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역사관은 암사동의 신석기시대 마을을 비롯해 명일동, 가락동,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백제의 도읍이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석촌동, 가락동, 방이동의 삼국시대 고분군,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 신라의 이성산성 등 다양한 문화유적과 유적물을 통해 서울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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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역사관 전경
1.선사시대
우리 역사에서는 보통 구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를 신석기시대라고 한다.
아직까지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약 8천년 전부터 농사나 목축을 하는 등, 신석기시대의 마을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3천년 전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고 이 무렵의 대표적인 나라는 고조선이다. 주요 흔적으로는 고인돌 무덤과 비파형 칼 등이고 일을 할 때에는 돌이나 나무를 사용했으며 토기의 대부분은 민무늬토기이며 신석기시대의 구멍무늬토기도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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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울의 무덤
한강유역에서는 여러가지 무덤이 만들어졌다. 역사시대의 무덤으로는 땅을 파고 주검, 관을 넣은 뒤 흙으로 덮은 돌무덤, 땅을 파지 않고 흙을 쌓다가 주검, 관을 묻은 흙무지무덤, 주검을 항아리에 넣고 묻은 독무덤, 돌을 깔고 주검, 관을 놓은 뒤 다시 돌로 덮은 돌무지무덤, 흙으로 만든 봉분에 돌을 1~2겹 얇게 덮은 즙석동토분, 돌로 방을 만든 뒤 흙으로 덮은 굴식돌방무덤 등이 있다. 석촌동, 가락동 일대에 분포하는 무덤들을 조사한 결과 기원 후 2~3세기에는 주로 널무덤, 독무덤, 흙무지무덤, 즙석동토분, 4세기 이후에는 돌무지 무덤이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굴식돌방무덤은 대개 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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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몽촌토성과 풍납동 토성
몽촌토성은 낮은 구릉에 쌓은 산성으로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성안에 곰말(꿈말) 곧 몽촌(夢村)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름모 모양이며 성벽 길이는2,285미터, 내부 면적은 216,000평방미터이다. 토성 안에서는 각종 토기, 기와류와 철제 무기류, 뼈갑옷, 중국에서 만든 동전무늬도기 및 청자조각 등이 출토 되었는데 대부분이 4~5세기경 백제사람들이 즐겨 쓰던 물건들이다.
풍납토서은 강변에 쌓은 평지 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23.5㎞ 정도였다. 지금은 약 2㎞ 가량만 남아 있다. 성안에는 성벽을 쌓기 전에 만든 세 겹의 환호와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이 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유물들은 모두 당시 최고급품이었다. 금반지, 백동거울, 옥구슬과 같은 귀중품은 물론 흙을 구워 만든 초석, 상하수도용으로 썼을 토관, 바닥에 까는 벽돌, 얇고 큰 기와 등 최고위층만 쓸 수 있었던 시설물이 많이 발견 되었으며 동전무늬도기와 청자처럼 중국에서 들여온 물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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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촌토성
4.고구려 문화
유물이 대부분 군사시설이어서 남방 진출의 교두보였음을 알 수 있다. 4세기에 들어 고구려는 적극적인 남방정책을 추진하였고 후반에는 신라를 예속시키고 백제, 가야, 왜 연합과 세력 대결을 벌이게 된다. 장수왕 42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475년에 3만 군대로 백제를 침공해 한성을 함락시키고 551년에 백제의 성왕이 한성을 회복할 때까지 한강유역을 지배 했다.
5.신라 문화
5세기 중엽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났으며 5세기 후반부터는 북방을 진출하려 했다. 551년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상류지역을 장악하고 553년에는 백제로부터 하류지역까지 빼앗아 한강유역을 독차지 하였다. 진흥왕은 즉시 한강 하류지역에 신주를 설치하여 확실한 영토로 삼았으며 신주는 북한주, 남천주, 북한산주, 한주 등으로 중심지와 이름을 바꿨는데 어느 때이든 지금의 서울지역을 중시하였고 이곳을 중국과 교류하는 주요 통로로 삼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6.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
한반도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많이 하였다. 중국과의교류는 선사시대부터 있었지만 삼국시대에 특히 활발했다. 고구려는 대개 육로로 중국 북부지역의 나라들과 교류하였으며 백제는 바다를 통해 중국 남부지역의 나라들과 교류했다. 고구려를 통하는 등 간접적으로 중국 문물을 접하던 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과 직접 교류했다. 당시에 삼국은 여러 분야에서 앞서 나갔던 중국을 배우고 익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일본 열도에서는 삼국의 문물이 크게 유행하여 일본의 고대문화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7.움집터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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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집터
움집의 대다수가 해발 25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토기류, 칼, 창 등 주로 철제무기류가 출토됨. 길이가 6미터이고 벽이 4미터이며 이 움집터에서는 화덕이 출토 되었으며 벽에는 10개의 기둥구멍이 있는데 긴쪽은 10개, 짧은 쪽은 4~5개 있었음.
7.관람 및 교통
●관람시간 : 09:00~18:00(휴관 : 매주 월요일 및 신정일)
●입 장 료 : 무료
●교 통 편 :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 3번 출구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
8.출토 유물 및 유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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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다음에는 "한성백제박물관, 소마미술관"과 "올림픽공원 9경"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와 !!! ~ 놀랍습니다.
안가봐도 가본것처럼 ~
감사합니다. 후배님 !!!
이렇게 읽고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