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圖의 값은?
조 흥 제
세한도를 팔면 얼마나 받을까? 세한도(歲寒圖)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중엔 세한도를 어렵게 구입한 사람이 국회의원(國會議員)직을 지키려고 버린 사람도 있다.
KBS에서 방영하는 진품명품 프로를 자주 본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고서화, 도자기, 골동품들을 가지고 나와 전문가에게 평가 받는 프로다.
나도 20여 년 전 할아버지 유품인 천문도를 가지고 갔었다. 큰 한지(韓紙)에 천문도(天文圖)를 그린 것이다. 할아버님은 일정 때 주역에 나오는 그림(河圖)을 일생동안 공부하신 숨은 학자다. 피란 나올 때 가지고 나온 유품 중 하나여서 무명 학자의 작품이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고 싶었다. 담당자가 보더니 며칠 전 더 자세한 것이 나왔다고 하여 출품하지 못했다. 그런 전력이 있어 진품명품 프로에 관심을 가졌다.
진품 명품에 나오는 물품은 몇 백만 원 짜리가 대부분이고 천만 원 이상 나가는 것은 많지 않았는데 2억 원 이상 나가는 것도 있었다. 김소월시집 초간본(初刊本)인데 몇 권 없다고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제일 비싼 판정을 받은 출제품이 뭔가 알아보았더니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24억 원이라고 되어 있다. 며칠 전에는 한글로 된 책이 나왔는데 궁중에서 요리 할 때 쓰던 요리책으로 500년 이상 되어 값을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몇 년 후에는 문화재가 될 책이라고 했다. 그러자 국보급 문화재들이 진품명품에 나오면 얼마를 받을 가 궁금했다.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서예가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제주도에 유배 갔을 때 그의 제자 이상적이 연경(북경)에서 귀한 책을 여러 번 구해다 주어 고마움을 담아 정성을 다해 그려준 그림이다. 겨울에 들에 서 있는 소나무들로 혹독한 겨울을 뜻하는데 자신의 귀양살이 하는 신세를 담았다는 평이다.
세한도는 소장자가 11차례나 바뀌었다고 한다. 첫 번 째 소장자인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 김병선을 거쳐 한말(韓末) 권세가인 민영휘 집안으로 넘어갔다. 그 후 통사연구에 일가를 이뤘던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隣)의 소유가 되어 그가 귀국할 때 가지고 갔다. 서예가 손재형이 그 소식을 듣고 거금을 들고 세한도 소장자인 후지스카를 찾아갔다. 그는 세한도를 넘겨 달라고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거절당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100 일 만에 후지스카는 ‘내가 졌다.’면서 돈도 받지 않고 내 주었다. 손재형이 서예계의 대가인 오세창 선생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자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소전은 영원히 잘 간직하라’고 감격어린 축하를 해 주었다. 그때가 2차 대전 말기여서 며칠 후 후지스카의 집은 비행기 폭격을 맞아 불탔으니 세한도를 찾아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손재형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돈이 부족해지자 세한도를 저당 잡혔다 찾아 올 형편이 못 되었던지 손세기에게 넘어갔다. 손세기는 개성에서 인삼재배와 무역에 종사한 실업가였다. 아들 손창근씨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외국인 상사에서 일하다 사업을 하면서 아버지에 이어 고서화를 모았다. 1974년 서강대에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몇 년 전에는 용인에 있는 땅 200만 평(1000억 원 상당)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지만 차마 세한도는 내놓지 못했다. 나이가 많아지자(91)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고민 끝에 돈 한 푼 받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신문보도다.
세한도를 진품명품에 내 놓으면 최소 100 억 원에서 최고 1조 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평이다. 그런 국보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국가에 기증했다니 손창근씨는 얼마나 망설이다 내린 결단일까.
그 기사를 보면서 손재형씨를 떠올렸다. 손재형씨가 일본인 소장자에게 갖은 정성을 다 한 것에 감동을 받아 돈 한 푼 받지 않고 내 주었다니 학자다운 고고함이 있다. 손재형씨는 어렵게 손에 넣은 귀한 세한도를 국회의원 되어 돈이 모자라 저당 잡혔다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지만 눈앞에 닥친 불은 꺼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던 모양이다.
손재형씨는 세한도가 자기 손을 떠났어도 동포의 손에 있으니 안심한 것일까? 아니면 정치에 계속 몸 담고 싶어 세한도에 가졌던 마음이 변한 것인가. 정치에 깊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수렁이라고 한다. 세한도에 영혼이 있다면 귀여움을 받던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으니 그 마음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