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이터 서비스 본격 도입
‘내 손 안 금융비서’ 어떻게 활용할까
직장인 윤모(34)씨는 최근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 도입됐다는 소식을 듣고 핀테크 어플리케이션(앱)에서 금융 정보를 연동해봤다. 마이데이터는 금융사와 공공기관에 흩어진 정보를 금융 소비자가 한 플랫폼에 모아 관리하는 서비스이다. 2022년 1월 5일 오후 4시부터 금융사 33곳이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
윤씨가 인증서를 만들고 몇 차례 ‘동의’ 버튼을 누르자 스마트폰 화면에는 윤씨 자신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자산이 한 눈에 포트폴리오로 정리돼 있었다. 총 자산을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안 됐다.
윤씨가 쓰고 있는 은행 7곳, 증권사 4곳, 카드사 5곳, 보험사 4곳, 간편결제 서비스 2곳의 정보는 물론이고, 지난 3년간 건강 검진 결과와 지금 사는 집의 대출과 시세까지 반영돼 있었다. 증권사 정보를 끌어오니 최근 몇 개월간 사고 팔았던 주식 항목과 수익률까지 모두 조회됐다. 차 번호를 입력하니 소유 중인 차량의 중고 시세가 자산으로 잡혔다.
이어 뜬 화면은 윤씨에게 추천하는 ‘맞춤’ 금융 상품. 각종 은행의 대출한도와 금리, 보험 상품이 십수 개 떴다. 이날 마이데이터를 처음 경험한 윤씨는 “특정 업체가 내 모든 금융 정보는 물론 건강 상태까지 데이터로 갖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소름끼치기도 한다”며 “자산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어 간편하지만, 아직 금융 상품 추천은 정교하지 않아 맞춤형보다는 광고에 가까워 보였다”고 평했다.
마이데이터 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다. /픽사베이
2022년은 마이데이터 원년(元年)이 될 전망이다.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를 받은 금융사 대부분이 서비스를 본격 개시했다. 금융권은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거라 전망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에게는 아직까지 용어도 생소하고 그 쓰임새가 무엇인지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25.8%)은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 개시와 동시에 이용자에게 각종 경품을 뿌리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금융권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대체 마이데이터가 뭐길래 이렇게 금융사들이 발 벗고 나서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새로운 서비스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앞서 윤씨 사례에서 보듯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에 십여개의 금융 앱들을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플랫폼 하나에서 각종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3개를 쓰면, 기존엔 카드 사용액을 확인하기 위해 각 카드사 앱에 접속해야 했는데, 마이데이터 서비스에서는 한 번에 이달 청구 요금을 확인할 수 있는 식이다.
마이데이터 생태계. /한국신용정보원 제공
이렇게 보면 그다지 혁신적인 기술이 아닌 것도 같다.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금융 정보뿐 아니라 통신, 의료, 쇼핑 분야 정보까지 결합했을 때 소비자가 누리는 편익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라 금융 분야에서만 마이데이터가 활용되는 정도다.
이를테면 지금은 은행이 소비자가 온라인몰에서 카드로 얼마를 결제했는지 알 수 있지만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는 알 수 없다. 특정 소비자가 보험사에서 어떤 보험 상품에 가입했는지는 파악되지만, 어떤 병원에서 어떤 질병으로 진료비를 얼마나 썼는지까지 세세하게 파악은 안 된다. 통신 분야도 스마트폰 사용 요금 정도만 공유된다.
만약 정보가 여기에서 더 트이면, 병원 진료 내역 등을 파악해 그야말로 ‘맞춤형’으로 보험 설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위염으로 내과를 자주 찾았다면, 소비 정보와 결합해 커피를 자주 마시는 소비자에게 커피 섭취를 줄이라고 경고해줄 수도 있다. 실물 자산도 주택이나 자동차에 머물지 않고, NFT(대체불가토큰) 기술과 결합해 한정판 나이키 신발이나 명품백도 자산으로 하나의 앱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는 단순 정보 수집에 가깝지만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미래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마이데이터 사업에 뛰어든 금융사들은 소비자를 잡기 위한 각축전에 나서고 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서비스가 통합된다는 건 나머지 플랫폼은 버려진다는 뜻이다. 한 번 소비자 선택을 받으면, 해당 서비스에 소비자의 발이 묶이는 락인(lock-in)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주요 금융사들은 어떤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내놓고 있을까? 금융사들이 내놓는 서비스를 살펴보다 보면 마이데이터 쓰임새를 이해하기가 보다 수월하다.
KB국민은행은 자산과 지출 내역을 분석해 금융 목표를 설정하도록 유도하는 ‘목표챌린지’ 서비스를 내놨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 혹은 비슷한 자산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내가 어떤 항목을 많이 쓰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 커피값이 같은 나이대가 지출한 3만원 가량 높다면, 절약 목표치를 제안하고 이를 달성한 만큼 통장에 저축해준다.
KB국민은행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화면. /KB국민은행 제공
신한은행 마이데이터 서비스 ‘머니버스’에서는 공모주나 아파트 청약 일정은 물론, 나이키 드로우(추첨) 일정까지 보여준다. 카드와 페이, 멤버십 등 포인트를 한눈에 파악하게 해 자투리 자금을 모을 수 있게 돕는다.
우리은행이 내놓은 ‘우리마이데이터’에서는 결혼, 출산, 자동차 구매, 주택 구매, 조기은퇴 등 8가지 상황에 따라 자산 변화 예측 결과를 보여준다.
증권사들은 투자에 특화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투자진단보고서를 통해 여러 증권사에 흩어진 종목을 한눈에 확인하고 소비자의 투자 패턴과 성과를 비교·분석해준다. 한국투자증권 ‘모이다’ 서비스는 실물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관련 기업의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스크래핑과 API
평소 금융에 관심있는 소비자라면 기존 오픈뱅킹(은행 계좌 정보를 한 곳에 모아서 보는 서비스)과 마이데이터가 무엇이 다른지 헷갈릴 수 있다. 마이데이터는 정보를 모으는 방식이 다르다. 기존에는 소비자 동의를 받은 사업자가 소비자 대신 각 금융사 사이트에 접속해 화면에 출력된 정보를 긁어오는 ‘스크래핑’ 방식을 썼다. 이런 방식은 해당 금융사가 웹페이지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고, 보안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마이데이터는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소비자가 정보 전송을 요구하면,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다른 금융사 서버를 호출해 데이터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기존 스크래핑보다 보안이 강화되고, 비용과 시간도 단축된다.
jobsN 글 유소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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