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날씨: 맑음. -6°C~3°C.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아주 추웠음
●등반코스: 북한산 인수봉 <고독의 길>
●등반대원
-선등 김창곤 대장
-세컨드 안성조
-라스트 이명규
●일정
08:00'. 도선사 주차장 집결
08:40'. 스타트지점 도착
08:55'. 등반 시작
11:35'. 인수봉 정상 등정
13:00'. 하산해서 식당 도착
14:00'. 해산
1. 초겨울 맨손.맨발 등반을 걱정하다.
주초에 일기예보를 보니, 등반 전날인 금요일에 눈이 오고 등반 당일인 토요일 기온이 -3°C~6°C다. 산에서의 기온은 3°C 이상 더 낮을 것이다.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토왕성빙폭 등반을 대비해서 몸 만들기를 해왔는데, 최근에는 내 몸 상태가 제법 올라온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추위에 유독 약한 내 손가락.발가락을 생각하면 대책없는 몸상태나 마찬가지다. 목요일에 재차 확인한 예보는 더 움츠러들게 한다. 바람도 세게 분다고 한다. 체감온도 -10°C를 각오하라는 거다. 예보대로 금요일에 1시간 이상 함박눈이 쏟아졌다.
쉬운 코스라면 NBR 반코팅 장갑을 끼고 등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쉽지않을 것 같고 차가운 재질인 탓에 보온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이 섰다. 등반은 맨손으로 하되 빙벽등반 때 끼던 장갑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난번까지는 맨발 상태로 암벽화를 신었는데, 이번은 얇은 면양말을 신고 암벽화를 신기로 했다.
프랑스 여성 클라이머 카트린 데스티벨이 자신이 기록한 산서에서, -10°C~-15°C 기온에서 동계 아이거 북벽을 맨손으로 등반했다고 했는데, 사람인데 정말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는데...이번 등반에서 감은 잡아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큰 보온병에는 더 뜨거운 생강차를, 작은 보온병에는 더 뜨거운 물을 담았다. 구운 달걀과 연갱이도 3개씩 넣었다. 묵직해진 배낭 무게가 결의를 느끼게 한다.
2. 고대 산악부 YB 5인
이명규 형님 차를 타고 8시에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김창곤 대장은 차를 아랫동네에 주차해 놓고, 택시를 타고 일찌감치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대장도 눈만 내놓은 차림새다.
<고독의 길>로 가기로 했다. 오르는 산길 곳곳에 얼음이 얼어 있다. 산이 북서풍을 막고 섰으니, 동쪽 사면을 오르는 동안에는 바람이 없어 걱정이 산같이 쌓인 사람 마음이 잠시간 풀어진다. 대슬랩으로 오르는 바윗길은 사람 발길이 많이 닿아 맨질해진 부위는 무척 미끄러웠다.
8시 40분에 <고독의 길> 스타트지점 아랫쪽에 도착했다. 장비를 차고 있는데, 잘생긴 젊은 친구가 김 대장한테 반갑게 인사한다. 28살인 그 젊은 친구는, 몇년 전 김 대장이 북한산 구조대장 할 때 고대 산악부원으로 자주 인수봉에 오면서 서로 알고 지냈다고 한다. 오늘은 재학생 후배 4명과 같이 왔다.
" 너희들도 <고독의 길>로 가냐? "
" 예 "
" 너네들이 빠른데...우리들이 조금 일찍 와서 먼저 가게되어 좀 미안하네.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할께..."
젊은 사람들 생각하는 김 대장 말이 따뜻하다.
나는 살짝 놀렸는데,
" 고대는 이런 약한 데 오면 안 되는데...여기는 OO대 수준이나 오는 곳인데... "
'요즈음은 여학생들이 더 잘 하더라'는 말을 홍일점 여학생에게 전하며, 모두 해맑게 웃는 YB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3. '고통의 예술, 등반'
김 대장은 '물 초크'를 준비해 왔다. 모두 '물 초크'를 손바닥에 바르고 등반을 시작했다. 김 대장은 암벽화에 NBR 반코팅 장갑을 꼈다. 첫피치 시작 부분이 아주 미끄러워 사고가 잦다며 조심하라고 이른다.
나는 맨손이다. 어...그런데 내가 여러번 오른 그길이 아닌 것 같다. 붙잡는 손은 흘러내리고 딱딱하게 언 암벽화 밑창의 접착력은 제로다. 얼어버린 엄지발가락을 크랙 속에 찔러 넣을 때는 꺾여 부러질 듯이 아프다. 이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은 동작으로 어쨋든 올라갔다.1피치 확보지점에 오르자마자 장갑부터 꼈다.
이곳에서부터는 바람이 장난아니다. 응달지고 바람을 거의 정면에서 받는 북사면을 타고 계속 오른다.
김 대장이 반복해서 이른다.
"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우습지않게 어느 순간에 동상 걸립니다... "
김 대장은 잠깐 사이에 장갑도 두겹으로 끼고, 암벽화에서 릿지화로 갈아신고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면서, 이명규 형님 올라오시면 그때부터 빌레이 봐달라고 하고는 프리 솔로로 올라간다.
빌레이 보는 동안은 장갑을 끼니 손가락은 괜찮아졌는데, 문제는 발가락이다. 암벽화에 꽉 끼이게 신은 탓에 고무밑창과 같이 붙어 딱딱한 나무토막이 되었으니 큰일났다. 구르고 차고 서로 밟기 하면서 계속 움직였다.
노련한 이명규 형님은 덤덤한 표정일 뿐이다.
4. 연등으로 전환하다.
3피치는 덧장바위 있는 곳은 피하고 우측면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후등자 2 사람이 등강기를 사용해서 연등하여 추위를 이겨보자고 김 대장이 말했다. 김 대장이 확보지점에서 확보한 후에, 후등자가 자일 끝자만 쥘 수 있도록 자일을 당겨서 픽스하면, 나와 형님은 롤앤락을 써서 자기확보 하면서 좁게 간격을 두고 동시에 등반해 올라갔다.
생각하기도 싫었던 4피치 좁은 크랙구간이 나타났다. 언 발이 꺾어질지라도 찔러넣지 않고서는 올라갈 수가 없으니...아픔을 감수한다.
5피치는 장갑을 끼고 해도 될 것 같고 코스도 길어서 장갑을 끼고 출발했다. 몇 스텝 오르지 않아서 장갑을 도로 벗었다. 전에는 성큼성큼 올랐었는데, 오늘은 발디딤도 손홀드도 너무 아슬아슬하다. 마침내 확보지점에 올라왔을 때에는 손가락이 동상 걸린 것 같아서 서둘러 장갑을 꼈다. 열 손가락이 살았다는 듯 찌릿찌릿 전기가 부딪친다.
5. 영자 품속은 너무 따뜻했다.
크랙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떠올리게 해서 이름 붙여진 영자 크랙이 있는 곳에 올라오니, 뜻밖에도 김 대장이 이곳은 정말 따뜻하니 암벽화를 벗고 언발과 몸을 좀 녹이고 가자고 한다.
이상하게도 골짜기인데도 골바람이 없고, 겨울 햇살이 고스란히 한껏 쏟아져 들어온다. 암벽화를 벗고 언발을 열심히 주무르며 녹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달리 이명규 형님은 덤덤하셨는데, 암벽화 사이즈가 여유가 있어서 두툼한 양말을 신으셨단다.
생강차. 커피를 곁들여 구운 달걀과 김 대장이 가져온 쑥떡으로 요기하니 생기가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왜 이렇게 따뜻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하루가 지난 후에 후기를 쓰면서 무릎을 쳤다.
' 아! 그곳은 영자의 품속이었지...
그러니 따뜻할 수밖에...ㅎ... '
11:35'에 인수봉 정상에 등정했다. 아무도 없다. 인증사진 1장만 찍고 서둘러 하강했다. 내가 제일 먼저 하강했는데, 김 대장이 꿀팁을 가르쳐 준다. 바람이 너무 세서 자일을 먼저 내려놓으면 날린다면서, 내가 내려가는 것에 맞춰서 자일을 조금씩 내려준다.
6. 구조대장 김창곤
하산길에 인수봉을 쳐다보니 아무도 없다. 오늘 등반한 팀은 고대산악부와 우리팀뿐이었다. 고대산악부는 대원이 5명이고 정상적인 등반을 하던데, 대기하면서 무지하게 떨었으리라. 그렇더라도 젊은 그들에게 이까짓 추위가 뭔 대수이겠는가? 내게는 정말 기분 오르는 만남이었다.
내려오는데 시야가 흔들리고 다리도 흐느적하고 정신도 맹하다. 김 대장한테 그렇다고 얘기했더니, 추위에 너무 떨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그렇고, 그럴 때 사고가 난다고 가르쳐 준다.
"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저 혼자 오르내리면 되죠. 구조할 때는 다른 사람까지 메고 오르내리는데...어휴... "하며 구조대장 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동안 나는 김 대장이 경찰이 되어 북한산 구조대장 하면서 암벽등반을 익힌 줄 알았는데, 20대 때부터 등반을 했다고 한다. 등반을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다가, 경찰이 산악구조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경찰에 지원했다고 한다. 정말 멋있는 인생 선택이지 않는가?
30년 넘도록 등반하면서 사고 한 번 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오늘 등반 중에 안전에 추호의 빈틈도 허락치 않으려는 김 대장의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매듭 백업은 필수이고, 한 번이 아니고 2~3번이었다. 쉬지말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며 계속 말했다.
김 대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거의 모든 구기종목을 잘 하고, 작년 여름에는 서핑이 너무너무 재밌다고 하더니, 오늘은 경찰학교에서 주짓수를 배우고 있고 UFC 격투기 보는 것이 진짜 재미있다고 한다.
7. 순두부 행복
오늘은 순두부가 아주 맛있는 산두부집으로 갔다. 산객이 없어서 음식점 거리가 스산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곳은 손님들로 변함없이 북적이고 있다.
파전에 막걸리가 들어가니 무한 행복에 빠진다. 순두부국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고통의 등반'은 '예술의 등반'으로 변해버렸다.
오늘 어느 낭만 산객이 불렀던 '고통의 에술. 등반'을 조금 맛봤다. 오늘 <고독의 길>은 내가 자주 갔던 길이 아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다. 믹스 등반 때도 이렇지 않은...3년래 나의 등반에서 가장 힘든 등반이었다.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자처하며 즐기신 이명규 형님.
리더한 김창곤 대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올립니다. 덕분에 멋진 경험을 하고 희열을 맛봤습니다.
귀가길에 이명규 형님한테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일본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암벽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의 등반기다. 동상으로 손가락.발가락을 몇차례에 걸쳐 여럿 잘라내고도 계속 올랐고 지금도 오르고 있는 우리 나이로 올해 59세의 사나이다. 그의 등반일지를 보면 숨막힐 정도로 지금도 빡빡하게 오르고 있다.
올 겨울 서울구덕산우회 토왕성빙폭 등반도 멀지 않았다.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겠다. ^^
첫댓글 GOOD !
므찐 산행 등반기 잘 봤습니다
다가오는 겨울 시즌 동계 등반 모두 재미있게
화이팅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