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한 경제기자의 선구안(選球眼)도 은행의 집요한 마케팅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얘기다. 지난해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홍콩 H지수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은행 직원의 친절한 설명과 높은 기대 수익률에 현혹돼 미끼를 덜컥 물었다. 결과는 비참하다. 평가손실이긴 하지만 투자금이 반 토막 났다. '경솔함'을 자책하며 입 다물고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홍콩 H지수 ELS 판매액이 37조원에 달하고, 고객 중 60대 이상 고령자가 36%나 된다는 걸 알고 난 후엔 알량한 '기자 정신'이 발동한다. 몇 년 전 우리 은행들은 수출 기업의 환율 변동 위험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환 헤지(hedge) 파생상품을 팔았다가, 환율 움직임이 예상과 거꾸로 되면서 중소기업에 4조원대 손실을 안긴 전력이 있다.
왜 우리 은행들은 고(高)위험 투자상품을 마구 팔까. 은행의 약탈적 마케팅 행태는 한국만의 속성은 아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선 은행들이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마구 팔았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했다. 위기의 뿌리에는 투자금을 뻥튀기해 더 많은 수익을 내려는 미국 은행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 은행들의 무리수 역시 탐욕 탓일까.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한국만의 특수한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바로 '고(高)비용' 구조다.
초(超)저금리로 인해 국내 은행들은 이자 수익이 계속 줄고 있지만, 인력 감축도, 임금 삭감도 어려우니 비용은 줄일 수 없는 상황이다. 살길은 어떻게든 다른 수익원을 찾는 것이고, 가장 쉬운 해법은 펀드, ELS 같은, 비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투자상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A 금융 그룹의 지난해 경영 실적을 보면 이자 이익은 전년 대비 3.3% 줄었지만, 수수료 이익은 11% 늘었다. 주력 자(子)회사인 은행이 펀드 상품을 전년도의 2배가 넘는 6조7000억원어치나 팔아 여기서만 1500억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린 덕분이다. 그런데 A 은행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60%를 판매관리비로 지출했고, 판매관리비의 73%는 인건비 몫이었다. 결국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수익을 짜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투자 위험을 다 설명했고, 고객 스스로 판단해 투자했다는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 확인서'에 서명까지 받았다고. 이런 해명이 좀 겸연쩍다면 "입출금·송금·신용카드 수수료는 금융 당국이 다 틀어막고 있는데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쥐어짠 수익으로 3년치 연봉에다 자녀 학자금까지 제공하며 해마다 '명예퇴직 잔치'를 벌이는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은행들 이 3월부터 선보일 국민 재테크 통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시장을 놓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 고위험 투자상품을 팔면서 자동차, 해외여행까지 경품으로 내거는 은행이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고객의 투자금을 은행이 맘대로 굴릴 수 있는 '일임형 ISA' 판매 허가까지 얻었으니 또 어떤 신공(神功)을 발휘해 순진한 고객을 유혹할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왜 우리 은행들은 고(高)위험 투자상품을 마구 팔까. 은행의 약탈적 마케팅 행태는 한국만의 속성은 아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선 은행들이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마구 팔았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했다. 위기의 뿌리에는 투자금을 뻥튀기해 더 많은 수익을 내려는 미국 은행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 은행들의 무리수 역시 탐욕 탓일까.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한국만의 특수한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바로 '고(高)비용' 구조다.
초(超)저금리로 인해 국내 은행들은 이자 수익이 계속 줄고 있지만, 인력 감축도, 임금 삭감도 어려우니 비용은 줄일 수 없는 상황이다. 살길은 어떻게든 다른 수익원을 찾는 것이고, 가장 쉬운 해법은 펀드, ELS 같은, 비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투자상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A 금융 그룹의 지난해 경영 실적을 보면 이자 이익은 전년 대비 3.3% 줄었지만, 수수료 이익은 11% 늘었다. 주력 자(子)회사인 은행이 펀드 상품을 전년도의 2배가 넘는 6조7000억원어치나 팔아 여기서만 1500억원이 넘는 수수료 수입을 올린 덕분이다. 그런데 A 은행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60%를 판매관리비로 지출했고, 판매관리비의 73%는 인건비 몫이었다. 결국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수익을 짜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객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투자 위험을 다 설명했고, 고객 스스로 판단해 투자했다는 '부적합 금융상품 거래 확인서'에 서명까지 받았다고. 이런 해명이 좀 겸연쩍다면 "입출금·송금·신용카드 수수료는 금융 당국이 다 틀어막고 있는데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쥐어짠 수익으로 3년치 연봉에다 자녀 학자금까지 제공하며 해마다 '명예퇴직 잔치'를 벌이는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은행들 이 3월부터 선보일 국민 재테크 통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시장을 놓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 고위험 투자상품을 팔면서 자동차, 해외여행까지 경품으로 내거는 은행이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고객의 투자금을 은행이 맘대로 굴릴 수 있는 '일임형 ISA' 판매 허가까지 얻었으니 또 어떤 신공(神功)을 발휘해 순진한 고객을 유혹할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