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역대 36,14-16.19-23; 에페 2,4-10; 요한 3,14-21
+ 찬미 예수님
어제 사순 피정 좋으셨어요? 많은 분이 함께 하시면서 긴 시간 강의 듣고 기도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는데요, 오지 못하신 분들은,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니 시청하여 주시면 되겠고요, 23일에 두 번째 시간이 준비되어 있으니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대림 제3주일과 사순 제4주일 전례는 기쁨을 노래하고, 사제는 장미색 제의를 입습니다. 사순 4주일을 ‘레따레(laetare) 주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입당송이 라틴어 laetare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즐거워하여라’라는 뜻입니다.
오늘 입당송은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사순시기가 절반 정도 지난 시점에서 오늘은 쉼의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또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녀가 된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고, 진리를 실천하며 빛으로 나아갑니다.
제1독서에서 우리는 역대기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약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두 가지는 출애굽과 바빌론 유배인데요, 기원전 587년부터 538년까지 지속된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역대기는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주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고 말합니다. 한편, 바빌론 유배가 끝난 것은 페르시아가 바빌론 제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인데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유배 온 이들더러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자,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키루스가 야훼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 선포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여러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 유배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에 신은 야훼 한 분뿐이시고, 바빌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역시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어렵고 비참했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가장 귀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에는 바빌론 유배 때 고국을 간절히 그리던 심경이 담겨 있습니다.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 내 만일 예루살렘 너를 생각 않는다면, 너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 붙으리라.” 여기서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는 자기들 고향이지만, 우리에게는 자유와 해방,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에 소년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봉쇄수도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아니시던 아버지 때문에 봉쇄수도원은 말도 못 꺼내고, 교구 사제가 되는 것을 일종의 타협책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셨지만, 제 딴에는 나름 많이 양보한 셈이었습니다.
대학교를 한 학기 다니다가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신학교에 가겠다는 말씀을 드리자, 아버지는 크게 노하셨고, ‘앞으로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고 하셨습니다. 며칠간 서로 말도 안 하고 지내다가 아버지께서는, ‘신학교 시험 치는 것은 허락해 주겠지만, 다니고 있는 대학은 자퇴하지 말고 휴학해 주면 좋겠다. 아버지로서 마지막 부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휴학계를 내고, 집에서 다시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학력고사가 11월이었는데, 8월 말부터 입시 준비를 하자니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저녁마다 회사 동료들을 데려오시더니, ‘아들이 시험공부 하느라 고생하니까 술 한 잔씩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녁마다 술을 먹고 음주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학교에 합격하자 아버지는 크게 실망하셨고, 입학식에 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후 7년간, 제가 신학교를 그만두기만을 바라시며 여러 가지 압박과 회유를 하셨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세상이 빨리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유정아, 내가 잘못 생각했다, 내가 네 덕에 구원을 받는구나”하고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을 끊고,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자니 신학교 생활은 행복했지만, 방학 때 본당에 와서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선배들에 대해 속으로 ‘멸망하고 말 세상에 대해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라고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원 1학년이 되자 저는 아무래도 교구를 떠나 수도회로 가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수도 생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졌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영성 신학 수업 시간에 종말적 영성과 육화적 영성에 대해 배우면서, 제가 큰 착각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말적 영성은 세상을 죄와 고통의 장소로 보고, 현세에서의 이탈, 침묵, ‘자기’ 성화 등을 강조합니다. 한편 육화적 영성은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을 강조하는 영성으로, 세상 것을 업신여기지 않고 올바르게 사용하여 ‘세상’의 성화를 추구합니다.
종말적 영성이 파스카 신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인데 비해, 육화적 영성은 부활에 참여하는 영성으로서, 사랑과 헌신, 사회생활, 노동의 가치 등을 신앙 안에서 실천하고 강조함으로써 진보적이고 행동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이것을 배우고 나서 제가 그간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말적 영성만이 유일한 영성인 줄 알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해 사순 제4주일 미사 중에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며, 말씀 안에 이미 해답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이 말씀에 한참을 머물렀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신 세상을 왜 저는 그토록 미워하고 멸시해 왔던 것일까요.
요한복음에는 두 가지 세상이 나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10)는 말씀처럼, 한편으론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고, 예수님께서 육화하신 세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는 세상입니다. 이 둘을 혼동하면서 저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하게 되는 사회 구조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말씀하신 세상,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세상에 부합하는지 성찰합니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사회가 바빌론인지, 예루살렘인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왜 교회에서 그런 얘기를 하느냐, 듣기 불편하다’라고 따지는 목소리가 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신” 하느님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세상이 하느님 뜻에 맞게 되도록,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신학과 1학년 때 했던 생각, 세상이 빨리 멸망해서 “유정아, 내가 네 덕에 구원을 받는구나”하고 아버지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던 그 생각이 요즈음 제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느님 품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말씀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종말적 영성입니다.
동시에 오늘의 기쁨 주일이, 우리만의 기쁨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도 기뻐할 수 있는 주일이 되기를, 피조물들도 기뻐할 수 있는 주일이 되기를 고대하고,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부활이, 우리 개개인의 완성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는 이 세상의 완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세상일에 복음의 빛으로 참여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육화적 영성입니다. 두 영성이 우리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https://youtu.be/o407MyBGVUc?si=aCriDFcY6qmLOi09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Laetare Ierusalem), 사순 제4주일 미사 입당송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첫댓글 '가장 어렵고 비참했던 시기에 가장 귀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아직도 제가, '우리 민족도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는 민족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종말적 영성'에 치우쳐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 외아들을 내어주신 이 세상이기에...' 세상 구원의 복음의 빛이 되어야 할 정의사회 교리- '육화적 영성'의 당위성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한 달에 주 세 번은 신부님 강론 말씀에 눈물이 납니다.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안에 오시는 주님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시어 기도 중이신 토마스 아퀴나스 어르신의 귀한 말씀과 기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