모 교육에 달려 있슴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성장하면서 습득하는 인식과 지식은 에고의 정체성과 당사자의 디엔에이 등에 좌우되고 끊임없는 자각과 자기 수정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부여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교육은 사람만 괴롭히는 허구다. 배움의 최종 목표는 변화이고 행동이다.
다만 외국어 공부는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기선이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부모와의 갈등이 컸다. 기선이는 고집을 꺽지 않았고, 아버지는 포기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는 남남이 됐다.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 그런 기선이와 앞으로도 종종 만나서 화악산도 오르고 설악산도 종주하기로 했다.
인생은 한번뿐이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매이지 말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 돈벌이에 몰두하지 말고 틀을 깨자.
인습을 깨고 자연의 리듬에 맡겨라
그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그만의 육감으로 가려낸다. 뒤돌아보지 않고, 마음에 들면 그 인연과 의리를 철통같이 이어가고 마음에 안 들면 단번에 버린다. 그는 자기만의 믿음이 대단하다. 보편과 상식을 걷어치우고소신에 매진한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들로부터 살아 있는 가치를 스스로 깨우쳐 배우고 생명의 자연 리듬에 맡겨 산다.
우리는 화전민이다, 장발장이다
주인 없는 뜰에도 계절은 머문다
북배산 등산길에 만난 화전민
1962년대 이전 우리나라 등산 환경은 상당히 열악했다. 몇몇 산을 빼고 등산길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1962년 9월 추석을 앞둔 어느 날, 가평과 춘천의 경계선에 있는 북배산(866미터)을 목표로 등산길에 올랐다. 춘천 태생인 나는 어릴 때부터 겨울이 되면 제일 먼저 눈을 뒤집어쓰는 그 높은 산을 신비롭게 여겼다.
덕두원리~ 고도트미~ 독가동~ 싸리재를 거쳐 긴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다. 덕두원리를 출발해 세 시간을 걸어 6킬로지점에 이르자 어디선가 도끼질 소리가 들려왔다. 싸리재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이었다. 숲을 헤치고너럭바위를 넘어 계곡을 가로질러 간신히 인기척이 난 곳을 찾아가보니 산비탈 으슥한 곳에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억새지붕 한쪽은 삭아서 내려앉았고 벽은 싸리로 엮어 진흙을 발라놓았다(이 화전민 움막은 1973년 강제철거됐다).
1968년 10월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했다. 소년 이승복이 희생된 반공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화전민들은 1968년 화전민 정리법에 의해 1976년까지 강제 하산됐고, 정부에서 만든 독가촌으로 집단 이주했다. 전국 산골에 산재해 있던 화전민은 4만 호에 이른다.
나도화전민이다. 장발장이다. 소박하게 살자. 자연에 살자. 은혜와 자비에 살자. 바로 이거야! 속으로 외쳤다. 당시 나는 젊은 마흔이었고, 그 충격으로 아나키스트적인 도시의 화전민을 자처하며 '1인 국가'를 창건한다. 화전민을 연민한 것은 나의 결핍 때문이다.
쌀밥은 일년 내내 구경조차 할 수 없고 감자, 옥수수 범벅을 마주하고 있으면 슬픔은 절정에 이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것마저 떨어져가니 이제 말려놓은 산나물과 무청시래기를 삶아 쑤셔 넣어야 할 판이라고 뇌까린다. 화전민들은 먹는다 하지 않고 '쑤셔 넣는다', '처먹는다'고 말한다. 간장에 물을 타서 부추잎을 둥둥 띄운 냉국과 찐 감자를 놓고 "어서 빨리 처먹어, 이 지겨운 것아, 이 애물단지야! 이것마저도 내일부터는 때울 거리가 없어. 이 웬수야"한다.
"이놈의 지겨운 몸뚱어리는 언제 고꾸라지려나? 그놈의 오라질 저승사자는 어디로 가서 오늘도 나를 안 데려가나." 추석은 며칠 안 남았고 해는 나날이 짧아져 곧 엄동설한이 닥쳐올 텐데 하늘도 무심하다며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을 통틀어 해댄다.
사방에는 높은 산뿐이고 돗자리만 한 하늘이 삐끗 보이는 비탈진 산에 불을 놓아 작은 화전을 일군 사람들, 말이 밭이지 태반이 돌자갈이어서 쟁기도 제대로쓸 수 없어 화전민의 손은 흡사 원숭이 손에 가깝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고 움막에서먼 거리에 있는 산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으면 땅의 지력이 약해져서 매년 순환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골의 토지가 워낙 황폐한 데다 가난해서 비료도 못 사 쓰니까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소출은 형편없다.
화전민의 재산 중 제일 값어치 나가는 것은 단연코 무쇠솥이다. 다음으로는 곡괭이, 톱, 도끼, 삼 등의 농기구이고, 다음이 부엌에서 쓰는 함지, 물통, 장독과 약간의 식기다. 집도 산에서 얻는 목재와 자연 재료를 써서 자력으로 손수 짓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가내 작업으로 만든 것이어서 석기 시대를 방불케 한다. 그들의 가난은 대를 이어 후손으로 이어져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을 집자하려니 가슴에 묵지근하게 무언가가 얹혀 진 느낌. 어쩌면 나도 거의 화전민의 아들로 살았지 않았나 싶어. 평야지대 땅은 죄다 주인이 있고, 중높이의 산꼭데기에만 우리가 경작할 땅이 있었다. 그나마도 도지를 주어야만 한다. 고구마. 조. 보리. 수수. 콩. 팥이 주생산품이었다. 감자는 집 근처에 심어 먹었다. 물론 우리 아버지.어머니.형님께서 농사를 지으셨지만 나도 꽤 관여되어 있다ㅋㅋ 그런데 필자가 북배산에서 만난 화전민에 비하자니 아무래도 우리네는 그에 비할 수 없는 행복한 농군이었던 듯하다. 화악산과 매봉 사이를 실운현이라 이름하고, 가평에서 실운현을 넘어가면 강원도 사창리다. 실운현 오른쪽 매봉이 산세를 조금씩 조금씩 낮춰가며 내려가면 이윽고 북한강 옆 삼악산에 닿는데, 그 이어져 내려오는 가평과 춘천의 경계능선을 '몽가북계' 라고 산꾼들은 명명해 놓았다. 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이 삼악산까지 이어져 있다. 나의 경우 삼악산은 젊은 날에 몇 번 올랐었고(등선폭포가 있는 바로 그 산이다), 계관산을 몇해 전 눈발 날릴 때 다녀왔다. 그래서 이 부분의 내용들이 내게 낯설지 않게다가온다.
내일은 22/12/10 토요일, 현리 상판리를 간다. 서울골목친구들과. 10시쯤 만나 인근을 산행하고 황토펜션에서 묵을 예정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 만나는 골목회친구들. 나애네는 빠지는데 '노륜산시장 손 흔드는 사건'으로 미루어 그네는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맘이 편하지 않다. 어쨓거나 오랜 친구들과 좋은 추억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22/12/11, 20:14 일욜저녁
현리 마일리 다녀왔다.
경기가평 조종면 연인산로 505-31
벽면이 황토색시멘트고 장작을 땐다. 이런 류의 펜션은 근자 보기 힘들듯.
공기가 투명하고 맑고 차왔다. 운악산세가 마일리까지 영향을 미쳐 그곳은 한마디로 산곡동이었다.
우리가 1등도착, 회장네, 그리고 솔이네 전사장네 순 도착
점심 후 천렵을 나갔다. 연인산행은 말잔치에 불과하고 만다. 망치가 무거웠다. 그래도 내가 젤 멋지께 쳤고, 주로 내가 했다. 조금 깊은 곳,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중태기. (암컷은 피라미 이지만 수컷은) 불거지가 나왔다. 종개와 동자개도 보였지만 이들은 땅으로는 잡을 수 없는 강단이 센 놈들이다. 너무 힘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에서 멈췄다. 내가 볼때 2인분이 딱 맞을 듯 했다. 냉이를 몇 개 캤다. 저녁 때 회장이 끓여준 민물매운탕의 맛. 어쩜 그렇게 맛있을까... 새삼스럽게 그 맛에 젊은 날이 오롯이 고였다. 전사장과 잣나무 부러진 굵은 기둥을 끌고 오고, 저녁 내내 모닥불을 피운다. 메땅을 치며 등에 났던 땀이 식으며 오한이 느껴졌다. 목욕실의 온수는 웃긴다. 수전이 냉.온수가 거꾸로 조립되어 있었고 보일러는 방에서 넣게 되어 있었으니ㅜㅜ 쥔장의 멋진 합석과 멋진 퇴장에 경의. 포도주 댓병 둘. 총무님 애교로 한병 더. 그러한 방식은 싫어한다고 말하는 쥔ㅎ
22:00경 차례로 누웠다. 왼쪽에 아내 오른쪽에 솔이아빠. 새벽에 요기로 깨었더니 회장이 밖에 나갔다가 오면서 "별이 정말 이쁘다"고 한다. 야기를 무릅쓰고 바깥에 나갔더니 아~ 북두칠성이 또렷했다. 저 별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것이기에 이리도 애잔히 반짝거리느냐. 달은 나목의 은행나무가지에 잡혀 있고 남쪽으로 오리온자리가 멋지게 반짝인다. '야간' 으로 셋팅하고 몇 컷 찍었다. 이후 쉽게 잠못이루는 일행들. 깰때마다 솔이아빠는 폰을 보고 있었다. 아내도 잠 못잤다고 한다. 솔이네도 다르지 않았다. 전사장의 우렁찬 코골이. 그러나 춘태에는 1/5수준ㅋㅋ
일곱시 넘어서 일어나 전사장과 산으로 올라가 볼일을 모래땅 파고 본다ㅋ 다시 잣나무 둥치를 메고 내려왔다. 누렁이가 따라왔다. 아침은 엊저녁의 닭국물에 밥 말아 먹었고 회장네는 결혼식이라고 일찍 떠났다. 우리는 불 주위에서 커피를 먹었고, 황토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각자의 폰에 빠져 들어 쉬었다. 나는 카페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오전 늦은 시간에 격자창으로 밀려드는 초겨울의 햇볕은 찬연하고 밝았다. 술 취하지 않은 솔이아빠는 말이 없구나. 코골고 자는 전사장...
여쥔에게 인사하고(바깥쥔은 시내에 가셨다고 했다) 가까운 카페를 찾아 떠났다. 두어 군데 들러 결국은 현리 시내로 들어갔고, 엉뚱하게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카페 공감에서 카페라떼 한잔.
코로나로 인한 위기 이전에 골목회는 안으로 곪아 있었다. 원인은 년말정산을 안 해 줘서. 그렇게 위태했었는데, 코로나가 덮쳤다. 엎친데 겹친 격이다. 그러나 그 안식년ㅋㅋ이 외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공유하게 되었고, 박범룡씨가 회장을 다시 맡겠다고 하여 오늘 첫 나들이를 하게 됐던 것이다.
김ㅅ천씨네가 빠졌고 명복이네가 빠졌지만 엄청난 빈자리 느낌은 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맘에 맞는 사람끼리
끝까지 갑시다~~
어젯밤 포도주잔을 부딪치며 나눈 언약이다. 마음에 고운 빛깔로 새겨진 글씨로 20:46)
화전민의 딸, 머슴에게 시집가던 날
시집보내는 날까지 딸에게 먹인 고기가 한 근을 넘지 못한다고 땅이꺼지도록 한숨지어 뇌까리며 침을 획 내뱉는다. "육시할년아! 칵 뒈져버려라"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딸에게 욕바가지를 퍼붓고 살아왔는데, 그 딸이 오늘 시집을 간단다. 어미는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통곡한다. 못 먹이고 천덕꾸러기로 자라 온 죄 없는 자식에게 가난의 분풀이를 매질로 해댄 잘못의 한이 복받쳐 몸부림친다.
결혼이라야 예식도 없고 하객도 없이 단둘이 보따리 하나 달랑 들려 보내는 게 전부다. 막상 딸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해준 게 없고, 한 입이라도 덜려고 남의 집 식모로 팔려가 눈치밥 먹인 게 측은하고 불쌍하다. 말라빠진 딸의 휑한 눈에서 주르르, 납작한 오징어 가슴에 눈물이 얼룩진다. 남의 집 식모로 뼈 빠지게 일하며 살던 중 갑자기 집으로 오라 해서 가보니 생판 보지도 듣지도 못한 머슴살이를 데려와 봇짐 하나 들고 따라가라는 게 아닌가.
자나 깨나 부모의 고생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딸이었다. 식모살이 집에서 얻은 귀하고 귀한 구리무를 엄마에게 발라주려고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딸으 ㄴ하염없이 흐느낀다. "세 끼 굶어도 신랑을 챙겨라. 그게 살 길이다. 너는 뼈만 추려도 좋으니 시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 이것아, 이제 어미는 잊고 잘 살아야 한다." 어미도 흐느낀다.
지지리도 가난한 화전민의 딸로 태어나 배를 곯며 겨우겨우 살아왔다. 욕지거리를 먹는 것도 매를 맞는 것도 산과 엉킨 사람의 도리로 여겨왔다. 하기야 남과 섞여 살아본 적이 없으니 움막과 산과 아비와 어미가 다였다. 그런데 하늘같이 여겨왔던 불쌍한 보모와 헤어져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는 보자기를 폈다. 다시는 이 소술에 기어 들어오지 않겠다며 봇짐을 싸서 도망치던 그 낡아빠진 보자기다. 그렇게 도망쳐도 날이 어두워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와 감자를 솥에 안치곤 했다. 그 보자기가 오늘 대물림으로 이 집을 떠난다. 이 보자기는 이 집의 혼과 부모의 마음과 딸이 유년 시절에 혼자 쓸쓸하게 공깃돌 놀이하던 꿈을 담아간다. 아버지는 꼬깃꼬깃 구겨진 얼마 안 되는 돈을 보자기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으면서, "얘야,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이게 다다"하며 획 돌아 주저앉고는 차돌같이 굳어져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낀다.
나중에 떠날 때 머슴은 보따리를 겨드랑에 끼고 저만치서 색시를 기다리는 눈치다. 딸은 마당의 장독대도 쓰다듬고 대추나무도 어루만지며 영 발이 안 떨어진다. 딸은 산길 구비마다 정든 바위와 나무를 보고 울면서 낯선 머슴을 따라간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젊어 건강할 때 모험하지 않았던 후회뿐일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습관을 최대한 다스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습관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남에게 속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남보다 영리하다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3장
생각이 깊어지는 삶이 행복하다
꿈꾸는 자는 실험한다
나의 영토는 경계가 없다. 그러나 밤이면 랜턴의 불빛이 미치는데까지가 나의 영역이다. 이 작은 세상을 어둠이 감싸준다. 좁은 한 평의 캠프는 자유의 크렘린 요세다. 몽상의 세계와 독대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커닝하는 곳.
'에라 모르겠다. 자연에 맡겨 놀자. 이제 됐다! 교과서에 없는 짓만 골라서 밀고나가자'. 세상은 사변적인 말이나 문장의 기교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땀과 눈물로 빚어낸 실존의 공간이다.
성취는 생각이 아니라
지체 없는 행동이며 미완의 길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실수를 당연시하는 모험의 실험장이다. 인생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운명의 연속이다.
앤생의 9부 능선을 지나고 있는 나는 혼자 산다. 티끌만 한 고통도 가족에게 짐 지우지 않는다.
내가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자식들에게 효도한다.
나는 실수를 저지르며 그 실수를 실험한다. 그것을 행동으로 실험한다. 나는 환자로 죽지 않고 여행자로 죽을 것이다.
삶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상품의 질은 일일이 따지면서 삶의 질은 소홀히 하는 우리의 타성을 들여다보자.
나를 발견하는 공부를 시작하자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것뿐 아니라 대우 받고 동정받고 주저앉아 있는 가운데 더욱 늙어간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
젊은이의 공부는 30~40년 후의 바람직한 자기모습을 만들어가는 작업니다.
돈과 시간을 책과 산행, 여행에 유용하게 쓴다.
나는 옷이나 구두, 레저용품과 생활용품을 중고품으로 구입해 쓴다. 60년 전 결혼할 때도 정마 중고시장에서 조금도 부끄럼없이 당당하게 권색 양복(속칭 세비로)을 사 입고 식을 치렀다. 남들은 신랑이니 당연히 새 정장을 입었으리라고 속았을 것이다.
남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절약하는 생활과 자연에 뒹구는 극기 훈련이 효자다. 산행은 고생을 사서 하는 움직이는 명상이다.
세계로 지구로 출근하라
나만의 역사를 쓴다는 것
산다는 것은 발끝에 달렸다
걷고 뛰고 닳아 문드러져야 세상이 보인다
호기와 탐험으로 쏘다니며 출근을 지구로 자연으로 하라
모든 사연과 사람을 넘어서 들풀과 흙과 연결되라.
마라톤이 한 발 한 발 칼로 족紋을 새기는 자학의 극치이듯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우직하게 행동한 자취가 역사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결여'와의 전쟁이 삶이고 역사다. 인간은 불안해지는 순간부터 용맹한 전사가 된다('황성공원의 밤'..., 이게 무슨 뜻일까? 밤을 차박하자하면 여러가지 불안이 따라 붙는다. 그런 뜻일까).
걷기, 몸으로 자연을 읽다
걷기는 발을 빌려 몸으로 자연과 세상을 읽는 운동이다.
몸을 욕망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으로 소진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론가 떠돌며 숨겨진 기막힌 곳에 든다. 혼자 무릎 치며 노는 기쁨, 누가 엿듣고 알까 조아린다. 이렇게 가슴 뛰는 일, 세상에 들킬까 생각하니 유쾌하다.
이제 노향목老香木은 흙에게 당부한다. 내 마지막 잎새 땅에 사뿐히 지는 날, 못 본 체해다오.
씨 속의 사과는 자연만이 안다
나는 운명보다도 인과율을 믿으며 순간을 사는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미리 정해진 삶의 모럴과 외부에서 주어진 한계 안에 갇혀 살 수 없고, 행동이 생각이고 신념이다.
세상은 상식적으로 보이는 만만한 곳이 아니라 우주와 맞닿아 있는 광활하고 경이로운 공간이다. 세계는 착각이며 모든 것은 현상이다. 이제라도 눈을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라고 권한다.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이 우리네 삶이 얼마나 존엄하고 위대한 배려 가운데 존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사과 속의 씨는 헤아려 볼 수 있으나, 씨 속의 사과는 자연만이 안다. 꽃이 열매로 익은 다음 마침내 떨어져 썩는 사과는 현실의 한 부분이고 우주의 한 부분이다.
굳은 삶을 무너뜨리고 매번 새롭게 사는 길을 택할 때 우주적 인류사관을 꿰뚫는 유유자적한 삶이 가능해진다. 소외된 지혜로는 늘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극지에서 다시 태어나라
사람의 몸은 다리부터 약해진다고 한다. 나는 이 교훈을 항상 간직하고 걸을 수 없을 땐 기어서라도 산책한다. 노쇠와 투병이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숲에서 보낸 하루는 훌쩍 자란다
숲은 느린 시간과 세월의 탄력으로 침묵한다. 숲은 보이지 않게 자란다. 늘 같은 날이지만 똑같은 날을 하루도 없다. 씨앗은 땅이나 눈 속에 버려두는 게 생태적으로 옳지만 동물이 먹어치울까봐 높은 데다 매달아놓는다. 씨앗은 하잘것없는 먼지부스러기처럼 보이는 저 좁쌀만 한 씨앗 속에 다얗하고 오묘한 생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이 하도 신기하고 고마워서 생의 시조인 씨에게 자주 문안을 드린다. 따뜻해지는 봄날이면 그네들은 기막힌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의 종살이를 살며 가슴에 봄을 품고 땀방울을 마다하지 않는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씨앗을 모으고 뿌리며, 새 생명을 늬우는 데 진정한 풍요가 있다. 이 과정을 힘들여 노동하는 진정성이 마음의 황폐를 씻어주고 평화를 가져온다.
사유하는 마라토너
저때가 몇살때였을까!!
문학경기장을 출발하여
승기4거리 반환점 도는 하프10킬로 마라톤
43분에 테이프 끊었던 기억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이었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 바위를 붙잡고 나무는 운다. 뿌리가 부여잡은 목마름. 혈혈단신 벌거벗고 맞선다. 모든 고통의 신음을 토한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의 고통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외로움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
더 된 고독으로 승화하자.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세계적 철인을 키운 걷기의 힘
삶은 기초가 든든해야 흔들림이 없다(집자하는 지금 이 말이 깊이 후집고 내게 들어온다. 김포대교를 건너 오면서 아내는 무당처럼 뜨끔하게 말했다. 그 말이 가슴에 아직도, 언제까지나 얹혀 답답히게 될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헤쳐나가야 할 숙제인 바).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쇼팬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독일의 네카어 강변을 끼고 도는 고색창연한 하이델베르크 고성 건너편 산기슭을 걸으며, 그때만큼 나 자신이 된 적이 없다. 슈만의 피아노곡 <나비>가 들려올 것만 같은 꿈길이었다(유튜브로 '나비'를 듣는다. 피아노음).
걷다 죽는 것이 노인의 바람이다. 더 노약해지고 병들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날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쉬엄쉬엄 걸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다부지게 걷는다. 평지에선 게으름을 피우지만 가파른 언덕에선 야무지게 기어오른다. 나는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며, 길 없는 길을 만들어 걷고 또 걷는다.
마사이족 하루 평균 3만보 걸어
걷는 훈련이 절실하다. 팔을 힘차게 저으며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파워 워킹을 해보라다. 매일 걸으면 200개의 뼈와 60개의 근육이 골고루 움직여 총체적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가정은 살림이 아니라 경영이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자들의 딜레마
세상의 모든 남자는 선함과 악함, 용기와 비겁, 성실과 태만 사이에서 교묘하게 여자를 다뤄나간다.
이렇듯 여자는 왜 못된 남자에게 빠져드는가. 가부장제에서 이뤄지는 교육 때문이다. 딸이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고 남녀의 문화 차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결코 이끌어주지 않는다. 남편에게 선택되면 그 대가를 죽을때까지 치러야 했던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굴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경제이론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는 결혼 생활도 경제학의 논리를 비켜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두 미혼 남녀는 결혼으로부터 얻는 이득이 독신일 때 얻게 되는 각자의 이득보다 크기 때문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고 강조한다.
가정은 주식회다. 소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고 생산을 지원하는 경영 시스템이다. 따라서 결혼은 인생 최대의 투자다. 가정은 운영 기술에 따라 번영하기도 하고 파국을 맞기도 한다.
결혼 상대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가정은 운영 기술에 따라 번영하기도 하고 파국을 맞기도 한다.
남자는 운전하느라고 피곤했다. 불암산을 빠져나와 사패산에 들어섰을 즈음 여자가 말했다. 난 아직도 당신이 그니를 만나고 있다고 믿어. 여자의 육감은 아주 민감하거든. 김건희科인가? 남자가 물었다. 아니, 그녀는 무당들과 같이 사는 거잖아. 다른 건 모르겠는데 당신은 내가 삼십년을 같이 살았잖아. 그래서 아는거야. 만약 만나다가 들키면 노년에 이혼하고 가족들에게 된통 창피당하게 될거야. 그러니 정리해. 여자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남자는 말대꾸하는게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화를 내는 일도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된통 우울하고 피곤은 더 억세게 부딪쳐 왔다. 피곤한 여자다. 양주휴게소에 도착했다. 너무 사생활을 개방해서 그런건가. 집에 돌아와서 남자는 생각한다. 그것이 뭐 그래서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 이런 짚음은 삐져서 될 일도 아니다. 평소처럼 살면 되는 일이다. 상황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이다.
정신문명 좌우하는 엔트로피법칙 깨달아야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한다. 에너지 보존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
그런데 그 에너지인 물체에 화학 변화를 일으키면 다른 형태로 변하여 원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공해로 변화하여 지구에 잔류해 증가한다는 뜻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간다.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기란 불가능하다. 이 법칙은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살아 있는 생물은 결국 죽게 되는 자연 세계에 두루 적용된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생애도 엔트로피 법칙에 따른다.
인간 중심의 세상을 자연 중심의 우주관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실행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명이 물리적 세계에 덜 부착돼 있을수록 인간은 물질의 한계를 초월하고 내면세계의 진수를 누리게 된다.
(이 말을 상설옹은 난해하게 설명하셨지만 '문명이 물리적 세계에 덜 부착돼 있을수록'의 뜻은 '인간이 물질.문명의 혜택을 덜 누릴수록'의 의미일 것이다.)
이 거대한 문명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발생하는 물리적 독해인 엔트로피와 인간의 일방적인 욕구가 맞물려 문화라는 이름으로 위장되어 개인에게나 사회에나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문화취향이 사회 계급을 결정짓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개인의 문화적 소비성향(취향)을 말하는데, 이 성향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 교육 수준, 사회 계층, 성장 배경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사회 구조를 내면화한다. 아비투스란 각기 다른 생활환경에 따라 생성된, 개인 안에 내재된 사회계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습관화된 취향에 따라 편리한대로 문화를 소비하지만, 사실 이것이 상류문화와 하류문화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상류문화와 하류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한다).
자본형태는 경제활동의 기본요소인 경제자본, 사회적 연줄망인 사회자본, 문화적 성향과 태도가 권력수단이 되는 문화자본으로 나뉜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은 비가시적인 무형의 자산으로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문화를 확보해 상위계급에 진입하는 무기가 된다.
문화 자본을 만드는 취향은 학교에서 얻어진다기보다는 가족을 통한 문화 자본 전승의 결과다. 즉 부모의 문화취향이 자녀의 문화취향을 결정짓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라는 거울을 통해 동일시와 각인을 되풀이하며 자신의 문화를 형성해간다. 부가 대물림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치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문화 자본을 견고히 해야 한다. 문화 자본을 우아하고 품격 높은 아비투스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1차로 빌렸을 때 여기까지 읽었다. 밑줄쳤다는 의미. 그러므로 잠시 집자를 쉬고 다 읽고 난 후 재 집자에 몰입할 것이다. 22/12/12, 월요일 21:59)
한국인의 의식 구조, 이대로 좋은가
홍사중의 <한국인, 가치관은 있는가>와 최준식의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는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잘 진단해준다.
한국인의 미운 얼굴, 고쳐야 할 부분을 간추려 본다.
집을 떠나지 못한다/ 내 가족만 중요시한다/ 내 새끼 유일주의에 교육현장 망가졌다/ 개인보다 무리를 좋아한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 한다/ 윗사람은 체면을 따지고 아래 사람은 눈치를 본다/ 아래위를 따져야 시원하다/ 남과 다른 것을 참지 못한다/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불확실성 회피 심리/ 열 잘 받고 화 잘 낸다/ 신명에 둘째가라면 서럽다/ 감 잡는 데 귀신이다/ 검증 없는 비과학적 사고 체계/ 유연성이 부족하다/ 노는 데는 귀신/ 무질서 의식/ 대강대강 괜찮아 적당주의/ 대중 심리에 휘말리는 몰지각/ 실험 없는 삶/ 우물 안 개구리/ 허풍과 허장성세/ 교양. 매너. 예의 부족/ 너무나도 화끈한 종교 문화/ 집안과 집 밖에서의 이분 구조 생활...
캠핑은 문화다
요즘 등산하는 풍경이 궁금해 어느 한 산악회 버스에 올라탄것이 문제였다.
산에 도착하면 좀 나아지려나? 목적지에 도착하여 등산길에 오르는 모습을 보니 마치 운동장 레이스 출발점에 선 것 같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걷기 시작하고, 나는 맨 뒤에 처진다. 생각하며 걷는 게 아니라 힘으로 밀어붙이는 폭력등산이다. 그러니까 신문마다 관절염 치료 광고가 넘쳐나는 게 아닐까?
오토캠핑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마치 아파트 주차장을 캠핑장으로 급조한 것처럼 보였다. 고성방가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왜 그 먼 길을 떠나왔을까? 가을은 저 홀로 익어가고......
구순 가까운 늙은이가 글을 쓰는 까닭
생활의 인문학을 꿈꾸며
인문학은 다름아닌 인간학이다.
나는 실생활에서 건져 올린 질문과 반란을 근거로 문화결정론적이 아닌 문화자유론적 의지로 글을 쓴다. 글에 허우적거리게 되면 가까운 습지를 걷는다. 찬바람 휘돌아 치는 그곳에서 세상일을 버리고 오고가는 사람 없는 조용한 가을 한 귀퉁이를 밟는다. 발자국 수만큼이나 생각을 지우며 무심하게 걷다보면 그만 시가 되고 글이 되는 길이 있다.
경험하고도 쓰지 못하는 이야기, 차마 할 수 없어 한쪽에 접어둔 아픔, 글재주가 없어 못 쓰고 있는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우리 눈앞을, 귓가를, 피부를 지나갔는가? 이렇게 인생이 가고 세월이 가는데 이야기는 어디에 쌓아 놓고 있는가? 전공분야가 다르고 팔순을 넘은 나이면 어떤가. 노력 여하에 따라 인문학의 그늘에 기댈 수 있다. 우리는 마땅히 그런 희망을 가져야 한다.
늙는 줄도, 죽는 줄도 모르고 나는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온 산하를 헤멘다. 내 발걸음이 닿는 곳, 내 손길이 닿는 곳에 인간을 위한 학문과 감성이 자란다. 그렇게 길어 올린 사색의 풍경만이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적막한 밤에 영원을 생각하다
적막이 끝없이 흐르며 깊어가는 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시간은 멈추고,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오로지 순수하게만 생각되는 밤이다.
보잘것없는 노인이지만 이 영원의 시간 앞에 서서 다시 옷깃을 여며본다. 이슬과 같(은 목숨)이, 허덕이며 보낸 하루하루가 너무나 활기차다. 땀을 흘리고 애 태운 일들, (잠 푹 자고나면) 신비스런 힘(이)에 다시 (나를)일(으켜세운다)어선다.
인생을 가꾸는 가장 아름다운 길
인간의 영원한 고향을 찾아서
오지의 산, 발품을 파는 자만이 감동을 얻는다. 원시를 마음껏 느끼려면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새벽밥 지어먹고 산에 들어 맑은 공기 마시며 자연의 친구들과 넉넉한 여백을 보내자.
들꽃, 거목, 험준함에 끌리게 되는 비경.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을 잊게 하는 호젓한 숲, 오밀조밀한 계곡의 풍광, 그리고 물소리. 산길은 사색을 깊게 한다. 야생화, 고원의 원추리꽃 물결, 부드러운 산릉 따라 싱그러운 바람이 잎 사이를 지난다. 풀벌레 소리, 어둠이 깔리는 스산한 저녁 노을과 밤 별,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인다.
죽음을 당해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침묵의 식물 세계가 사라진다면 인간도 동물도 생존할 수 없다. 식물은 땅을 정화시키고 공기를 맑게 하며 인간을 치유한다. 모든 생명은 근원적으로 흙과 식물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며 죽음과 화해한다.
산에 푸른 보석을 심다
마흔 살 즈음, 건설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부업으로 집을 지어 파는 집장사를 했다. 목돈이 마련되자, 가평군 북면 도대리 명지산 동쪽 일대의 임야 30만 평을 매입했다. 당시 값은 평당 5원이었다. 서울의 집 한 채 값이 50만원 할 때 였다.
투자 가치는 없었지만 1967년부터 3년간 잣나무와 낙엽송 20만 그루를 심고 밤나무 5000주를 심었다.
내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상의 큰 보람을 느낀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숲이다. 산소를 뿜어내는 생명의 끈이다. 푸른 보석이다.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 씨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 속의 사과는 자연만이 압니다
사람의 생명은 자연에 맡겨져 있고
그래서 사람은 자연에 순응해야 합니다
4장 홀로 숲을 이루는 나무는 없다
왜 혼자 사냐면 웃지요
내 말은 쇠귀에 경 읽기. "그래도 그렇지요"로 김을 뺀다.
이럴 때 나는 치옹의 한마디를 떠올린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기는 것은 세대 차이가 아니라 늙기 전의 나를 잃음이다."
나는 살림을 즐겨 하는 편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고역이다. 원래 기계공학을 공부한 때문이어서 글 쓰는 데는 소질이 없나보다. 몇 년 전부터 황반변성으로 나빠진 눈 때문에 힘에 부치는 글을 겨우 쓴다.
밭 갈고 때때로 책 읽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나른하고 감동 없는 일상을 벗어나려면 생의 원천인 흙을 파 뒤집어 씨앗을 가꾸며 새싹을 보듬는 순정의 불꽃을 지피면 될 일이다.
일하다 주저앉아 석양빛 사이로 흘러드는 나뭇잎 그늘 사이를 무심히 바라보라. 불현듯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주 짧은 순간 '흙내의 생애'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영감이 나를 감싼다.
물론 책에만 빠지면 행동 없는 사변적 허수아비로 전락하기 쉽다.
연말연시가 되면 마지막 해를 보내며 새해 해돋이를 보는 열성패들로 난리법석이다. 나는 아랑곳없이 고요한 산 속의 눈을 밟으며 새해에 씨 뿌릴 일과 신나는 여행 계획을 구상하는 한편 책 한 권을 마주한다. 사는 방법은 다 다르겠지만 그대는 어느 쪽인가?
봄의 전령들
나는 이 많은 나물 중에서도 얼레지꽃에 늘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여리고 예쁜 꽃이 왜 나물이 되었을까? 왜 사람들의 먹이가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슬프고 속상하다(하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실까!).
해발 6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의 토심이 깊은 비옥한 곳에 군락을 이루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행 중에 이 꽃을 만나면 가장 긴 봄을 만나게 된 것처럼 그 언저리에 주저앉고 만다(한맺히되, 고운 여인의 어떤 저항이 느껴지는 얼레지꽃. 월출산 정상 아래에서 마주쳤던 기억).
이른 봄 맞바람이 뒤섞여 백두대간 연봉을 휘몰아쳐 사정없이 때린다. 흔들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참 이상한 일 아닌가. 흔들리고 고생하는 것은 사유다. 사유는 창조의 근원이며 틀이다.
늙은 캠퍼를 위한 음악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이곡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여행길에서 들을 곡으로 정했다.
제임스 라스트의 <외로운 양치기>는 잠피르가 압도적이다.
불꽃처럼 살다 간 여인을 추억하며
가끔 작은 텐트 안에 우주를 품는다. 고요하고 어슴푸레한 작은 공간에 들면 흐뭇하다. 피할 수 없는 가난마저 두렵지 않은 생각이 들며 작은 애수에 젖는다. 서리같이 찬 이성이 격류에서 호수로 세속과 멀어져간다. 이럴 땐 엉뚱하게도 전혜린을 떠올린다.
검은 머풀러, 우수에 서린 눈동자로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에스프리를 쉴 새 없이 말하던 그녀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 이 두 권의 책을 나는 늘 텐트에 간직한다.
그녀는 1965년 1월 10일 현해탄 관부연락선 배 위에서 거친 파도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서른 한살의 나이였다.
나는 어제도 산에 갔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쁨을 무엇으로 사랴(눈물이 난다. 그 시간에 산에 갔다는 그 사실이 그토록이나 좋은 것인가!) 지난날의 즐거운 회상과 매래의 아름다운 희망은 언제나 산에 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진솔한 여백과 이완의 시간이 넘치지 않게 산에 흐른다.
과거의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문화결정론과 문화자유의지론 사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기존의 문화 속에 구속당하고 자란다. 이런 관점을 문화결정론이라 한다. 이와 대립되는 견해를 문화자유의지론이라고 한다.
원리와 본질을 추구하는 삶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기어트 호프슈테더의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 의하면 동양계 사람은 대부분 '불확실성 회피 문화'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질을 회피하고 현상을 좇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참기 어려운 불안을 스스로 유발한다. 인간의 개인적 미래를 종교에 의지한다.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느낌으로 살피며 산다. 감정적 욕구가 심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
초원의 집, 즐거운 우리집!
아파트는 생활 업무 지원 후방기지로 규정하고, 초원의 집은 씨 뿌리고 레저를 즐기는 전방 베이스캠프로 삼는 전략을 세워보라.
삶을 바꾸고 싶다면 노는 방법을 바꿔라
제로 스트레스 베이스캠프
나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도 일거리를 찾으려 애쓴다. 그 일거리라는 것이 나의 취향 문화와 일치하기 때문에 열불을 올리며 싸다닌다. 나는 이 사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공동체 건설을 할 수 있도록 뜻 있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데 한 줌의 재가 되기를 열망한다.
캠핑, 등산, 힐링 투어를 하나로
도시민들의 놀고먹고 마시기만 하는 소모성 놀이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농촌에 음식물을 갖다 버리고 농촌의 소득과 문화 향상에는 아무 보탬도 안 되다면 너와 나는 더 멀어지고 더 병든다.
유휴 농지와 한계 농지 그리고 휴전선 인근의 미개발지부터 주목해보자.
자연의 신비 속으로
거미가 하늘을 난다?
거미의 알은 어미 거미의 푹신하고 단단한 줄로 만들어져 둥지에서 부화된다. 몇백 마리의 새끼가 둥지에서 뛰쳐나오는데, 놀랍게도 어미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새끼 거미는 태어나면서부터 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태어난 형제끼리 먹이사슬의 경쟁이 생기지 않도록 먼 곳으로 스스로 떠나야 한다. 그 본능이 공중을 날게 한다.
새끼 거미들은 우선 높은 곳으로 기어 오른다. 그리고 궁둥이를 하늘로 향해 뻗고 가는 은실을 뽑다낸다. 그러면 그 줄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하는데 새끼 거미는 그 거미줄 끝에 매달려 멀리 날아간다.
나무들의 목욕재계
낙엽에는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 인간부터 아메바까지 모든 동물에게는 먹은 음식을 배설하는 생리 기관이 있다. 그러나 식물에는 배설 기관이 없다. 식물은 버릴 수 있는 것은 산소, 수증기 등 기체뿐이다. 그 외의 불필요한 모든 것은 나뭇잎 세포 안에 저장해 일 년에 한번 낙엽철에 모아 버린다. 낙엽은 바로 나무의 배설물인 것이다.
나무는 가을이 되면 일 년간 쌓인 때를 씻어내는 시원하고 홀가분한 목욕재계를 치른다.
깐돌이 나라
샘골은 인구 한 명으로 이루어진 레저농원이다. 나는 그 나라의 유일한 자유인이자 자연인이다. 면적은 1,000평이고 장소는 오대산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한 강원 홍천 내면 광원리 산1번지다.
나의 사회적 지위는 노숙자, 자급자족, 독립적 생산자, 뜨내기, 고독의 위로, 숲에 길을 묻다, 자연에 미친 노인, 주말이 수도 없이 많은 졸卒옹, 거지 여행, 제로 스트레스 달인, 가슴이 시키는 대로 걷기, 동해안 양양에서 서해 강화까지뚜벅뚜벅 걷는 백치옹, 서바이벌이 야망, 모험과 도전의 반항, 문명에 대한 조롱, 인간 공장에 대한 냉소, 자연주의 맹종, 지구는 하나지만 세계는 만들기 나름, 자연인 &자유인으로 살고 죽기 로 표현할 수 있다.
캠퍼로 살고 캠퍼로 죽기
인생은 흘러가는 것(물)이다. 늘 꿈과 함께 흘러간다. 인생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꿈을 좇아가는 여로다. 캠핑은 여로의 도구다.
살아간다는 것은 별화를 뜻하고, 늙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을 때 끝나는 것이다.
사소한 안락의 휴식이 두렵다. 삶에는 정지가 없다. 자리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피동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흔들 때 인생을 실험하고 꿈을 희망하며 또 다른 꿈을 실험한다.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고통의 근원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의식적 욕구가 주범이다. 상대적 빈곤감이 고통을 가중시킨다.
성공했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것
유럽신경제재단NEF이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를 보면 한국은 143개국 중 68위에 그쳤다. 부탄은 소득은 2,000달러에 불과하지만 국민행복도는 1위를 차지했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나라는 혼란에 친숙해 있으면서도 적당히 질서를 헤쳐나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함호 체계를 갖고 있는 사회다. 삶의 방식에 모종의 비합리적 질서가 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선진국이 200~300년에 이룩한 문명을 40~50년에 따라잡으려는 데서 온 휴유증이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맑고 소박한 행동과 마음의 풍요가 있어야 한다.
행복으로 가는 초원 캠프
인간은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는 종족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속에서 일하고 놀고 고통도 나누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공감본능'이다(이즈음엔 청우 단톡의 별 사안 없는 단속적인 대화들에 댓글 달고 픈 마음이 생기지 않넹~ 태이리의 이상한 주사 후의 댓글때문인가.. 뭔가 부족한 언어들 같기도 하다는 느낌도 자꾸 든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잘 안 달게 된다. 그렇다면 위의 글에서 처럼 나는 공감능력이 떨어져 가는 것인가! 공감능력 결여는 곧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옅어져간다는 뜻일 텐데..., ).
국민행복 르네상스, 자연 DNA부터 회복해야
주말 레저농원을 시작하면 도시민의 주말이 달라질 것이다. 밭을 가꾸고 초원에서 뒹굴며 농가의 맑고 소박한 삶의 풍요로움을 배우게 된다. 가족과 농사 자원봉사도 하며 싱싱한 야채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나아가 야지에서 서바이벌 레저로 건강을 다지고 단란한 가족으로 발전하게 된다. 주말 영농만이 아니라 등산과 여백을 즐기는 힐링 여행 캠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농촌을 체험하며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사는 기반 문화를 가족과 농가에 심는다.
캠퍼의 목적에 따라 캠프 체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가능한 집을 짓지 않고(농막같은) 비닐하우스 한 동만 지어 캠핑하는 소박한 설계를 권고한다. 나는 주말레저농원을 47년간 해오면서 현재까지 집을 한 번도 짓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 의지해 캠핑을 하며 레저와 영농을 즐긴다. 겨울철에도 농원을 찾아 북극곰- 힐링 캠프를 한다.
전원 캠프를 통해 레저 생활에 익숙하게 되면 해외여행도 오토캠핑으로 신나게 즐길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연으로 향하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적인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본 프로젝트만이 21세기 국민 행복 르네상스 문화를 이뤄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 회귀하려는 DNA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유언장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일
유언장 8.
'죽은 자 박상설'을 기리려면 가을, 들국화 언저리에 억새풀 나부끼느느 산길을 걸으며 '그렇게도 산을 좋아했던 산사람 깐돌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에필로그1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면 직접 해봐야 압니다.
내 식대로 살다, 떠날 때도 내 식대로 떠납니다.
에필로그2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늙음이나 죽음을 피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중 '늙음'에 대하여 유난히도 꺼려하고 '죽음'은 아예 남의 일처럼 금단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금기를 깨뜨렸습니다.
'늙음과 죽음'의 정체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늙음'을 마치 수치스러운 죄인쯤으로 여깁니다.
다른 사람의 늙음은 보이지만 자신의 늙음은 보이지 않는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늙음을 막으려고 다이어트, 에어로빅, 건강식, 찜질방을 전전합니다.
그래봐야 모두 소용없는 일입니다.
인간은 자연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흰 머리카락 하나, 주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을 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게 (흰 머리카락과 주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리는 저무는 기호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거역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의연하고 슬기롭게 지내야 하고
'죽음'을 묵묵히 맞아들여야 합니다.
공부중의 공부는 바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연이 시키는 대로 그 품에 안길 뿐입니다.
인생 순례 너무나 만족하고 즐거웠습니다(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 말씀에 눈물 한방울이 떨구어 지다).
ㅡ끝.
첫댓글
2022.12.13, 20:20 집자 終
많은 날을 상기 책을 읽기에 사용했고,
또 적지 않은 몇일을 집자에 매달려서
오늘 집자 종료,
내일 새벽엔 카타르월드컵 4강전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전이 열린다.
과연 메시의 아르헨티나인가?
모드리치의 크로아티아인가?
승부차기로 가면 크로아티아 승일 터ㅎ
모래는 프랑스: 모로코
아프리카의 모로코는 참 대단한 일을 해넸넹
축구 잘하는 나라에 속했는지조차 의문인 모로코
이상설 옹이 21년 12월에 타계하였슴을 인터넷으로 오늘 알았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94세가 아니라 더 오래 사셨을텐데...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단순한 오토캠핑캠퍼로 인식했었는데
캠핑과 주말농원을 합친 '레저농원'이라는 개념을 새로이 이식하신 분이였다.
러시아의 '다차'를 벤치마킹하는 문화를 제기하신 대단한 일을 하신 분.
이 책을 읽고 나니 두 가지가 변했다
하나는 나쁜 책(형이상학적)을 곁에 두지 말고, 좋은(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책을 많이 읽자는 것
두번째는 이 책에 나온 내용인줄은 모르겠는데,
밥상에 앉아 TV보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밥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오늘 저녁엔 TV를 안 켜고 로아와
나의 기억 속에는 며느님을 엄마 삼아 아내 삼아 고뇌를 삭히시는
그 어린이같은 정감을 童詩같은 아름다움으로 여겼습니다.
할비들의 눈물겨운 말년을 저는 잘 압니다.
그래 나는 남들과 다른 구분 짓기 삶을 위해 아흔 나이에도 주말
농장에 뒹굴며 눈 위에서 캠핑을 하는 노숙자입니다. 틈 나시면
인터넷에서 <박상설>을 클릭하여 나의 칼럼을 보시기 바랍니다.
-숲에서 보내는 이슬방울 편지- 깐돌이 박상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