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수그러들고 있다. 2020년 청명한 봄날, 4월 28일이다. 을지로 입구 시청점의 아크앤북(Arc N Book)을 찾았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면 된다. 아크앤북은 하나빌딩(아래 사진의 오른쪽)을 지나 왼쪽의 DGB대구은행 지하에 위치한다. 가운데 공공미술 작품은 정관모 작가의 <기념비적인 윤목 Monumental Yoon-mok>이다.
건물 지하의 아크앤북을 들어가는 입구이다. DISTRICT C라고 써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아메리칸 스타일 펍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무실 거리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주변이 깨끗하여 마음에 쏙 들었다.
헉! 이럴 수가. 나는 2호선 을지로입구 전철역 1번 출구를 올라와 걸어왔건만,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느 1번 출구로 나와 걸어왔는데, 다시 찾아보니 1-1번 출구로 연결된다. 사진 오른쪽은 아크앤북 전면유리이다.
유리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아래 사진의 모습이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형상이 있고, 그 오른쪽은 cashier라고 써 있는 판매 데스크가 자리한다.
공중전화 박스는 책 검색대이다. 실제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큰 전문 서점처럼 책들이 풍부하지는 않다.
유리 정문으로 입장하여 왼쪽으로 돌아서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아크앤북이 다른 일반 서점들과 다른 점들 중 하나는 커피숍만 구비되어 있지 않고, 서점 둘레로 식당들까지 쭉 배치되어 있다. 차차 보게 될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왼쪽(계산대)과 오른쪽(아이스크림 가게) 교차로이고 푹신하고 넉넉한 쇼파가 처음부터 우리를 반긴다. 아래 사진 오른쪽이 반원형 책들 아치 통로이다.
이러한 책으로 둘러친 아치는 두 군데이다. 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작품은 정해진 작가의 <푸른 드레스의 지성 Intellect in blue dress>,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푸른 드레스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지성'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 특이하다. 아래 벨라스케스의 원본을 붙인다.
위의 그림을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스페인 바로크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 Infanta Margarita Teresa>(1659)이다. 패러디로 보인다. 이 공주를 푸른 드레스의 지성(intellect)이라고 표현한 것에 궁금증이 있기는 하다. 참고로 이 지성의 공주는 15살에 신성로마제국 레오폴드1세에게 시집가서 3명의 아이를 줄지어 낳았으나, 다 사망하고 4번째 아이를 낳고 바로 죽었다. 그녀의 나이 22세였다.
(c)wikipedia
옆으로 한 개 더 아치 통로가 존재한다. 즉 총 2개를 지나갈 수 있다. '아크앤북'을 검색 엔진에 치면 보통 아래와 같은 책아치 통로 사진들이 많이 등장한다. 통로 끝에 초록 식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그곳에서의 광경을 보자.
책 아치 통로를 걸어오니 아래와 같은 널찍한 장소를 마주한다. 이곳은 교보문고 처럼 책 전문 서점은 아니다. 책들은 가운데 몰려 있고, 주변으로는 커피샾, 디저트샾, 식당, 용품샾들이 둘러쳐져 있다. 특히 앉을 곳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힘들면 어디건 앉으면 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들 마스크들을 쓰고 책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용하다. 정적인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자는 방문해 봐야 한다.
태극당도 있다. 동대입구역의 태극당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우선하여 먹는 곳들로 사진 셔터기가 따라가는 것은 본능으로 해석하기로 한다^^
초콜릿 가게 고디바도 있다. 다소 한가로움이 감도는 이유는 평일이고 아직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붐비지 않은 탓도 있겠다.
큐레이션은 미술관 큐레이터에서 나온 파생 신조어이다. 쉽게 말해 기존의 서점의 섹션 분류는 문학, 과학, 경영, 여행, 음식 등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크앤북은 다르다. 아래의 섹션은 '가장 나다운 삶을 사는 비주얼 아티스트방'이다. 책 뿐만 아니라, 관련 물품들도 함께 구비되어 있는데, "이게 뭐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냥 "패스"하면 된다.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면 된다.
'폴인 픽앤써머리'섹션도 있다. 폴인(folin)은 콘텐츠 제공업체이다. 매월 멤머쉽 비용을 지불하고 원하는 콘텐츠를 받아 보는 것이다. 직장인들 대상으로 자기 계발, 비즈니스 트렌드 등의 스토리가 제공된다. 이 섹션도 해당 없다면 "패스"하면 된다.
"Bringing Korea to the world" 섹션이다. 세계에 소개되는 한국 이야기이다. 나는 이런 류의 섹션에는 관심이 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지는 궁금할 수 있지 않을까? 책 중에 류승완 감독에 대한 책도 있다. 해외에 봉준호와 박찬욱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수상한 책' 코너이다. 이런 큐레이션 제목은나의 흥미를 끈다. 수상하다는 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 대상의 책들로 보인다. 슬픈 일이다. 호기심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고, 어른들이 호기심을 가지면 세상 사는 게 피곤해진다.
아래는 주로 그림들이라서 10분 정도 휘리릭 둘러보면 내용이 파악된다. 2019년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다는 도장이 찍혀 있어서 들여다 봤다.
종편 방송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개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코너이다.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뮤지컬 <데미안'이라는 타이틀로 관객들을 불러모은다. <데미안>을 성장기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읽고 봐야만 하는 책으로 소개하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반대이다. 아래엣에서 헤세의 <황야의 이리>가 나는 더 낳다.
그리고 아래 사진의 왼쪽에 전시되어 있는 <오르부아르>도 재미있다. 저자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55세에 처음 소설을 쓴 르메르트 작가이다. 제목이 생소하다면, 영화 <맨 오브 마스크>를 생각하면 된다. '오르부아르(au revoir)'는 프랑스어로 '씨유(See you)'이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이야기가 있어서, 앉아서 읽고 갔다. 이런 책들은 구입하여 소장하기는 딱히 그렇지만, 잠시 재미로 괜찮은 책이다. 나는 글렌 굴드의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그는 acticulation(분절)이 정확하다. 피아노 페달을 눌러 뭉게지는 듯하고 몽환적인 소리로 어영부영 넘어가는 피아노 소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래의 코너는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은 뭘까요?' 섹션이다. 이 큐레이션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책이란 없다. "좋은"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이고 conceptual하다. 5천만 국민에게 5천만개의 책 취향이 있다.
책 정리하는 사서가 모아놓고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슨 책인지는 모르는 이쪽 면의 촬영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5천만 인구가 5천만 책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인쇄된 책이라는 '공통의 본질'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얄팍한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서점과 달리 이렇게 좌석이 많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언급해 둔다면, 교보만큼 책이 다양하고 많지 않다. 또한 전문 학술지나 학습지를 원한다면 이곳은 아니다. 여기는 그냥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싶은 자들이 엔터테인하는 곳이다.
아크앤북의 입구는 다소 아메리칸 복고 스타일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천장은 노출 천장이다. 다 덮어버린 천장보다 노출 천장이 훨씬 돈이 많이 든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면, 잘못한 것은 가려버리면 되는데, 노출은 가릴 수가 없다.
책방의 둘레에 이러한 식당들이 있다. 커피숍만 주로 있는 차원을 넘어 섰다. 코로나19 및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손님은 없었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style)을 찾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난 지도를 좋아한다. 내 style에는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왼쪽은 책방, 오른쪽은 식당이다. 바로 붙어 있다.
전면유리에 붙어 있는 테이블은 누구나 앉아서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커피숍이 아니다. 아크앤북에 속해 있는 공간이다.
이것을 써나가는 중에 알게 되었는데, 2020년 4월 잠실 아크앤북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른 아크앤북은 또 어떤 큐레이션으로 채워져 있는지 궁금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