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련된 성경주석
- 마태복음(마 1:1-17)과 누가복음(눅 3:23-38) -
I. 마태복음(마 1:1-17) 주석
1.호크마(hokhmah) 주석
성 경: [마1:1]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예수의 계보 개관(槪觀)]
ꃨ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믿고 소개했던 저자 마태는 복음서를 기술하면서 무엇보다 예수께서 혈통적, 법적 자격에 있어서 다윗 왕가의 계승자이심을 먼저 밝히고 있다. 실로 다윗 왕권이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이후 근 6세기가 흐르는 동안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다윗의 왕권을 이을 자라는 법적 근거, 곧 그분의 정통성(royal legitimacy)을 증명하지 않는 한, 절망 속의 유대인들은 아무도 그를 메시야로 인정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마태는 혈통과 족보를 중시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진정 참 이스라엘인이자 다윗 가문의 오실 메시야이심을 확신시켜야만 하는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절의 두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첫머리에 기록한 마태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것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후손이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당초 유대 백성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창 12:1-3;17:7). 그는 자신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있다(창 22:18;갈 3:16). 또한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히 그를 버리지 않으시며(시 89:29), 그의 자손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의 나라를 계승하게 하고 나아가서 그 계승한 왕에 의하여 그 왕위와 나라가 영원토록 견고히 보전되게 할 것이라는 메시야 언약을 주셨다(삼하 7:12-16).
한편 이와 더불어. 선지자 이사야는 '한 아기', 즉 인간으로서 생각지 못할 기이한 칭호(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등)를 가진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 아기가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인데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예언한바 있다(사 9:6, 7). 이 예언에 따라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을 곧 오실 메시야로 더욱 확증짓게 되었다(Berger). 이는 초대교회 시대로 접어들면서 확정적으로 인정되었다(행 13:23;롬 1:3;계 22:16). 여하튼 하나님의 언약이 오랫동안 지연(遲延)되기는 했지만, 이제 예수는 다윗에게 주어진 나라에 대한 약속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이방의 모든 세계에 대한 축복의 약속의 성취자로서. 다윗의 그루터기에서의 햇순으로 그 뿌리의 새싹으로 돋아나신 것이다(사 11:1).
(2)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 권위를 지니신 이상적 왕이심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시조(始祖)인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요, 히브리 신앙 공동체의 창시자이며(창 12:2;15:6), 다윗은 히브리 왕국의 실제적인 창시자요(삼하 7:12-16) 유대 역사상 가장 모범적이며 위대한 왕이었다. 마태는 바로 그러한 조상들의 혈통을 이은 예수야말로 유대인들이 고대(苦待)하던 절대적 통치자요 진정한 왕,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다(행 2:30). 이제 다윗의 왕권은 근 6세기만에 영원히 회복된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즉 마태는 이들 믿음의 조상(창 15:6;롬 4:3)들이 유대 백성들을 대표하여 불리워진 바 있듯이(창 18:18;삼하 7:26) 그리스도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구속 사역을 통해 영영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실 분이심을(히 9:28) 묵시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ꃨ 자손(*, 휘오스). -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할 때 독특하게 사용된 용어로서 단순히 출생의 근원을 밝히는 말(*, 테크논)이 아니라 법적인 측면에서의 정식 후손을 가리킨다. 이 말은 때로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왕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ꃨ 예수 그리스도 - 역사적, 사명적 명칭(예수)과 직능적(職能的) 명칭(그리스도)이 결합된 구세주의 공식적 호칭이다. 이는 '예수야말로 구약 예언에 따라 오신 메시야이시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을 담은 명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복합 명칭이 복음서에서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다가(1, 18절;16:21;막 1:1 등에만 사용됨) 변증적, 교리적 입장에서 기술된 서신서들에서 자주 사용된 것은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한편, 여기서 '예수'란 이름은 천사의 수태 고지(受胎告知)때 마리아에게 주어진 이름으로서(21절) 구세주의 인류 구속에의 사명이 내포된 이름이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서 히브리어의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란 용어가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언제나 '메시야'란 말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간주되고 있다(16:16).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란 말은 어떤 특별한 직무 수행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임명된 자를 가리키는 데 그렇게 기름부음은 받는 자는 대체로 왕(삼상 16:13)과 제사장(레 8:12) 그리고 선지자(왕상 19:16;사 61:1)였으며(그리스도는 이 모든 직무에 임명됨), 드물게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시 105:15), 이방의 왕 고레스(사 45:1) 등을 의미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여하튼 다윗의 후손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삼상 2:10;삼하 7:12-16;시 2:2;105:15)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메시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자, 그리고 약속된 종말론적 통치릍 이 땅에 소개(introduction)시킬 자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본서는 특별히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적 왕이심을 강조하고 있다(23절;2:2, 6;3:17;4:15-17;21:5, 9;22:42, 45;26:64;27:11, 27-37). 더욱이 마태가 1장에서만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한 것은 예수가 구약의 예언에 따라 메시야가 되신 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약 18회의 '그리스도' 명칭이 등장하는데 본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직분을 나타내는 칭호로서가 아닌 단순한 이름(name)처럼 사용되고 있다.이는 적어도 예수의 부활을 생동감있게 체험했던 자들에게는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가 구약의 예언에 따라 오실 '그분'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오셔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또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실존적 존재로서 이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언급할 때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 혹은 '그리스도'로 점점 빈도 높게 사용하였다. 세계(*, 비블로스 게네세오스)는 '탄생의 기록', '역사의 기록','족보의 기록'(a record of genealogy, NIV)등의 뜻이다. 한편 이 말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견해는
(1) '족보의 기록'이란 번역을 따를 때 단지 족보 기록(1:1-17)에 국한된 내용에만 관계한다고 볼 수 있다(Calvin, Beza, Bruce).
(2) 그리고 '탄생(birth or origin)의 기록'이라는 번역을 따르게 되면 본서의 서론(1:1-2:23)부분 전체와 관계된 제목이라 할 수 있다(Plummer). (3) 마지막으로 '역사의 기록'이란 번역을 따르게 되면 마태복음 전체, 또는 복음서 전체의 서두와 연관된 서언으로 볼 수 있다(Eulthy, Zigab, Ebrard). 이같은 표현은 70인역(LXX)의 창 2:4에서 창조의 대략을 설명할 때(창 2:4-25)와 창 5:1에서 계속 이어지는 아담 자손의 족보를 열거하는 문두(文頭)에 사용되었다.
한편 '탄생'(*, 게네시스)이란 명사가 18절에 재언급되기 때문에 1절에 제시된 표제어 형식의 표현은 그 내웅 범위가 족보를 소개하는 이상의 포괄적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사가 책 한 권내지, 어떤 장문의 문서 전체를 포함하는 표제어로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따라서 '비블로스 게네세오스'라는 말은 1, 2장을 한 단위로 묶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련된 기록'으로 본 (2) 번의 주장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실로 구약이 세계의 발생 기원에 관한 책(창세기)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신약은 그 세계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의 '탄생 기원에 관한 책'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족보의 위대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성 경: [마1:2]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아브라함부터 이새까지의 계보]
ꃨ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 예수의 족보는 선민 이스라엘의 합법적 조상이자, 처음으로 메시야 언약을 받았던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다(창 12:3).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의 아들 중 이스마엘이나 기타 자식들(창 25:1-3)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둘째 아들 이삭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언약에 따라 태어난 후손만이 메시야의 혈통을 이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선택적 의지를 반영한다(창 15:4;17:1-22;21:1-7). 한편 이삭의 츨생은 소망이 단절된 죽음의 태(胎)를 열고 출생했다는 점에서(히 11:11, 12) 사망의 권세틀 깨치고 새생명의 환희를 제공키 위해 탄생하신 예수의 출생을 예표(豫表)하기에 적절하다.
ꃨ 낳고(*, 겐나오) - 이를 번역하면 '...의 아버지라'(was the father of,NIV)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반드시 친자(親子)를 뜻한다기 보다 그 혈통에 이어지는 직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때로 '...의 조상이다', '...의 조상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본장의 족보 내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ꃨ 이삭은...그의 형제를 낳고 - 마태는 이 이름들에서 족보 이상의 것, 즉 선택받은 나라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이삭, 야곱, 유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6절)등이 장자 신분이 아닌 동생들로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육적 신분의 탁월성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의 독특한 방식, 즉 '낮은 자를 높이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興起)시키는'(욥 5:11;겔 21:26 ) 하나님의 뜻에서 유래한다. 사실 야곱의 12 아들 중 혈육상의 장남은 르우벤이었고, 야곱의 애정은 요셉에게로 많이 기울어졌지만,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들어 메시야를 일으키셨다. 실로 하나님의 선택과 그 은총은 인간적 혈통을 초월하여 진행된다(요 1:13). 특히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유다만이 족보에 이름이 오른 이유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야곱의 예언(창 49:10)대로 그에게서 다윗 왕가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와 함께 열 두 형제를 언급한 것은 (1) 12지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전형적 모델이다. 이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천국 일꾼으로 사용하신 것과도 연관이 있다. (2) 유다에게서 나신 그리스도가 구약의 언약 공동체인 12지파 전체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메시야이다. (3) 그리스도 안에서의 축복은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로 모으시는 영적 이스라엘(야곱)의 모든 자손들이 공유(共有)할 것임을 나타낸다.
성 경: [마1:3]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아브라함부터 이새까지의 계보]
ꃨ 유다는 다말에게서 - '종려나무'란 이름의 뜻을 지닌 다말은 원래 유다의 아들인 엘의 아내였으나, 그 남편이 죽자 그의 시아비 유다를 유혹하여 득남했던 집요(執拗)한 여인이다(창 38:6;대상 2:4). 한편 모계를 무시하는 유대인의 족보 관습상 다말을 포함하여 본 족보에 등장한 네 여인의 이름(다말, 라합, 룻, 밧세바)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물론 예수의 족보 서술상 반드시 필요한 마리아는 제외하고서). 여하튼 이 이름들이 의미하는 것은 심대(甚)한 것으로서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이들 중 밧세바를 제외한 세 여인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메시야는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모든 족속들에게도 복의 근원이 되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2) 룻을 제외한 나머지 여인들이 불륜을 저지른 수치스러운 죄인들이라는 사실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21절)이신 예수께서 죄는 없으시되 '죄 있는 육 신의 모양'(롬 8:3)을 그대로 취하여 자신을 낮추신 겸손하신 분(빌 2:5-8)이심을 확연히 드러낸다(Meyer, Plummer, Carr). 또한 룻 조차도 근친 상간에서 시작된 모압 여인(룻 3:1-4:12)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의 광대무변하심을 엿볼 수 있다. (3) 이 네 여인은 모든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계시하고 있으며, 이는 마리아의 예수 수태(受胎) 또한 하나님의 불예측적 섭리(눅 1:29)에 기인된 것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ꃨ 베레스와 세라 - 이 둘은 쌍동이였기 때문에(창 38:27) 동시에 언급된 것 같다. 한편 이들로부터 다윗까지의 혈통은 룻 4:18-22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헤스론(창 46:12;대상 2:5), 람(대상 2:9), 아미나답(4절;출 6:23;민 1:7;대상 2:10), 나손(민 2:3;7:12;대상 2:10;눅 3:32), 그리고 살몬(5절;룻 4:20-21;대상 2:11)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인바, 베레스로부터 모세 당시의 아미나답까지 네 세대가 교체되는 기간이 약 4백년(창 15:13;출 12:40)이나 된다는 사실은 본 족보에서 최소한 몇 명의 이름이 생략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성 경: [마1:4]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아브라함부터 이새까지의 계보]
ꃨ 나손은 살몬을 낳고 - 여기서 '나손'은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서 광야 생활 중 회막 예물 헌상시 제 1일에 예물을 드렸던 자이다(민 7:12).
성 경: [마1:5]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아브라함부터 이새까지의 계보]
ꃨ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 본문에 언급된 라합이 여호수아 2장과 5장에 나오는 여리고의 기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한 전승에 따르면 라합이 여호수아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고, 또 다른 자료에는 그녀가 여호수아가 파견했던 두 정탐꾼 가운데 한 명인 살몬의 아내라고 전하고 있다. 마태의 기록은 후자의 자료를 따르고 있다. 특별히 마태는 라합의 이름을 통해 그녀가 우상 숭배로 만연(蔓延)된 가나안 땅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수 2:11)으로 말미암아 선민(選民)의 대열에 동참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ꃨ 룻에게서 - '룻'은 모압 여인으로서 인생의 전환점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시모(媤母)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믿음의 산 증인이다. 한편 신 23:3에 의하면 모압의 후손들은 십대(十代)뿐만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규례조차도 복의 근원이신 예수를 통하여 주어진 축복의 약속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혤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든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약속의 자녀(롬 9:8)로 환영 되어진다.
성 경: [마1:6]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 전까지의 계보]
ꃨ 다윗왕 - '왕'이란 표현에서 본 족보의 주제가 왕위 계승적 혈통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오직 그만이 '왕'으로 기록된 것은 왕권의 언약이 그와 더불어 맺어졌고, 그의 왕권은 메시야 왕권의 예표로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7:12-16). '왕'이라는 단어는 1세기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다윗의 통일 왕국에 대한 깊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하고 종말론적 메시야 대망을 일깨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위대한 다윗왕의 자손'인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가 다윗의 위(位)를 계승할 자(눅 1:32)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ꃨ 우리야의 아내 - 하나님의 축복의 광채를 송두리째 삼켜 버릴 수도 있었던 다윗의 부끄러운 범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마태는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삼하 11:3)라고 표현하여 그리스도의 혈통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오점(汚點)을 드러냄으로써 왕국 건설에 있어서 여하한 인간의 공로도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ꃨ 솔로몬 - 다윗이 자신의 간음죄를 참회(懺悔)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다시금) 덧입은'(*, 여디디야, 솔로몬의 또다른 이름;삼하 12:25) 증표로 얻었던 아들이다. 이는 결국 메시야의 혈통이 인간의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적 회복과 은총이라는 구속사의 큰 흐름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여기에서 두번째의 14대가 시작되며 그들의 명단은 대상 3:10-24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솔로몬 이후의 족보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눅 3:23-38)이 서로 다르다.
성 경: [마1:7]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 전까지의 계보]
ꃨ 르호보암은...아사를 낳고 - 사악했던 왕 르호보암이 악한 왕 아비야를 낳고, 악한 왕 아비야가 선한 왕 아사를 낳은 것처럼 이 족보의 혈통에 있어서 선과 악의 명백한 패턴은 없다. 그러나 비록 그들 악한 왕들의 불순종과 배역(背逆)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악한 생각이나 책략들을 지배하고 계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 그들의 혈통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마1:8]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 전까지의 계보]
ꃨ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 이 두 왕 사이에 아하시야(왕하 8:26), 요아스(왕하 12:1), 그리고 아마샤(왕하 14:1) 등 세 왕의 이름이 생략되었다. 이에 대한 여러 해석 중에서 (1) 마태가 인용한 족보에서 이미 그 이름들이 생략되었기 때문, (2)히브리 원문에 대한 70인역(LXX)의 독법(讀法)의 잘못 때문(Alen, Calvin), (3) 그들이 사악하기로 소문난 아합과 이세벧(왕하 8:27)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또한 간악한 왕후이자 왕위 찬탈자(왕하 11:1-20)인 아달랴(왕하 8:26)의 자손이므로 3, 4대에 걸쳐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계율(출 20:5)에 따라 생략(Ebrard, M. Henry), (4) 히브리 문학적 기교(技巧)에 따라 14대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마태가 고의적으로 생략함(Jerome, Light-foot, Carr) 등이 있는데 마지막 14대에서도 명단을 단축시킨 것으로 보아 세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17절).
성 경: [마1:9]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전까지의 계보]
ꃨ 웃시야는 요담을 - 여기 언급된 웃시야는 아사랴(대상 3:12;왕하 15:13, 17-20비교)와 동일 인물이다.
성 경: [마1:10]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 전까지의 계보]
ꃨ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 히스기야는 29년간 재위하는 동안 남왕조 유다 역사의 빛나는 한 시대를 열었던 신앙적.민족적으로 탁월한 왕이었고(왕하 18-20장), 그의 아들 므낫세는 55년간 재위하면서 바벨론 포로의 근본적인 원인자가 될 만큼 유대의 운명을 좌초(坐礁)시킨 악한 왕이었다(왕하 24:3). 그럼에도 므낫세가 앞의 족보에서 탈락된(8절) 세 사람과 다른 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크게 회개하여 은혜를 회복하였다는 점이다(대하 33:12, 13).
성 경: [마1:11]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고정]
주제2: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 전까지의 계보]
ꃨ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 - 유다의 3차에 걸친 바벨론 유수(幽囚) 중(B.C. 605, 597, 586년) 본 족보의 기사는 제 2차와 제 3차인 여호야긴(여고냐)과 시드기야(맛다니야) 시기에 해당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항목 참조.
ꃨ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 유다의 왕위 계승의 순서대로 살펴보면 여기에서도 몇 사람의 이름이 누락(漏落)되었다. 요시야의 네 아들(대상 3:15;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살룸)중 둘째 아들인 여호야김(엘리아김)이 애굽의 간섭에 의해 그의 형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유다왕에 즉위하였다(B.C. 608년;왕하 23:34). 이 시기에 애굽은 신흥 제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갈그미스 전투에서 대파(大破)당했고(B.C. 605년;렘 46:2-12) 유다는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다. 이후 여호야김은 그의 아들 여호야긴(여고냐)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고(B.C. 597년;왕하 24:6-16), 바벨론의 2차 침략때 여호야긴과 그 모후(母后) 그리고 신하와 방백 등 1만 여명이 포로로 잡혀갔다(2차포로;B.C. 597년). 그리하여 바벨론은 여호야긴 대신에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삼았다(B.C. 597년;왕하 24:17). 이때 시드기야는 예루살렘 최후 멸망의 해인 B.C. 586년까지 유다를 통치하였다(왕하 24:17-25:7). 한편 요시야와 여고냐(여호야긴) 사이에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세 사람이 빠졌는데, 이것은 8절에서의 경우처럼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형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여고냐에게 두 숙부에 해당하는 여호아하스, 시드기야가 그의 형제로 취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여고냐, 곧 여호야긴을 여호야김이란 이름과 혼동하여 사본 기록자가 잘못 기술했다는 학설(Clarke)이 있다. 그러나 이 학설보다 오히려 여호야김이 족보에서 생략된 것으로 보고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더욱 환영받는 견해이다. 그렇다면 '그의 형제'란 말은 히브리 문학 기교상 가까운 친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거나, 아니면 여고냐와 바벨론의 학정(虐政)을 같이 경험한 동족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Gundry). 한편 유다의 마지막 통치자 시드기야가 족보에서 빠진 이유는 다윗왕의 혈통이 여고냐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마1:12]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바벨론 유수 이후부터의 계보]
ꃨ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 - 이 말은 다윗 혈통의 왕권이 두번째 포로(B.C. 597)로 인하여 사실상 종말을 고했음을 강조한다. 이와 동시에 마치 무덤 속과도 같은 포로 생활 중에서도 다윗의 혈통을 '남은 자'들을 통해서 존속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시사해 주고 있다. 이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창 49:10)라고 야곱이 예언한 그대로이다.
ꃨ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 예레미야의 기록(렘 22:30)에 따르면 여고냐는 무자(無子)하여 혈통을 잇지 못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가의 기록(눅 3:27)에 의하면 스알디엘은 네리의 친아들이었다. 이러한 난맥(亂脈)상을 종합해 본다면 결국 양자의 절차를 통해 세리의 아들 스알디엘이 여고냐의 뒤를 이어 다윗의 혈통를 잇게 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ꃨ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 스룹바벨을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기록한 대상 3:19에 의해 본 구절은 난제로 지적된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은 대체로 스알디엘을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다(스 3:2;5:2;느 12:1;학 1:1;2:2, 23). 마태도 바로 이 기록에 근거해 본 족보를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난점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안은 계대 결혼 제도(신 25:5-10)이다. 스알디엘이 후손 없이 일찍 죽었다면 브다야는 마땅히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위하여 스알디엘의 아내, 곧 형수(兄嫂)에게서 스룹바벨을 낳았을 것이다. 한편 스룹바벨은 제 1차 포로 귀환을 인솔하였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 중수 사역을 지휘한 예루살렘의 지도자였다(스 1-5장). 이는 다윗의 혈통에 꺼지지 않고 발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케 한다. 그리고 여기 스룹바벨은 영광스럽게도 메시야의 예표가 되고 있다(학 2:20-23).
성 경: [마1:13-15]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바벨론 유수 이후부터의 계보]
ꃨ 아비훗은...야곱을 낳고 - 여기에 기록된 이름들은 본 족보 이외의 곳에서는 나타난 바 없다. 이에 대하여 건드리(Gundry)는 아비훗과 야곱 사이에 실린 이름들이 변형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역사적으로 정확한 이름들을 '마태가 보는 관점, 즉 왕적 관점에 따라 달리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대상 6:3-14에 기록된 제사장 혈통에 기록된 이름들 가운데 이 이름들을 찾아블 수 있다.
성 경: [마1:16]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바벨론 유수 이후부터의 계보]
ꃨ 야곱은...낳았으니 - 요셉의 왕족 혈통은 밝혀졌다. 그러데 누가에 의하면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헬리의 아들로 보고 있다(눅 3:23). 이 난제에 대해 초대교회 전승들은 (1) 맛단에게 야곱과 헬리,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야곱은 외딸 마리아를, 헬리는 요셉을 각각 낳았는데 여기서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함으로써 요셉이 야곱의 법적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Chagig). (2) 자손 없이 죽은 야곱의 혈통을 잇기 위해 동생 헬리가 형수를 취하여 요셉을 낳게 했다고 한다(Eusephus). 이러한 전설들 중에 첫번째 견해가 더욱 환영받고 있다(Carr). 이로 보건대 누가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으며, 마태는 예수의 왕통에 관심을 둔 것으로 이해된다. 여하튼 마태 족보는 예수의 법적 부친으로서 요셉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혈연적으로는 요셉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다윗 혈통의 왕통을 합법적으로 이어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도 자손이 아니 신비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다(22:41-46 참조).
ꃨ 마리아에게서...예수가 나시니라 - 여기서는 분명 '요셉'이 예수를 '낳고'로 기록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란 단정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생식적 노력을 배제하는 동시에 예수의 '처녀 탄생'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처녀 탄생을 반박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시내 시리아 사본'(Sinaitic Syriac Version)에 기술된 '처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는 기록은 단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태가 기술한 족보 전체에 걸쳐 '...를 낳고'의 형식, 즉 '인간의 성적 결합을 통해 낳았다'라는 동사 '겐나오'(*)로 일관 되어 오다가 여기서는 그 사용이 그친다. 대신 '나시니라'라는 뜻의 '에겐네대'(*), 곧 능동태인 '겐나오'와는 달리 수동태 동사로서 인간이 낳은 것이 아니라 인간은 단지 출생의 도구 역할을 했을 뿐임을 강조한 말로 전환되고 있다. 이 동사의 주어는 분명 예수 자신이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예수는 육체적으로는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18절) 마리아에게서 '나시니라'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족보상으로는 이미 아브라함과 다윗의 합법적인 후손임을 확보해 눠은 것처럼 역시 그리스도가 인간의 혈통(씨)을 의지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마리아'란 이름은 '높여진 자'란 뜻의 히브리어 '미리암'(*)의 헬라식 음역이라고도 하고, '괴롭다', '쓰다'는 뜻의 '마라'(*)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룻 1:20). 하여튼 어떤 것이 되었든지 예수 수태(受胎)의 전후 상황과 조화가 되는 이름임에 틀림 없다.
ꃨ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 - 그리스도는 예수의 제 2명(Second name)으로서 예수께서 메시야의 직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드러낸 명칭이다(1, 21절 참조).
성 경: [마1:17]
주제1: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과정]
주제2: [바벨론 유수 이후부터의 계보]
ꃨ 그런즉 모든 대(代) 수가...열 네 대러라 - 이러한 구분은 본 족보의 두 가지 특징, 즉 (1) 숫자에 대한 마태의 뛰어난 감각과 (2) 도식적인 배열을 선호하는 유대인의 성향을 잘보여 준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를 3기로 분할한다면 제 1의 14대는 신정 정치(Theocracy), 제 2의 14대는 군주 정치(Monarchy), 제3의 14대는 성직 정치(Hierachy) 등으로 편의상 나눌 수 있을 것이다(Wycliffe). 실로 마태는 그가 수집한 명단을 단순히 기록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들을 분류하여, 어떤 이름은 생략하고(8,11절), 반면에 네 여인의 이름은 의미있게 부가하는 등(3, 5, 6절) 탁월한 예지와 효율적인 방식으로 구성하였던 것이다. 저자가 본 족보를 14란 숫자에 맞추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그중 특별한 의미가 없이 단지 쉽게 기억토륵 하기 위한 구분(Michaelis)으로 보는 견해와, 14대씩 3기로 나눈 구분을 7대씩 6기로 나누고 예수의 탄생을 제 7기의 7대(완전 슷자의 상징이며, 메시야 시대의 연명으로 간주;외경 에녹1서 91:12-17;93:1-10)에 속하는 것으로 표시하는 의도적 도식으로보는 견해가 있다(Hendriksen, Goodspeed). 그중에서도 가장 적합한 해석은 예수가 '다윗의 위'를 계승한 왕이심을 중거키 위함이란 것에서 출발한 견해이다. 즉 '다윗'(*)이란 히브리 알파벱 자모의 수가(數價)가 도합 14(다렐<*>이 4, 와우<*>가 6, 다렐<* >이 4)가 되기 때문이다. 이 족보의 첫번째 14대가 다윗 가문의 여명기(黎明期)와 같다면, 두번째 14대는 대낮 같이 찬란한 번성기(繁盛期))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14에서는 다윗 가문이 쇠퇴기(衰頹期)에 접어 들어 가난한 목수의 가문에 다다르며 그 어둠 속에서 큰 별(2:2, 10)과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여 '이스라엘의 영광'(눅 2:32)이 되셨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족보를 14대를 한 단위로 해서 3부분으로 나누었는데 마태의 기록에는 1명이 누락된 41명만이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헨드릭슨(Hendriksen)은 여고냐를 두 번 족보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옛사람으로서의 여고냐(왕하 24:8-12;렘 22:30), 포로 이후의 새사람으로서의 여고냐(왕하 25:27-30;렘 52:31-34)로 말이다. 그리고 슈바이쩌(Schweizer)는 다윗을 두 번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건드리(Gundry)는 요셉(족보상)과 마리아(육체상)를 각각 가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견해로서 포로기도 하나의 세대로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 매튜 헨리 ( Matthew Henry) 주석
“너희가 언제까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대해 염려하여 기도할 것이냐? 나를 믿는 백성이면 나의 백성답게 나의 일부터 먼저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지 않느냐? 나는 너희를 위해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었는데 너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 이제 너희가 해야 할 것은 너희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너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이거늘, 내 집이 가난하고 힘겨운데 너희는 지금 무엇부터 하느냐!”라며 저와 여러분을 책망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족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그 제목.
족보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 즉 그의 육신적인 조상에 대한 책[또는 사건이나 이야기. 히브리어 세폐르 "책"이란 뜻 이외에도 "사건, 기사, 이야기"의 뜻이 있음], 또는 그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족보의 제목은 Bi,bloj Gene,sewj-발생 기원의 책이다. 구약은 세계의 발생 기원에 관한 책(창세기)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구약은 그 영광이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신약은 이 점에서 그 영광이 더욱 뛰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신약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의 "발생기원에 관한 책"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서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이며(미 5:2), 누구도 그 발생기원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여자에게서 나셨으며," 이곳에 언급된 것도 바로 이 발생기원인 것이다.
2) 주요한 목적.
이 족보는 끝없이 또는 불필요하게 나열한 족보는 아니다. 또한 위인들의 족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허영적인 것도 아니다. Stemmata, quid faciunt? - 옛 족보들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이 족보는 어떤 제목(또는 명칭)을 입증하거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증거로 제시된 족보와 같은 것이다. 그 목적은 우리 주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셔서 메시야가 나시게 될 그 나라와 족속의 자손이 되심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그 당시 메시야에 연관된 약속을 받을 위인들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축복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으며, 메시야의 통치에 대한 약속이 다윗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다." 또한 "지상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게 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려는 자들은 "지상의 모든 족속들을 다스릴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신실하고 충성된 백성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이었다(창 12:3; 22:18; 삼하 7:12; 시 89:3; 132:11). 따라서 예수님이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메시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은 족보 사무소(herald's offices)의 믿을 만한 기록에 의해 입증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족보를 보존하는 일에 매우 정확하였으며, 여기에는 메시야가 그 조상들의 후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섭리가 있었다. 또한 그가 오신 이후로 유대 나라는 흩어졌고 혼란하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도 자기 자신이 아론의 자손이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왕의 직능은 영원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 포기되거나 우리 주 예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먼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운 것은 그가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 칭호로 언급되었고 또한 그렇게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한 자들은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15:22; 20:31; 21:15). 따라서 이 복음서의 저자가 입증하려는 것은 그가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그 "어깨에 정사를 메신" 다윗의 자손이시라는 것과, 또한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열국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름으로써 마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에 신실하시며 그가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1. 비록 그 성취가 오래 지연되더라도 꼭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큰 축복이 될 한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 약속이 바로 그 당시의 아들일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42대, 약 2천년이란 오랜 기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오래 전에 앞으로 되어질 일을 예고하시기도 하시며, 그렇게 오랜 후에 이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도 하신다. 약속된 은혜들의 지연이 우리의 인내를 연단 시키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2. 비록 사람들이 그 약속을 단념하더라도 꼭 이루게 하신다. 아버지의 집의 영광이었던 이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태어날 때는 멸시받는 백성이었고, 이 즈음에는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었던 때였으며 다윗의 집이 몰락되어 버린 때였다. 그리스도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시기는 그 성취가 있을 수 없는 것 같이 보일 때임을 유의하자.
3) 특별한 계통.
이 족보는 역대기 초두에 기록된 족보에 따라(기록된 데까지만)아브라함의 직계(直系)로 내려온 계통을 다루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그것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족보에서 우리는 몇 가지 독특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1. 형제를 가졌던 그리스도의 조상들 가운데 대체로 그는 동생의 계통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나 야곱, 유다, 다윗 나단, 레사등이 모두 동생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탁월성이 지상의 왕들의 탁월성처럼 그 조상들의 장자 신분에서 유래되지 않고 그의 섭리의 방식을 따라 "낮은 자를 높이시고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유래한 것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2. 야곱의 아들들 중에, 실로가 오셨던 유다 외에는 "그의 형제들," 즉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언급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과 이삭의 장자인 에서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교회에서 내쫓김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야곱의 모든 아들들은 교회 안으로 받아 들여졌고 비록 그리스도의 조상은 아니었지만 교회의 족장들이 되었으며(행 7:8), 따라서 이 족보에 언급되고 있다. "흩어진 열 두 지파들"에 대한 이러한 격려는 그들 역시 유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3. 유다의 쌍둥이 아들인 베레스와 세라는, 베레스만이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유다의 형제들이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둘 다 함께 언급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베레스와 세라의 출생이 어떤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세라는 먼저 난자로서 그의 손을 맨 처음에 내밀었으나 그것을 도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베레스가 장자권을 가지게 되었다. 유대교는 세라와 같이 맨 처음으로 장자 상속권에 이르렀으나 불신앙으로 손을 도로 집어넣음으로써, 이방 교회가 베레스와 같이 먼저 나와 장자권을 소유해 버렸다. 이리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으나 그 후에 세라가 난 것처럼-"온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롬 11:25, 26).
4. 네 여자의 이름. 이 족보에는 단지 네 여자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중 두 여자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방 여자"들이었다. 즉 라합은 가나안 태생의 기생이었고, 롯은 모압 여자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차별이 없으며 나그네나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안에서 "성도의 시민권"을 가지도록 환영되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 밖의 두 여자, 즉 다말과 밧세바는 간음한 여자들이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가 이러한 사람들의 후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이 되신 것이 특별히 족보에 언급되어 있고 조금도 가리워지지 않았다는, 우리 주 예수님에게 부가된 겸손의 표식이었다. 그리스도는 "죄 있는 육체의 모양"(롬 8:3)을 입으셨으며 아무리 큰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회개할 때에는 그와 더불어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으신다. 주의할 것은 조상들의 추문 때문에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이며, 가장 위대한 사람이나 우리 주님 자신도 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사실이 기록된 것은, 다윗의 범죄는 그가 회개하였으므로 그에게 주어진 약속을 방해하지는 못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여인을 통해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휘트비).
5. 비록 여러 왕들의 이름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윗 왕" 이외에는 왕으로 불리워 표시되지는 않았다(6절). 왜냐하면 왕권의 언약이 그와 더불어 맺어졌고 또한 그에게 메시야 왕국의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메시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위(位)를 계승할 자라고 말해지는 것이다(눅 1:32).
6. 유다왕들의 족보에서 요람과 웃시야의 사이에는(8절) 세 왕, 즉 아하시아, 요아스, 아마샤의 이름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요람이 이 웃시야를 낳고"란 말은 히브리어의 용어 법에 따라 웃시야가 요람의 직계 후손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실례는 히스기야에게 대한 예언, 즉 "왕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리라"는 예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그들은 몇 세대가 빠지게 되었다. 이 세 왕이 빠진 것은 실수나 건망증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이 복음서 기자가 참조했던 그 당시에 권위 있다고 인정받았던 족보책에 이 세 왕의 이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이를 주장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억을 쉽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조상의 대수를 14대씩 세 번으로 줄이는 것이 마태의 의도였는데, 두 번째 14대(다윗에서부터 바벨론 이거까지)의 경우에는 불가불 세 사람을 뺄 수밖에 없었는데 아합의 우상 숭배를 다윗의 집에 끌어 들여 그 낙인이 그 가문에 찍히게 되고 그 죄악에 대한 형벌이 "3, 4대까지 미치게"된 아달리야의 직계 자손인 이 세 왕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세 왕 중, 둘은 배교자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도 그의 노하심을 나타내신다. 이 세 왕은 모두 살해당하였다.
7.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언급된 왕들의 계승에 있어서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 예를 들면(7, 8절) 사악한 르호보암이 사악한 아비야를 낳았으나 사악한 아비야는 선한 아사를 낳았으며, 선한 아사는 선한 여호사밧을 낳았으나 선한 여호사밧은 사악한 요람을 낳았다. 은혜는 혈통을 따라 이어지지 않으며 또한 죄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자신의 것이며 그가 기뻐하시는대로 주시기도 하시고 보류하시기도 하신다.
8. 바벨론으로의 이거는 이 족보에서 두드러진 시기로 언급되어 있다(11, 12절).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중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는 달리 망해 없어져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그 백성들의 시내가 죽음의 바다를 통해 순수하게 계속적으로 흘렀던 사실에 대한 이유를 암시해 주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그들로부터 "오실"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이(사 65:8, 9) 복 중의 복이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유대인들이 회복되고 황폐한 성소가 "주님을 위해" 은혜로 비췸을 받게 된 것은 바로 그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단 9:17).
9.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고"로 되어 있다(11절), 여기의 여고냐는 요시야의 장자였던 여호야김을 말한다. 그러나 "여고냐가 스알디엘을 낳고"(11절)에서의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여호야김의 아들을 말하며 거기에서 스알디엘을 낳았다(휘트비). 또한 "이 사람(여고냐)이 무자하리라"(렘 22:30)고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이 말은 "그 후손 중 아무도 번성치 못하리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았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스알디엘이 브다야를 낳았으며 브다야는 스룹바벨을 낳은 것이다(대상 3:19).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손자는 종종 아들이라고 불리워졌으며 따라서 브다야는 그의 아버지의 생존시에 죽었으므로 그의 아들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10. 이 족보는 주님의 모친이신 마리아가 아닌, "마리아의 남편 요셉"(16절)에게 이어져 내려온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족보를 따질 때는 언제나 남자 편으로 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리아도 요셉과는 같은 지파, 같은 족속에 속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모친 편으로나 그의 가상적 부친인 요셉 편으로나 함께 다윗 가문에 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가 육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요섭에게서 유래된 것은 메시야의 왕국이 다윗에게서 이어온 자연적인 후손에 기초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11. 이러한 모든 계통(족보)들이 만나는 중심은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16절)이다. 이 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갈망하고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였으며, 족장들이 자손을 바랄 때 거룩한 족보에 속하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바라보던 분이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는 이러한 족장들처럼 어둡고 흐린 상태에서 그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나 왕들이 유리(역주:이 주석을 쓸 당시의 유리는 오늘날의 것과 같이 완전 투명체는 아니었음)를 통하여 희미하게 보았던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육신적으로 그리스도와 가까운 자들보다 더 영광스러운 관계를 그리스도와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12:50).
"예수"는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 받은 자"(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불리운다. 그는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왕"(단 9:25), 때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시 2:2)라고 불리워진다.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그는 "네가 그리스도이냐?", 즉 네가 기름 부음 받은 자냐?는 질문을 받으셨다. 다윗은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고(삼상 16:13),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레 8:12), 엘리사(왕상 19:16)와 이사야(사 61:1)는 선지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직무에 임명되었고 자격이 부여되었으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 즉 "그의 동료들보다 뛰어나게 즐거움의 기름으로 바르신 자"로 불리우는 것이다. 기름을 붓는다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으로부터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크리스챤"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이는 그들로 역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7절에는 이 모든 족보의 전체적인 요약이 되어있는데 전 족보가 14대씩 세 번으로 특징 있게 묶여져 있다. 첫번째 14대에는 다윗의 가문이 새로 돋아나는, 마치 아침과 같은 느낌을 주며 두번째 14대에는 정오의 대낮같이 찬란하게 번성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세번째 14대에서는 점점 쇠퇴하고 몰락하여 가난한 목수의 가문으로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에 그리스도는 그것에서부터 환하게 비쳐나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는 경외되어야 하며, 따지며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평범한 사람을 만드시는 "성령의 방법"이나 "여자의 태 속에서 어떻게 뼈들이 형성되는가를 알지 못"(전 11:5)하거늘 하물며 동정녀 마리아의 태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형성되셨는가를 알 수 있겠는가! 다윗이 어떻게 그 자신이 "은밀하게 지음을 받았으며, 기이하게 지음을 받았는가"에 대해 탄복하였을 때(시 139:13-16)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염두에 두고 말하였을 것이다.
3. 마태복음(마 1:1-17) 원문 강해
마 1:1~17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메시야의 탄생을 언급하기에 앞서 메시야의 혈통을 언급한 계보
마태는 그리스도의 족보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 본서가 당시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복음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족보가 본서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중요성은 크다. 누가의 족보가 상향식 족보로서 예수부터 시작되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심지어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는 반면(눅3:23-38), 마태는 하향식 족보로서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어 요셉을 거쳐 예수에 이르는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1. 첫 번째 시기 :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1-6a절)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밝히는 마태는 특히 그 메시야 예수가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과 무엇보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밝혀야만 했다. 그래서 다윗 왕에 앞서 아브라함이 마태의 족보에 등장하는 최초의 시작 인물이다. 예수를 완전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누가의 족보에서는 족보의 끝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다. 그것과 비교해 보면 마태가 이렇게 아브라함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하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아울러 다윗의 왕통을 잇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인이요 마땅히 메시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
( Biblo" genevsew" jIhsou' cristou', uiJou' …' jAbraavm.비블로스 게네세오스 예수 크리스투 휘우…아브라암, 1절)
유대인들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이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실 언약을 간직한 사람이었다(창12:1-3). 마태가 예수를 바로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인물이 바로 예수라는 점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족보의 시작이 그 이전까지 소급되어 아담까지 올라가는 누가의 족보와 달리 아브라함부터 시작된다. '세계'라고 번역된 비블로스 게네세오스(Biblo" genevsew")는 '출생, 생성의 책'이라는 의미인데 비블로스에는 이미 거룩성과 존경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도 하다(W.Bauer). 이 표현은 칠십인역(LXX)의 창2:4에서 '창조의 개략적 진술'(au{th hJ bivblo" genevsew"하우테 헤 비블로스 게네세오스)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으로 볼 때 마태의 독특한 의도가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의 의중에는 창세기의 처음이 창조를 시작하신 거룩한 사건을 기록하듯이, 새로운 기원을 이루는 사건을 다루는 본서(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복음서)의 서두도 그의 탄생에 관한 거룩한 계보를 다룸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70인역의 이 단어를 염두에 두고서 자신의 복음서의 서두를 이렇게 비블로스 게네세오스라고 시작한 것이다.
2) 다윗의 자손 예수
(jIhsou' cristou', uiJou' Dauivd예수 크리스투 휘우 다위드, 1절)
다윗이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왕통은 당연히 다윗에게서 시작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태는 다윗왕을 부각시켰으며 예수가 다윗의 자손됨을 지적함으로서 예수는 바로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다윗의 자손 메시야요 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삼하7:13의 나단의 신탁(神託)에 나타나는 대로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인물이 솔로몬보다 큰 인물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유대인들이 당연스럽게 동의한다면, 마태는 바로 그 인물이 이 예수라고 말하는 것이다(눅2:25). 한편 예수 크리스투라는 예수의 이중적인 이름에서 전자는 개인적인 이름이요(21절), 후자는 직분상의 이름임을 나타낸다. 크리스토스(cristou)는 히브리어의 메시야(j'yvim;; 마쉬하;기름부음 받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이다.
3) 이방 여인들이 끼어 있는 기이함
( jIouvda"< de; ejgevnnhsen to;n Fare;" kai; to;n Zara; ejk th'" Qamavr…ejk th'" JRacavb…ejk th'" JRouvq유다스 데 에겐네센 톤 파레스 카이 톤 자라 에크 테스 다마르…에크 테스 라카브…에크 테스 루드, 2-6a절)
2-6a절에서는 불륜한 행동을 했던 간부(姦婦) 다말과 이방인이요 기생이었던 라합, 영원히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올 수 없게 규정된 모압의 여인이었던 룻이라는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비행이나 잘못된 신분을 떠나서 이렇게 여인들이 족보에 기록된다는 것은 보통의 유대인들의 족보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이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유대인들이 예수의 탄생 사실, 즉 왕궁이 아닌 마굿간에서 태어났으며 비천한 나사렛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당시 정상적인 유대인들이라면 비천하게 출생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는 대단히 힘들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마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선조들 중에도 변칙적인 결합들이 얼마든지 하나님에 의해 묵인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탄생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판을 제거하려 했다. (A.H.McNeile). 그러므로 마태가 이 족보의 첫 시기를 언급하면서 밝히려고 한 점은 예수께서 비록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지만(요셉과 엄밀한 의미의 관계가 없다),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한 관계에 있었으므로(18절)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예수의 족보에 이상스런 여인들이 끼어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한없는 은혜를 준다. 그런 비천한 여인들은 불쌍한 영혼들이었지만 하나님의 크나 큰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얻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이므로 우리는 늘 그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2. 두 번째 시기 : 다윗부터 포로기 까지(6b-11절)
이 시기는 다윗을 시작으로 한 왕정 시대를 다루면서 예수가 왕통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한다. 한편 누가는 이 부분을 다루는 시기에 솔로몬이 아닌 나단을 기록함으로써 의문을 주고 있다(눅3:31).
1) '낳음'의 의미
(ejgevnnhsen에겐네센, 6b-11절)
본 족보 부분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낳다'를 뜻하는 에겐네센(ejgevnnhsen)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인 혈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혈통'을 뜻한다. 부친이 바로 그 아들을 낳았음을 뜻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후손이라면 몇 대도 건너뛸 수 있다(A.T.Robertson). 그러므로 시내산 계통의 시리아 사본이 1892년에 발견되었을 때 1:16을 '(마리아가 아닌)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기록하는데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위의 인물들의 경우와 같이 요셉과 마리아가 육체 관계를 맺어 예수를 낳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자연적인 생육법에 의해 요셉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리아 사본의 번역자가 에겐네센의 의미가 법적인 혈통이라는 점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F.F.Bruce). 16절이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가 법적인 혈통으로서의 왕통을 이으면서도 아울러 동정녀 탄생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는 마태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2) 다윗 왕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jIessai; de; ejgevnnhsen to;n Daui;d to;n basileva이에싸이 데 에겐네센 톤 다위드 톤 바실레아, 6b절)
특히 다윗에 이르러 마태가 '다윗 왕'(Daui;d to;n basileva다위드 톤 바실레아)이라고 하며 '왕'임을 강조한 것에는 그 족보가 의도하는 목적이 잘 반영되어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영원한 왕통을 보장받은 왕이었다(삼하7:1-17). 그의 역사는 사무엘상·하의 거의 전편에 계속되고 있으며 그의 시가 시편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점으로 보아 구약성경이 그에게 주는 비중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윗은 후대왕들을 묘사할 때에도 선한 왕의 대명사로 간주되어 '다윗의 길'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로 강조되고 있다. 이렇게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메시야의 왕권을 암시하기에 충분했다. 예수는 바로 그 다윗 왕의 왕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3) 다윗의 인간적 연약함을 통해 예수의 왕되심을 증명함
(Daui;d de; ejgevnnhsen to;n Solomw'na ejkth'" tou' Oujrivou다위드 데 에겐네센 톤 솔로모나 에크 테스 투 우리우, 6b,7절)
다윗이 위대한 왕임을 암시하면서 그의 이름에 '왕'이라는 직위를 붙였던 저자는 곧이어 다윗에게 솔로몬을 낳아 준 여인의 남편이 우리아였음을 밝히고 있다. 사무엘서 기자가 지적하는 대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면서 간음죄와 아울러 우리아를 죽게 하는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다(삼하11:2-12). 이러한 치명적인 다윗의 실수를 언급하는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왕이요 이스라엘 왕통을 새롭게 여는 인물이었지만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태가 위대한 왕의 그런 실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윗은 비록 그렇게 연약한 존재였지만, 이제 오실 메시야 예수는 그러한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또한 다윗은 불륜 관계를 맺었던 여인을 통하여 솔로몬을 낳았지만, 예수는 전혀 남자를 접촉하지 않은 여인인 마리아에게서(18절) 태어나셨다는 점이 그런 비교를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어쨌든 예수는 다윗의 약점으로부터 배제된 이스라엘의 완전한 왕이요 메시야였다.
3. 세 번째 시기 : 포로기부터 그리스도까지(12-17절)
이 시기는 왕정 이후 포로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왕통이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보여준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외에 다른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1) 포로기 이후에도 언약의 성취가 계속됨
(Meta; de; th;n metoikesivan Babulw'no"메타 데 텐 메토이케시안 바뷜로노스, 12-16절)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유다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그들의 종교적 중심지요 하나님의 임재 장소였던 성전이 파괴되었고 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잡혀가는 참담한 신세가 되었다. 그 때 우다 백성들은 성전이 파괴된 허탈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하나님의 언약은 계속되었다. 이 세 번째 시기에 스알디엘, 스룹바벨, 아비훗 등으로 이어지는 족보의 존재가 바로 그것을 암시한다. 예수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언약의 성취가 중단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질 때도 있지만, 인내하면서 그러한 고통의 기간을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대를 채워주실 것이다.
2)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
(jIhsou'" oJ legovmeno" Cristov"예수스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 16절)
마태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이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라는 표현 속에 암시되어 있다. 마태는 예수의 혈통을 '실부(實父)-실자(實子)'의 규칙적 순서에 따르지도 않는다. 또한 아브라함과 다윗을 족보의 중심 인물로 삼아 예수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약속을 성취하는 인물이요, 다윗의 왕통을 잇는 인물로 묘사하는 것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리스도(Cristov"크리스토스)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구약 시대의 제사장, 왕, 선지자들을 통해 예표되었던 인물이다. 구약의 모든 예표적 인물들을 성취하는 분이 바로 예수라는 인식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근본적인 믿음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공적인 칭호도 '예수그리스도'였다. 서신서에는 매우 자주 나타나고 있지만, 공관복음서에는 매우 드문 이 칭호를 특히 마태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1,18절; 16:21), 이 칭호가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이해하기 쉬운 칭호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구약에 정통한 유대인이라면 메시야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존재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3) '열네 대'의 의미
(Pa'sai ouaiJ geneai; ajpo; Abraa;m e{w"... dekatevssare"파사이 운 하이 게네아이 아포 아브라암 헤오스…데카데싸레스, 17절)
본절은 마태가 묘사하는 족보의 결론이다. 특히 둘째 시기에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여호야김 등 네 사람이나 빠져 있으며(대항1-3장) 셋째 시기에는 14를 채우기에는 한 사람이 모자라지만, 이 족보는 14대씩 3시기라는 독특하며 기교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본 족보가 특히 유대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해석들은 전부 수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족보는 14대씩 3구분으로 되어 있는데, 3이나 7(14는7의배수)은 하나님의 수이고 신성히 여기는 수이다. 둘째 14는 본 족보의 핵심 인물인 다윗의 히브리어 이름을 이루는 자음들의 수치의 합과 일치한다. 즉 dwId;의 수치가 각각 4,6,4이므로 그것을 더하면 합이 14이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14를 맞추려는 의도는 예수가 다윗의 왕통을 잇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족보를 통하여 마태가 그의 청중인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메시야됨을 증거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전혀 불필요한 '족보 타령'이 아니라 의미있는 기록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II. 누가복음(눅 3:23-38) 주석
1.호크마(hokhmah) 주석
성 경: [눅3:23]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예수께서...삼십 세쯤 되시니라 - 예수의 나이가 기록되고 있는 유일한 구절이다. 누가가 공생애 시작 당시 예수의 나이를 '30세 쯤'으로 밝힌 것은, 30세라 하는 나이가 제사장들이 그들의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하는 시기(민 4:3)인 점을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해 마침내 예수는 인류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실 시점에 이르신 것이다(히 5:10). 즉, 예수는 스스로는 전적으로 무죄(無罪)하신 분으로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죄악의 장벽을 제거하심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여실(히 10:20)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한편 그리고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고(창 41:46) 다윗도 30세에 왕위에 올랐다(삼하 5:4). 또한 산헤드린의 회원 자격도 30세가 되어야만 주어졌다. 따라서 누가는 이러한 여러 배경을 감안하여 예수의 나이를 밝혔을 것이다. 예수는 한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연륜을 감안해볼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신앙적으로도 사역을 하기에 충분한 시기에 이르러셨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항상 자신의 '때'를 잘 알았다(요 7:6).
ꃨ 헬리 - 학자들에 따라 요셉의 의붓 아버지이거나 마리아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성 경: [눅3:24]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맛닷 - 이는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또 나타나고 '맛다다'(31절)와 '맛다디아'(25, 26절)라는 이름과 비슷하다.
ꃨ 레위 - 이 이름의 어원은 불확실 하나 히브리어 '레위'(*)의 뜻을 따라 일반적으로 '점착(粘着)하다', '연합하다'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다시 등장한다.
ꃨ 멜기 - 이 이름은 아마도 '말기야'( ,말키야, '나의 왕은 야웨이시다')의 축소형인 것 같다(G.Kuhn). 이 이름은 28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ꃨ 안나 - 이 이름의 뜻은 '조롱하다'이다. 이 이름은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성 경: [눅3:25]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맛다디 -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이며 26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ꃨ 아모스 - 이 이름의 인물은 성경 상에서 이사야의 아버지로(왕하 19:2) 혹은 선지자(암 1:1)로서 나타난다. 이 이름은 '짐지는 자' 또는 '강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ꃨ 나훔 - 예수의 조상으로서 그리고 선지자로서 성경에서 언급된다. '위로하고 돕는 자'라는 뜻이다.
ꃨ 에슬리 - 이 이름은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나를 가까이 함'이라는 뜻이다.
ꃨ 낙개 - 대상 3:7에 나오는 '노가'(*)와 비슷하다. '빛나다'라는 의미이다.
성 경: [눅3:26]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마앗(*) - '끊는 것'을 뜻한다. 대하 29:12;31:13에서 나오는 마핫과 비교된다.
ꃨ 서머인 - 히브리어로 '시므이'(출 6:17등)가 된다. '몰약성'이라는 뜻이다.
ꃨ 요섹 - 바벨론 포로 이후의 인물인 듯한데 이곳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ꃨ 요다 - 바벨론 포로기 때의 인물이다.
성 경: [눅3:27]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요아난 - 히브리어 '요하난'(*)의 헬라어 음역이다. 요하난이란 이름은 (1) 유다 왕 요시야의 장남(대상 3:15) (2) 다윗의 여덟번 째 용사(대상 12:8-12) (3)느헤미야 당시 도비야의 아들(느 6:14)등에게도 붙여진 바 있다.
ꃨ 레사 - '황태자'라는 뜻의 아람어로서 원래 스룹바벨의 칭호로 소개된 말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스룹바벨이 유대의 지도자로 바벨론에서 포로들을 인솔해 유대 땅으로 귀환하자 백성들은 그를 유대 왕의 계승자로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황태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도 나타난다(마 1:12).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뒷받침된다(스 3:2;학 1:1). 그러나 대상 3:19에는 스룹바벨이 브다야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는 앞서 설명되었듯이 수혼(嫂婚)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다. 대상 3:17, 18를 보면 스알디엘과 브다야는 여고냐의 아들로서 서로가 형제지간이었다. 따라서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의 법적 아버지이며 브다야는 그의 원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스알디엘의 아버지가 여고냐라고 대상 3:17에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본문은 그의 아버지를 네리라 기록하고 있다. 이것 역시 수혼 제도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다. 즉 여고냐가 아들이 없이 죽자(렘 22:30) 네리의 친아들이 여고냐의 법적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Machen, Plummer).
성 경: [눅3:28]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멜기 - 스룹바벨의 증조부로서 '왕'이란 뜻이다.
ꃨ 앗디 - 스룹바벨의 5대조이며 그 이름은 '붙들다'라는 뜻이다.
ꃨ 고삼 - '나누다'라는 의미이다.
ꃨ 엘마담 - 창 10:26의 '알모닷'이라는 이름과 비교된다. 바벨론 포로 이전의 사람이며 그 이름은 '광대'라는 의미이다.
ꃨ 에르 - 이 이름의 인물은 구약성경에 두 명 등장한다. 한 명은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유다의 장자이며(민 26:19) 다른 하나는 겔라의 자손이다(대상 4:21).
성 경: [눅3:29]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예수(*, Jesus) - 구약의 '여호수아'(수 1:1)와 같은 이름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으로 '여호와의 구원' 혹은 '구세주'라는 뜻이다(마 1:21).
ꃨ 엘리에서 - 이 이름은 '엘리에셀'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이는 창 15:2;출 18:4에 나타난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ꃨ 요림 - '여호와의 칭찬'을 뜻한다.
성 경: [눅3:30]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유다 - 역시 이스라엘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본문의 인물은 바벨론 포로 이전의 사람이다.
ꃨ 요남 - 다윗 이래 약 200년 후의 인물로 추정된다.
ꃨ 엘리아김 - 왕하 18:18에 나타난 것과 같은 이름이다. 이 사람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성 경: [눅3:31]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멜레아 - 이 이름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다윗의 고손(高孫)이며 이름의 뜻은 '충만'이다.
ꃨ 멘나 - 이 이름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이는 다윗의 증손이며, 이름의 뜻은 '큰 고통'이다.
ꃨ 나단 - 다윗의 셋째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출생했다(삼하 5:14;대상 3:5;14:4). 이 이름은 '양심' 또는 '주는 자'라는 뜻이다.
ꃨ 다윗 -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이며 이새의 막내 아들이다. 이스라엘의 세 임금이며 지혜와 용맹과 많은 시편의 저작들로 유명하다(삼상 16장-왕상 2장). 이름의 뜻은 '사랑함'이다.
성 경: [눅3:32]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이새 - 다윗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는 마 1:2-6에 나오는 족보와 거의 같다. 이새는 베들레헴 에브랏 출신으로 다윗왕의 아버지이다(삼상 17:12). 사 11:1은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야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ꃨ 오벳 - 보아스와 룻의 아들이다(룻 4:17, 21, 22;마 1:5).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룻 1:4) 다윗과 예수를 잇는 가계(家系)의 한 역할을 담당했다.
ꃨ 보아스 - 룻의 남편이며 살몬의 아들이다. 그는 또한 베들레헴의 큰 부호였다. 보아스는 룻이 모압땅에서 시모 나오미와 함께 돌아왔을 때 그녀를 다방면에서 돕고 그녀의 효성에 탄복하며 그녀와 결혼하게 되기까지 이른다(룻기)
ꃨ 살몬 - '그늘'이란 뜻.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의 남편이다(마 1:5 비교).
ꃨ 나손 - '점쟁이'란 뜻. 보아스의 조부이다(룻 4:20). 마 1:4과 비교.
성 경: [눅3:33]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아미나답 - 유대 헤스론 계통인 '람'의 아들이다(룻 4:19;대상 2:10). 그리고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의 부친이기도 하다(출 6:23). 이 이름의 뜻은 '나의 친척은 고귀하시다'이다.
ꃨ 아니 - '높은 땅'이란 뜻. 룻 4:19과 대상 2:9에 히브리 이름 '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ꃨ 헤스론 - '닫힌'이란 뜻. 유다의 손자로 창 46:12;민 26:21;룻 4:18;대상 2:5;마 1:3 등에서 언급된다.
ꃨ 베레스 - '파괴'란 뜻.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형이다(창 38:24-30;46:12). 베레스에게서 두 종족이 생겼다(민 26:20, 21;대상 2:4, 5).
ꃨ 유다 - '찬송'이란 뜻. 야곱의 넷째 아들로 레아의 소생이다(창 29:35;마 1:2). 그는 밧단아람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쌍동이 베레스와 세라 두 아들을 얻었다.
성 경: [눅3:34]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야곱 - '발 뒤꿈치를 잡다'란 뜻.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동생이다(창 25: 21-26). 그는 형 에서에게서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에 대한 축복을 가로챘다. 야곱은 하단의 외삼촌댁 라반의 집으로 피하여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고, 그 두 부인과 부인들의 하녀 빌하와 실바를 통하여 12아들을 얻었으며 이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 12 지파가 형성되었다(창 29장). 야곱은 애굽 근교 고센 땅에서 살다가 147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ꃨ 이삭 - '웃음'이란 뜻.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낳은 아들이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태어났으며 그때 그의 아버지가 100세, 어머니는 90세였다(창 17:17;21:2, 3, 5). 이삭은 어렸을 때 아브라함에 의하여 하나님께대한 믿음의 증거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창 22:1-18).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 리브가와 결혼하며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그는 노후에 기럇아르바 마므레에서 살다가 180세에 죽었다(창 35:27, 28).
ꃨ 아브라함 - '열국의 아버지'란 뜻.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들이며 나홀과 하란의 형이다.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으며 이복 누이 사라와 결혼하였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살던 땅과 집을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떠났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100세에 얻었다. 그의 신실한 삶은 성경에서 믿음의 표상(表象)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창 25:1-9).
ꃨ 데라 - '표백'이란 뜻.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이다. 그는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다고 하며(수 24:2),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하단으로 이사가서 205세에 죽었다(창 11:24-32).
ꃨ 나홀 - 아브라함의 조부이다.
성 경: [눅3:35]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스룩 - 아브라함의 증조부이며(창 11:20-23;대상 1:26) 이 이름은 '활'이라는 뜻이다.
ꃨ 르우 - '친구'란 뜻. 셈의 6대손이다(창 11:19).
ꃨ 벨렉 - 셈의 자손 에벧의 아들이다(창 10:25-29;11:16). '나뉘다'는 뜻의 이름은 그가 태어날 즈음 세상 사람들이 나뉘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확히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종교적 정화 운동 혹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고 짐작하는 견해가 있다.
ꃨ 헤버 - '과거'라는 뜻. '헤벧' 또는 '에벧'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그는 노아의 6대손이다.
ꃨ 살라 - '보내다'는 뜻. 노아의 고손이며 창 10:24;11:13;대상 1:18, 24에는 '셀라'로 기록되어 있다.
성 경: [눅3:36]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가이난 - '철공'이란 뜻. 셈의 손자이나 창 10장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ꃨ 아박삿 -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을 가리킨다(창 10:22, 24;대상 1:17, 18), 그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출생했으며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그후 403년을 더 살다가 438세에 사망했다(창 11:10-13).
ꃨ 셈 - 노아가 500세에 낳은 아들로 3형제 중 맏이다. 그는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을 피해 아내와같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다(창 7:7;벧전 3:20). 또한 그는 술 취한 아버지의 실수를 조심성있게 덮어주어 축복을 받기도 했다(창 9:20-27). 또한 그는 셈족의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이름' 또는 '명성'이라는 뜻이다.
ꃨ 노아 - 아담의 10대 손이다. 이 이름이 붙여진 연유에 대해 창 5:29은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설명한다. 그는 의인이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9).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며 그 심판을 피할 방주를 건축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직 그의 가족과 동물 암수 한 쌍씩만이 구원받았다. 노아가 대홍수를 만났을 때가 600세였으며, 그는 홍수 후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에 죽었다(창 9:28).
ꃨ 레멕 - 구약성경에 '라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182세에 아들 노아를 낳았다. 그는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더 살며 자녀를 낳고 777세에 사망했다(창 5:25, 28-31;대상 1:3).
성 경: [눅3:37]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므두셀라 - 셋의 후손 에녹의 아들이다(창 5:21-27). 그는 969세까지 산 것으로 기록되 성경상에서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장수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대확장' 또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ꃨ 에녹 - 아담의 7대 손이며 야렛이 162세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65세에 인류 역사상 최장수자(最長壽者) 므두셀라를 낳으며 그후 하나님과 동행하며 365세를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고 전한다(창 5:18-24;히 11:5;유 1:14). 그의 이름은 '교수' 또는 '시작하는 자'라는 뜻이다.
ꃨ 야렛 - 에녹의 부친으로 마할랄렐이 65세에 낳은 아들이다(창 5:15-20;대상 1:2). 그는 므두셀라 다음가는 자로(962세) 알려져 있다.
ꃨ 마할랄렐 - 아담의 5대손이며 셋 계통의 한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찬양'이라는 뜻이다.
성 경: [눅3:38]
주제1: [세례 요한과 인자]
주제2: [예수의 족보]
ꃨ 에노스 - 아담의 손자이다. 셋은 109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았으며 905세를 향수했다. 가인의 시대가 폭행으로 표현된 반면 에노스의 시대는 경건으로 표현되었다.
ꃨ 셋 - 아담의 셋째 아들로 맏아들 가인이 죽인 둘째 아들 아벨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다(창 4:25).그는 아담이 130세 때 태어났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912세에 죽었다(창 5:3-8). 그의 이름은 '대신 주다'라는 뜻이다.
ꃨ 아담 -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류 최초의 인간이다. 그는 타락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그의 갈비뼈로 만드신 아내 하와와 낙원 에덴 동산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을 잃어버리고 노동의 수고로움과 해산의 고통을 맛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아담은 막내 '셋'을 130세에 낳고 그후 800년을 더 살다가 930세에 죽었다. 그의 이름은 '사람' 또는 '붉다'라는 뜻이다.
ꃨ 하나님 - 하나님을 아담의 아버지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 제시된 족보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아담의 아들로서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해 주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불순종한 첫째 아담과 대조하여 비록 암시적인 주제이기는 하지만 예수를 하나님께 순종했던 둘째 아담으로 묘사해 준다(고전 15:47). 이와같이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예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있다.
2. 매튜 헨리 ( Matthew Henry) 주석
ㅁ 예수의 족보 (누가복음 3:23-38)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한 긴 이야기가 나온다. 마태복음에는 더 간략히 되어 있다.
1. 그의 나이가 나와 있다. "그가 시작할 때는 30세쯤 되니라"고 했다. 옛날에 요셉도 30세에 바로 왕 앞에 섰다(창 41:46). 다윗도 그때에 통치하기 시작했다. 또 이 나이에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직무를 완전히 수행할 수 있게 된다(민 4:3). 라이트푸트 박사는 그 표현법을 봐서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는 이제 만 29세가 되었고, 티스리(Tisri) 달(月)을 맞아, 30세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이후로 예수는 3년 반을 살았고, 32세 반(6개월)이 되는 때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성서의 기록에서는 "3년 반"이란 그리스도 사역의 기간은 잘 알려진 기간이다. 엘리야 시대에는 "3년 반" 동안 하늘이 닫혀 있었다(눅 4:25; 약 5:17). 또 그 기간은 메시야가 계약을 확충해야 할 반(半) 주간(週間)이다(단 9:27). 이 기간을 예언 문서에서는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식으로 표현했다(단 12:7; 계 12:14). 또는 42개월 또는 1천 2백 60일로도 표현했다(계 11:2, 3 절).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겸비한 모습으로 전파하신 기간과 일치하여, 증인들이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도록 정해진 시간이다.
2. 그의 족보가 있다(23절 이하). 마태도 그런 족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아브라함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누가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타내는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점을 말하고자 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예수가 다윗의 위(位)를 물려받을 상속자라는 점을 밝히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가(家)의 남계(男系) 상속자인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 족보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누가는 그리스도가 "여인의 자손"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 여인의 자손은 뱀의 머리를 깨뜨려야 할 자이다. 그래서 누가는 족보를 위로 아담에게까지 높이 끌고 올라갔다. 한편 그는 요셉의 아버지가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아버지인 엘리 또는 헬리에게서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성경(KJV)이 모두 "which"(한글에는 생각하고, '그 이상은'으로 함-역주)라는 말을 삽입해 넣은 것은 올바른 변역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which로 읽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 "요셉"은 헬리의 아들이었다라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 "예수", 그는 "요셉의, 엘리니 맛탓의........아들"이다 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는 셋의, 아담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8절 우리 성경은 '그 이상은'하고 올라갔으므로 역시 예수가 직접 하나님의 아들이란 뜻으로 읽어지지가 않는다 - 역주).
예수의 족보를 쓴 두 복음서 기자의 차이는 말에 흠을 잡으려는 믿음 없는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나 오늘날 시대에 있어서나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제거되고 만 걸림돌이다. 마태는 솔로몬에게서 족보를 끌어냈는데, 솔로몬의 자연 혈통은 여고니아에게서 끝나고 말며, 그 법적 권리는 스알디엘에게 이양되었으니, 그는 나단 곧 다윗의 다른 한 아들의 집안 출신이었다. 누가는 바로 그 혈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유다의 다른 모든 왕들을 일축해 버렸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이 모든 난해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들 때문에 복음서의 신성한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왜냐하면 복음서 기자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이 족보를 편찬했거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아 쓴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있던 족보책의 신빙성 있는 기록을 보고 베껴 써야 했다. 따라서 기자들은 그 기록 문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기록문들 속에서 그들을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의 가계를 발견했고, 그것을 그대로 마태가 옮겨 적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23절)이란 말의 의미이다. 그것은 본래 요셉만을 가리키는 "소문난 대로"의 뜻이 아니라, 뜻이 아니라, uti sancitum est lege - 책에 들어 있는 대로라는 뜻이다. 마치 기록 문서에서 찾아 본 대로라는 뜻이다.
예수가 아버지 쪽으로나 어머니 쪽으로나 다 같이 다윗의 아들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이 족보는 다윗 족속 자체의 기록에서 발췌되었다는 점을 증언해 주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러한 발췌문은 원 족보와 비교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럴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나아가 기자들은 원 족보를 변경했더라도 자기들의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당시에는 흔히 있었던 일이란 사실은, 이 족보가 진정한 사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케 해 준다. 유대인들은 족보 문서가 3, 40년간 기록된 다음에 가서야, 이러한 발췌문을 만들었고 ─ 이 점에 있어서는 복음서 기자들도 충분히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 그 때에는 이미 원본은 나라와 민족과 함께 다 분실되었거나 파손된 뒤라는 사실을 주목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노아 사이에 한 가지 난제가 있다. 이것은 우리를 다소간 곤란하게 하는 문제이다(35, 36절). "살라"를 "가이난의 아들"이라고 했고 가이난은 "아밧삿의 아들"이라 했다. 그러나 살라가 이박삿의 아들이다(창 10:24; 11:12 - 우리 성경 창세기에는 "아르박삿"이라 했다 - 역주). 창세기에는 가이난이란 사람을 찾을 길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구주의 시대 이전에 구약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한 70인역 번역자들이 자기들 자신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가이난이란 이름을 넣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좋다. 그리고 "헬레주의적 유대인"들에게 쓰고 있는 성 누가는 그 번역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이난이란 이름을 우리가 여기서 대하게 된 것이다.
이 족보는 "……는 아담의 아들이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1) 어떤 자는 그 말이 아담에게 해당하는 걸로 본다. 그는 특유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의 후손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작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2) 또 어떤 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보면, 이 족보의 마지막 어귀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말해 주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자손(Son)"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Son)"이다. 따라서 그는 실로 하나님과 아담의 자손들을 중재하는 중재자가 되기에 적합하며, 자기 자신을 통해서 아담의 자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에 적합하다.
3. 누가복음(눅 3:23-38) 원문 강해
눅 3:23~38 예수의 혈통
예수의 족보에 관한 구체적 설명
본문은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족보는 마1장에 제시된 족보와 체제와 인명과 그 숫자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주어져야 할 것이며, 동시에 이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 의미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도 차별적으로 설명되어야만 할 것이다.
1. 요셉의 아들 예수(23,24절)
본문엔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나이가 기록시되어 있다. 물론 삼십 세쯤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기록은 삼십세 이전엔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거나 예수께서 아직 축복과 성령을 받지 못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W.Hendriksen)
1) 삼십 세쯤에 사역을 시작하심
(Kai; aujto;" hn jIhsou'" ajrcovmeno" wJsei; ejtw'n triavkonta,... ; 카이 아우토스 엔 예수스 아르코메노스 호세이 에톤 트리아콘타 ;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23a절)
아우토스 예수스(aujto;" jIhsou'"예수께서)라는 본문을 개역성경은 아우토스의 해석없이 처리했다. 그러나 원문에선 아우토스라는 단어를 통해 '예수 자신께서'라고 예수를 강조한다. 족보에 있어서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는 예수에 대해서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에 대한 강조는 두 가지를 알게 한다. 하나는 족보 기록의 목적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강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는 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족보상의 인물들이 실제로는 예수로 말미암았다는 점이다. 족보에 있어서 처음 시작은 예수로 시작하며 마지막은 하나님으로 끝난다. 결국 모든 인류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과 그 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구조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개역성경에는 '가르치심을'이 작은 글씨로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원어성경에는 그 단어가 없이 단순히 아르코메노스(ajrcovmeno")라는 현재분사 중간태로 '(스스로, 스스로를 위해) 시작하실 때'라는 뜻을 나타낸다. 개역성경은 원활한 의미 소통을 위해 '가르치심을'이라는 단어를 삽입하였다. 아르코메노스(ajrcovmeno'시작할 때에)는 메시야적 사역의 시작을 표현한다(A.T.Robertson).
엔 호세이 에톤 트리아콘타(hn wJsei; ejtw'n triavkonta,약 삼십세쯤 되시니라)라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나이가 삼십세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이 표현을 삼십대로 간주하고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나이를 38세라고까지 가정하기도 하지만 적절치 못하다. 본문에서 '30세쯤'이라고 표현한 것도 한두달 내지는 30세보다 조금 많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A.Plummer).
2) 요셉의 아들
(w]n uiJov", wJ" ejnomivzeto, jIwsh;f tou' jHli; ; 온 휘오스 호스 에노미제토 요셉 투 헬리 ;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3b절)
에노미제토(ejnomivzeto사람들의 아는)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사물의 원인을 규명하는 지식으로써 안다는 뜻이다. 즉 겉으로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생각할 때에 사람들은 ' 게'알고 있다는 뜻이다(W.Bauer). 요셉의 위로 올라가는 모든 조상들이 이름 앞에는 투(tou 의)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요셉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할 때에 요셉 앞에서만 투(tou 의)라는 단어가 없다. 위의 두 가지 점을 같이 생각한다면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지만, 사실은 헬리의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혹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라는 표현은 족보 전체가 정확한 법적 계통성을 따져 나간 것이 아니라 추정에 의한 것임을 내포한다. 본문의 구조는 '요셉의 아들' 뒤에 '그 이상은...'으로 계속된다.
'그 이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요셉의 이상은, 헬리의 이상은'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W.Hendriksen). 또한 대부분의 성경은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R.S.V.와 대부분의 번역판들). 이런 구조는 처음에 '요셉의 아들'이라는 구문의 연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요셉의 아들은 예수이며, 헬리의 아들은 요셉이며...'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는 요셉의 아버지로서 헬리를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복음에서는 야곱이 요셉을 낳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마1:16)
3) 요셉의 조상들
(tou' Maqqa;t tou' Leui; tou' Melci tou' jIannai; tou' jIwsh;f ; 투 맏다트 투 레위 투 멜키 투 얀나이 투 요셉 : 그 이상은 맏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4절)
헬라어에서의 휘오스(uiJo;"아들)라는 단어는 직계 아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손자와 그 이상의 자손들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뜻하는 헬라어의 파테르(pathvr아버지)도 직접적인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조상들을 의미한다(Liddle & Scott).
헬라어가 가지는 이러한 기본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기본적인 뜻을 알 때만이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인물들의 이름은 물론 그 숫자가 다른 것을 단순히 성경기자의 오류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요셉의 조상들의 수효가 틀린 이유는(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마태는 41명, 누가는 57명을 기록하고 있다. I.H.Marshall). 둘이 기록하고자 했던 목적에 따라서 생략하는 사람을 임의로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자들이 사용했던 족보가 서로 달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2. 예수의 조상들(25-33절)
마태복음의 기록과 본문에서의 족보상의 차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어떻게 할 수 있으며 과연 어떤 점이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성경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음을 족보를 통해서 주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1) 족보에 대한 연구
(tou' Mattaqivo...tou' Nhri; ; 투 맛타디우...투 네리 ;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그 이상은 네리요, 25-27절)
본문의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차이점과 함께 유사점이 존재한다. 차이점은 누가복음의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 사이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몇 명 나오지만 누가복음에는 전혀 여자들의 이름이 없고 마리아조차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부터 기록해서 자손으로 내려오는 순서를 취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에서부터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며, 그 끝도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과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고 있다.
2) 멜기에서 다윗까지
(tou' Melci;...tou' Daui;d ; 투 멜기...투 다위드 ; 그 이상은 멜기요...그 이상은 다웃이요, 28-31절)
마태복음은 누가복음보다 생략한 면이 더 많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14명씩 3문단을 형성하여 기록하였으나 누가복음은 예수에서부터 아담까지 모두 76명의 이름이 그룹을 짓지 않고 기록되어있으며 하나님까지 모두 77명의이름이 나온다(W.Hendriksen). 그렇다면 두 복음서에 나오는 족보상의 일치점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두 족보에 모두 스룹바벨과 스알디엘이 기록되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마1:12 눅3:27). 둘째,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의 기록은 두 복음서에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마1:6 눅3:31)
3) 이새에서 유다까지
(tou' jIessai;...tou' jIouvda ; 투 예사이...투 유다 ; 그 이상은 이새요...그 이상은 유다요, 32,33절)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서였으므로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으로서 가장 중요시 여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이스라엘 역사를 크게 등분하여 족보를 배열하고 있는 점도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누가복음은 유대인들이 아니고 헬라인(이방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였으므로 굳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할 필요도 없었고 아브라함으로 끝을 맺을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그 이상까지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아들 예수(34-38절)
본문의 족보가 가지는 독특한 점은 마태복음과는 달리 아브라함에서 끝나지 않고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본문의 족보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고 있다.
1) 셋에게까지
(tou' jIakw;b tou' jIsaa;k...tou' Kai>na;m tou' jEnw;" tou' Sh;q ; 투 야곱 투 이삭...투 가이남 투 에노스 투 세드 ;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그 이상은 가이난이요...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34-38a절)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다윗은 물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보다 더 먼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무언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더 크고 비밀스런 근원과 조상에게서 예수가 태어났음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문을 통해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아벨을 대신해서 주신 약속의 자녀인 셋에게까지 기원이 올라가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가 약속과 축복의 자손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약속과 축복의 자손을 통해 출현한 완전한 약속 성취와 축복의 실현을 가져오는 자손임을 알 수 있다.
2) 아담에게까지
(tou' jAda;m ; 투 아담 ; 그 이상은 아담이요, 38b절)
예수의 기원은 결국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까지 올라간다. 드디어 예수는 인간 역사가 시작된 원점에까지 도달한다. 예수는 아담에게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안의 씨로서 이미 그와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아담 이래로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과 예수는 관련을 가진다. 그러나 여기에서 누가의 기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누가는 더욱 더 놀라운 일을 다음에 덧붙여서 기록하고 있다.
3) 하나님의 아들 예수
(tou' qeou' ; 투 데우 ;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38c절)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라는 이 구절은 족보를 좇아 올라오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예수는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의 단순한 자손만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그들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예수라는 한 인간에서 시작해서 하나님에게까지 도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처럼 우리는 느낄 수 있다(A.T.Robertson). 만약 예수의 족보가 아담에게서 끝나 버렸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진 인간이었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시금 하나님과 가까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축복받았다.
본문의 족보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 한 구절에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바로 이 점을 말해주고자 한 것이다. 이 점을 말함으로써 단번에 예수는 모든 사람들의 아들과 자손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들의 창조주가 되신다. 인간으로는 그들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창조주라는 이 파라독스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에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그 절정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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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