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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부활]
멀리 성당이 보인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드러워지고 엑셀레타를 누르는 발에 힘이 간다.
‘주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시어 먹고 누릴 수 있는 많은 부를 주셨으니, 감사드려야 하지.
그동안 감사의 재물도 드리고, 신부님께 성사도 드렸으니, 나는 주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 항상 판공성사는
빠지지 않고 드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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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결산을 보고 두툼한 통장을 머리맡에 두고 잦더니, 아침이 개운하다. 기지개를 켜니 온몸이 부들부들하다.
귀여운 놈들이 인건비 확 줄이고, 자재비 확 줄여서 머리맡에 뜨끈뜨끈한 베개를 만들어 주었으니,
전신 마사지가 확실이 된 것 같다.
창문 밖이 철쭉꽃들과 어울려 돋아 오르는 새싹으로 초록이 아름답다.
정수기에서 “촤르륵” 쏟아지는 물을 마시고, 돌아보니 인기척이 없다.
언제 마누라 얼굴을 본지 모른다. 하루 한번 마누라 얼굴을 볼 때가 있었는데...
식탁에 아침밥은 있었는데...
오늘은 없다.
이 사람 제정신인가하여 무엇인가 속으로 끓어오른다,
‘이게 내가 얼마나 힘들게 먹여 살리는데 아침밥도 안줘’ 싹 피어오르는 분노에 마누라 방을 벌컥 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는 마누라의 눈이 퀭하다.
마주치는 눈이 눈을 감게 하고 고개를 돌리게 한다. 돌아서는 발자국소리가 말을 한다.‘
'아휴, 저 상판하고 내가 왜 살까’
털털거리는 발걸음을 따라 화장실에 앉아 온몸을 아래로 쏟으며 몸부림을 친다.
‘에이, 산이나 가야겠다.’
산 입구부터 풍경이 다르다. 등산복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지만, 저렇게 화려할 수가 있을까?
새순이 올라오는 연녹색 입에 때 이른 단풍이 들어버렸다.
적당한 작업복에 운동화를 신고 온 나는 공원 청소부 모습이 되어버렸다.
잠깐 흩어져있는 쓰레기를 모아서 통에 넣으려하는데, 지나가던 등산객이 나를 보고
“아저씨, 저기 쌓여있는 깡통 쓰레기 좀 치워주세요. 자연 풍경에 어울리지 안네요.”
황당하고 굳은 얼굴로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는, 나는, 아니에요.”
제 자리에 바위처럼 굳어 서 있는 나에게 말하였다.
하물며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아저씨 수고하세요. 감사해요.”
내 모습이 어떠하길레, 내 얼굴의 색깔이 어떠하길레, 저 사람들이 그러할까?
치솟아 오르는 분노가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하였다. 이래서는 안 되지 하여,
그 귀여운 놈에게 전화하였다.
“야, 너 당장 최고 좋은 등산복매장에 들러서 한 벌 사가지고 나 있는 곳으로 당장 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귀여운 놈은 옷 한보따리를 들고 왔다. 펼쳐보니 새것인지 헌것인지 아리송한 등산복이다.
옷을 손에 쳐들고,
“이것을 내가 입으라고?”
껄끄럽은 쇠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목을 길게 빼고 소리쳤다.
그 귀여운 놈이 말하였다. “제가 지금 당장 형편에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모두입니다.
제가 가진 모두입니다.”
높이 등산복을 들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손에 가려졌던 그 귀여운 놈의 모습이 보였다.
낡은 츄리닝 바람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땅을 파고 앞에 있는 것을 모두 뒷발로 팽개치며, 내 것을 찾아 내닫는 두더지의 형상이 두건으로 펼쳐 오더니,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귀여운 그놈한테 내미는 손이 점점 말라버리고, 가느다란 갈퀴손이 되어 오므라져 있고,
펴지지를 않는다.
“야, 너 이리 가까이 와라.”
그런데 귀여운 놈은 자라처럼 어께를 움츠리고 목을 한껏 가슴팍에 밀어 넣고, 눈동자만 위로 치켜뜨고,
사진처럼 멈추어 있다.
그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놈은 어께는 낮아지고, 굽어지는 머리를 따라 눈을 땅 밑으로 사라져버린다.
다가갈수록 허리가 더 구부러진다.
그런데 구부러지는 허리를 따라 어느덧 그 귀여운 놈 얼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놈도 쪼그려 앉았다. 나도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앉아있는 두 사람이 커다란 바위의 장애물인양 등산객들이 밀려오던 물결이 쪼개지듯 갈라져 스쳐간다.
시커먼 작업복에 운동화를 신은 한 사람, 푸른빛이 바랜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은 한사람.
형형색색 등산복의 화려함 속을 한 점이 되어 걸어가고 있다.
새싹이 수줍게 피어오른 틈사이로, 일찍 만발한 꽃들 사이로, 커다란 두 기둥이 되었다가,
작은 점이 되었다가하며 함께 시간을 시냇물처럼 흘려보내고 있다.
짧은 숲길을 지나 탁 트인 곳에 비스듬이 누운 능선이 다가왔다. 한쪽은 높고 둥그스름하고, 한쪽은 가늘게 쭉 뻗어,
꼭 사람이 팔베개를 하고 누운 모습이다.
그 가운데로 등산길이 나 있다. 배를 밟고 지나가는 형상이다. 등산길 위쪽으로 불쑥 솟아있는 바위가 어머니의 가슴 같다.
두 사람은 등산길을 버리고 바위를 향하여 걸어갔다. 사람이 걸어간 흔적이 있지만, 겨울잠을 깨고 일어나는 파릇한 풀들과
앉은뱅이 꽃들이 가득하다.
“어! 여기 제비꽃”
군데군데 무더기로 피어있다,
“아! 진달래꽃이 다 시들어버렸네.”
귀여운 놈이 돌아다니더니 한웅 큼 쥐고 온다.
“와! 고사리가 벌써 많이 피어있네.”
한참을 돌아다니더니 나를 부른다.
“여기 할미꽃이 있어요. 사람들이 할미꽃이 관상용으로 좋아하여 마구 캐가는 바람에 요즘 멸종 상태예요.”
놈은 뛰어다니면서 마른가지에 조그맣게 피어오르는 순을 보고, 이것은 칡 순, 명감나무 순, 산초 순, 싸리나무 순, 하며
온갖 나무와 풀과 꽃 이름을 외치며 헤집고 다닌다.
세상살이에서 많은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문 지식이라고 외쳐 대었었는데,
한 쪽으로 쏠린 눈이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를 멍멍하여진다.
“야, 너는 무엇을 먹고 그렇게 술을 퍼 마시면서도 팔팔하냐?”
“”나요? 그냥 마누라가 주는 대로 먹고 살죠. 반찬 한 가지도 좋은데, 요즘 저녁상은 뻑적지근하네요.
우리 집 밥상은 풀 나물로 열 첩 반상이 넘어버리네요. 거기다가 반주하라고 찌개까지 끓여 놓으니, 어찌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려고 몸부림치겠어요. 나 같아도 내가 술이라면 그냥 넘어가고 말지요.“
“야, 나는 말이야. 아침에는 우유 한 잔에 토스트 한 조각, 점심은 그냥 밖에서 때우고, 저녁에는 상 차려주고 휭하니 사라지니,
혼자 밥을 먹는다. 어제 그제 나온 반찬이 그대로 나오니 무슨 밥 맛이냐?”
“아휴, 세상살이는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나이 먹으면 돈이 머여? 자리가 머여?
쌕쌕이처럼 살며 술 한잔 꿀떡 삼킬수 있으면 그만이지요.
무엇이 제일일까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건강하고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누리고 십지요? 그 생각은 누구나 똑 같습니다.“
그놈이 가까이 다가와 심장을 찌른다.
쪼그려 앉아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눈빛이 물어본다.
“그 동안 많이 보고 배우셨지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것처럼 세상에 드러낼려며 사셨지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빼앗았으면서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자신의 창고에 가득 쌓아 놓으셨지요? 하물며 아내에게도 그 풍요음을 주지 않으셨지요?."
“항상 성당 일에 충실하시고, 성사를 꾸준히 보셨지요. 하지만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도, 아내의 따뜻한 밥상을 받을 수 없다면.....
구불어진 사랑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풍요로움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반쪽 사랑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주어서 항상 밝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진정 사랑이 아닐까요?“
“야, 내가 그것을 모르냐? 미사에 충실하고, 성경통독도하고, 성당 봉사에도 충실한데, 내가 주님께서 주신 복으로 재물을
조금 모았고, 그것으로 성당에 많이 베풀었는데,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냐”
그 놈이 말합니다.
“등산길에 올라 갈 때, 그 놈이 준 바랜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같이 하는 사람이 그러한 지경인데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왜 그러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 놈은 분명 ‘이것이 모두입니다. 제가 가진
모두입니다.’하고 말하였지만, 그저 흘러가는 귓속말로 날려버렸습니다. 무엇을 어디에 베풀었길레, 사랑이라고 말합니까?
백중에 하나를 내어 놓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열 중에 아홉을 내어 놓아도 똑같은 사랑입니다. 다만 얻은 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생각하여 보아야합니다.”
“아, 미치겠네. 이 놈아, 그러면 내가 이룬 것이 불의하게 이룬 것이냐?”
“모든 것은 자신의 세상살이의 잣대에 따라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 놈이, 한번 등산 길에 손을 잡아주었더니, 등산길에 많은 꽃과 풀들, 나무를 이야기를
하길레, 조금 높이 보아주려고 하였더니, 아주 상투를 잡고 흔들고 있다.
“야, 이 새끼야, 너는 귀여운 놈도 아니야, 너는 이제부터 모든 것이 끝이다. 한방 주먹이 날라가기전에 빨리 꺼져.”
“그래도 곁에 있고 싶은데요.”
벌떡 일어서 돌아서는데 그 놈이 옷소매를 잡았다. 잡고 늘어지는 손가락이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아 모질게 꺾어 던져
버렸다. 의자 밑으로 떨어지는 얼굴에 박혀있는 눈동자의 빛이 싫어 한주먹 깊게 날려 고개를 꺾어버리고, 가슴에서 쳐
올라오는 숨결을 가다듬고 산을 내려와 골목길을 돌아섰다.
한참을 걸어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담배하나를 뽑아 한숨 길게 뿜어내었다.
고개를 들고 허공에 세차게 뿜은 담배 연기가 가로등 불빛을 가린다.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 모금 빠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 온 몸을 덮쳐왔다.
손을 떠난 담뱃불은 가로등 높이까지 올라갔다 넘어진 가슴 안으로 떨어져 옷을 심지 삼아 작은 불꽃을 이루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에서 검은 손이 나와 배를 타고 올라와, 가슴에서 일어나는 심지의 불꽃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의 얼굴이 서서히 얼굴 앞으로 다가 왔다. 그 놈의 얼굴이다.
손을 비틀고 얼굴을 세차게 쥐어박은 얼굴, 피로 얼룩졌지만, 그놈의 눈빛은 그대로다.
아주 싫다. 일어나 뒤집어 센 발로 한방, 오른쪽 왼쪽 어퍼컷으로 대가리를 돌려쳤다.
축 늘어진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데, 또 다리를 꼭 잡는다. 그 바람에 오른쪽 구두가 벗겨져 버렸다.
그 놈을 친구에게 부탁하여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와 ,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양 손 양 다리 쫙 벌리고 엎어져 버렸다.
어제의 일이 무엇인가 마음이 묵직하다. 털털 털어야지 하며 구두를 신었다. 오른쪽 구두 안에 무엇인가 발끝을 막아선다.
구두를 들어 터는데, 종이 뭉치가 떨어진다. 빼어서 던져 버리려는데, 문득 글자가 손을 멈추었다.
“고해성사”
고해성사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여도 이 세상은 나를 항상 유혹하고 있어요.
삶이 무엇인지, 얻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 그것이 죄인지를 알면서도 죄를 함께 하며 살고, 죄인지를 모르고 함께 하다가 뒤늦게 죄를 깨달을 때가 있어요.
일주일을 살며 그 누가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의 죄악도 많이 있어요. 그날그날 매일미사를 드리며, 성체를 모실 수 있다면, 고해성사는 없을 것이지요. 하지만 매일 미사를 드리지 못한다면, 고해성사를 하여야겠지요. 자신이 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죄라고 깨닫는다면, 곧 그것이
성사일 것이이예요.
성호경은 주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기도예요. 하루에 자신이 한 생각과 말과 행위 중에서 죄라고
느낄 때, 곧바로 성호경을 하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고해성사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첫째, 가정의 고해성사
가정은 사랑의 꽃으로 시작했으니 충실한 열매를 맺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열매가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다툼 속에서
죄를 짓지요. 누가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악의 다툼이 벌어지지요. 가정 안에서 사랑하는 관계라면, 서로 먼저 잘못이라는
죄를 깨닫고, 솔직하게 아내, 남편에게 고백하고 죄의 용서를 청하면, 뜨거운 눈물로 안아줄 것이예요.
둘째. 세상에 대한 고해성사
세상살이에서 만남은 소중한 것이지요. 곧 만남으로 기뻐한다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님 안에서 만남과 세상살이에서 만남은 온전히 다르지요. 주님 안에서 만남은 유혹이 없지만, 세상살이에서의 만남은 유혹이 가득하지요.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이루어진 모습 그대로 서로 고백하고, 다툼과 시기와 질투가 있었거나 있을 때, 먼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주님의 평화 안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셌째. 가정의 고해성사와 세상에 대한 고해성사가 온전히 이루어졌을 때, 성전에 나와
신부님께 진실한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을거예요.
신으려고 들었던 구두가 손에서 바람에 날려가버렸다.
머라 속에서 모기와 매미가 번갈아 울어댄다. 뒷머리가 뜨거워지며 오른쪽 왼쪽이 번갈아 이야기한다.
‘이 놈이 천주교 신자였었나? 나는 손가락에 항상 묵주반지를 끼고 묵주기도를 이야기하며, 이 놈을 천주교 신자로
선교할려고 하였는데, 입교 권면할 때마다 깊이 고개 숙이며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 안았던 것이 소성호경이였었나?
그 놈이 있는 병원을 찾아 갔다. 친구에게 떠 넘겼으니 그 과정에서 반쯤은 더 죽었을 것이다. 병실을 찾아가는 복도를 걸으며
심장이 자꾸 두근거리는 것을 억누눌 수 없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병실 침상위에 늘어져 있는 줄과 팩이 가득하고, 사람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이 하얗다.
머리가 있을 곳을 찾아 고개를 숙였는데, 하얀 덩어리 속에서 두 줄기 빛이 솟아오른다.
지난밤, 의자 밑으로 떨어지면서도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 눈빛이 싫어, 되게 주먹으로 날려버렸던 눈빛이다.
그때 그 눈빛은 내 마음이, 내 눈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빛이었었는데, 그 빛이 지금은 마지막 촛불이 모든 기름을 태우고
사그러져가는 가느다란 불빛이 되어있다. 그 빛이 나의 눈동자를 통하여 가슴에 들어온 순간, 심장에서 물이 끓어오르고,
그 수증기가 올라와 목의 울대를 소리치게 울리고, 눈에 이르러 이슬이 맺혀 한없이 흘러내린다.
떨어진 이슬 한 방울이 향을 피우고, 또 다른 이슬들이 함께 어우러져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성당이 눈앞에 가까이 있는데, 걸어가도 그 거리다. 눈은 성당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다리가 뒤로 가는가.
앞으로 두 손을 길게 뻗어도 성당은 저 멀리 있다. 가슴 안에서 북치는 소리가 들린다.
‘빨리 가야돼, 그 놈을 살릴 분은 주님뿐이야. 내가 진실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그 놈을 살려 주실거야.’
성체 불빛이 있는 제대 앞에 온 몸을 엎드려 엎어졌다. 기도의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머릿속의 생각도 떠올릴 수 없다. 어느 순간 ‘이제 가 보아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깊이 잠이 들었던 것이다. 차가운 돌바닥인데,
포근한 융탄자에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가쁜하다.
그 놈이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석고로 조각한 듯한 모습이 시간을 초월한 정지 사진 같다.
얼굴이 있는 하얀 덩어리 위로 허리를 굽혔다. 덮혔던 눈꺼플이 터지고 밝은 눈빛이 솟아오른다.
시계 초침이 잠시 쉬어가는가?. 눈빛이 사그러든다. 커다랗게 놀란 눈이 맞추지는 순간, 그 놈의 눈동자에 물이 가득하다.
점점 커지더니, 물안경을 쓰고 있다. 땀 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손수건을 꺼내어 물안경을 딲아냈다.
많은 세월을 눈빛으로 살았다.
그 놈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붕대에 싸여 있었던 것인가 백옥같이 하얗다.
“이 놈아, 네가 천주교 신자인지 몰랐다. 본명이 무엇이냐?” “바오로입니다”
“앵? 바오로? 나는 바르나바인데.”
“그런데 성경에 사울이었던 사람을 사도들이 아무도 믿지 안았었는데, 바르나바가 이끌어
사도들안에서 믿게 하여 바오로가 되었는어, 오늘 바오로가 나를, 아니 바르나바를
이끌어주네.“
철쭉이 붉게 물들어 있다. 조금 멀리 하얀 철쭉이 보인다.
경사진 언덕을 등지고 서 있는 집. 창문을 열고 봄바람을 가득 불러온다.
“바오로, 우리 한잔하자.” “예, 바르나바 형님.”
창가에 술잔을 기우리려는데 형수님이 다가온다.
“왜 나 베로니카를 빼려고 해요. 나 있잖아요. 맛있는 안주가 있어야죠.”
노랑나비가 부채질하며 창가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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